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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영희 목사님 생애 간략 소개

백영희목사

by 김경호 진실 2013. 12. 9. 1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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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영희 목사님은

1910년 거창에서 출생했으며 25세때 복음을 받고

부정한 재물 다 정리하여 없애고 일부는 성서공회에 기증했으나 부하게 되었고

일제시대 신사참배 동방요배 환난을 이기셨고

6.25 전쟁중에 피난 가시지 않고  하루 세번 집회하셨고

공산군이 죽일려고 사택으로 끌고 갔으나 청빈한 생활에 감동받아 살려주었으며

시무하시던 부산 서부교회 세계 제일의 주일학교였고

한종희 목사의 잘못된 정보제공으로 오판한 신학적인 견해차이로 소원했던 박윤선 목사님과 말년에는 이견이 해소가 되었습니다

박윤선 목사님과 백영희 목사님과의 관계 백영희 목사님의 설명 녹취록

1986년8월 5일 새벽

지금 박윤선 목사님이 살아계시오 며칠 전에 저한테 한번 전화가 왔어요 이 쪽에 나는 전화를 못했는데 그 어른은 참 아주 세밀한 어른이라서 저한테 한번전화 해 한번 만났으면 좋겠다고 그러면 몇시에 오느냐고 그래 만났습니다 만나가지고 만나놓으니까 그 분도 뭐 짝이 없게 반갑고 나도 짝이 없게 반갑고 그래 가지고 둘이 반갑고 거석하고 그 뒤에 편지도 저한태 한번인가 왔습니다

1989년 5월 10일

어떤 사람은 또 인제 누가 하도 이단이라 하니까 박윤선 목사님께 알아봤대요····이단이라고 정죄할 수 없다

박윤선 목사님은 이단이 아니라고 설명하셨습니다    

박윤선 목사님과 백영희 목사님과의 관계에 박영관 목사님의 설명

들소리 신문 755호 1996.6.30일자

박윤선 목사와 부산 서부교회의 백영희 목사와 만나서 자신의 주석 때문에 그동안의 고통을 당하게 한 것을 사과 하였다고 한다 자신의 주석은 신앙적 견해 차이를 말하였으며 결코 백영희 목사를 정죄하거나 기독교회의 이단으로 한 적이 없다고 하였다 말년에는 관계 회복 교류 하셨습니다

백영희 목회 연구소는 1986년 박윤선 목사님은 백목사님을 만나 세계 정통 보수신학에서 오해했던 모든 것을 철회하고 백영희 신앙노선에 대한 깊은 감탄과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인제 목사님을 모시고 집회(1985.9.25-28)

백영희 목사님과 이인제 목사님은 다윗과 요나단과 같은 사이라고 이인제 목사님 전기에서 저자인 박시영 목사님이 소개하고 있습니다 중간에 정치적 신학적인 이견으로 멀어졌다가 해소가 되고 적극적으로 지지하게 되어 귀국하게 되면 총공회 교회의 집회를 도맡아 하셨습니다  서부교회 강단은 왠만한 사람은 서기 어려운 강단인데 이인제 목사님 모시고 집회를 하셨고 이인제 목사님은 백영희 목사님 장례식 때 할렐루야 영광의 입성! 조문을 보내셔서 유가족을 위로 하셨습니다

인생의 해가 질 마지막 무렵 아름다운 모습으로 화목을 이루시고 박윤선 목사님 백영희 목사님 이인제 목사님, 1988년 1989년 2000년 차례대로 천국으로 가셨습니다 

출옥성도 손명복 목사님 서부교회 강단에서 말씀증거(1988년3월 13일 주일)

주남선 목사님 천국가실 때 세상에서 제일 귀한 보물 가장 아끼던 성경책

백영희 목사님께 맡기셨고 “건강 조심 해라” 부탁하시고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그 이상의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사건입니다

주남선 목사님의 성경책은 고신 박물관에 기증 보관되어 있습니다

손양원 목사님 사모님 교회 개척하셔서(신풍교회) 백영희 목사님께 맡기셨습니다

한부선 목사님 미국으로 귀국하실 때

애착을 가지시고 돌보던 가정을 백영희 목사님께 맡기셨습니다

고 탁명환 소장은 생전에 예수교 장로회 한국총공회를 진짜고신이라고 했고

출옥 성도들과 대부분 교제하셨으며

당연히 시기하고 거짓으로 해치려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생전의 소원이 순교의 제물이 되는 것이며 순교가 제일 큰 복이라고 하셨습니다

주남선 목사님은 일제 때 순교의 제물되지 못해서 6.25때는 순교의 제물이 될까 해서

총소리가 나면 총알을 피해서 숨지 아니하셨지만 순교의 제물이 되지 못하고 순생으로 일생을 마치셨다고 증언하시면서 목사는 강단에서 설교하다가 순교하는 것이 최고의 영광이라고 하셨습니다 

1989년 8월 29일 주일 새벽 설교 도중 강단에서 괴한의 칼에 천국 가셨습니다

부산광역시 장로연합회 총회에서 순교로 공식인정 했고

지금은 순교로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본 목사는 생전에 백영희 목사님을 곁에서 겪어 본 사람들 중에 한 사람입니다

하나님 중심 제일 위주의 경건 생활의 본이 되신 분입니다

성경을 많이 읽으셔서 엉덩이에 물집이 생겼다는 말씀도 하셨습니다

경제적으로 큰 도움을 받은 것도 아닙니다 제자들에게 너무 인색하게 하셔서 고생도 많이 했고 불만도 많았지만 지금은 이해를 합니다 제자목사님의 자녀분들은 고생을 많이 해서 총공회를 싫어하는 이들도 많습니다 풍족함으로 하나님과 멀어질 것을 염려하신 그 분의 심정을 나이가 드니 조금 알 것 같습니다

말에 실수가 없으신 분 이었습니다 이랬다 저랬다 하시지 안했습니다

말에 대한 책임은 반드시 지신 분이었습니다

한번 책임지시고 작정하고 맡긴 사람은 변경하시지 아니하셨습니다

수위실 최집사님이 나이 들어서 못한다고 하니까 그기서 죽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본목사도 스승인 백영희 목사님의 속을 제일 많이 썩히고 힘들게 했습니다 그러나 너 안돼 그만둬 하시지 않고 참고 기다리시는 제자 사랑의 큼에 놀라고 감사할 뿐입니다

제자인 한종희 목사가 김의환 목사의 이름을 앞세워 이단의 정체라는 책을 만들어 스승의 가슴에 비수를 꽂았는데도 오히려 한종희 목사를 염려했습니다

한종희 목사가 사과하고 공증했으니 책을 다 회수 하도록 해야 된다고 건의 하니까 한종희 목사가 무슨 돈이 있나 내버려 두라 한목사가 감당 못할 터이니 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이단의 정체라는 그 책 때문에 오랜 기간 동안 기독교계의 사형 선고인 총공회 백영희 목사 이단이라는 정죄가 따라 다녔습니다 아쉬운 것은 기독교계의 일부 목사님들이 사과하고 취소 삭제 보다는 좀 더 적극적이고 객관적으로 자료 수집을 했더라면 그런 일이 없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여러 가지 오해와 왜곡된 거짓 소문의 어려움도 있었지만 적극적으로 해명하시지 아니했습니다 전지전능의 하나님이 다 아시고 계시는데 전적 그분만을 믿고 의지하는 신앙이었습니다  

인간적인 사랑을 하나님의 사랑으로 바꾸셨습니다 저도 나이 들고 보니 아이들이 귀엽고 사랑스럽습니다 어린이들에게 천국사랑으로 사랑하셨습니다 주일 날 추운 겨울에 곤히 잠들고 있을 깜깜한 새벽 새벽예배를 마치고 바로 아이들 데릴러 가면 반갑게 문을 열고 아이를 보내주고 순한 양 같이 따라나서는 일은 반사 선생님들의 열심만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백영희 목사님은 은혜와 의리를 중요하게 생각하셨습니다 자기보다도 선대부터 믿었으면 점수를 더 후하게 하셨습니다 사실은 우리 집안은 저부터 믿기 시작했기 때문에 불만이었습니다 초절은 안된다 초월이어야 한다고 하셨는데 이 말씀의 뜻은 벽돌위에 벽돌을 쌓듯이 선진들의 믿음 위에 건설해 나가는 것이지 중간에 치워버리면 자기도 믿음을 온전하게 건설할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건설구원이란 단어를 사용하신 것은 깊은 의미가 있었습니다 

가난하고 힘들고 어려움 당하고 낮은 자들의 보호자요 부모요 스승이었습니다 서부교회는 지게꾼교회라고 불리울 만큼 가난한 교회였습니다 지금은 그 반대가 되었습니다

교단명칭도 예수교 가 제일이니 예수교, 두 번째로 칼빈주의 개혁교 장로회, 그다음에 한국에 있으니 한국, 사도신경에 따른 공회의 모임 총공회,라고 하시면서 예수교 장로회 한국 총공회 라고 교단 이름을 설명하셨습니다 그때 서부교회는 사도신경 고백을 예배시간에 안한 것으로 기억되지만 부정한 것과는 구별해야 합니다 부정한 것이 아닙니다    

예수교 장로회 한국총공회는 칼빈주의 개혁 근본에 가까운 보수적인 교단입니다

월간 뉴스메이커 2010년 9월호에서

개척교회 선구자 백영희 목사 탄생100주년

위기의 한국교회 해답 백영희 목사에게 찾는다 기사로 다루었습니다  

 

 

 

 

http://cafe.daum.net/jclm/Iawm/12?q=%B9%E9%BF%B5%C8%F1%20%C4%AE%BA%F3%C1%D6%C0%C7&re=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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