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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처드 개핀 <소망의 표지>

리차드 개핀

by 김경호 진실 2011. 8. 17. 09:44

본문

제2장

소망의 표지標識

 

 

Richard B. Gaffin Jr.

 

      여섯째 날에 창조를 마치신 하나님께서는 천지 만물이 광대하게 펼쳐진 것을 보셨습니다.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창 1:31)  그러나 “가장 좋은 것”을 보신 것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이미 창조하시기 전에  “가장 좋은 세상”은 역사의 시초가 아니고 마지막에 나타나도록 작정하셨기 때문입니다.  아담과 하와를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으시고 그들에게 피조물 중에 유일하게 창조주를 위해 일해서 이 창조계를 뜻하신 대로 완성에 이르게 할 특권과 책임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처음 시조는 신질하지 못해 무익한 종이 됐으며 그 후 역사는 인간의 죄악과 그 죄악에 대한 하나님의 공의로운 진노와 저주의 슬프고 고통스러운 역사였습니다.  “그러나 죄가 많은 곳에 은혜가 더욱 넘쳤나니,”(롬 5:20)  하나님께서는 진노 중에도 긍휼을 잊지 아니하셨습니다.(합 3:2)  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세상을 버리시지 않기로 뜻하셨습니다.  하나님을 위해 한 백성을 구원하시기를 원하셨습니다.  친아들이신 독생자를 새로이 “마지막 아담”으로 보내신 것입니다.(고전 15:45,47)  그의 생애와 죽음과 부활과 승천으로 우리 조인들이 받아 마땅한 형벌을 다 없애 버리실 뿐 아니라 모든 피조계에 대한 하나님의 본래 목적도 실현하셨습니다.  교회를 위해 만물 위에 머리로서(엡 1:22)  그는 지금도 일하시며 재림 시에 그 목적을 충만히 실현하시려고 그의 성신을 통해 일하고 계십니다.  그때에는 새 하늘과 새 땅이 최종의 진동치 못할 완성의 상태로 나타난 것을 보실 것이며(히 12:26~28)  실지로  “가장 좋은 세상을 보실 것입니다.

     

      그럼 이 모든 것은 안식일과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여러 모로 많습니다.”(롬 3:2 역자 사역, “범사에 많으니”에서 빌려서).  예컨대 확실히 히브리서에서는 하나님께서 분명히 밝히시기를,  지금 바로 대관大觀된 기독교 종교의 포괄적인 범위와 우리가 주마다 지키는 주일과 깊은 관련이 있음을 알라고 하십니다.  히브리서 3장 7절에서 4장 13절에 걸친 긴 구절들에서 하나님께서는 신약 시대의 그리스도인들이 자신의 기본적인 정체성을 인식하시를 바라십니다.  곧 신자는 나그네이며 교회는 순례의 백성입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시편 95편 7절에서 11절을 주석하면서 교회를 광야의 이스라엘과 비교하고 순례의 백성이라는 사실을 밝힙니다.  이 비교에는 양면이 있습니다.  한편으로 이스라엘이 애굽 종살이에서 풀려난 것처럼 신자들은 이미 죄의 책임과 세력에서 풀려났습니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 시내 산에 있는 이스라엘이 아직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한 것같이 우리도 우리 구원의 마지막 충만한 상태에는 아직 이르지 못했습니다.  위협받을 것도 없고 도전받을 것도 없는  ㅡ그러나 결코 불확실하지 아니한ㅡ  구원의 경험이 교회에게는 아직 미래에 속합니다.  그렇기에 이 구절들뿐 아니라 히브리서 전체를 통해 참고 견지하라고 권고하시는 말씀이 여러 번 나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미래에 얻을 구원을 시편 95편에서 취하셔서  “안식”,  혹은  “내 안식”이라고 하십니다.(히 3:11, 18; 히 4:1,3,5,19,11)  더구나 분명히 안식일을 그 안식과 연관해 말씀하십니다.  그것은 두 가지 방식으로 이뤄집니다.  첫째로,  히브리서 4장 4절에서 하나님께서는 그 안식을 창세기 2장 2절(“그 지으시던 일이 다하므로 일곱째 날에 안식하시니라.”)과 연결하십니다.  이 구절이 신약에서 이 절을 인용하는 유일한 곳입니다.  그리고 또 뜻있는 것은 구약이 이 구절을 인용하는 곳은 두 군데밖에 없고 두 곳 다 주마다 안식일을 지키라는 계명을 지지합니다.(출 20:11; 출 31:17)   둘째로,  히브리서 4장 9절에서 하나님께서는 의도적으로 그 안식을  “안식일의 안식”(혹은 “안식일을 지킴”. 개역성경에는 “안식할 때”)이라고 부릅니다.

     

      구약성경에 대한 이 영감 받은 주석의 의도는 아주 명백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로 하여금 마지막 안식,  곧 하나님의 구속받은 자녀들을 위해 예비하신 완성의 질서를 하나의 크고 끝없는 안식일의 안식,  혹은 안식일을 지킴으로 보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우리가 주마다 맞는 안식일의 안식은 저 완성을 반복해서 가리키는 지표指標입니다.  주기적인 안식일 성수聖守는 역사의 종국과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창조하신 모든 목적의 최종적인 성취를 가리키는 표지標識입니다.

     

      안식일을 이런 빛에서 보는 것은 주일에 대한 우리 태도뿐 아니라 우리가 우리 자신과,  하나님의 종으로서 우리의 모든 활동을 어떻게 보느냐 함에 중대한 함의含意를 갖습니다.  주마다의 안식일은 우리가 하나님을 경배할 시간을 갖도록 마련해 주신 것만이 아닙니다.  ㅡ물론 안식일은 그런 시간입니다.ㅡ  그 안식 자체가,  곧 엿새 동안에 해도 좋을 활동을 할 수 있는 대로 쉬는 것 그 자체가 적극적인 의미를 갖습니다.  주일은 그것이 무엇보다 복음에 관한 것이기 때문에 경배의 날입니다.  주일은 교회와 주위에서 지켜보는 세상에 대해  “너희는 너희 것이 아니라”(고전 6:19) 하는 표지요 증언입니다.  우리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마련하기 위해 우리 자신에게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의존합니다.  주일은 우리가 아담의 타락한 자녀들로서 우리 자신과 우리 자신의 노력을 의지하지 않노라 하는 표지입니다.  우리는 마지막 아담이신 그리스도의 완전한 의를 의지합니다.  또한 언약의 약속에 신실하신 하나님을 의지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우리 자신을 위해 할 수 없는 것을 우리를 위해 해 주시겠다고 약속하셨고,  우리는 언약에 신실하신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주일을 주간의 다른 엿새에서 떼어 낸다면 우리는 주일의 의미를 흐리게 할 것입니다.  주마다라는 주기는 문자 그대로 매 시간과 장소에서 인간 존재를 틀 지워주는데,  그 자체가 역사철학을 제공합니다.  엿새의 활동을 하다가 하루의 휴식을 취하는 것은 인간이 하루 지나고 또 하루 지나고 끝없이 흘러가는 무의미한 날들에 사로잡혀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계속적으로 상기케 합니다.  역사는 시작이 있고 끝이 있습니다.  우리는 마지막 심판과 만물의 완성을 향해 가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안식일을 기억해 거룩히 지킬 때마다 그것은 우리로 하여금  “크게 생각하라.”고 격려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구속을 받은 자녀들로서 참으로 큰 그림의 일부라는 것을 상기케 합니다.  주마다의 안식일은  ‘우리의 생애가 의미도 없고 목적도 없는 것이 아니다.’  하고 하나님께서 주신 사인(표지)입니다.  우리가 안식일을 하나님께 구별해 드리기를 소홀히 할 때마다 우리는 실지로 우리 자신에게 소망을 도적질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날을 하나님께 거룩하게 지키지 못할 때마다 우리는 실지로 세상에 대해 그리스도 안에 있는 소망에 대한 증인으로서 증언을 흐리게 하는 것입니다.  주마다 안식일은 우리의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음”(고전 15:58)을 은혜로이 일깨워 줍니다.

     

      안식일은 이제 주일입니다.  안식일은 일주일의 처음으로 옮겨왔습니다.  새 언약 아래에서 우리의 큰 특권은 매주를 안식일로 출발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일주일의 첫날에 부활하셨기 때문에 새 창조는  “말세에 나타내기로 예비하신”(벧전 1:5) 것일 뿐 아니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미 실지로 새 창조를 시작하셨다는 표지인 것입니다.  우리가 아직도 미래의 완성을 바라보며 하나님의 완전한 안식에 들어갈 때를 앞에 두고 있으므로 우리는 신약 시대에도 주마다 안식일을 지키고 나아갑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이미 원칙적으로 하나님의 안식에 들어갔으므로 우리는 한 주간을 안식일로 시작합니다.  우리는 이미 우리의 기업에 보증이 되신 성신의 약속(엡 1:14)을 가졌습니다.  주일은 구원이 단순히 미래의 소망일 뿐 아니라 현재의 소유라는 주마다의 표지입니다.

     

      점차로 하나님도 없고 소망도 없어져 가는 이 세상에서 우리가 주마다 안식일을 지키는 것은 소리가 나지 않지만 웅변적이고 강력한 증언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재다짐하시는 바  “부끄럽게 아니하는”(롬 5:5)  그 소망에 대한 증언이고 소망의 표지입니다.

 

      ***리처드 개핀 [안식, 종말, 성신에 대한 성경 신학적 교훈:  이 모든 날 마지막에]<제2장 소망의 표지> 최낙재 옮김 (서울: 성약출판사,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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