1. 본문에서 사도는 교인들을 대하는 목회자의 태도를 다룬다(1~2).
젊은 목회자인 디모데는 다양한 성도들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가?
특별히 그들의 잘못을 바로잡아야 할 때 어떻게 해야 하는가? 첫째는 남자 노인들을 대한 태도이다.
디모데는 젊은 목회자였고 구약 성경을 잘 아는 유대인이었다.
그는 “너는 센 머리 앞에서 일어서며 노인의 얼굴을 공경하며 네 하나님을 경외하라(레 19:32)”는 말씀이나
“네 부모를 공경하라(출 20:12)”는 말씀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디모데는 목회자로서 그들을 가르쳐야 했고 잘못을 바로잡아야만 할 책임도 있었다.
바울 사도는 그런 상황에서, 꾸짖지 말고 권하되 아버지에게 하듯 하라고 말한다.
여기 꾸짖는다는 말은 “때리다, 징계하다”는 강한 어감을 전달하는 단어다.
권한다는 것은 개인적으로 찾아가거나 불러서 부드럽게 훈계하는 것을 말한다.
즉, 사람들 앞에서 공적으로 책망을 하거나 부끄럼을 주지 말라는 말이다.
원리는 주님께서 마태복음 18:15~17에서 가르쳐주신 것을 따라야 한다.
젊은 남자들의 경우에는 조금 다르다.
역시 권하되, 친 형제에게 하듯 해야 한다.
디모데 자신이 나이의 연소함을 인하여 업신여김을 받아서는 안되듯이, 교회 안의 젊은 사람들도 나이로 무시를 당해서는 안 된다.
젊은 사람이라고 해서 디모데가 함부로 꾸짖을 수 있다고 말하지 않는다.
그는 형제에게 하듯 하고, 마치 아랫 사람을 책망하듯 혹 상사가 부하 직원을 대하듯이 해서는 안 된다.
사도 베드로의 말씀처럼, “너희 중에 있는 하나님의 양무리를 치되 …… 맡기운 자들에게 주장하는 자세로 하지 말고”라는 말씀을 기억해야 한다(벧전 5:2~3).
세째로 연세가 든 여성도들을 향해서는 어머니에게 하듯 해야 한다.
이것은 남자 노인들을 향한 태도와 같다.
마지막으로 젊은 여성도들을 향해서 젊은 디모데는 특별히 ‘온전히 깨끗함으로’ 친 자매에게 하듯 해야 한다.
‘온전히 깨끗함’은 ‘절대 순결’(absolute purity)을 말하는데 단지 성적 순결만이 아니라 마음의 순결까지도 의미한다.
사도 바울은 이 같은 교훈을 디도서에서 다시 상세하게 언급하였다(딛 2:2~6).
2. 사도가 초대교회에서 실제적으로 일어난 한 가지 이슈를 다루는데 그것은 과부에 대한 문제였다. 여기서 사도가 ‘참 과부’라는 말은 세 번 쓰는데(3,5,16), 부양할 친척이 아무도 없는 과부를 가리킨다. 이런 자들은 교회가 부양의 책임을 지라는 것이다. 여기에 관련된 몇 가지 실제적 교훈이 있다. 첫째는 과부의 자녀나 손자들, 친척들의 책임이다. 만일 그들이 그리스도인이라면 그들은 철저하게 과부가 된 어머니나 할머니 또는 과부가 된 친척을 감당해야 한다(4,16). 이것은 신자에게는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 만일 이런 책임을 하지 않는다면 그는 그리스도인이라고 할 수 없다고 사도는 강력한 선언을 한다(8). 그런 자는 믿음을 배반한 자요 불신자보다 더 악한 자다. 둘째로 참 과부 중에는 과부의 명부에 올릴 자들이 있다고 말한다. 그는 60세가 넘었고 한 남편의 아내였으며 선한 행실의 증거가 있는 사람이다(9~10). 선한 행실이란 자녀를 양육했거나 나그네를 대접했거나 성도들의 발을 씻기거나 환난 당한 자들을 구제하는 것과 같은 일이다. 즉 선한 행실로써 신앙의 분명한 증거를 드러내며 살던 자들을 말한다. 이들은 교회로부터 부양을 받지만, 한편 ‘경건한 어른들’로서 많은 젊은 여인들의 신앙의 모범이 될 자들이다. 세째로 과부에는 두 종류가 있다고 사도는 말한다. 참 과부로서 외로운 자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어 주야로 항상 간구와 기도를 하는 자들이다(5). 그녀는 의지할데가 없어 하나님만을 의지하고 하나님께 기도하며 살아간다. 한편 세상의 쾌락을 즐거워하는 과부들도 있는데 이들은 (영적으로) 살아있다고 하나 실상은 죽은 자들이다(6). 디모데는 이들에게 책망 받는 삶을 살지 말라고 명해야 한다(7). 넷째로 ‘젊은 과부’의 이슈다(11~15). 이들은 과부의 명부에 올릴 수 없다. 과부의 명부에 들어가려면 재혼을 하지 않고 주님만 섬긴다는 서약이 요구되었는데, 젊은 과부들은 그 서약을 버리고 재혼할 가능성이 있었기 때문이다(11). 사도는 과부의 재혼 자체를 반대하지 않는다. 도리어 권장하는 듯 하다(14). 그러나 서약을 어기고 재혼하는 것, 더 심각하게는 불신자와 결혼함으로써 믿음 자체를 저버리는 경우를 언급한 것이다(11~12). 또 재혼을 하지 않는다고 할지라도 저들이 과부의 명부에 들어서 사람들을 심방하며 섬기게 되더라도 두 마음을 가지게 된다면 도움과 기쁨 보다는 해를 주게 되고 주님을 온전하게 섬길 수 없기 때문이다.
3. 이어서 사도는 장로들에 대한 태도를 말한다(17~25). 장로의 조건은 이미 3장에서 언급했다. 이렇게 장로로 임명된 자들, 즉 잘 다스리는 장로들을 다른 사람들보다 마땅히 두 배로 존경하라고 한다(17).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는 장로(오늘날의 목사)들을 향해서는 더욱 그래야 한다. 사도는 신명기 25:4을 인용하여 전임으로 교회를 섬기는 장로들(주로 목사)은 마땅히 교회로부터 사례를 받아야 한다고 가르친다(18). 이것은 17절에 말씀한 존경과 감사의 표시다. 이렇게 하지 않는다면 그들은 하나님이 세운 지도자들을 통해서 은혜를 입지 못할 것이다. 나아가 지도자들이 비난을 받을 경우를 사도는 다룬다. 그것이 공식적인 비난이나 송사의 경우일 때, 두 세 증인이 없으면 받아서는 안 된다. 지도자이기 때문에 공연히 받을 수 있는 비난과 혐의를 다 다룰 수 없기 때문이다. 전쟁의 최전선에 있는 군인이 적의 표적이 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만일 그 송사가 사실로 드러나면 디모데는 그 사람(장로)을 공개적으로 회중 앞에서 꾸짖어야(잘못을 공개적으로 드러내고 바로잡아주어야) 한다. 그래서 성도들 모두가 죄를 두려워하게 해야 한다(20). 지도자들의 범죄 문제를 대강 덮고 넘어가는 것은 성경이 가르치는 바가 아니며 명백한 불순종이다. 그 결과는 교인들이 죄를 두려워하지 않게 되고 교회는 타락하는 것이다. 사도는 “하나님과 그리스도 예수와 택하심을 받은 천사들 앞에서 내가 엄히 명한다”고 말한다(21). 그러므로 목회자는 편견 없이, 누구의 편을 봐줌이 없이 정직하고 올바르게 이 원리를 순종해야 한다. 지도자가 이렇게 중요하기에 사도는 “아무에게나 경솔히 안수하지 말라”고 말한다(22). 그것은 성경의 기준에 따라 신중하게 해야 한다. 함부로 지도자를 세운 자들은(지교회 목사, 노회와 신학교 관계자) 후일 그 자격 없는 지도자들의 범죄에 대한 책임을 지게 될 것이다. 지도자를 세우는 문제는 목회자가 자신의 정결을 지키는 문제다! 사도는 위장병으로 고생하는 디모데에게 약간의 포도주를 쓰라고 권면한다(23). 사도는 재차 장로 지도자를 뽑는 문제에 신중을 기할 것을 부탁한다(24~25). 어떤 사람들의 죄는 밝히 드러나서 먼저 심판(판단)을 받지만, 어떤 사람들의 죄는 시간이 지나서야 드러나는데 지도자들을 선출할 때도 나중에 나타날 잘못과 죄를 고려하여 신중하라는 말씀이다.
4. 사도는 성도들과 목회자의 관계, 특히 과부들에 대한 돌봄의 원리, 마지막으로 장로들에 대한 문제를 교훈했다. 이 원리들은 오늘날의 교회에 어떻게 적용되고 있는가? 이 원리와 권면 가운데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말씀하시는 바는 무엇인가? 너무 많은 원리들이 무시되고 있지는 않은가? 우리는 말씀의 원리 특히 이 목양의 원리들을 온전하게 순종하는 교회를 이루어야 한다.
5. “하나님 아버지, 주께서 친히 말씀으로 가르치신 교회와 목양의 원리들을 저희가 온전히 순종하게 하사 주님의 영광이 온전하게 나타나는 교회들이 되게 하옵소서.”
김형익 목사(벧살롬 교회)
http://ctimes.or.kr/news/view.asp?idx=1171&msection=4&ssection=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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