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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빈이 이해한 성경의 예정론 - 선택과 유기/ 섭리론>

예정론

by 김경호 진실 2014. 4. 17. 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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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빈이 이해한 성경의 예정론 - 선택과 유기/ 섭리론>


2001. 4. 16.

자료제공 : 조성재목사


롬 11: 35-36

누가 주께 먼저 드려서 갚으심을 받겠느뇨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영광이 그에게 세세에 있으리로다 아멘.

엡 1:3-7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으로 우리에게 복 주시되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이는 그의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는 것이라.


예정론은 사변의 산물도 아니요, 인간의 고안품도 아니다. 예정론은 성경의 전체 증거요 복음의 핵심이다. 이것을 포기하는 것은 성경 전체의 통일성을 파괴하는 것이 되며, 가장 깊은 차원의 경건과 확고한 구원의 기초를 송두리채 뒤흔드는 것일 뿐만아니라 궁극적으로는 하나님의 의지세계를 무시하고, 생사고락의 삶 속에서 그분 자체를 부인하는 ‘실천적 무신론자’가 되고 만다. 우리의 구원은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요, 우리의 신앙(믿음)은 그의 예정하심의 결과로서 주어진 선물이다. 성경은 우리의 눈이 구원의 수여자이신 하나님을 바라보고 그분을 알도록 계시하신 것이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오늘날 우리의 눈은 주어진 선물에만 머물때가 많다. 모든 것이 인간론 중심에서 풀려지고 적용되고 있기때문에 구원하시는 자의 의지세계보다 인간의 의지적 결단을 선행하도록 요구하는 것이 오늘날의 보편적인 현상이다. 이렇게 될 때 결국 우리에게 남는 것은 인간이 인간에게 만족하고마는 값싼 은혜 뿐이다. 하나님은 가장 큰 상급으로 자신을 우리에게 주시고 자신을 계시하셨다. 따라서 우리에게 요구 하는 성경의 가르침은 끊임없이 그분과 교제하고 그분을 알아가는 것에 있다. 이것이 ‘하나님이 우리 하나님이 되시고 우리가 그의 백성이 된다는 것’의 참된 목적이며, 그리고 그 핵심에, 또 그 근본에 예정론이 자리하고 있는 것이다.


1. 점 검 하 기 - 다음을 ○, 혹은 ×로 표시해 주십시오.

1) 우리의 구원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는다. ( )

2) 예수 그리스도는 모든 인류를 위해 죽으셨다. ( )

3) 하나님은 모든 것의 창조 전에 어떤 사람들은 선택자들로, 어떤 사람들은 유기자들(버리운 자들)로 확정하셨다. ( )

4) 모든 것을 아시는 하나님이 어떤 자들을 선택하실 때에는, 그들이 그리스도를 믿을 것을 미리 아시고 선택하신 것이다. ( )

5) 하나님이 어떤 자들을 버리기로 결정하신 것은 그들 스스로의 죄가 그 원인이며, 그들이 그리스도를 믿지 않을 것을 미리 아시고 버리시기로 작정하신 것이다. ( )

6) 아담이후 모든 인간이 죄 가운데 있을지라도 그 의지는 최소한의 선을 추구할 수 있을 만큼 남아있다.

( )

7) 하나님의 선택은 다양하여, 어떤 경우는 보편적이고 명확하지 않으며 또 어떤 경우는 특별하고 확정적이다. ( )

8) 히 6:4 이하를 참고해 볼 때, 선택자의 구원이 자신의 타락으로 말미암아 취소될 수 있다. ( )

9) 우리가 중생(거듭남)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회개해야 한다. ( )

10) 모든 것을 계획하신 하나님이라면, 죄 또한 하나님의 계획 가운데 있었을 것이고 그렇게 될 때 죄의 원작자가 하나님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 ( )

11) 우리의 구원은 지금 이시간 이세상에서 결정된다. ( )

12) 중생까지는 전적인 하나님의 역사지만, 중생이후의 성도의 삶은 성도가 그 역사의 주체이다. ( )

2. 예정론과 관련된 역사

1) 기원 : 성경 - 창세기에서부터 요한 계시록 까지.../성경에서의 예정론의 독특성 <--> 이교도, 헬라사상, 진화론(-->윤회설) 등의 운명론적 사고

2) 예정론 계보

: 성경(모세...바울) ---> 어거스틴 ---> 쯔빙글리 ---> 칼빈 ---> 도르트신조 ---> WM신조

----> 개혁파 장로교

잘못된 예정론 계보

: 이교도... 헬라사상---> 펠라기우스 ----> ... 피기우스(카톨릭) ---> 아르미니우스주의 -------> 웨슬레주의 ... ... -----> 카톨릭...기타 등등


3. 칼빈이 이해한 성경적 예정론


1) 인간의 의지를 강조하는 피기우스에 대한 칼빈의 성경적 답변


피 기 우 스 의 주 장

칼 빈 의 성 경 적 대 답

어떤 사람들이 복음을 믿고 그밖에 사람들이 믿지 않는다는 것은 하나님의 감추인 계획에 의한 것이 아니고 단지 각 사람의 개인적 의지에 의하여 이같은 차별이 발생하는 것이다.

모든 사람이 구원을 구하기 위하여 그리스도에게로 가지 않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저들의 마음을 강하게 움직이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의 회심은 하나님의 자유로운 선택에서 일어난다.

하나님은 부동(不動)의 계획으로 모든 사람이 차별없이 구원 받도록 창조하였다. 그러나 아담의 배반을 예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 같은 사건이 발생할지라도 선택이 확고부동한 것으로 하기 위하여 모든 사람에게 동등하게 나누어 주는 약(藥)이 제공 되었다. 그 결과 그리스도에 있어서 전인류의 선택이 부동한 것으로 되었으며 자기의 완매함으로 인하여 자기 자신을 생명책에서 말살한 자 외에는 누구도 멸망하지 않게 되어 있다. 다른 한편 하나님은 어떤 자들이 완고하게 최후까지 악심을 품고 계속하여 은혜를 외면할 것을 예지하였기 때문에 회개하는 자른 제외하고 예지에 의하여 저들을 유기하셨다.

하나님꼐서 자신이 긍휼히 여길 자를 긍휼히 여기시고, 강팍케 여길 자를 강팍케 하신다.(롬9:18)

믿지 않은 자들이 하나님의 계획과 의지에 거스려서 스스로 선택의 보편적 축복을 상실한 것이 유기의 시작이었다.

어떤 사람이 유기되고 다른 사람을 부르시는 이유는 다만 하나님의 판단뿐이다.

어떤 사람들이 절대 확실히 선택되어있으며 그밖에 사람들은 멸망에로 정해져 있다고 가르치는 자는 모두 하나님께 대하여 잘못된 사고방식을 하고 있어서 그리스도의 의와 호의(好意)를 위반하는 준엄성을 하나님께 돌리는 것이다.

예정교리는 경건을 위해 가장 유익한 의논이며, 신앙을 바르게 수립하고 우리들에게 겸손을 가르치고 하나님의 측량할 수 없는 자비와 은혜로운 찬탄으로 인도하며, 그 은혜와 자비를 찬미토록 자극한다. 하나님의 영이 우리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영원불변의 은혜로 세워주기 위하여 우리들의 심령속에 인쳐 주시는 이 선택을 듣는 것보다 더 신앙을 형성하기 위한 적당한 방법은 없다. 예정교리에 나타난 하나님의 은혜는 이 세상의 폭풍이나 사탄의 공격이나 육신의 동요(動搖)에 의하여 아무런 해가 없는 것이다.

아담의 타락할 것을 사전에 알고 있었다고 한다면 왜 인간의 상태를 보다 선하게 만들어 놓지 않았는가? 만일 하나님께서 자신이 긍휼히 여길자를 긍휼히 여기시며 강팍케 여길 자를 강팍케 하신다고 한다면 그러한 하나님이 어떻게 의로우실 수 있는가?

이런 인간의 오만한 질문에 대하여 바울은 회답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면서 다만 저들의 위치와 입장을 생각하기 위해 다음과 같이 경계하고 있다. “이 사람아 네가 뉘기에 감히 하나님을 힐문하느뇨”(롬9:20) 바울은 “하나님의 심판은 위대하며 감추어져 있기에 인간은 거기에 도달할 수 없다”고 하는 공리를 사용한다. 즉 자기의 지혜의 척도로 하나님의 사역의 모든 원인을 이해로 알아내려고 하는 것을 누가 수치로 여기지 않을 것인가? 과연 하나님의 덕과 능력을 우리들의 생각으로 측량할 수 있도록 허락될 수 있을 것인가? 그럼에도 저들은 하나님의 사역에 있어서 명확한 이유가 발견되지 않는다고 하여 어떤 방법으로든 하나님을 법정으로 소환하려고 하고 있다. 이러한 태도에 대해서 바울은 “스스로를 하늘 보다 더 높이려고 하는 자들은 전혀 자신의 처지를 분별하지 못하는 자이다”라고 경고한다.


* 여기서 주의할 것은, 칼빈이 말하고 있는 이 모든 논지의 출저가 전체 성경에서 비롯한다는 점이다. 혹자의 비판처럼 예정론은 칼빈의 고안물이 아니다. 오히려 칼빈은 바울사도에게서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다. 또 바울사도는 구약성경과 그리스도에 의존하여 하나님의 예정하심을 말한다. 결국 예정에 관한 진리는 그 자체가 이미 구약성경에서부터 기원하는 것이며, 모든 성경이 그것을 품고 있다. 그것은 결코 사변의 산물일 수 없는 것이다. 성경이 말하는 것을 말하고 성경이 감추는 것에 침묵하는 칼빈의 성경적 입장(원칙)이 여기에 반영되고 있다.


2) 그 밖의 피기우스의 주장

- 전 인류가 그리스도에게서 선택된 것이며 누구든지 신앙을 가지고 그를 받아 들인 자는 구원을 얻는다.

- 바울이 “하나님은 미리 아신 자를 예정하셨다”(롬8:29)고 말할 때 하나님은 저들의 신앙을 고려하여서 선택하셨다.

- 하나님을 배신한 인간이 그리스도에게로 돌아오려면 조명이 필요한 것을 인정한다. 그러나 그것과 동시에 은혜가 만민에게 동등하게 제공되고 있다는 것과 또한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방법으로 이것을 받아들이건 간에 그것은 인간의 선택에 의하여 비로소 최초로 유효하게 된다.

- 구원의 견고함은 인간의 자유의지에게서 나온다.

- 야곱과 에서 둘 다에게 유연한 마음이 주어졌지만 한 사람은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을 자유의지에 의하여 욕구하였음에도 다른 한편은 거절하였다. / <--- 롬9:11-13에 대한 피기우스의 변명

- 야곱은 긍휼의 그릇이 되기 위하여 자기 자신의 영혼을 깨끗하게 하였으며 그러한 이유에서 또한 그의 공적에 의하여 존귀한 그릇이 되었다. 이 같은 깨끗함을 고려해서 하나님은 야곱을 예지하였고 또한 선택하였다.

- 구원은 모든 사람에게 무차별적으로 부여되었다.

- 그리스도께서 모든 사람에게 한 가지로 복음을 전파할 것을 명령하신 것은 특별한 선택과 일치하지 않는다. 또한 그리스도는 듣는자는 구원을 받는다는 것을 선언하고 계신다./ <--> 칼빈: 그리스도는 전세계의 구원이 되도록 작정하셨지만 그것은 아버지로부터 주신 자들을 구원하기 위해서이며, 또한 머리되신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들의 생명이 되기 위해서이며 또한 하나님께서 자유하신 자혜(慈惠)로 말미암아 당신의 상속인이 되게 하신 자들로 말미암아 그리스도의 축복의 교제 가운데로 받아들이기 위해서이다. 사도는 “보라 나와 및 여호와께서 내게 주신 자녀들이”하고 한 이사야의 예언이 그리스도에게서 성취한 것을 선언하고 있다(사8:18 ;히2:13). 그리스도께서도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요6:39)

-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받기를 원하고 계신다”(딤후2:4)고 바울은 말하고 있지 않는가. 또한 하나님이 죄인의 죽음을 바라고 있지 않는 것은 예언자를 통해서 다음과 같은 맹세에서 믿을 수 있다. “나의 삶을 두고 맹세하노니 나는 악인의 죽는 것을 기뻐하지 아니하고 악인이 그 길에서 돌이켜 떠나 사는 것을 기뻐하노라”(겔33:11)고 하지 않는가. 만일 하나님께서 “원치 않는 것을 원하신다”고 공언한다고 하면 그것은 마치 사람을 바보로 만드는 것이다.

3) 위와같이 인간의 의지를 강조하는 입장의 유래 - "solvendus nodus Gordianus"

칼빈은 희랍신화에 나오는 고르디우스의 전설을 염두하므로 피기우스의 근원적 성격을 지적한다.


<고르디우스의 해결>

희랍신화의 전설에 의하면 수레에 타고 온 자를 왕으로 세우라는 신탁(神托)이 있었으나 농부인 고르디우스가 왕으로 추대되어 이 수레를 골드이온의 신전에 봉헌 하였다. 이 수레의 멍애에 매여있는 밧줄을 푸는 자는 전 아시아를 지배할 것이라는 신탁이 있었음으로 후에 알렉산더로스 왕이 이것을 검으로 잘라 버림으로써 예언을 실현 하였다는 전설에서 해결이 곤란할 때 혹은 불가능한 문제를 ‘고르디우스의 해결’이라고 한다.

‘고르디우스의 해결’ 이라는 것은 인간의 자유의지 문제를 말할 때 자주 인용되는 부분이다. 여기에 특이점은 예정이 없다는 것이다. 내가 지금 행한 것이 해결책이 된다는 입장이다. 즉 희랍의 영웅사상으로 자기가 자기의 운명을 설정한다는 것을 나타낸다. 이것은 희랍사상의 근원적인 성격으로 기독교와는 전혀 다른 근원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신학자 바빙크의 말대로 예정론은 개혁교회의 사상이 아니라 전(全) 기독교의 사상이다.


4. 섭리에 대한 이해 - 욥의 고난

* 표본구절 : 잠16 : 1-4

이제 우리가 살펴야 할 것은 다음과 같은 의문을 제거하기 위해서이다. 즉 모든 것을 예정하셨다면 왜 그토록 많은 죄악이 난무하도록 하시는가? 만일 모든 것이 하나님의 계획하심에 기인한다면 죄악 역시 하나님에게서 비롯된 것이 아닌가? 그렇다면 하나님은 악(惡)의 원작자(原作者) 혹은 조작자가 되지 않는가? 만일 모든 것이 예정되었다면 우리는 아무 것도 행할 필요가 없지 않은가?

하나님은 보다 낮은 여러 원인이 그것들의 결과로 나오는 것은 가능하지만 결코 필연적인 것이 아닌 방법으로 구성시켰다. 그러나 보다 높고도 먼 제반 원인은 하나님이 그것들을 당신자신 속에 감추시고 그것으로부터 가능한 것으로써 만들어내는 것이 필연적으로 발생하도록 하신다. 하나님에게는 단순히 허용이란 것이 없다 - 곧 의지다( 모든 것의 제1원인!).


칼빈은 욥의 예를 들어 하나님의 섭리에 대한 바른 이해를 도모한다.

도적들은 거룩한 욥의 짐승을 빼앗아 갔다. 이것은 지극히 수치스러운 범죄이다. 사탄은 이 방법에 의하여 저를 절망에로 몰아갔다. 이것은 실로 침뱉을 침략이였다. 그러나 욥은 “주신자도 여호와시오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어다”라고 말하면서 이 사실에 대하여 또 하나의 원작자(原作者)가 있는 것을 말하고 있다. 그가 도적들에게만 돌려야 할 것을 하나님에게 옮기고 있는 것은 결코 부당한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그는 마치 천상(天上)의 회의에서 행하여진 바 일로써 말하고 있는 것을 자기의 눈으로 보는 것처럼 (하나님이 당신 자신의 승락과 권위가 없이는 결코 빼앗기지 않을 것을 도적들의 손을 통해서 거두어 갔다)는 것을 고백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같은 사실을 욥은 “주의 마음대로 하셨도다”라는 말로도 설명하고 있다. 여기서 우리들은 하나님과 사탄과 도적들이 같은 한가지 일을 하고있는 것을 듣고 있다. 또한 하나님의 마음에 가납되지 않으면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을 듣고 있다고 한다면 사탄이 그의 하수(下手)들과 함께 책임을지지 않으면 안되는 죄책을 어떻게 하나님이 면할 수가 있겠는가.

이런 면에서 보통의 경우 사람들은 이것과 같은 일을 즉 하나님과 불신심한 자들과를 같은 정도로 죄과(罪過)로 말려들게 하려고 바라고 있다...


그러나 칼빈은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린다.

...이런한 뜻에서 우리들이 알 필요가 없는 바른 원인에 의하여 인간이 범한 죄악은 주께로부터 나온 것이지만, 비록 하나님의 의지가 만물의 제일 원인이라고 하더라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하나님이 죄의 원작자(原作者)라는 것을 부정(否定)한다.

칼빈이 이같은 결론을 내린 것은, 하나님은 그분의 속성상 죄를 좋아하지 않는 분이기 때문이다. 칼빈은 그래서 ‘인간은 야심과 탐욕과 정욕 혹은 그밖에 잘못된 감정에 움직여서 범한 바 부정한 행동이 하나님께 숨기워져 있으나 의로운 심판으로 말미암아 그의 손을 통하여 하였다고 하더라도 죄란 말을 하나님에게 붙일 수는 없다고 한다. 인간 속에 있는 것은 불성실, 잔인, 교만, 불절제, 질투, 맹목적인 자기사랑, 그밖에 잘못된 욕망으로 만들어 내고 있다. 그러나 하나님 안에는 이러한 것이 없는 것이다.’


결국 우리 생애에 일어나는 모든 일과 사건은 하나님의 의지에 그 필연적인 원인이 있으나 그 원인은 하나님께서 자기의 의로운 뜻에 감추시고 우리에게는 알리지 않으셨다. 우리 눈에는 그 일과 사건의 보다 낮은 원인들(예를들어 도적, 자연현상, 사탄...)만 보일지라도 그 자체가 최고의 원인은 아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영원하신 계획아래 이루어져 가는 것이며, 우리에게 허락된 생사고락의 여정은 선한 하나님의 뜻에 의해 주도된 숭고한 성화의 기회인 것이다. 이렇게 볼 때 어찌 우리 생을 태만하게 허비해 버릴 수 있겠는가? 만일 하나님의 선한 의지를 믿는 자라면 매순간 어느 것 하나 버릴 수 없는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갈 것이다.



5. 도르트 신조와 WM 신조에 명시된 예정론

1) 도르트 신조 요약

a. 무조건적 선택

b. 제한 속죄

c. 전적 타락

d. 불가항력적 은혜

e. 성도의 견인


2) 웨스트민스터 신조 3장 요약

하나님은 영원 전부터 가장 지혜로우시며, 가장 거룩한 자기 뜻에 따라 되어갈 일을 무엇이든지 자유롭게 또는 변할 수 없게 정하셨다. 그러나 그것에 의하여 하나님이 죄의 조성자로 되지도 않으시고 인간의 의지를 억제하심도 없으며, 제2 원인들의 자유나 우연성이 제거되지도 않고 도리어 확립되게 하셨다.

하나님께서 그의 영광을 나타내기 위하여 그의 작정으로 어떤 사람들과 천사들은 영생을 얻도록 예정하시고 다른 사람과 천사들은 영원한 죽음에 이르도록 예정하셨다.

이렇게 예정되고 먼저 정해진 이들 천사들과 사람들은 개별적 또는 불변적으로 계획되어진 것이니, 그들의 수는 극히 확실하고 한정되어서 더해질 수도 감해질 수도 없다.

인류 중에서 생명에 이르도록 예정된 자들은 하나님께서 세상의 기초가 놓이기 전에 그의 영원하고 변함이 없는 목적과 그 마음의 은밀한 계획과 기뻐하심에 따라 그리스도 안에서 택하셔서 영원한 영광에 이르도록 하셨다...이렇게 결정할 때에는 ... 하나님을 그렇게 하도록 움직인 원인 때문에 하신 것이 아니며 모든 것이 그의 영광스러운 은혜를 찬송하게 하려 하신 것이다.

...그의 뜻의 영원하며 지극히 자유로운 목적을 따라 그들로 영광에 이르도록 하는데 있어야 할 모든 방펀들을 먼저 정하셨다... 택함을 받은 자 외에는 다른 아무도 그리스도에 의해 구속을 받지 못하고 유효적으로 부름을 받지 못하고 칭의, 양자, 성화, 구원을 받지 못한다.

높고 신비한 예정 교리는 특별히 신중하고 조심스럽게 다루어야 한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말씀에 계시된 그의 뜻에 유의하여 순종하는 사람들로 하여금 그들의 유효한 부름을 받은 것이 확실하기 때문에 그들의 영원한 선택을 확신하게 하여야 한다. 그리하면 이 교리는 하나님께 향한 찬송과 경외심과 경모심을 일으키게 하며...


결 론

하나님께서 사도 바울을 통해 하늘의 비밀한 진리인 예정을 기록으로 남기신 것은 사도 바울과 그 시대의 주의 백성들의 유익만을 위함이 아니요 오고 오는 시대의 모든 주의 택한 자들의 유익도 배려하심이다. 이것은 이미 모세를 통해 이 종교가 처음 시작될 때부터 있었던 진리임을 기억해야 한다. 하나님의 뜻이 모든 성경을 통해 어느 것 하나도 불완전한 것이 없이, 전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우리에게 주어졌고 또 그 내용의 기초가 하나님의 영원하신 예정안에 놓여 있다면, 말씀을 먹고 사는 우리로서 어찌 이 진리를 외면할 수 있겠는가! 이 진리를 외면하는 것은 모든 은혜와 겸손의 깊은 뿌리를 송두리채 뽑아 버리는 것이 된다. 그것은 성도의 성도됨의 원리이자 근거이며 그 내용이 성경 전체에서 계시되고 있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예정론을 아는 것에 있지 않다. 바로 그 사람이 예정론을 실제로 믿는 자인지 보는 것이다. 비슷한 예정론을 가진자! 칼빈은 이들을 강하게 비판하였다. 그것은 그들이 예정을 약화시키는 여러 의도를 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왜 그렇게 이런 의도를 비판했는가? 이는 예정론이 갖는 실천적인 의미 때문이다. 즉 살아계신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와 관련되고 진리 자체와 관련된 문제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진리에 있어서 조그만 실오라기라도 포기하게되면 곧 전체를 무너지게 하는 원인이 된다. 칼빈은 이것을 잘 알고 있었고, 성경 진리 자체의 어느 것 하나도 포기됨이 없이 보존하는 면에서 삶의 원리로 받았던 것이다. 진리자체 이신 살아계신 하나님을 생생하게 보존하는 차원에서, 그리고 그로부터, 오직 그의 자유로운 의지로부터 말미암는 모든 은혜를 강조하는 차원에서 예정론을 발견했던 것이다.

오늘날 예정론을 포기하거나 혹은 예정론의 아류적인 모든 입장들은 단순히 예정론 자체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고, 이러한 깊은 차원의 경건을 포기하는 것이며, 성경 진리를 어둡게 하며, 값싼 은혜로 자기 욕구를 채우고, 더 나아가 하나님의 의도와 선한 뜻을 가리우며, 결국 하나님 자신을 부인하는 ‘실천적 무신론자’로 전락하고 마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성경이 말하는 예정에 대한 믿음은 개혁교회의 독특한 고백이 아니라 전 기독교의 고백이다!


** 참고자료 1

<예정론에 반대되는 듯이 보이는 성경 구절에 대한 칼빈의 해석>

칼빈이 이해한 하나님의 영원한 예정은 성경에 근거를 둔 입장이다. 여기서 예정론을 반대하는 자들이 인용하는 성경 구절들에 대한 칼빈의 해석을 살펴보면 더욱 더 선명하게 그의 예정론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1. 요한복음 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으로 모든 사람을 예외 없이 초대하는 것을 볼 때 그가 온 세상에 대하여 호의적인 관용을 나타내고 있다. 그리스도를 신뢰하는 것은 과연 생명으로 들어가는 관문이다. 뿐만 아니라 우리는 생명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사람들에게 일반적으로 약속되어 있는 것이지만, 믿음은 모든 사람의 것이 아님을 기억해야 한다. 그리스도는 모든 사람에게 열려 있고 모든 이가 볼 수 있도록 공개되어 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믿음으로 그를 찾고 구하는 택함 받은 자들의 눈만 열어 주신다. 믿음의 놀라운 효과가 여기에도 나타나 있다. 믿음에 의하여 우리는 그리스도를 아버지께서 우리에게 주신대로 영접한다.”


2. 요한일서 2:1-2

“나의 자녀들아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씀은 너희로 죄를 범치 않게 하려 하이라 만일 누가 죄를 범하면 아버지 앞에서 우리에게 대언자가 있으니 곧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시라 저는 우리 죄를 위한 화목 제물이니 우리만 위할 뿐 아니요 온 세상의 죄를 위하심이라”

---> 칼빈은 “우리만 위할 뿐 아니라 온 세상의 죄를 위하심”이란 구절을 해석하면서 “모든 세상의 죄가 다 용서함을 받는가”에 대한 문제를 제기한다. 그러나 칼빈은 이러한 구절을 근거로 모든 유기자들과 심지어 사단까지도 구원받을 수 있다고 해석하는 자들을 미치광이라고 하였다. 또한 그리스도께서는 온 세상을 위한 충분한 고난을 받으셨지만, 그러나 오직 택자들에게만 그것이 유효하다고 해석하는 당시 타협적인 입장을 취한 일반 학파들에 대해서도 칼빈은 단호히 거절한다. 그는 이 구절에서의 요한의 의도는 이 축복을 전 교회의 공통적인 것으로 생각하였다고 설명한다. 즉 “모두”라는 단어를 사도 요한이 사용했다고 해서 곧 그것 자체가 유기자까지 포함시키는 것이 아니며, 다만 모든 믿는 사람들과 지구 위의 여러 곳에 산재해 있는 그런 선택받은 사람들을 말하고 있다고 하였다. 칼빈은 확언해서 그리스도의 은혜는 온 세상의 구원자들에게만 선포될 때 비로소 참으로 분명하게 나타난다고 하였다.

3. 이밖에도 칼빈은 예정교리에 반대되는 것처럼 보여지는 성경구절인, 에스겔 33:11(“주 여호와의 말씀에 나의 삶을 두고 맹세하노니 나는 악인의 죽는 것을 기뻐하지 아니하고 악인이 그 길에서 돌이켜 떠나서 사는 것을 기뻐하노라 이스라엘 족속아 돌이키고 돌이키라 너희 악한 길에서 떠나라 어찌 죽고자 하느냐 하셨다 하라”) 이나 디모데전서 2:1-4(“그러므로 내가 첫째로 권하노니 모든 사람을 위하여 간구와 기도와 도고와 감사를 하되 임금들과 높은 지위에 있는 모든 사람을 위하여 하라 이는 우리가 모든 경건과 단정한 중에 고요하고 평안한 생활을 하려 함이니라 이것이 우리 구주 하나님 앞에 선하고 받을실 만한 것이니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을 그의 기독교 강요 제3권 24장 15-16절에서 명료하게 설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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