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귀지 말고 돌아서야 할 대상
< 故 박윤선 목사 _ 합신 초대원장 >
“이론만 말하고 투신하지 않는 자들은 경건의 능력을 부인하는 자들”
오늘날 우리가 예수를 믿는다고 하지만, 너무 에누리로 믿습니다. 믿는 일에서 너무 에누리를 한다 말이지요.
성경을 연구하는 데 있어서도 훨씬 더 깊이 하려는 결단이 전혀 없습니다. 기도도 역시 한 번 생사를 결단해야겠는데도 생사 결단할 용의가 전혀 없고 그저 에누리로 기도해요. 에누리 기도를 한다 말입니다.
과연 기도라는 것이 그렇게 쓰는 겁니까? 그렇게 무효하게 또 효과가 제대로 나타날 수 없는 얕은 수준에서 그저 껍데기 수작으로 하는 겁니까? 그야말로 천지의 주재이신 하나님을 만나는 가장 성스럽고 엄숙한 일을 할 때에 그렇게 몸을 던져 넣지 아니하고 정신을 투자하지 아니하며 천단(淺短)한 껍데기 수작으로 소홀하게 지나가서는 안 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투신을 하여야 합니다.
가을날에는 찬물에 들어가서 목욕할 마음이 생기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필요하다면 해야지요. 처음에 물을 볼 때 들어갈 맘이 없고 발을 조금 물에 넣을 때 역시 할 맘이 나지 않지만 자기에게 유익하다면 결단이 있어야 합니다. ‘내가 이래서는 안 되겠다.’ 한번 그렇게 생각한 다음에는 무엇을 끊기도 하고, 어떤 것은 이어가기도 하면서 그야말로 사느냐 죽느냐, 되느냐 안 되느냐 하는 자세로 문제를 해결하도록 해야 하지 않습니까? 결사의 태도로 해결하도록 해야죠.
찬물에 들어갈 맘이 없다 해도, 필요하다면 결단을 해야 합니다. 이것이 내게 유익하다는 계산이 선다면 그 물 속으로 몸을 던져 넣는 것입니다. 그래 보면 물이 그렇게 차지도 않고 할 만해요. 상쾌합니다. 많이 할수록 열도 나고 더 할 맘까지 생기기도 합니다.
이론만 말하고 투신하지 않는 자들은 경건의 능력을 부인하는 자들입니다. 머리로만 생각하는 것뿐이지 심장으로 사랑하지를 않습니다. 이 심장으로 결단하지를 않는 태도, 인격의 내실이라 할 수 있는 이 심장을 개방하지 않고 경건의 능력을 부인하는 죄가 얼마나 큽니까?
그런 사람과는 사귀지 말라, 돌아서라! 이것이 성경의 말씀입니다. 그런데 그런 류가 되려고 따라가겠는가? 그런 류와 운명을 같이 하려는가? 그러면 어떻게 될 것인가? 돌아서라! 돌아서라는 것입니다. 그만큼 맺고 끊는 분명한 계산으로 처신을 해야 한다 말입니다.
말세에 많은 무리들이 경건의 능력을 부인하고 물거품같이 둥둥 떠돌아다니면서 종교인으로 처세하고 신앙인으로 처세하고 목사로도 처세하는 별별 일이 다 있는데 내 자신이 그렇게 정신없이 따라다녀서야 되겠습니까?
논리적으로만 시인하지 말고 심장으로 내 인격의 내실로 맡겨서 천재일우(千載一遇) 곧 한 번만 있고 두 번 다시없을 이 좋은 기회, 주님이 우리를 부르시는 이 기회, ‘너, 이 성경말씀 믿고 살아가라’는 도전적인 기회에, 우리는 획기적인 결단을 해야 합니다.
출처 / “사귀지 말아야 할 사람”, 『부르심, 네 꼴 보고 은혜를 받겠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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