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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칼빈주의와 한국 지식기반사회의 미래(렘5:24∼29) 김영규 목사

김영규박사

by 김경호 진실 2012. 3. 5. 0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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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빈주의와 한국 지식기반사회의 미래

(렘5:24∼29)  김영규 목사

 

 

들어가는 말

 

화란의 신칼빈주의가 등장하였을 때, 유물론이나 영혼일원론이라는 두 기둥 사이에 신칸트학파의 대표자인 H. Rickert와 역사주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W. Dilthey에 의해서 이론적 기초를 가지고 제안된 자연과 문화라는 이원론이 그 배후에 있었다고 알려지고 있다. A. Kuyper가 총리가 되어 자유대학 교수진은 약한 상태이었지만, 여러 차례의 설득에 의해서 캄펜신학교 교수진 중에서 H. Bavinck와 A. Biesterveld가 학생들 일부와 함께 자유대학으로 온 이후, 칼빈주의와 제과학과의 관계가 논의되면서 소위 신칼빈주의 사상들이 성립되었다고 알려져 있다.

 

그래서 칼빈주의에 대한 독특성을 이해하는 방식도 그런 배후 역사적 현장과 무관하지 않다고 할 수 있다. 일반은총이란 논의가 중심이 된 것도 대학의 분과들의 등장과 신학적 이원론 논쟁이 핵심으로 떠올랐기 때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A. Kuyper나 H. Bavinck나 모두 영혼과 육체라는 이원론을 믿었을 때, 당연히 유물론주의나 진화론에 대한 반박의 근거를 위해서 일반은총이나 일반학문론에 대해서 정립할 필요가 있었다고 볼 수 있다. 그 두 분은 일찍이 모든 은총이 초자연적 성격이 있다는 점에서도 동의하였고 칼빈에 따라 일반학문의 뒤에도 선천적으로 종교적 배경을 인정하고 있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칼빈주의는 독특한 영역에 대한 이해를 어떻게 하느냐에 그 용어사용의 핵심이 있었다고 짐작할 수 있다. 칼빈주의 학문론 일반을 세워 보기 위해서 노력하였던 헤르만 도예베르트의 경우에도 그의 문화들의 근본동인들과 관려해서 그런 칼빈의 정신을 기본으로 삼았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그렇게 때문에 거기에서 사용된 칼빈주의라는 용어사용은 과거 역사적 칼빈주의로부터 찾게 되는 독특한 교리적 입장들과 연계되었던 칼빈주의에 대한 용어사용과 약간의 차이가 있다고 말할 수 있다. A. Kuyper, B.B. Warfield, H. Meeter 등이 칼빈주의에 대해서 이해했던 것보다 칼빈주의의 독특한 성격에 대해서 더 잘 규명해 보인 H. Bavinck나 신칼빈주의에 의존하지만 역사적 개혁주의의 신학적 특성을 잘 알고 소개했던 불란서의 Auguste Lecerf의 이해도 있지만, 우리가 여기에서 다만 실천적 의미에서 그런 차이를 약간 극복해 보는 차원에서 칼빈주의의 영향에 대해서 전혀 다른 이해를 가진 막스 베버의 경우의 예를 들고자 한다.

 

1. 막스 베버의 자본주의 정신의 뿌리와 칼빈주의

 

현대사회와 관련해서 영향력을 행사하는 Peter F. Drucker는 막스베버가 주장하는 자본주의 정신과 윤리와의 관계는 근거가 없고 오히려 칼 맑스의 이론에는 약간의 근거가 있다고 비판하였다. 그에 의하면 지식이 참된 자본이고 부를 생산하는 제일되는 원료란 면에서 현대사회를 지식기반사회로 규정하고 이런 현대사회로 전환된 계기에 대한 해석도 막스베버와 다른 해석을 가했다.

 

물론 잘 알 수 있는 대로, 막스베버가 자본주의 정신과 칼빈주의에 나타난 합리적 금욕주의와의 관계에 대해서 논하였을 때, 현대문화의 분명한 요소들과의 관계해서 금욕적 신교의 문화적 의미가 무엇인지를 분석하는데 그 중심이 있어TEk. 그렇기 때문에, 금욕적 합리주의가 사회정치적 윤리의 내용에 대해서 뿐만 아니라, 종교집단으로부터 국가에 이르기까지 사회집단들의 조직방식과 기능들에 대해서 어떤 결정적인 의미가 있는지를 가리키는 일은 과제로 남아 있었다.

 

여전히 또한 그것이 인문주의적 합리주의와의 관계는 어떠하였고 생의 이상들과 문화영향들과의 관계는 어떠하였으며 철학적 그리고 과학적 경험주의의 발전을 위해서 그리고 기술적 발전과 정신적 문화내용과의 관계가 어떠하였는가는 과제로 남아 있었다. 오히려 그의 연구방향과 정반대로, 신교적 금욕주의의 발전과 성격이 사회적 조건전체로부터 무슨 영향을 받았는지에 대해서는 자신의 연구밖에 있었던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Peter F. Drucker의 비판은 오해에 근거할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된다.

 

그리고 막스 베버에 따르면, 그 당시 미국의 경우에도 부의 추구에는 윤리적 종교적 의미가 없을뿐더러 기계에 기반을 둔 자본주의는 그런 종교적 금욕의 정신으로부터 더 이상 도움을 필요로 하지 않았으며 때로는 스포츠의 성격까지 있음을 지적하였다. 거슬러 그런 종교적 요소의 소멸은 프랭클린에서 찾을 수 있다고 하였다. 그러나 막스 베버가 금욕적 합리주의가 자본주의 정신에 영향을 끼쳤다는 것은 자본주의 정신의 형성과 초기 기반에 있어서 결정적인 역할을 하여 오늘날에 이르렀다는 입장이었다.

 

그에 의하면, "퓨리탄주의는 국고적 독점적 형식의 유기적 사회체제 즉 기독교적 사회주의의 윤리적 바탕 아래 독점업자들과의 국가와 교회의 동맹에 반대하여 자신의 창의적 능력과 발원에 의한 합리적이고 법적인 영리의 개인주의적 추구를 대립시켰다. 영국에서 그런 국가적으로 특권을 가진 독점산업들은 사라져 버렸지만, 그런 합리적이고 법적인 영리의 개인주의적 추구가 관원적 권력들 없이 부분적으로 그런 권력들에도 불구하고 그리고 그런 권력들에 반대하여 발생하는 산업들의 구축에 있어서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고 하였다.

 

비록 공리주의의 영향으로 윤리적 규범에 구속됨이 없이 이윤추구의 태도가 일반적일지라도, 사람은 윤리 없는 벤처로서의 자본주의적 이윤추구를 그런 이윤추구가 정착되어 지는 틀로서 윤리적이고 합리적이며 자본주의적 이윤추구와 역사적으로 구별해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막스 베버가 글을 쓰는 시기란 20세기를 갓 접어드는 시기인데도, 어떤 도덕적 원리가 그 당시 자본주의의 존립조건이 아니었다고 하였다.

 

비록 도덕적이지 아닐지라도,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을 하는 것이 더 생산적일 수 있다고 하는 현실에 대한 Peter F. Drucker의 입장은 새로운 것이 아니다. 자본주의 정신의 태동기에 공리주의로 물들어 있는 도덕적 교훈들이 어떤 틀이 되고 있음을 분명하게 관찰하였던 것이다. 정직은 신용을 가져오기 때문에 유익하며 시간을 지키는 것, 근면 및 검소는 돈이 되기 때문에 유익하다는 생각은 부정할 수 없는 오래동안 자본주의 정신에 숨어 있는 틀임을 이끌어 냈던 것이다. 그래서 그 당시 자본주의 정신으로 충만된 벤자민 프랭클린의 기업정신의 교훈들을 인용하였던 것이다.

 

1) 시간이 돈임을 생각하라.

2) 신용이 돈임을 생각하라.

3) 돈이 생산능력을 가지며 결실할 수 있는 본성을 가졌다고 생각하라.

4) 지불이 좋은 사람은 만인의 돈주머니의 주인임을 명심하라.

5) 근면과 검소의 덕 이외에 모든 거래들에 있어서 시간을 지키는 것과 공정하다는 것보다 큰 유익이 되는 것은 없다.

6) 한 사람의 신용에 영향을 주는 가장 사소한 행동이라도 조심해야 한다.

7) 이렇게 함으로 너가 빚을 지고 있는 자를 기억하고 있고 너는 조심성이 있고 존경스러운 사람으로 보이도록 하며 그것이 너의 신용을 증가시킨다.

8) 너가 치밀하고 존경스러운 사람으로 알려진다면, 1년에 6파운드가 100파운드 효용을 갖는다.

 

이런 기업정신들에 숨어 있는 윤리적 요소들이 그렇게 공리주의적인 것으로 변모하기 전에, 그런 요소들은 순수히 윤리적 차원에서 자본주의 뿌리가 형성되는 과정에서는 자본주의적 합리적 경영과 기업상을 굳건히 지키게 하는 틀로서 존재하였다는 사실을 강조하였던 것이다. 비록 자본주의 질서 이전에 이미 중국이나 인디아, 바벨론 등 고대나 중세에도 자본주의 정신이 있었어도, 그런 기업정신이 조건으로 하는 독특한 사회윤리는 없었다는 사실을 강조하였다. 막스 베버는 그 당시 퓨리탄들에 대해서 신학적 해석을 하지 않고 사회 경제적 해석을 했지만, 그들에 대한 상당한 신학적 이해를 가지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신교들 사이의 교리들 차이나 퓨리탄들 내에 신학적 강조점들에 대한 이해도 오늘날 무지한 신학자들보다 더 뛰어난 이해를 가지고 있다. 퓨리타니즘의 윤리에 관한 가장 포괄적이 개략을 쓴 리처드 박스터에 대한 이해를 보더라도 그렇다. 막스 베버에 따르면, 그는 장로파였고 웨스트민스터 종교회의 변호자였지만, 그의 신학적 입장은 이중 예정에 대한 입장 등 순수히 칼빈주의 교리로부터 벗어난 사람으로 평가하고 있다.

 

그러나 막스 베버의 주장의 특별한 점은 근대 자본주의 문화나 진보정신은 사람들이 흔히 생각할 수 있는 자유로운 세속적 향략주의나 계몽주의로부터 온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반대로 그 깊은 내면적 관계에 있어 비세속주의와 금욕주의로부터 나왔다고 분석했다는 점이다. 그래서 퀘이커와 메노나이트파들 중에 부요한 자들이 많았는데, 그들의 영리적 안목의 고도한 발달은 생활의 종교적 규제와 관계하고, 경건한 신자들의 경우 그들의 강하게 발전된 영리적 감각은 강렬한 신앙과 관계한다고 분석하였다.

 

그와 마찬가지로 중산계급적 영리생활을 하였던 자들이 많이 따랐던 칼빈주의가 자본주의 문화에 크게 영향을 끼친 점들도 그 종교적 가르침과 반대되는 유물주의나 반금욕적 향략주의에서 찾을 것이 아니라 순수하게 종교적인 길에서 찾아야 된다고 보았다. 예 프로테스탄트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과 관계를 연구할 때, 당연히 인정하였던 사실은 칼빈주의 운동의 창설자나 대표자가 자본주의 정신을 일깨우는 것을 전 생애의 목적으로 삼았던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그들 중 어느 누구도 세속적 재화에 긍정적 윤리적 가치를 부여하였던 자들도 없었고, 어느 누구도 윤리적 문화사회의 개척자이거나 인도주의적 사회개혁운동이나 문화운동이나 문화이상의 대표자들이 아니었다고 하였다. 그들의 순수한 종교적 동기에 제한된 것들이 후대에 자본주의 정신이나 문화를 결과로 낳을 줄을 전혀 예측하지 못한 것이었을 뿐만 아니라 그들 자신들도 바라지 않은 것들이었다고 막스 베버는 지적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종교적 신앙과 종교적 삶의 실천에 의해서 창조된, 소위 생의 여정에 방향을 제시하고 어떤 개인을 그 안에 확고히 세웠던 그 심리적 동인들(psychologisch -en Antriebe)이 자본주의 문화와 정신에 분명히 관계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렇다면 그런 심리적 동인을 야기한 칼빈주의의 교리와 실천적 종교적 관심들과의 관계가 무엇이었는가를 막스 베버는 다룰 수밖에 없었다. 물론 좀 더 직접적으로 자본주의 정신과 관련된 칼빈주의자들의 시간관, 직업관, 노동관, 일상적인 생활태도와 내면적 태도에 대해서도 다루었지만, 종교적 가치와 관계가 없기 때문에, 퓨리탄들이 적대시하였고 회의적인 문화제도에 대해서 긍정적인 영향을 준 요소들도 분석하고 있다.

 

예를 들어 퓨리탄인들은 르네상스의 교양과 학식에 밝고 깊었지만, 학문 이외에 문학책이나 감각예술에 대해서 매우 차가웠고 크리스마스 축제와 같은 마술적 신비적 구원의 모든 잔재들에 대해서 매우 증오적이었다. 그런 경우에 그것이 오히려 상대적 현상들이 생겨날 수 있는 배경을 마련해 주었고 예술이나 문학의 영역에 있어서도 깊은 내면화를 이루게 하였다는 간접적 영향에 대해서도 다루었다.

 

역사적 칼빈주의 5대교리에 따라 그 신학적 영향과 생활태도에 대해서 다루지는 안했어도, 칼빈주의의 중심교리들을 가능한 객관적으로 다루려고 노력했다. 예를 들어 그에 의하면 칼빈주의의 예정론에 대해서 그 예정론은 반드시 그 결과로서 구원의 서정이 따라야 했기 때문에 그렇게 예정설에 윤리적 기초를 둠으로써 이 세상 안에 있는 영원히 하나님으로부터 예정된 신자들의 영적 귀족주의가 생겨났다고 평가하였다. 세상 안에서 이런 영적 귀족주의는 이 세상 밖에서의 수도승의 영적 귀족주의와 다른 점이라고 하였다.

 

이 예정론의 발전에 있어서 루터도 초기부터 하나님의 신비적 작정이 종교적 은혜상태의 절대적으로 유일하고 심오한 샘이었고 루터 후기에도 형식적으로 그 사상을 버린 것은 아니었으나, 후로 가면서 그 사상이 그에게 중심적인 것은 되지 못했고 그가 책임적인 교회정치가로서 현실적인 정치에 관여함에 따라서 그 사상은 배후로 밀러 났던 반면, 칼빈에게는 점점 더 그 교리의 중요성이 커져 갔다고 잘 분석하였다.

 

그러나 "칼빈의 경우, 루터의 경우처럼 그 무시무시한 작정이 체험된 것이 아니라 생각해 낸 것이다"고 말한 점은 칼빈의 에정론의 성경적이고 주석적 배경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 진술이다. 그런 오류가 사실상 소위 이 세상에서의 영적 귀족주의라는 표현 뒤에도 숨어 있다. 칼빈 뿐만 아니라 모든 개혁주의자들이 예정론은 숙명론이 아니라고 신론에 근거하여 분명히 밝혀 논증했음에도 막스 베버는 예정론을 결국 운명론과 같은 것처럼 이해하였다. 물론 예정의 원인과 관련해서 하나님의 기뻐하신 뜻 외에 최고의 원인은 없다는 입장을 막스 베버가 어느 정도 표현하고 있다. 또한 스스로 계시하시기 전에 인간에게 신비로 남아 있다는 입장에 대해서도 그리고 예정의 불가항력적 성격에 대해서도 그가 이해하고 있었다.

 

또한 예정론의 실천적 의미를 잘 간파하여 정리하기도 하였다. 즉 인간의 공적이나 죄도 예정된 인간의 구원에 영향을 끼칠 수 없으므로, 고난이 있고 실제적 탈인간적인 교리라고 이해하였다든지, 칼빈주의의 예정론에 대한 개인적 감정은 설교자도 그를 도울 수 없고 성례도 돕지 못하며 외형적 교회도 도울 수 없을 만큼 철저히 내적 고독의 감정이라고 칭하였던 점은 독창적인 해석이다. 또한 히브리 선지자로부터 헬리니즘의 과학적 사고까지 이어져 온 구원의 방법으로서 마술적 방법을 그 예정론을 통해 미신과 사악으로 배척하였다는 점도 어느 정도 근거가 있다.

 

그러나 예정의 내용으로서 예수 그리스도에 의한 구원의 방식이 예정론에 포함되어 있고 그리스도도 택자를 위해서만 죽었다고 해서, 하나님도 그를 도울 수 없다고 하는 해석은 운명론에 가까운 사상으로 예정론을 해석하는 것이다. 만물의 세세한 것이 하나님의 자유로운 기뻐하신 뜻에 최고의 원인을 두고 있다는 사실은 하나님이 어찌할 수 없는 운명론과 다른 것이다.

 

어쨌든 이런 엄밀한 예정론에 대한 고백내용이 칼빈주의자들로 하여금 문화와 종교성 안에 있는 모든 감각적인 요소들에 대해서 부정적인 태도를 취하게 했다고 했다. 퓨리탄의 문학 속에서도 인간 사이의 도움이나 우정, 친구도 믿지 못하게 하고 오직 신만이 믿을 수 있다는 사상을 심어 놓았다고 하였다. 역시 오직 인간과의 관계나 만물과의 관계가 있다면,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목적과 관계한다는 사상이 자본주의 문화에 크게 영향을 끼쳤다고 분석하였던 것이다.

 

2. 지식기반사회의 도래와 한국에서의 적응정도 및 문제점

 

Peter F. Drucker는 본인이 일찍이 제2차 세계대전 이후부터 탈자본주의 사회로 이동을 예측하였다고 말한다. 예를 들어 제2차 세계대전 당시에도 전쟁물자를 위해서 숙련을 요하는 곳이나 단순작업의 경우에나 테일러(F. W. Taylor, 1856∼1915)의 작업연구에 대한 이론을 적용하여 짧은 기간 내에 고급 용접공과 조선공을 길러내는데 성공하였고 독일보다 더 품질이 좋은 고급렌즈를 만드는데 성공하였다는 점을 지적하였다. 즉 모든 육체적 작업에 지식을 적용함으로 분석하고 재조직하는 방식에 의한 성공이다. 작업 전에 청사진과 설계도면을 그리고 과거 도제제도처럼 작업에 대한 비밀을 지키기보다는 작업에 대해서 비회원과 의논하며 훈련이나 작업연구에 대해서 기록으로 남기는 그런 일이 처음 거기에 도입된 것이었다.

 

Peter F. Drucker는 이러 생산성 혁명이 자본주의의 불가피한 내재적 모순을 깨뜨렸고 공산주의가 기반을 두고 있는 프롤레타리아 계급 그 자체를 무너뜨리게 한 혁명적 내용이었다고 믿고 있다. 그 당시 노동조합은 테일러를 비방중상하고 방해하였지만 그런 방해는 시간문제였다는 것이다. 노동조합 측에서 뿐만 아니라, 자본가들에 의해서도 공박을 당했다고 한다. 오늘날 한국에서 구조조정을 위해서 재벌기업에 대해 전문경영자를 요구하는 것이 그 당시 미국의 상황과 같았다고 볼 수 있다. 19세기의 자본가들에게 테일러식의 전문경영자는 저주받은 사람이었고 과격한 이단이었다는 것이다.

 

테일러는 그 당시 자본가들로부터 사회주의자라는 등 격렬하게 공박을 당했다고 말한다. 이렇게 지식의 의미의 첫 번째 국면인 100년동안 자식이 작업도구와 제조공정 그리고 제품에 적용하였던 시대로부터 새로운 의미의 지식이 작업 자체에 적용될 때에도 거친 반발이 있었다고 분석하고 있다. 이런 단계를 그가 지식이 지식 자체에 적용되는 단계라고 하여 경영혁명이라고 하였다. 그래서 지식경제를 넘어 탈 자본주의 사회인 지식사회로 가는 단계로 본 것이다. 거기에는 지식은 전통적 생산요소들인 자본이나 노동과 함께 이제 유일하게 의미있는 근본적인 생산수단이 되고 있다고 한 것이다. 따라서 우리나라처럼 전통적인 제조업 직업을 창조하는 일은 단기적인 방편에 불과하며 미래의 장기적인 안목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래서 과거역사에 대한 분석에 있어서 막스 베버와 달리 이미 자본주의의 출현도 독특하게 Thomas S. Kuhn처럼 같은 방식으로 그는 분석하였다. 박스 베버도 비슷하게 생각하였다고 판단되지만, 자본주의의 등장에는 대부분 전혀 관련이 없는 따로따로 일어난 사건들이 자본주의의 출현을 야기하였다고 그는 해석하였다.

 

예를 들어, 불란서의 백과전서 파로부터 정보전문가가 탄생하였고 어느 한 지식이 다른 분야에 적용될수 있도록 하였다고 본다. 초기 기술학교와 함께 그런 백과사전의 역할은 커서, 1000년 동안에 걸쳐 개발된 장인기술의 비밀들을 한 데 묶고, 정리하여 출판하였고 거기에서 비로소 경험은 지식으로 바꾸어 졌고 도제제도 대신 교과서가 등장하였으며 동시에 비밀주의가 공개적인 방법으로 전환되어 지식의 응용이 가능하게 되었다고 해석하였 . 물론 전혀 관련이 없는 사건이나 인자들이 기술과 문명의 전환을 일으켜 왔다는 분석은 새로운 것이 아니다. 다만 지식에 독특한 이해를 가지고 새롭게 과거를 분석하였다는 점이 주목될 뿐이다.

 

이런 역사적 단계를 걸쳐 지식은 이제 하나의 자원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자원 그 자체가 되었다고 한다. 비록 토지나 노동, 자본 없이는 지식이 스스로 아무 것도 생산할 수 없지만, 지식은 한 자원이 아니라 자원 그 자체로 이제 새로운 사회적, 경제적 역학을 창조한다고 한 것이다. 이렇게 필수적인 자원으로서 지식은 사회구조를 근본적으로 바꾸었다고 보는 것이다. 지금까지 경제와 사회에 있어서 중심적인 역할을 하였던 자본이나 노동은 그 중심자리를 지식에게 내놓는 형편이 되었다. 지식은 모든 작업의 중심생산수단이 되어 왔고, 될 것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지식기반사회의 경우, 지식은 그 자체로 메말라 있어(sterile) 아무 것도 만들지 못하는 특징을 가지고 있고 여러 지식이 한꺼번에 결합되어 하나의 지식으로 융합될 때, 생산적이다고 하면서, 지식이 지식으로 이동하는 동안에만 생산적이기 때문에, 거기에 반드시 조직(organization)이 있어야 하고 그 기능 속에 조직의과업이 있고 거기에 그 존재의 근거와 기능이 있다고 하였다. 거기에서의 조직원은 조직 속에서만 자신의 가치를 느끼며 어느 조직원도 권여할 수 없는 오직 자신만이 갖는 사명과 책임이 있게 된다고 한다.

 

그래서 현대조직은 동료(colleages)조직이요 동반자(associates) 조직이며 그 지식인들 사이에 높다거나 낮다거나 하는 서열이 없다는 것이다. 그 조직에 결정이 내리는 사람들이 있고 조직의 사명, 조직의 이념, 조직의 성과 그리고 조직의 결과에 대해서 책임이 지는 사람들도 있으며 조직의 사명에 관심을 갖는 전략을 수립하며 집행하는 사람들, 그리고 그 결과를 평가하는 사람들이 있어도, 그들이 조직에 있어서 명령하는 자가 아니라고 한 것이다. 다만 방향만을 제시할 뿐이라고 한 것이다. 그들의 자리는 공동과업에 대한 그들의 공헌에 의해서만 결정된다고 정의하고 있다.

 

이것은 근원적으로 교회 안에서 개혁주의 교회직입자들이 수종하는 자로 기능하는 조직과 비슷하게 현대사회 안에서 저절로 발전된 것이라고 판단할 수 있다. 그래서 거기에 꼭 따라야 할 내용이 있다면, 늘 변하는 관리방식(management of change)과 탈중앙화(decentralized)라고 하면서, 새로운 것을 창조할 능력을 가져야 하고 끊임없이 개발해야 하며 어떻게 혁신하는지를 배워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의사결정을 빨리 내리는 과정에서 중앙화를 막고 그 조직은 끊임없이 그 사회를 뒤집고 해체하며 불안정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지식이 조직의 기능 속에서 늘 유동적 자원으로 생산성을 발휘하도록, 새로운 경제이론이 필요하다고 제창하였다. 이런 지식에 기초한 경제이론은 기존의 경제이론과 근본적으로 달라서, 불완전경쟁이 그 자체 안에 내포하고 있으며 투자된 지식수익은 예측할 수 없다고 하였다. 즉 소비의 증가가 지식의 증가로 이어졌다는 증거도 없고 투자의 증가가 지식의 증거로 이어졌다는 증거도 없다고 그는 분석하였다.

 

이것이 바로 소위 지식기반경제이론(the theory of knowledge-based economy)이다. 이런 지식기반 사회와 경제를 위해서 모든 선진국들이 가장 큰 투자를 하는 셈인데, 실제적으로 나라마다 지식생산성을 높이는데 종종 실패하고 있다고 예증하였다. 예를 들어 미국의 경우, 새로운 첨단기술이라는 지식자원은 생산성이 높은데, 그것을 상품으로 개발하는 지식생산성은 일본보다 못하다는 것이다. 특별히 과거 소련의 경우, 지식자본 생산성은 낮았고 지속적으로 떨어져서 지금의 상태가 되었다는 것이다. 이런 면에서 우리나라의 경우에도 OECD로부터 권고받았던 내용으로서 지식자본의 생산력을 떨어뜨리는 중앙집권화를 피하도록 하였던 것이다. 이런 지식생산성을 높이기 위해서 네 가지를 그는 제안하고 있다.

 

1) 높은 목표를 세워라. 즉 이상을 가져라.

2) 지식이 생산성을 갖도록 지식자원의 집중화가 필요로 하다.

3) 변화를 기회로 삼기 위해서 체계적인 개발이 필요로 하다.

4) 시간관리가 필요로 하다.

 

이렇게 지식기반사회로 가기 위해서 특별히 언급한 것이 교육에 대한 그의 견해이다. 국가가 전체적으로 힘을 발휘하기 위해서 지식기반사회의 중ㅅ미을 이루고 있는 사라밍 개발되어야 하는데, 그런 사회에서는 학생의 장점을 맞추어 교육하는 것보다 약점에 초점을 교육하는 것이 유리하다고 진단하고 있다. 학생들에게 몇몇 핵심기술에 대해서 최소한 자격을 갖추도록 교육하라는 것이다.

 

거기에서 그런 말을 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전과목 A학점을 받는 학생은 전반적으로 평범한 기준에 꼭 맞는 학생들이다. 그들은 성취하는 학생이 아니다. 그들은 순응을 잘하는 학생일 뿐이다." 그런 의미에서 평생교육에 대해서 아주 강조하였다. 그가 말하는 지식기반사회에 있어서 교육의 새로운 공리가 있다면, 사람은 배우면 배울수록 더욱 더 자주 더 많이 배워야 할 것이다(The more schooling a person has, the more often he or she will need further schooling)는 공리이다. 그 다음 강조한 것이 소위 무작위 접근(random access)이 가능하게 하는 교육제도를 창조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한 개인이 어느 직업으로 이동이 가능하도록 하는 다전공사회를 말하는 것이고 학교와 직업 사이에 경계선이 없도록 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두 가지 교육에 대한 진단은 지식기반사회로 가기 위한 길로서만 중요한 것이 아니다.

 

Peter F. Drucker가 그때까지의 자신의 연구의 결론을 집약시킨 지식사회로의 전환에 대한 예측들은 우리가 현실적으로 부정할 수 없다. 이는 이런 지식사회에로 전환이 모든 국가사회의 일반적인 특성이 되어져 가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의 최근 IMF지원상태로부터의 회복을 위해서 우리는 세계의 모든 여론이나 경제단체로부터 그런 사회구조로의 빠른 구조개혁을 요청받은 적이 있다. 그러나 모든 면에서 그런 개혁에조차도 미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오히려 지금까지 핵심적으로 소개된 지식기반사회가 갖는 근본적 성격에 대한 이해가 미흡하지 않는가하고 어렵게 진단해 본다. 놀랍게도 우리나라에서 OECD에게 요청한 교육제도에 대한 평가의 경우, 이런 지식기반사회가 지향하고 있는 교육제도에 맞추어 평가되고 있다는 사실이 주목되고 있다. 소위 지식기반사회의 교육제도의 공리와 관련해서 평생교육의 질을 높이라는 권고가 주목이 되고 지식기반을 넓히라는 권고가 주목이 된다.

 

3. 칼빈주의 입장에서 본 한국 지식기반사회의 문제점들과 교회의 역할

막스 베버는 일반적으로 엄밀한 개혁주의 신학의 입장을 가진 퓨리탄들이 권력을 쥐고 있는 세력에 대해서 저항세력이지만, 오히려 후에 자본주의 사회로 진입하는 데 정신적 바탕을 이루었다고 분석하였다. 엄밀한 종교적 신앙의 내용이 대사회에 엄밀한 합리적 정신을 심었고 그 바탕 위에 공리주의 사고가 결합되어 순수한 퓨리탄주의가 변질되고 사라졌어도 그 엄밀한 합리적 정신을 없이 하지 못하여 그런 혼합주의가 자본주의 문화를 분석하는 것을 비판하는 입장에 선 Peter F. Drucker는 개신교 안에서 현실참여나 사회 속의 기독교를 강조하여 사회개혁을 추구하고 사회적 입법을 추진하며 교회가 사회적 기관이 될 정도가 되었을 때, 오히려 개신교는 급속히 결속력과 매력을 잃게 되었고 따라서 신자들을 잃게 되었다는 경고를 한 바 있다.

 

지식기반사회로 돌입된 현대사회에서는 더욱 더 전문화를 요구하는 것만큼 교회가 본연의 자리를 지키는 것이 더 유익하다는 권유를 하고 있다. 물론 지식기반사회가 지향하고 있는 전반적인 특성에 의해서도 그런 현상은 그에게 이해되지 않을 수 있다고 판단된다. 그런 그 둘 사이에 공통된 의견은 기독교는 가장 기독교적이어야 사회와 세계의 미래에 공헌한다는 암시이다.

 

그런 의미에서 칼빈주의가 탈인간화에 핵심을 두고 있으면서 하나님에 대한 엄밀한 지식 때문에 가장 넓게 포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대사회에 공헌할 점이 많다고 보는 것이다. 성경에 가르침대로 세상은 본래부터 하나님에 대해서 적의적이고 그리스도를 대적하기 때문에, 당연히 순수한 교회의 성격을 주장하면 할수록 사회로부터 미움을 받는다고 해야 한다.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참된 그리스도인들을 이 세상에서 언제나 희생되지만, 그 사람을 살리기 위한 희생으로 공헌하고 있다는 점을 강조할 필요가 있다. 과거의 자본주의 사회에서 일하지 않고는 먹지도 말라(살후3:10)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엄격한 생활과 책임에 적용되었던 정신이 그 발전에 공헌하였다면, 지식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전혀 다른 정신이 거기에 공헌할 수 있다.

 

욕심도 우상이라는 그리스도인의 자유정신이 지식생산성을 낮게 한다고 생각할 수 있을지 모르나, 창조사상과 부활사상과 결합할 때, 더욱 예정론에 기반을 둔 구원론 사상과 결합할 때, 투자하지 않고 어떤 사회에 고도의 지식생산을 이루어 지게 하는 원천지가 될 수 있다. 문화상품이나 관광상품을 개발하고 지하철 손잡이에까지 광고장소를 삼는 지식생산성의 확대는 근원적인 확대가 아니다.

 

끝맺는 말

 

지식기반사회에서 교육은 학교에서 평생학습량의 2%를 받고 나머지는 다른 곳에서 받는다는 말이 맞다면, 교회는 평생지시학습장소로서 학교보다 더 절대적 역할을 할 수 있다. 그러나 문제는 일반 학자들이 지식창출과 활용에 중요한 요소는 근면성, 충성심에 있다기보다는 혁신성, 창의성에 더 무게를 두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강조는 지식집약도가 높은 상품을 생산하는 데 강조를 두는 경향과 이어지고 지식을 직접적인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실용적 지식으로 정의하는 경향으로부터 이뤄지는 국가정책과 이어진다.

 

그럴 경우, 중국이나 일본보다 지식생산성을 높일 수 있는 자원집약도가 약한 한국의 경우, 분명히 경쟁력이 떨어진다. 특별히 중국이 빨리 지식기반사회로 진행하게 되면, 한국의 지식기반사회란 그 일부로 흡수될 수 있는 것이다. 여기에서 나타난 주변국가와 다른 시간적 차별화가 그 사회와 문화의 우월성을 결정할 것이다. 거기에서 핵심은 인적자원일 것이다.

 

그렇다면, 칼빈과 같이 인간 안에서 하나님의 권능과 선하심과 지혜의 희귀한 표본을 보고 하늘과 땅이라는 눈부신 극장에서 그 창조의 본래의 주인에게 영광을 돌리기 위해서 숙고하되, 자신의 길을 가는 것이 인간의 가장 치명적인 오류로서 여기며 언제나 곤비한 인간(miseri peccatores)으로서 모든 위선자들과 대적자들 안에서도 하나님의 변명할 수 없는 섬광을 찾는 자가 필요하다.

 

더구나 이 세상의 모든 역사 안에서 미래 나라의 미완성된 교향곡의 서곡을 연주하는 것처럼 사는 인간상이 필요하다. 실로 인적 자원의 고도의 신뢰성을 가진 오직 말씀만을 먹고 사는 것을 이상으로 삼고 다만 세상에서의 보상을 하나님께 알려지는 바로 즐거워하는 인간상이 미래의 지식기반사회의 이상들과 결합할 때, 세계가 부러워하는 모범적인 국가사회가 될 것이다. 

출처 : 보길예송교회
글쓴이 : 김완수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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