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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신에서의 “조직신학”논의 회고와 전망II(3)

조직신학

by 김경호 진실 2014. 6. 22. 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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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신에서의 “조직신학”논의 회고와 전망II(3)
글/ 김광열(총신대 조직신학)
 
김순정 기사입력  2014/06/03 [09:11]

B. 신학내용에 관한 논의

위에서 지적한 방법론에 관한 논의들에 대해서 뿐만 아니라, 이제 언급하려는 바, 우리가 계승, 발전해야할 신학적인 내용들에 대한 논의도 앞으로 계속해서 발전적으로 토의되어야할 줄로 안다. 그러나, 제한된 논문의 공간 속에서, 필자는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주제에 대해서만 우선적으로 지적하려 한다.

이 두 가지 주제들은 위에서 지적한 방법론적 논의를 기초로 하여, 21세기 총신의 상황 속에서 개혁신학을 그 선조들의 전통 위에서 좀 더 분명히 펼쳐나가려는 시도들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 첫째 내용은 반틸의 전제주의적 변증학의 방법의 틀 위에서 개혁주의 성경관을 더욱 확고히 세워보자는 의도에서 제출된 것이고, 둘째번의 내용은 성경신학적인 통찰을 통하여 “복음의 현재적 의의”가 균형있게 제시되는 신학이 전개되야함을 강조하려한 것이다.

 

1. 개혁주의 성경관의 강화

21세기 한국교회를 바라보면서, 신학적으로 계승, 강화해야할 총신에서의 개혁신학 교리들 중의 하나는 성경관에 관한 것이다. 이미 위에서 박형룡박사의 신학이 한국교회에 대해서 지니는 중요성을 언급하는 부분에서도 지적했듯이, 오늘날 한국교회가 -여러 가지 안타까운 일들이 계속적으로 발생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 위에 신앙과 신학의 뿌리를 든든히 내리고, 세계 속에 주목받는 지도적 교회로 부흥케된 것은, 초기의 한국교회 안에서 성경의 권위를 강조하는 개혁주의 신앙과 신학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그 성경적 교리를 총신과 전국교회에 가르쳐왔기 때문일 것이다.

과거의 한국교회를 지켜온 중요한 신학적 기초가 개혁주의 성경관이라는 사실은, 또한 종교적 다원주의와 상대주의적 가치관, 그리고 포스트모던적 사고가 팽배해져가고 있는, 21세기를 살아가는 한국교회가 계승, 강화해야할 신학의 교리도 여전히 하나님의 말씀만의 권위를 주장하는(Sola Scriptura) 개혁주의 성경관이라는 점을 깨닫게 한다. 그러한 점에서, “금후한국교회내지 세계교회는 성경이 그들 중에 신적 권위를 가지고 서있는 한 완전히 설 것이요, 성경이 그들의 멸시를 받아 넘어지는 때에는 함께 쓰러질 것이다”라고 30여년 전에 지적하셨던 박형룡박사의 말은 21세기를 살고있는 한국교회와 총신가족들에게는 더 더욱 예언적 진리로 다가오는 말씀이 된다고 사료된다.

그것은 성경의 무오성과 권위에 대한 도전이 오늘날, 단지 과거의 구자유주의자들과 같은 현대주의적 거부뿐만 아니라, 복음주의자들 속에서 좀 더 세련된 방식으로 제기되고 있는 상황임을 고려할 때, 더욱 그러하다. 후자의 도전은 복음주의 안에서 일종의 내부의 적으로서, 성경의 불오(Infallibility)와 무오(Inerrancy)의 개념을 구별하는 입장이다. 불오는 수용하나 무오는 개혁자들의 가르침이 아니라, 17세기 프린스톤의 합리주의적이고 스콜라적이였던 신학자들에 의해서 창조된 개념이라고 주장함으로서, 역사적 기독교회의 성경관을 무너뜨리려 하는 것이다. 그리고 성경관에 있어서의 역사적 기독교신앙의 거부는 곧 이어 역사적 기독교신앙의 또 다른 근본 신앙의 거부로 이어질 수 있는 것이기에 우리가 더욱 경계해야할 항목이 되는 것이다.

한국교회 안에서 박형룡박사가 강조한 개혁신학의 핵심적 요소가 성경관과 관련된 것이라는 사실은 그가 세상을 떠나기 2년전에 신학지남에 기고한 글에서도 확인된다. 그 논문에서 그는 “한국 장로교회의 신학적 전통이란 웨스트민스터 표준에 구현된 영미장로교회의 청교도 개혁주의 신학이 한국에 전래되고 성장한 과정”이라고 밝힌 후, 영미에서의 청교도 개혁주의 신학의 특징들을 3가지로 요약하며, 이어서 한국에서의 청교도 개혁주의 신학의 특징을 5가지로 요약했다.51) 그런데, 영미의 신학적 특징에서는 두 번째로 제시되었던 성경의 신성한 권위의 항목을, 한국의 개혁신학의 특징에서는 첫째 항목으로서 제일 앞에 제시하여 강조했던 것이다. 물론 그 특징들이 제시된 순서 자체에 큰 의미가 담겨있지 않을 수도 있겠으나, 이 글은 특히, 박형룡박사가 자신의 일생의 신학작업을 마무리하는 단계에서 한국교회의 개혁신학의 전통을 정리하며 기술한 논문이라는 점에서 그 중요성이 간과될 수 없다.

그런데, 이러한 박형룡박사의 개혁주의 성경관의 변호는, 한국교회의 뿌리가 되고 또 그 기초를 놓았다는 점에서 매우 높이 평가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나, 위에서 신학방법론에 대한 논의를 할 때 지적했듯이, 내용적으로 보아 구프린스톤적인 변호에 머물렀다는 점에서 좀 더 고려되어야할 부분이 있다고 볼 수 있다. 그것은 단순한 역사적 사실이나 합리적 추론에 의한 성경관의 제시 및 변호를 시도한 구 프린스톤적 성경관 논의와 더불어, 반틸이 제시했던 기독교 유신론적 전제에 입각한 개혁주의 성경관 논의의 도입 필요성을 의미한다. 그것은 총신의 전통으로 자리잡은 개혁주의적 성경관의 내용을 변경시키자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성경관의 기초를 철학적으로 확고히 놓아주는 작업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박형룡박사의 신학서술 속에서 반틸박사의 기독교 유신론적 접근방법에 대한 논의들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의『교의신학』의 기초가 된 것은 Berkhof의 조직신학 책이라고 알려졌으나, 반틸의 신학적 관점들과 논의들도 간간히 삽입된 것이 사실이다. 예를들면, 그의『교의신학: 서론』제1편 2장 4절에서 교의신학의 방법을 설명할 때, 기독교 유신론적 방법을 제시하면서 반틸박사의An Introduction to Systematic Theology 등을 언급하고 있다.

반틸의 저서에 대한 이러한 단순한 언급만이 아니라, 성경의 속성에 대한 그의 논의들 속에서는 직접적으로 반틸박사의 “기독교 유신론적 성경관”의 관점들이 간간히 제시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성경의 필요성에 대해서도 전통적인 설명들과 함께, 박박사는 “구속적 사역의 진로에는 사탄의 방해가 심하여 만일 구속적 사실들에 대하여 기록에 의한 권위적 해석을 가하지 않고 사람에게 방임하여두면, 그 의미를 충분히 또는 무오히 이해할 자 없을 것이요, 진리는 악변되어 본색을 잃을 것이었다”라는 지적을 하면서, 구속사건에 대한 성경의 권위있는 해석만이 인간의 자율적인 해석의 구덩이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임을 강조하는 반틸의 전제주의적 설명을 따라가며, 성경의 필요성을 제시하고 있다.

그러한 관점은 성경의 권위성이라는 속성을 설명하는 부분에서도 계속된다. 성경이 신적인 권위있는 계시일 수밖에 없음은, 그렇지 않을 경우 “죄인은 자기가 생의 해석에서 병적이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는 자율적이기를 추구하고 하나님께서 궁극적인 참조점(final reference point)되심을 거부하게 되므로, 하나님의 계시말씀도 권위있는 방식으로 제시되었어야 했다는 지적을 하고 있는데, 이 논지도 각주를 달지는 않았으나, 거의 반틸의 저서의 관점과 설명을 따르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물론, 이러한 간헐적인 언급들은 반틸의 전제주의적 관점에 대한 일관성 있는 적용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것은 박형룡박사의 시대적인 한계였다고 보고싶다. 반틸의 기독교 유신론적 전제주의의 중요성을 인식했으면서도, 그 함축적인 의미들을 조직신학의 논의들 속에서 충분히 소화하여 제시하지 못했던 것이다. 특히 성경관 논의에 있어서는 성경의 영감을 말하는 항목에서 그러한 모습이 확인되고 있다.

반틸의 관점에서 볼 때, 성경의 영감교리는 단순한 하나의 교리일 뿐만 아니라, 그것은 기독교 유신론과 유기적으로 연관되어 있는 전체의 한 부분인 것이다. 즉, 그것은 단지 역사적인 증거들과 합리적인 논증들에 의해서 제시되어야할 뿐만 아니라, 또한 철학적인 기독교 유신론적 변증이 함께 제시되어야함을 뜻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전자의 논의가 중립적인 근거에서 전개될 때, 그것은 불신자의 형이상학적 가정을 수용하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기 때문이다.

반틸의 기독교 유신론적 관점에서 볼 때, 역사적 논증도 필요한 것이나, 그것은 기독교 유신론적 (철학적) 변증과 함께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다. 성경의 하나님이 존재하지 않으신다면, 이 세상의 어떠한 사실들도 의미를 가질 수 없다는 전제 아래에서 볼 때, 만일 우리에게 절대적으로 영감된 성경이 없다면, 우리는 결국 참된 해석의 가능성을 상실케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박형룡박사의『교의신학: 서론』에서는 이러한 부분에 대한 논의는 발견되지 않는다. 성경영감의 증명을 논함에 있어서, 몇 가지의 추론적 논증들과 성경 자체의 증거들만을 제시하는 정도에서 머물고 있다.

따라서, 우리는 박형룡박사가 인식했으면서도, 충실하게 적용 내지는 발전시켜나가지 못했던, 반틸의 기독교유신론적 성경관의 의미들에 대한 충분한 논의를 전개시킬 필요가 있다. 그것은 박형룡박사의 신학의 계승이라는 차원에서만이 아니라, 좀 더 근본적으로 그러한 기독교 유신론적 접근이 가져오는 유익들 중의 하나는, 그것이 개혁주의의 중요한 특성들 중의 하나인 “하나님의 주권사상”, 특히 그 하나님의 주권의 전포괄성을 밝히 드러내준다는 점에서이다. 다시 말하면, 개혁주의 성경관이란 단지 하나의 기독교 교리일 뿐만 아니라, 기독교 유신론적 세계관, 신관, 구원관, 인식론 등과 유기적으로 연관된 가르침임을 깨닫게 해주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들에게 영감된 성경으로서 계시말씀을 주셨다는 사실을, 성경적 신관, 형이상학, 인식론 등에 기초하여 논의할 때, 그 의미가 더욱 풍부하게 파악될 수 있는 것이다.

즉, 그러한 방식의 논의는 하나의 교리적 내용만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의 모든 피조물들을 창조하셔서, 형이상학적 영역들 속에서 조차도 그 모든 존재와 지식들의 의미를 제공하시는 하나님의 주권적 통치의 전포괄성을 말하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점에서 볼 때, Van Til이 제시했던 기독교 유신론적 성경관의 논의는 하나님의 주권을 강조하는 개혁신학을 더욱 강화시켜주는 가르침이 되는 것이다. 그것은 단지 조직신학의 한 분야를 설명하는 교리에만 머무르지 않고, 기독교인들이 시도하는 모든 학문과 생활 영역에서의 지적 활동의 근거를 제공해 주는 가르침이 된다는 점에서, 그 의의가 더욱 드러나게 된다. 따라서, 이러한 기독교 유신론적 성경관의 내용들은, 21세기를 살아가고 있는 한국교회와 성도들에게, 특히 성경의 권위와 무오교리에 대한 도전이 미묘하고도 다양하게 몰아쳐오는 상황 속에서, 성경말씀의 권위와 그 절대적 필요성을 더욱 분명히 이해하고 살아가도록 해주는 개혁주의 성경관이 될 것으로 사료된다. (계속)

 

 

http://www.reformednews.co.kr/sub_read.html?uid=3219§ion=sc9§ion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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