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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경호 진실 2014. 2. 26. 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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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케아(Nicaea)신조 - A.D. 325

 

1. 니케아 신조의 작성배경 및 논쟁 내용

- 니케아 신조가 작성되게 된 배경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은 내용을 살펴볼 수 있다.

 

아리우스가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이 성부의 신성과 동일하지 않다는 생각에서 말씀 곧 성자는 지으신 일종의 피조물로서 시작이 있었고 따라서 한 때 그는 계시지 않았던 적이 있었다고 말했는데, 이러한 사상은 하나님이 사람이 되었다는 성육신 신앙에 위배되는 것임을 아다나시우스(Athanassius)가 지적하고 아리우스와 논쟁을 하게 된 까닭이다. 이 논쟁은 자유를 얻기 시작한 기독교의 통일과 평화를 위협하는 것이었으므로 콘스탄틴 황제는 325년에 세계교회 회의를 니케아(Nicaea)에 소집하여 이때까지 이론(異論)이 많았던 기독론의 교리를 확정하여 올바른 신앙고백을 제정할 것을 기도하였다.

 

그렇다면 이단으로 지목을 받았던 아리우스의 주장과, 우리 믿음의 선진들은 무엇 때문에 그토록 싸웠는지를 보다 자세히 살펴봄으로써 오늘날 우리도 그런 잘못에 빠지는 실수를 범하지 말아야 하겠다.

 

1) 그릇된 교리 {아리우스(아리안주의)의 주장에 대해서}

 

. John Calvin

 

칼빈은 아리우스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그의 거짓된 교리에 대해서 잘 설명하고 있다. “아리우스라는 사람은, 명백한 성경을 반대할 수는 없었기 때문에 그리스도가 하나님이요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고백했으며, 또 자기가 올바른 일을 하기나 한 것처럼, 다른 사람들과 의견을 같이 하는 척 하였다. 그러면서 그는 그리스도가 창조되었으며, 다른 피조물들처럼 시작을 가진다고 주장하기를 계속하였다. 여기서 보면 입장을 약간 바꾼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 약간이 가장 근본적인 내용을 변질시키고 있음을 알아야 하는 것이다.

 

여기서도 칼빈이 지적하는 것은 아리우스는 예언서와 사도 문서에 포함된 교훈 전체를 믿노라고 했지만 니케아 교부들이 하는 말에는 찬성하지 않았다라는 지적처럼 성경을 부정한 것이 아니라 당시 교회의 객관적인 신앙고백을 부정하게 되었을 때 이단으로 정죄된 것을 가르키고 있는 것이다. 즉 객관적인 신조의 내용을 받아들이지 않으므로 인해서 어떻게 정죄 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결국 당시 교회가 이처럼 정죄 할 수 있었던 근거는 아리우스가 자신의 입장을 속이기 위해서 잠시 성경을 받아들인다고 했지만 객관적인 신앙고백을 받지 않는 것은 결국 성경도 인정하지 않는 것임을 파악하고 정확하게 아리우스의 입장을 드러내었던 것이다. 왜냐하면 성경과 신조는 뗄 레야 뗄 수 없는 관계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신조를 부정하는 것은 곧 성경을 부정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기 때문인 것이다.

. Herman Bavinck

 

바빙크의 다음 글에서는 아리우스의 잘못된 사상이 얼마나 비뚤어져 나갔는지를 살펴보자. 또한 왜 잘못 되었는지? 그리고 그로 인해 생긴 이단들은 무엇인지를 배우도록 하자.

 

AD 2세기와 3세기에 있었던 아리안주의자들의 선구자들은 그리스도를 단지 초자연적 방식으로 낳은 사람으로만 여기고 그가 세례 때에 성령으로 기름부음을 받아서 그의 사역에 적합하게 되고 주로 높여졌다고 생각하되, 그의 선재와 신적 본성을 부인하는 에비온주의자들(the Ebionites), 알로기파(the Alogi), 떼오도투스(Theodotus), 아르테몬(Artemon), 사모사타의 바울(Paul of Sanosata) 등이다. 그들은 양자론적 기독론(an adoptionistic Christology)을 받아들였다. 4세기에 이 신념이 루시안(Lucian)과 그의 제자 아리우스(Arius)에 의해서, 또한 아에티우스(Aetius)와 유노미우스(Eunomius)에 의해 옹호되었다.

 

아다나시우스에 의해 그 단편들만이 보존되어 있는 The Banquet 라는 제목의 작품에 의하면, 아리우스는 하나님이 불출생적이고, 시작을 가지지 아니하시는 한, 그는 절대적으로 독특하시다고 가르쳤다고 한다. 하나님은 형언할 수 없고, 다 알 수 없으며, 무한하시므로 직접적인 교제 관계에 들어갈 수 없고, 그의 존재를 부여할 수 없으며, 불출생적인 것의 본질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의 존재 밖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그의 뜻에 의해 존재하게 되었고, 피조되었다는 것이다. 그는 영원부터 아버지이신 것이 아니고, 창조로 말미암아 아버지가 되셨다

 

, 그는 그의 피조물들의 아버지이시다. 그러나 하나님이 그의 창조사역을 시작하기 전에, 그를 통해서 모든 것이 창조될 매개자로 행동할 일종의 존재, 즉 성경에서 지혜, 아들, 로고스, 하나님의 형상으로 불리운 구별된 휘포스타시스’(hypostasis) 또는 구별된 본질을 존재케 하셨다. 이 로고스는 하나님의 본질로부터 낳아진 것도 아니고, 성부와 동일본질이신 것도 아니다. 왜냐하면 만일 그렇다면 두 신(two Gods)이 있게 되겠기 때문이다.

 

그는 오히려 무로부터낳아졌고, 또는 피조되었다. 따라서 그는 하나님의 뜻과 경륜에 의해서존재케 된 하나님의 피조물이요, 사역이다. 그러므로, 비록 그가 시간들과 세대들 이전에’, 우주이전에 피조된 것이 사실이라 해도 그가 있지 않았던 때가 있었다. 그러므로 이 로고스는 성부와 동일본질인 것이 아니고, 그와 완전히 구분된다. 그는 성부처럼 불변적이지 않고, 선 뿐만 아니라 악도 선택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온전한 피조물이다. 그는 선을 선택하였고 그럼으로써 불변성을 얻었고 그리하여 신성에 이르렀다. 이 로고스는 또한 사람이 되어 진리를 선포하고 우리의 구속을 이루셨다. 따라서 우리의 영예를 받으시기에는 합당하나 우리 경배의 대상일 수는 없다.

 

우리는 이런 주장을 살펴보면서 단순히 성경을 인정한다고 해서 성경에서 제시되고 있는 하나님을 바르게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즉 성경을 받아들여도 자신의 생각과 방식으로 전혀 다르게 받아들일 수 있다는 것이다. 결국 아리우스는 성경을 자신이 생각하고 이해한 대로 받아들인 것이지 교회의 객관적인 신앙고백적 기준을 통해서 받아들인 것이 아닌 것이다. 즉 사도로부터 이어져 내려온 객관적인 성경이해의 내용들이 교회 안에 있었으나 이것을 부정하고 자신이 생각한 독특한 방식으로 하나님을 받아들였던 것이다.

이런 모습을 통해서 오늘날도 객관적인 신앙고백적 기준과 상관없이 자신이 이해하고 생각한 대로 성경을 받아들이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를 알 수 있는 것이다. 만약 이처럼 개인적인 생각으로 성경을 받아들이게 되면 진리의 참된 내용은 없어져 버리는 것이다. 즉 여러 사람마다 각자가 이해하고 생각하는 성경의 내용이 다르다면 누구의 이해가 진리인지 알 수 가 없는 것이다. 결국 객관적인 절대적인 진리가 없어지게 되고 수많은 내용이 가지각색으로 소개되는 것이다.

 

우리는 여기서 성경의 기준이 있음에도 왜 신조라는 객관적인 신앙고백적 기준이 또 필요한지를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즉 성경을 보고 받아들이는 사람이 다양하기 때문에 성경의 의미가 전혀 다르게 왜곡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성경의 의미가 어떤 것이 바른 이해인지를 객관적인 신앙고백을 통해서 정리하게 되는 것이다. 결국 신조는 성경을 무시하고 파괴하는 것이 아니라 성경의 절대적인 기준을 가장 깊이 있게 인정하고 받아들이게 하는 역할을 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신조는 필요없다고 하면서 단지 성경만 잘 믿으면 된다고 하는 말을 매우 주의해야 하는 것이다. 이 말은 아주 그럴듯하지만 함정이 숨어 있는 것이다. 즉 이런 정신은 자신의 이해한 대로 성경의 의미를 마구 왜곡하기 때문에 결정적으로 성경을 곡해하고 버리게 되기 때문이다.

 

2) 바른 교리 {아다나시우스(Athanasius)의 주장에 대해서}

우리는 아리우스의 입장을 이해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보다 개혁주의의 입장을 바르게 정립했던 아다나시우스의 핵심 사상을 이해하는 것은 더 중요하다고 생각된다.

 

. John Calvin

 

칼빈은 아리우스의 주장을 교활하다고 평가하고 있다. 그러면서 고대 교부들의 업적을 높이 평가하고 있는데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선인들은 아리우스의 꾸불꾸불한 술책을 그 은신처로부터 끌어내기 위해 한 걸음을 앞질러 가서 그리스도는 아버지의 영원한 아들이요 아버지와 동일본질(homoousios)이라고 선포했다. 그러자 아리우스주의자들의 불경이 끓어올라서 동일본질이라는 말에 대하여 증오와 저주를 가장 사악하게 퍼붓기 시작했다.

 

만일 그들이 처음부터 진지하고 또 전심으로 그리스도를 하나님이라고 고백했던 것이라면 이렇게 그가 아버지와 동일본질 이라고 말하는 것을 부인하지 않았을 것이다. 한 가지 작은 단어 때문에 아무리 열띤 논쟁이 불붙고 또 교회의 평화가 방해를 받았기로서니 누가 그 고결한 사람들을 말장이니 궤변가들이라고 독설을 하였겠는가? 하지만 그 아무 것도 아닌 단어 하나가 순수한 믿음을 소유한 신자들과 거룩한 것을 짓밟는 아리우스주의자들 사이에 구분을 지어 주었던 것이다.

 

 

이처럼 아다나시우스와 당시 교부들은 바른 신앙고백을 하기 위한 한 단어를 목숨처럼 지키는 일들이 있었다는 것을 배울 수 있다. 즉 단순히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생각할 문제가 아니라 기독교의 핵심의 흥망성쇄가 달려 있었던 문제였던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참된 교회의 목회자와 성도들은 성경을 통하여 객관적인 신앙고백을 표현하는데 있어서 목숨을 걸었던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영광의 드러남과 가리움에 해당된 문제였기 때문인 것이다.

 

. Herman Bavinck

 

바빙크는 아다나시우스가 그리스도의 신성과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한 바른 이해가 얼마나 중요한지, 그리고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한 바른 이해가 무엇인지를 알고 있었다고 소개하고 있다.

 

아다나시우스는 그의 동시대인들 중 어느 누구보다, 기독교가 그리스도의 신성과 삼위일체에 대한 고백 여하에 따라 서기도 하고, 폐해지기도 한다는 것을 잘 이해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그의 전 생애와 그의 모든 힘을 이 교리의 변증에 쏟아 부어 넣었다. 그래서 그는 철학적 문제를 위해 투쟁한 것이 아니고, 기독종교 자체, 하나님의 계시, 사도들의 가르침, 교회의 신앙과 고백을 위해 투쟁한 것이다.

 

삼위일체 교리는 기독교를 신적 존재 내의 구별을 부인하는 유대교와 하나님의 단일성을 거부하는 이교로부터 원칙적으로 구별시키는 기독교의 핵심이라고 여겨졌다. 따라서 아다나시우스는 존재론과 우주론의 철학적 혼합을 완전히 거부한다. 그는 하나님과 세상에 대한 영지주의적, 아리안주의적 이원론을 거부하고, 따라서 매개적 중간존재들에 대한 이론도 모두 거부한다.

 

아다나시우스는 모든 낯선 요소들을 배제한 삼위성을 주장하는 것이다. 즉 삼위성은 창조주와 피조물의 연합이 아니고, 그 성격상 온전히 신적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삼위성은 영원하다. 하나님 안에 비본질적 요소들이라고는 없다. 그는 어떤 것이 되지 않으신다. 그는 영원히 모든 것이시다. 삼위성이 영원부터 있는 것처럼, 이는 영원까지 있다. 따라서 성부, 성자, 성령은 영원부터 영원까지 계시는 것이다. 성부는 항상 성부이시다.

 

성부됨은 그의 성질에 속한다. 사람에게 대해서는 그와 같이 말할 수 없다. 햇빛을 떠나서 해를 인식할 수 없고, 그 물을 떠나서 그 물의 원천을 인식할 수 없듯이, 성자를 떠나서는 성부를 인식할 수 없는 것이다. 하나님은 교통할 수 없는 분이 아니시다. 오히려 그는 항상 말씀하신다. 삼위성을 부인하는 사람은 하나님을 생명 없는 원칙으로 환원시키는 것이며, 우주의 영원한 존재사실에 대한 교리로 나아가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결코 생명 없는 원칙이 아니시므로, 성자의 출생은 영원하다. 성부도, 성자도 존재하지 않았던 때가 없는 것이다. 하나님의 아들은 결코 피조물일 수 없고, 하나님의 의지에 의해 태어난 것이 아니며 오직 하나님의 존재(본질)로부터 출생한 것이다.

 

성령에 대해서도 이미 마찬가지이다. 비록 아다나시우스가 성령에 대해서 많이 언급하지는 않고 있지만 말이다. 이 삼위는 참으로 구별된다. 그들은 하나의 전체의 세 부분이나 하나의 동일한 대상에 대한 세 이름이 아니다. 성부만이 성부이시고, 성자만이 성자이시며, 성령만이 성령이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다나시우스는 이 삼위가 그 본질과 실체와 속성에서 같다고 하며, 성부는 신성의 첫 원리요, 원천이라고 하고, 삼위가 서로 안에서, 서로를 통해 존재한다고 하며, 그들이 그 행위에서 하나이시라고 가르침으로써 삼위의 통일성을 주장한다.

 

2. 니케아 신조의 특징 및 영향

 

니케아 신조의 특징으로는, “니케아 신조에서 가장 문제가 되었고 또한 가장 중요한 부분이기도한 아버지와 본질이 동일’(Homoousios)하다는 표현이다. 이 표현은 니케아 이후 계속되는 논쟁의 발단이 될 정도로 당시의 삼위일체 교리의 핵심적인 내용이었던 것이다. 왜냐하면 이 표현을 통해서 아리안주의 뿐만 아니라 당시에 유이’(Homoiousios/동일함을 주장한 것이 아니라 아버지와 아들은 비슷하다라고 해서 유이설이다)를 주장하면서 중도적인 입장을 취하려고 했던 유이설자들도 배격되었기 때문이다.” 니케아 신조의 또다른 특징으로는, 본래 아리안주의를 향한 저주문이 첨가되어 있었으나 훗날 이것이 생략된 것도 확인할 수 있다.

 

우리는 여기서 객관적인 신앙고백의 기준을 벗어나는 행위가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를 다시 발견하게 된다. 즉 당시 교회에서는 저주문을 통해서 이런 행위가 성경을 깨뜨리는 행위며, 또한 하나님을 모욕하고 대적하는 행위가 됨을 분명히 지적했던 것이다. 이처럼 객관적인 신앙고백은 교회를 보호하고 또한 성경을 지켜가는 큰 권위를 갖고 있었던 것이다.

 

이제 이와 같은 니케아 신조의 영향으로는 다음과 같은 P. 샤프의 평가가 적당하리라 생각한다.

 

이 신조 이후로 삼위일체 교리에 새로운 의미가 부가되었다. 니케아 공의회는 하나님의 존재 내의 위격적 구별을 주장하였고, 성부와 성자(그리고 성령)가 하나님이심을 고백하였다. 그 이후로 삼위의 구별을 믿는 이가 하나님의 통일성(단일성)에 관한 진리를 무효화하지 않도록 주의하여야만 하였다. 니케아 공의회 이전에는 주된 쟁점이 어떻게 통일성(단일성)으로부터 삼위성을 이끌어내는가 하는 것이었는데, 그 이후에는 그 반대의 쟁점이 나타났다. 이제 삼위일체론은 그 나름의 독특하고 독자적인 가치와 신학적 중요성을 갖게 된 것이다.

 

우리는 이 니케아 신조의 특징을 살펴보면서 한 가지 기억해야 할 사실이 있다. 그것은 앞에서도 보았던 것처럼 당시 참된 교회에서 바른 신앙의 내용을 드러내고 지키기 위해서 취했던 방법은 객관적인 신앙고백적 기준을 교회 안에 세우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었음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 일을 위해서 선조들은 목숨을 걸고 그 시대의 이단들과 거짓 교사들과 싸웠음을 기억해야 한다.

 

이처럼 우리는 니케아 신조가 어떻게 작성되었으며, 또한 그 중요성을 살펴보았는데 마지막으로 그 결과도 중요하다. 왜냐하면 그처럼 목숨을 걸고 바른 신앙고백적 기준을 드러내었음에도 교회는 금새 이런 정신을 잃어버리고 오히려 아리우스의 신앙적 내용들을 받아들이게 되어서 아타나시우스와 이 신앙고백적 기준을 받아들이는 성도들은 교회적 엄청난 핍박을 받게 되었던 것이다. 그래서 아타나시우스는 피난길을 떠나야 했고, 결국에는 붙잡혀 극형에 처하는 형편을 맞이했던 것이다.

 

그런데 중요한 사실은 아타나시우스가 동일본질이라는 표현만 바꾸면 얼마든지 교회에서 교직자의 직분을 유지할 수 있는 타협이 있었음에도 아타나시우스는 이를 거절하고 죽음을 맞이했던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교회의 객관적인 신앙고백적 기준 때문에 순교도 할 수 있는 역사를 만나게 된다. 즉 그만큼 신조의 정리는 교회에서 중요한 것이었기에 결코 양보할 수 없었던 것이다. 이것을 양보하게되면 성경의 거부와 하나님께 대한 불신앙과 또한 교회의 부패를 가져오게 되기 때문에 목숨을 걸고 신앙고백의 내용을 지켰던 것이다.

 

결국 이런 역사를 통해서 신조가 초기교회에 있어서 얼마나 중요한 위치와 성격을 가지고 있었는지를 발견하게 된다. 그리고 신조를 교회에서 표명하고 받아들이는데 있어서 얼마나 엄밀하고 철저하게 고백하고 받아들이는지를 깨달을 수 있는 것이다.

 

3. 니케아신조에 대한 평가

 

바빙크는 니케아 신조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평가하고 있다. “교회는 니케아 공의회(A.D 325)에서 오리겐의 종속론을 거부하고 그리스도의 온전하고도 참된 신성을 고백하였다. 이 고백은 그 성격이 전적으로 종교적인 것이었다. , 그것은 기독교의 구원론적 원리를 드러낸 것이다.” 그 외에 서방 교회에서 추가한 조항이 없는 니케아 신조는 희랍교회에서 큰 권위를 인정받아 사도신경이 라틴교회나 프로테스탄트교회에서 차지하는 것과 버금가는 지위를 차지하고 있다는 평가도 받고 있다.

 

하지만 니케아 신조는 동일이란 표현을 통해서 일체성에 대해서는 극복을 했지만 이 하나의 본질에서 어떻게 삼위가 바로 주장되면서 또한 어떻게 서로 구별되는가에 대한 문제가 남게 되었던 것이다. 다음으로는 성령에 대한 표현이 좀더 구체적이지 못하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성령을 믿습니다라고만 되어있기에 어떤 방식의 구조를 가지고 있는지 전혀 설명되지 않기 때문이다. 결국 이런 단순성 때문에 후에 성령 피조설을 말하는 이단들이 발생되었고 이 영향은 콘스탄티노플 감독에게까지 영향을 주게 되었다고 하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출처] 니케아신경 강해(신원균목사) (한마음개혁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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