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토끼와 달걀과 빈 무덤(김명도교수)

김명도박사(미국)

by 김경호 진실 2011. 4. 20. 09:13

본문

오는 4월 24일은 금년도 부활주일로 지키는 날이다.
주님의 부활을 기념하는 부활절은 해마다 찾아온다. 기원 325년 니케아 종교회의에서 결정한대로 매년 춘분, 즉 3월 21일이 지나서 첫 만월 후 첫 주일이 부활주일이므로 매년 3월 21일에서 4월15일 사이에 부활절을 맞게 된다. 그래서 금년은 4월 24일이 부활절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부활절이 되면 예수님의 빈 무덤을 생각하기 보다는 교회마다 다투어 계란을 예쁘게 색칠하거나 숲속에 달걀을 숨겨두고 보물찾기를 즐기는 풍습이 보편화되어 버렸다.  많은 사람이 이상하게 생각하는 것은 어떻게 해서 부활절에 달걀이 등장하게 되었는가 하는 문제이다. 또 상점에는 예외 없이 토끼, 영어로는 Easter bunny라고 하는 것이 등장하고, 부활절만 되면 상점마다 계란과 토끼인형의 수입이 올라 재미를 본다. 부활절이 되면 으레 달걀을 만지고 토끼인형을 가져야 흡족해하는 동심(童心) 때문이리라. 또한 그런 동심 뒤에는 아이들의 호기심을 만족시키려는 무분별한 부모들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성도들이 이 풍속(風俗)의 유래를 안다면 부활절에 달걀이나 토끼를 생각하기보다 텅 빈 그리스도의 무덤을 생각하게 될 것이다.

     우리 주님은 이 땅에 33년 계시면서 고난과 슬픔의 생애를 보내셨다. 특히 그의 공생애 3년 동안에 동족인 유대인들에게서 받은 핍박은 말할 수 없었다. 주님이 십자가에 돌아가신 후 그 제자들과 사도들이 받은 고난은 극에 달했으니 히브리서 11장 33절 이하에는 그 고통 받은 모습이 잘 기록되어 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요한을 제외하고는 모두 순교했다. 로마의 황제들은 가급적 기독교 신도들에게 관용하려 했으나 네로황제는 가장 가혹하게 기독교도들을 핍박했으니 기원 64년에 로마성에 방화한 후 그 책임을 기독교도들에게 전가하여 많은 그리스도인들의 생명을 앗아갔고 심지어 사람의 몸에 불을 질러 로마성의 가로등을 대신했다는 기록을 보일 정도라면 그 잔학성을 가히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네로황제의 이름은 성경에 없으나 성경 연구가들은 사도행전 25:21의 “가이사”를 네로황제로 보고 또한 디모데후서 4장17절의 “사자의 입”을 네로를 암시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네로황제의 기독교 박해의 흔적은 오늘날에도 남아 있는데, 로마의  원형극장 Coliseum 이 바로 그곳이며 순교자의 유품도 값없이 구할 수 있으니 원형 극장 안뜰에서 흙 한줌을 집어 들면 그것이 바로 주를 위해 죽어간 순교자들의 유해이며 유품이다. 원형극장은 3층으로 되어 있으며 기록에는 일시에 4만 5천명을 수용할 수 있었다고 한다. 로마사람들은 이곳에서 자주 그리스도인들이 사자에게 찢겨 죽는 일과 양의 가죽 입힌 성도들이 이리떼에게 찢겨 죽는 것을 큰 구경거리로 여겼다.

       그러나 그 불같은 시험이 잠간 막을 내리게 되었는데, 기원 311년에 로마의 황제 갈레리우스(Galerius)가 죽고 그 뒤를 이어 Constantine이  황제가 되었기 때문이다. 콘스탄틴 황제도 처음에는 기독교도들을 박해할 생각이었으나 그의 부인의 간곡한 만류로 인하여 관용을 베풀게 되었는데, 직접적 동기는 왕위 쟁탈전으로 그가 십자가가 밤하늘에 불빛으로 나타나는 것을 보고 다음 날 나가 싸울 때 “밀비안 다리”(Milvian Bridge)에서 대승 하였기 때문이라고 사학가들이 전하고 있다. 그는 부인의 마음을 사기할 겸, 또 전쟁에 대승한터라 기독교를 용인하는 313년의 “밀란 칙령”을 내려 관공서의 요직들은 기독교신자로 채우게 하였다. 또한 교회의 문을 넓게 열어 누구나 기독교에 들어오게 했다. 그러나 여기에 콘스탄틴 황제의 결정적 실수가 있었다. 만일 그가 기독교를 계속 박해했다면, 오늘날의 이단들이나 사이비 신자들이 없었을 것이요 교회는 순수하게 보존되어 왔을 것이다. 이단은 핍박이 없을 때, 즉 한가할 때에 생겨난다.

       콘스탄틴 대제의 너그러운 조치는 일면 좋게 보이나 실제에 있어서 얻은 것 보다는 잃은 것이 더 많았다. 기독교는 드디어 로마의 국교가 되어 너도 나도 모두 유행처럼 기독교를 믿어 사회에서 대우를 받고 관공서의 요직 혹은 군대에서 좋은 보직을 받았다. 이방인들도 앞을 다투어 들어 왔으나 이들은 교회가 무엇인지 몰랐고 또 알려고 하지도 않았다.  교회에서는 교인을 영입할 때 회개나 중생과 같은 기독교의 기본교리를 외면한 채 외식적인 세례만으로 교인이 되는 권세를 누리게 했다. 기독교는 회개와 중생이 세례보다 앞서야 함에도 교회는 그런 일에 도무지 신경을 쓰지 않았다. 마귀는 이런 시기를 잘 포착하는 법이다. 이 일에 마귀가 어떻게 끼어들었는지 살펴보자.

       뜨거운 불속에는 세균이 있을 수 없다. 세균은 죽는다. 교회에 불 같은 핍박이 오면 가짜 신자, 건성으로 믿는 사이비 신자는 모두 신앙을 버리거나 도망가게 마련이다. 따라서 교회는 그리스도의 신부로 알맹이 신자들만 순결을 유지할 수 있게 된다. 콘스탄틴 대제가 이방인들도 기독교에 영입하자 많은 이방인들이 구원의 도리도 모르면서 기독교에 들어오게 되었는데, 문제가 된 것은 옛날 예수 믿기 전에 그들이 섬기던 이방신들이었다. 마땅히 이방신들을 버려야 했건만, 기독교가 무엇인지 모른 채 명예 혹은 직업을 위해서 기독교에 귀의한 이들 이방인들은 옛날 이방신을 믿던 풍습을 좀처럼 버리려 하지 않았고 콘스탄틴 황제도 이를 묵인 하였다.  

       한편으로는 예수를 믿지만 봄만 되면 그들이 조상 적부터 섬겨오던 이방인의 신들을 섬기기를 서슴없이 했는데, 이는 마치 조상에게 제사를 지내면서도 겉으로는 예수를 믿는 어떤 한국인들에 비유할 수 있을 것이다. 이들이 믿는 이방종교에서는 사람이 맑은 물로 몸을 씻으면서 물의 여신을 부르면 그 사람이 새 사람이 된다는 교리도 있었으니 오늘날 “수세 중생설”(Baptismal Regeneration)은 여기서 유래한다. 참다운 회개가 없이 겉으로 물로 세례만 받는다고 해서 그 사람이 중생하는가? 그러므로 이들은 세례를 그런 의미로 알고 세례에 임했다. 여기서 참된 기독교도와 거짓된 이방종교와의 엄격한 구분은 무너지고 교회 생활은 우상을 섬기면서 편리할 대로 살아가는 실리주의 방향으로 흘러갔다. 이런 상황 속에서 부활절과 달걀과 토끼가 관련을 짓는 비극이 나오게 된다.

       콘스탄틴 황제 이전에 유대인들은 봄에 유월절을 지켰고, 기독교도들은 매일 혹은 한 주일에 한 번씩 주님의 죽으심을 기념하여 떡과 잔을 들었다. 주님은 그의 죽으심을 기념하라고 하신 것뿐이요 그의 탄생이나 그의 부활을 기념하라고 하시지는 않았으나 초대교회는 주님의 부활을 기념하여 벌써 주일에 예배를 드린 흔적이 있다. Eusebius의 “교회사”(Eusebius' Ecclesiastical History)나  Irenaeus의 “Against Heresies”를 보면 그런 기록들이 보인다.  

       그런데 이들이 믿는 이방 신들 중에 가장 유명한 신은 “이스다”(Ishtar)로서 같은 신의 이름이 애급에서는 “이시스”(Isis)로 불리어지고, 베니게에서는 “아스돗”으로 불리우고, 헬라에서는 “아브로디도”(Aphrodite)로 불리어지고, 로마에서는 “비너스”(Venus)라고 불리워지는데 이는 “사랑의 여신”으로 “다산신”이었다. 원래가 고대의 이방신들은 대개 “다산신들”(gods of fertility)이 많았다. 이방인들의 신앙으로는 “Ishtar”라는 여신은 하늘에서 “유브라데” 강에 떨어진 달걀 속에서 태어났다는 것이다. 마치 우리나라의 단군 신화 같은 이야기라고나 할까.  

      그러기에 이들은 이 여신을 “하늘의 황후”(Queen of Heaven)라고 불렀고 이스라엘 백성도 이런 신을 섬기는 제단들을 두고 섬긴 적이 있었는데, 예레미야 7:18에서 하나님이 진노하시는 모습을 볼 수 있다. 하나님은 “이 백성이 나에게 기도하지 말라. 기도해도 내가 듣지 않으리라”라고 엄히 이스라엘 백성을 꾸짖으셨다. 이 여신은 예레미야 44:17에서는 “하늘의 여신”(goddess of heaven)으로 나타난다. 이방인들이 어떻게 이 여신을 섬겼는가 하면, “Ishtar”는 “사랑의 여신”, 특히 문란한 “다산신”(多産神, god of fertility)인지라 이들 이방인들은 봄에 숲속에서 음란한 일을 하며 축제를 벌이는 것으로 그들의 신을 섬겨 왔다. 그들의 제사에는 과자를 구어서 신들에게 바치기도 했는데 예레미야 7:18에서 그 모습을 생생하게 읽어 볼 수 있다. 멀리 로마에서 마저 이방인들이 이런 신을 섬기게 된 유래는  창세기 10장에 나오는 “님롯”(Nimrod)이 세운 바벨론 나라에서 비롯된 이런 우상숭배가 바벨론이 멸망하면서 바벨론의 모든 제사장들이 로마로 도망가게 되면서, 그곳 로마에도 이름만 바꾸어 놓은 같은 우상의 신들을 소개하는데서 기인한다. 그러므로 “이스다”와 로마의 “비너스”는 같은 신이다.

       그런데 “이스다”(Ishtar) 여신에게는 애완동물이 있었으니 토끼였다. 재미있는 것은 이들 이방인들은 토끼가 알을 낳는다고 믿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방종교는 봄에 부활절 행사에 끼이게 되었고 이 때는 그리스도의 부활축제보다도 그들 나름대로 “사랑의 여신”인 “Venus”, 혹은 “아스돗”, 혹은 “이스다”라고 불리는 “하늘의 황후”에게 경배하며 음란한 축제를 벌이는 일에 더욱 관심이 있었다. 원래 바벨론 신인 “Ishtar”는 “Venus”라는 이름으로 로마에 알려졌고, 다시 영국으로 건너가서는 튜톤족(Teutons)이 “Easter”라는 이름으로 4월에 이 여신을 섬기게 되었는데, 그리스도의 부활절이 봄, 흔히 4월에 있게 되어 부활절을 영어로 “Easter”라고 불리어지게 되었음을 알 필요가 있다.

       “이스다”(Ishtar)에게는 아들이 하나 있어 에스겔 8장13절 이하에 보면 그 이름이 “담무스”(Tammuz)로, 젊어서 산 돼지에게 죽임을 당하자 그 어미가 40일간을 금식하며 통곡하니 다시 살아났다고 하는데, 오늘의 사순절은 콘스탄틴 황제시대 이런 이방인들이 그들의 섬기는 신을 도입한데서 유래한다고 사학가들은 말하고 있다.

       칼빈은 크리스마스를 기념하지 않았으며 초기의 청교도들도 그러했다. 주님의 나신 날과 부활을 기념하는 일은 좋으나 성탄절과 Santa Claus가 관계없는 것처럼, 달걀과 토끼는 부활절과 아무런 관계가 없다. 부활절에는 텅 빈 무덤 속으로 우리의 시선이 집중되어야 한다. 주님은 죽은 지 삼일 만에 사망의 권세를 이기시고 살아나셨다. 이것만이 중요하다.  그리스도가 살아나시어 부활의 첫 열매가 되셨으므로, 그리스도와 연합한 우리도 육신의 부활을 의심 없이 믿는 것이다. 우리 주님이 말씀하시기를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라”라고 요한복음 11:25에 약속하셨다.  

       부활은 기독교의 핵심이다. 부활절에는 부활하신 주님의 빈 무덤을 생각하며 감사하고 찬송해야 한다. 토끼와 달걀이 주님의 부활과 무슨 상관인가? 고린도후서 6장은 우리에게 엄히 경고한다. “그리스도와 벨리알이 어찌 조화되며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가 어찌 상관하며 하나님의 성전과 우상이 어찌 일치가 되리오”(고후 6:15-16). “사망아, 너의 이기는 것이 어디 있으며 사망아 너의 쓰는 것이 어디 있느냐?”라고 고린도전서 15장 55절에서 바울은 승리의 개가를 부른다. 다시 살아나시어 하늘 보좌에 앉으신 주님, 앞으로 세상을 심판하실 그 주님을 위하여 신앙과 생활이 일치하는 성도가 되자.  

      금년 부활절에는 계란에 색칠하는 세속적 풍습을 타파하고 오로지 주님이 죽음의 권세를 이기고 살아나신 그 구원의 은혜를 마음껏 찬송하자. “사셨네, 사셨네, 예수 다시 사셨네.” 이 부활신앙을 널리 전파하자.            -토끼와 달걀과 빈 무덤, 끝-

      글: 김명도 교수 (튤립 신학 연구원 원장)


    “튤립 교육 선교회 김명도교수의 글. www.tulipministries.com”

728x90

관련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