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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교회에서의 신조 교육의 시작과 영향

교육

by 김경호 진실 2013. 11. 30. 1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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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혁교회의 신조교육의 시작

개혁교회에서의 신조 교육의 시작은 칼빈에게서 찾아볼 수 있다. 물론 신조교육은 교회 형성이 시작되면서부터 이미 필연적이었다. 중세기에 있어 인위적인 교리와 교회의 변질이 있은 후, 종교개혁 후에 루터가 대소요리문답을 만들어 교리교육에 깊은 관심을 기울였다. 그러나 개혁교회에서의 진정한 신조교육의 뿌리는 칼빈으로부터 시작된다. 칼빈은 1536년 기독교강요를 요약하여 58개 조항으로 된 요리문답을 작성했다. 그 후에 요리문답을 다시 발췌 요약해서 21개 조항으로 된 신앙고백서를 작성하여 제네바 시민들로 하여금 고백하게 하였다. 이것이 개혁교회 역사상 최초의 신앙고백이었다.

제네바에서 추방을 당해 스트라스부르그에서 목회를 하던 칼빈은 3년 후에 제네바의 강력한 요청을 받았을 때 두 가지 귀환 조건을 내세웠다. 첫째는 교회의 자율권과 자치권을 보장하고 정부가 협력하여야 하며, 둘째는 그리스도의 왕국건설을 위해 엄격한 훈련을 받아 들여야 한다는 것이었다. 엄격한 훈련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자신이 구태여 다시 제네바에 돌아가서 싸워야 할 하등의 이유가 없다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칼빈은 이 두 가지를 약속 받고 쫓겨난지 3년 4개월 만인 1541년 9월 13일에 제네바로 돌아왔고, 곧바로 교회 헌법을 기초하여 공포하고, 청소년 신앙교육과 성인 설교를 위해서 총 55과로 된 제2의 요리문답을 만들게 되었다. 이전의 것은 너무 신학적이어서 어린이들에게 어렵다고 느꼈기 때문이었다. 이것이 개혁교회의 신조 교육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다.

2. 개혁교회의 교회교육의 중심과제

칼빈은 교리교육을 교회교육의 중심 과제로 보았다. 교리교육의 중요성에 대한 표현은 영국의 한 성주에게 보낸 편지에서 잘 드러나고 있다. “하나님의 교회는 교리교육이 없이 유지될 수 없다. 이것은 선한 씨앗이 죽지 않고 새로운 생명으로 자라는 것처럼 왕성하도록 하기 때문이다. 당신은 오랫동안 붕괴되지 아니하고 튼튼히 서 있는 집을 짓기를 원한다면 아이들이 아주 인상깊게 이 신앙 교육서를 통하여 믿음에로 이끌어지도록 염려하고 돌보시오?

또한 칼빈이 제네바에서 소의회에 제출한 「제네바 교회의 조직과 예배에 관한 제의서」에서도 어린이 교육에 있어 교리문답서를 사용할 것을 제의하면서 교육의 필요성을 언급하였다. “사람들로 하여금 교리의 순수함을 보존하기 위하여서는 어린 시절의 아이들에게 이를 가르쳐 저들로 하여금 믿는 이치를 깨닫게 함이 극히 필요하니, 이와 같이 함으로써 복음적 교리가 쇠퇴하지 아니하고 보존될 것이며, 또한 각 사람에게 혹은 대대로 전파될 것이다. ......우리가 제안하려고 하는 제도는 다음과 같다. 기독교 신앙의 간결하고도 단순한 한 요약을 작성하여 모든 어린이들에게 가르치고 일년의 일정한 날에 목사 앞에 나와 문답을 하고 시험을 받고 또한 각자의 능력에 따라 저들이 충분히 가르침을 받았다고 인정될 때까지 이르는 것이다?

그리고 제2차 제네바 교리문답서 서문에도 언급하고 있다.“교회는 언제나 어린아이들을 기독교 신앙교리 안에서 양육하라는 특별한 권면을 받아 왔다. .....이를 규모있게 수행하기 위해 교회는 요리문답이라고 불리우는 어떤 특정한 공식서를 사용하였다. 악마는 자신이 교회를 흩어서 가공할 만한 폐허로 만들어 버렸음에도 불구하고 세상에 있는 대부분의 교회 안에 아직 어떤 징표들이 남아 있는 것을 보자 악마는 이런 거룩한 질서를(Catechism:요리문답) 붕괴시켰다.?

칼빈은 이와같이 신조 및 신앙고백을 의무적으로 배우게 하였고 엄격한 시험을 거쳐서 제네바 교회 신앙인으로 입교를 시켰다. 신앙교육은 어느 시대에나 필요한 것이지만 그동안 하나님의 말씀이 너무 무시되어 왔고 부모들이 아이들을 올바르게 가르치지 못한 그 당시 상황에서는 더욱 더 필요한 것이었다. 칼빈은 이 신조교육을 통해서 교회의 일치와 복음의 순수성을 지켜나가기를 바랐던 것이다.

3. 칼빈과 신조 교육의 영향

이러한 칼빈의 신조교육은 후에 다른 지역에서도 매우 중요하게 받아들여졌으며, 이 두 번째 요리문답은 하이델베르그 신앙 교육서(1563) 작성에 큰 영향을 끼치게 되었다. 이 교리서는 52과로 되어 있는데, 1568년 베젤총회, 1571년 엠덴총회, 1574년 돌트 총회는 하이델베르그 요리문답의 사용을 적극 추천하면서 매주 오후 때마다 목사들에게 52주로 나누어 설교하도록 교회법으로 규정하였고, 화란에서는 오늘에 이르기까지 이 전통을 따라 교회생활을 해 오고 있다.

독일의 개혁교회는 지금까지 오로지 이 요리문답만을 고수할 뿐 아니라 네덜란드, 아프리카의 네덜란드 식민지 그리고 아시아에서도 널리 사용되었다. 뿐만 아니라 영국과 스코틀랜드 교회는 지금도 하이델베르그 요리문답을 웨스트민스터 요리문답과 함께 공적인 권위를 가진 신조로 사용하고 있다.

그 외에 하이델베르그 요리문답과 함께 대륙에서 널리 사용되는 벨직신앙고백(1561)과 돌트신경(1618,9)이 있다. 벨직신앙고백은 돌트총회가 그 권위를 재확인하였고, 어느 신조들보다도 칼빈주의적 교리체계를 잘 설명하고 있는 신조로 여겨지고 있다. 이러한 유럽개혁교회의 신앙고백들은 상당부분 칼빈의 직접적인 영향아래 작성되었다. 이에 비해 장로교 신앙고백인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은 칼빈이 서거한지 1세기도 넘은 때, 즉 화란 돌트렉트에서 아르미니안주의가 정죄를 당하고 유럽대륙에서 재세례파와 루터파와의 구별이 분명하게 드러난 뒤였기 때문에 칼빈의 간접적인 영향아래 작성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중요한 사실은 이러한 신앙고백서들이 신학과 교리면에서 시대에 뒤떨어진 자료가 아니라, 지금까지도 개혁주의 신학과 삶의 중요한 원리들을 모든 이들에게 제시해 준다는 것이다. 신조와 신앙고백의 목적은 신앙고백이 다른 자들을 정죄하거나 잘라내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신자들을 진리로 거룩하게 하며 연합시키며 복음전도적이며 그리스도 안에서 참된 자유를 알게 하는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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