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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려워하지 말라

황상하목사(뉴욕)

by 김경호 진실 2011. 6. 16. 09:44

본문

201165일 주일설교

제목 : 두려워하지 말라

본문 : 3:1-5

                                                                                                 설교자 : 황상하 목사

1 우리가 돌이켜 바산으로 올라가매 바산 왕 옥이 그의 모든 백성을 거느리고 나와서 우리를 대적하여 에드레이에서 싸우고자 하는지라/ 2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그를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그와 그의 모든 백성과 그의 땅을 네 손에 넘겼으니 네가 헤스본에 거주하던 아모리 족속의 왕 시혼에게 행한 것과 같이 그에게도 행할 것이니라 하시고/ 3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바산 왕 옥과 그의 모든 백성을 우리 손에 넘기시매 우리가 그들을 쳐서 한 사람도 남기지 아니하였느니라./ 4 그 때에 우리가 그들에게서 빼앗지 아니한 성읍이 하나도 없이 다 빼앗았는데 그 성읍이 육십이니 곧 아르곱 온 지방이요 바산에 있는 옥의 나라이니라./ 5 그 모든 성읍이 높은 성벽으로 둘려 있고 문과 빗장이 있어 견고하며 그 외에 성벽 없는 고을이 심히 많았느니라.”  

성경에 두려워하지 말라는 말이 71번 나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씀을 하신 것은 우리에게 두 가지를 생각하게 합니다. 첫째는 두려워하지 않아도 된다는 뜻이고, 둘째는 두려움을 주는 무엇인가가 있다는 뜻입니다. 이 두 가지를 요약하면 우리들이 두려워하는 것은 사실 두려워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라는 의미가 됩니다.

헤스본 왕 시혼을 격파했을 때는 그것이 새로운 일, 기억할 일이라고 하였습니다.

2:25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오늘부터 내가 천하 만민이 너를 무서워하며 너를 두려워하게 하리니 그들이 네 명성을 듣고 떨며 너로 말미암아 근심하리라 하셨느니라.”

그 전의 출애굽 사건은 헤스본 왕 시혼을 격파한 것보다 더 큰 일이지만 오늘부터 천하 만민이 이스라엘을 두려워하게 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니까 이 사건은 새로운 차원의 일이라는 뜻입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백성으로 신분이 달라진 자들의 지위와 조건과 힘이 어떤 것인가를 세상에 보여주는 면에서 새로운 일이며 기억할만한 일이라고 한 것입니다.

  이제 오늘 본문에서 바산 왕 옥을 격파하는 일에서 강조되고 있는 점은 두려워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후에 여호수아에게도 주신 말씀입니다.

21절에 그 때에 내가 여호수아에게 명령하여 이르기를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두 왕에게 행하신 모든 일을 네 눈으로 보았거니와 네가 가는 모든 나라에도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행하시리니/ 22 너희는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친히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라 하였노라.” 

하나님의 백성이 신앙의 현장에서 믿음의 싸움을 싸울 때 가장 방해가 되는 요소가 무엇인가 하면 신자를 망하게 하려는 사탄의 유혹과 위협과 방해공작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신자가 하나님과 사탄의 세력이 대등한 것처럼 오해를 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전혀 그렇게 가르치지 않는데 사람들이 그렇게 오해를 합니다.

  옛날에 나온 영화인데 엑소시스트오멘같은 영화를 보면 하나님의 영과 악한 영이 싸우는 내용으로 되어 있습니다. 엑소시스트에서는 신부가 악령과 싸우다가 죽습니다. 오멘에서도 사람들이 악령과 싸우는 데 아무리 십자가를 내밀고 성경책으로 도배를 해도 악령을 당할 수가 없습니다. 악령이 보통 센 게 아닙니다. 하나님의 영과 악령이 밀고 밀리면서 싸우다가 하나님의 영이 지기도 합니다. 요즘은 아마도 이런 영화의 발전된 버전이 나왔을 것입니다. 그런 영화의 영향으로 사람들은 하나님과 사탄이 대등한 것으로 오해를 합니다.

영화는 진리를 드러내고 전하는 데 관심이 없고 돈을 벌기 위해 흥행을 일으키는 것을 목적으로 하기 때문에 거짓을 진실처럼 꾸밉니다. 그런데 신자들이 성경의 가르침에는 별로 영향을 안 받고 영화나 소설 같은 것에는 영향을 받아서 하나님의 영과 악령이 대등한 것으로 생각을 하고 악령을 두려워합니다.

  사탄이 두렵지 않다면 거짓말입니다.

사탄은 두려운 존재입니다. 무서운 존재이고, 악한 존재입니다. 사탄은 신자를 유혹하고, 위협하고, 회유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또한 사탄은 그렇게 두려워하지 않아도 될 존재입니다. 본래는 사탄이 두려운 존재였는데, 사탄이 그 힘과 지위를 잃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믿고 예수님을 믿는 신자라면 사탄을 두려워하지 않아도 됩니다. 그런데 두려워하지 않아도 될 사탄을 두려워하기 때문에 성경에는 두려워하지 말라는 말씀이 등장하는 것입니다.

2:14 “자녀들은 혈과 육에 속하였으매 그도 또한 같은 모양으로 혈과 육을 함께 지니심은 죽음을 통하여 죽음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멸하시며

여기 마귀를 멸하시며라는 표현은 마귀를 죽여 없앴다는 뜻이 아니고 그 지위와 권세를 박탈했다는 의미입니다.

12:9-12절에 이 문제에 대한 더 자세한 내용이 나옵니다.

큰 용이 내쫓기니 옛 뱀 곧 마귀라고도 하고 사탄이라고도 하며 온 천하를 꾀는 자라 그가 땅으로 내쫓기니 그의 사자들도 그와 함께 내쫓기니라./ 10 내가 또 들으니 하늘에 큰 음성이 있어 이르되 이제 우리 하나님의 구원과 능력과 나라와 또 그의 그리스도의 권세가 나타났으니 우리 형제들을 참소하던 자 곧 우리 하나님 앞에서 밤낮 참소하던 자가 쫓겨났고/ 11 또 우리 형제들이 어린 양의 피와 자기들이 증언하는 말씀으로써 그를 이겼으니 그들은 죽기까지 자기들의 생명을 아끼지 아니하였도다./ 12 그러므로 하늘과 그 가운데에 거하는 자들은 즐거워하라 그러나 땅과 바다는 화 있을진저 이는 마귀가 자기의 때가 얼마 남지 않은 줄을 알므로 크게 분내어 너희에게 내려갔음이라 하더라.

이것은 어떤 장소에서 다른 장소로 쫓겨났다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십자가 사건으로 사탄의 권세와 지위를 박탈시켰다는 말씀입니다. 사탄은 참소 자 이었는데 그의 지위를 박탈당했다는 뜻입니다. 인간의 죄를 고소하던 사탄이 그 권세를 빼앗겼습니다. 그 결과 사탄은 실세를 잃었습니다. 사탄에게는 허세만 남았습니다. 그래서 두려워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8:34절을 보십시다.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

고소 자 사탄은 그의 지위에서 내어 쫓기고 우리를 변호하시는 예수 그리스도만 하나님 우편에 남아 계십니다. 이러한 그림에서 그려진 바와 같이 사탄은 죄와 사망으로 우리를 얽어매는 권세를 잃었습니다. 이제 하나님 우편에는 우리를 편드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만 계십니다. 그렇다고 사탄이 사라진 것은 아닙니다. 실세는 잃었지만 허세라도 부려서 신자를 위협하고 유혹하고 회유합니다.

옛날에는 사탄이 우리를 사망에 가두는 권세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죄로 옭아매어 꼼짝도 못하게 하였습니다. 완전히 죄의 종이 되어 사탄에게 굽실거리기만 하였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사탄의 권세를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사건을 통하여 쳐 부셨습니다. 그래서 사탄이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었습니다. 옛날에는 사탄이 힘 있고 권세 있는 자의 여유로 우리 위에 군림하였었지만 실세를 잃고 난 후로는 악만 남아서 발악을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사탄이 우는 사자 같다고 합니다.

위협과 유혹은 사라지지 않았지만 그것은 말 그대로 위협과 유혹 뿐입니다. 

16:33 “이것을 너희에게 이르는 것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28:18-20절에 예수께서 나아와 말씀하여 이르시되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19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20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그런데 주님께서 세상 끝 날까지 우리와 함께 계심에도 불구하고 위협과 유혹은 계속될 것입니다. 그러나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주님이 세상을 이기셨고 마귀 사탄을 무장 해제시키셨습니다.

4:1- 에 보면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애굽에 가서 이스라엘을 구하라고 하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기 말을 믿지 않고 하나님께서 너에게 나타나지 않았다고 할 것이라고 합니다. 모세는 백성들을 빙자하여 자기 말을 하였습니다. 그 때 하나님께서 지팡이를 던져 뱀이 되게 한 후에네 손을 내밀어 뱀의 꼬리를 잡으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이 대목에서 재미있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뱀의 머리를 잡으라가 아니라 꼬리를 잡으라고 하였습니다. 뱀 이야기는 창세기 3장에 등장합니다. 뱀이 저주를 받아 여자의 후손에게 머리에 치명상을 입을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여자의 후손은 예수님입니다.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하는 것은 예수님께서 하실 일입니다. 이스라엘을 해방시키는 일은 모세가 할 일이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하실 일입니다. 모세는 뱀의 꼬리만 잡으면 됩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뱀을 두려워합니다. 머리에 치명상을 입은 뱀인 줄 모르고 두려워합니다. 무는 뱀인 줄 알고 겁을 먹습니다. 그런데 그 뱀은 이제 물지 못하는 뱀입니다. 그러니까 두려워 할 이유가 없습니다.  

본문에서 이스라엘이 시혼을 어떻게 이겼는가를 설명합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애굽에서 이스라엘이 애굽과 싸운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싸우셨습니다. 신자는 자기가 힘이 있어 큰 소리 치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자기가 힘이 있는 것처럼 행세하는 신자는 가짜 신자입니다. 신자는 자기에게는 힘이 없지만 자기 아버지 백을 믿고 겁 없이 두려움을 모르고 사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성경에 믿음이 없다는 꾸중은 있어도 능력이 없다는 꾸중은 없습니다.

신자는 자기의 신분이 무엇인지를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이미 이긴 싸움을 싸우는 것이 신자입니다. 이미 끝나버린 싸움의 승리가 승리 편에 속한 사람들입니다.

이스라엘이 바산 옥을 쳐서 이길 수 있는 것은 헤스본 왕 시혼을 쳐서 이긴 것과 같습니다.

이스라엘이 헤스본 왕 시혼을 쳐서 이기고 또 바산 왕 옥을 쳐서 이길 수 있는 것은 출애굽 사건이 보증하는 것입니다. 출애굽의 큰 사건이 그 후의 모든 싸움에서 이스라엘이 이기도록 보증하는 사건이 된 것입니다. 실제로 하나님께서는 출애굽 사건을 그렇게 보라고 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이 두려워 할 때마다 내가 어떻게 너희를 출애굽 시켰는지 잊었느냐고 하셨습니다.

이야기가 이렇게 되는 것입니다.

살아 있는 뱀의 꼬리를 잡으면 물릴 수가 있지만 죽은 뱀의 꼬리를 왜 못 잡느냐는 겁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뱀의 머리를 까부셨기 때문에 꼬리를 주물려도 괜찮습니다. 이것이 바로 신자가 두려워하지 않아도 될 신학적 이유요 설명입니다.

  우리가 두려워하지 않고 담대할 근거가 무엇입니까?

이스라엘이 두려워하지 않고 담대할 근거는 힘이 아니고 능력이 아니고 경력이 아니고 지식이 아니고 재물이 아닙니다. 그들이 두려워하지 않을 근거는 그들의 지위와 신분입니다. 바로의 노예에서 하나님의 백성인 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 된 자가 두려워하지 않고 담대할 수 있는 근거는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지키시고 보호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신분이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입니다. 그 증거가 많고 전리품들도 많습니다.

오늘 본문에서만도 그 증거와 전리품들이 많습니다.

3-5절까지 보십시다.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바산 왕 옥과 그의 모든 백성을 우리 손에 넘기시매 우리가 그들을 쳐서 한 사람도 남기지 아니하였느니라./ 4 그 때에 우리가 그들에게서 빼앗지 아니한 성읍이 하나도 없이 다 빼앗았는데 그 성읍이 육십이니 곧 아르곱 온 지방이요 바산에 있는 옥의 나라이니라./ 5 그 모든 성읍이 높은 성벽으로 둘려 있고 문과 빗장이 있어 견고하며 그 외에 성벽 없는 고을이 심히 많았느니라.”

이스라엘이 전쟁에서 빼앗은 전리품들을 보십시오.

바산 왕 옥이 힘도 없고 전쟁도 할 줄 모르는 얼간이가 아닙니다. “그 모든 성읍이 높은 성벽으로 둘려 있고 문과 빗장이 있어 견고하며 그 외에 성벽 없는 고을이 심히 많았다고 합니다. 이스라엘이 상대하여 싸워서 이길 수 있는 상대가 아닙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이 싹쓸이를 했습니다. 이것이 이 전쟁에서 어떻게 이겼는가를 말해주는 증거들입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승리의 전리품들로 살아온 민족입니다. 이것은 우리 신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의 전리품들은 무엇입니까?

일단 교회에 나오고 있지 않습니까?

헌금을 내잖습니까? 목숨 내 놓을래 돈 내 놓을래 하면 목숨 내 놓는 것이 한국 사람입니다. 옛날에 뉴욕에서 어떤 한국 아주머니가 강도에게 칼로 등을 찔린 상태에서 끝까지 돈을 포기하지 않아서 강도가 포기하고 그냥 갔다고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 돈을 드립니다. 이런 것들이 믿음으로 승리한 전리품들입니다.

  주일 예배에 오셔서 조시는 분들 너무 나무라지 마십시오.

설교 말씀이 재미있어서 나오시는 분들은 그렇게 대단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설교가 재미없어서 설교 시간 내내 조시면서도 빠짐없이 주일예배에 나오시는 것은 보통 믿음이 아닙니다. 설교가 재미없어도 나오시고, 조시면서도 나오시는 믿음은 큰 믿음입니다. 안 조시면 더 좋겠지만 교회에 나와서 조시는 것도 믿음으로 승리하신 증거품입니다.

뒤에서 남 흉보는 신자도 보통 신자가 아닙니다. 사람 앞에 세워 놓고 욕하는 신자보다는 백배 낫습니다. 일체 남의 흉 안 보는 신자는 신자라고 안 하고 성자라고 합니다.

좌우지간 신자는 자기의 신분에 대한 뚜렷한 의식이 살아 있어야 합니다. 나는 하나님의 자녀라는 의식이 살아 있어야 합니다. 그러면 아무것도 두려워할 이유가 없습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자꾸만 두려워합니다. 지금도 여러분의 얼굴에 두려움이 서려 있어요. 무슨 걱정이 그리 많은지, 걱정한다고 안 될 일이 되는 것도 아닌데 온통 걱정과 두려움을 안고 삽니다

하나님께서 오늘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퀸즈제일교회 성도들아 두려워하지 말라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백성이기 때문에, 즉 신분이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에 바로를 이기고, 홍해를 건너고, 만나를 먹고, 메추라기를 먹고, 바위에서 솟는 물을 마시고, 40년 동안 신발이 닳지 않았고, 옷이 해어지지 않았고, 헤스본의 시혼 왕을 격파하고, 오늘 본문의 바산 왕 옥을 격파하고, 요단강을 건너고, 싸움 한 번 하지 않고 여리고 성을 점령하였습니다. 그들이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에 가나안 땅에 들어가 오늘까지 자기 땅처럼 사는 겁니다. 하나님의 자녀 된 우리들의 삶의 현장에 숱한 난관과 어려움이 많아도 두려워하지 말아야 될 이유는 오직 하나, 우리의 신분이 하나님의 자녀요 백성이기 때문입니다.

본문의 바산 왕 옥을 칠 때 인간적으로 생각하면 쉬운 일이 아닙니다.

5절을 보세요. “그 모든 성읍이 높은 성벽으로 둘려 있고 문과 빗장이 있어 견고하며 그 외에 성벽 없는 고을이 심히 많았느니라

조건으로 볼 때 이스라엘이 싸워서 점령하고 이길 나라가 아닙니다.

그런데 이겼습니다. 다 점령하였습니다. 이유는 단 하나 그들이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처음부터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셨던 것입니다. 환경을 두려워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들이 가지고 있는 염려와 두려움의 종류가 어떤 것이든 하나님께서 책임져 주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이고 자녀이기 때문입니다. 지금 이 시간부터 두려움과 모든 염려를 버리고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고 평안한 마음으로 사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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