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딤전 4:2b) 화인 맞은 양심

조병수박사

by 김경호 진실 2014. 7. 21. 2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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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심에서 각질 벗겨 내어야


만일에 남의 발등을 밟고는 왜 내 발 밑에다 발을 넣었느냐고 야단을 친다
면, 적신호 앞에 서있는 차를 뒤에서 들이박고는 왜 내 차의 진로를 방해하
느냐고 대든다면, 아랫집 천장에서 물이 떨어지는데 윗집 사람이 우리 집에
무슨 문제가 있느냐고 억지를 부린다면, 이것은 틀림없이 양심이 잘못된 것
이다.
교회가 진실과 순결을 잃어버린 채 세상의 거짓과 죄악을 질책한다면, 목사
가 제대로 설교를 준비하지 않으면서 성도들이 설교에 은혜를 받지 않는다
고 화를 낸다면, 성도들이 기도하지 않으면서 하나님은 기도에 응답하지 않
는다고 불평한다면, 이것은 틀림없이 양심이 잘못된 것이다. 이것은 절대로
제 정신으로는 할 수 없는 행위들이다.
사회의 악하고 패역한 경향이든지 광기에 사로잡힌 더러운 영이든지, 양심
이 무엇인가에 지배를 받지 않고는 이런 현상은 일어나기 어렵다. 그래서 양
심이 부패한 것은 이미 무엇인가 부패한 것에 지배
를 받고 있다는 것을 증명
하는 것이 된다.

지배받고 있는 부패된 양심

사도 바울은 말세에 벌어질 한 두려운 현상에 대하여 지적하고 있다. 말세에
는 양심에 화인 맞은 사람들이 있을 것이라는 사실이다. 화인은 불에 시뻘겋
게 달군 쇠 연장으로 살을 지지는 것이다. 사도 바울 당시에 화인을 찍는 것
은 두 가지 경우가 있었다.
그 중에 한 가지는 칼에 베이거나 창에 찔려 생긴 심한 상처부위를 불로 지
지는 것으로 그렇게 치료한 부위는 감각을 상실하게 된다. 또 한 가지 경우
는 노예나 전쟁포로 또는 가축에 화인을 찍어 누구의 소유가 되었음을 나타
내는 것이다. 이렇게 볼 때 화인을 맞는다는 것은 감각을 잃어버렸다는 의미
와 누구에게 지배를 받게 되었다는 의미를 가진다. 그런데 사도 바울은 화인
을 양심과 관련하여 말함으로써 화인 맞은 양심이 얼마나 무감각해지고 남
의 지배하에 들어가게 되었는지 설명하고 있다.
사도 바울이 앞에서 말했듯이 어떤 사람들이 믿음을 떠나 미혹하는 영과 귀
신의 가르침을 따르는 것을 두려워하거나 안타깝게 여기지 않는 것은 실제
로 양심이 화인을 맞았기 때문이다. 또한 양심
이 화인을 맞은 사람들은 거짓
과 외식에 사로잡혀도 전혀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는다.

양심의 가책조차 느끼지 않아

어떤 사람들이 분명한 신학적인 근거도 없이 혼인을 금지하고 음식을 폐지하
라고 헛된 말을 퍼뜨리면서 문제감각이 없는 것도 역시 양심이 화인을 맞았
기 때문이다. 따라서 양심이 화인 맞은 사람은 사상이 마비되어 진리에 무디
어지고, 행실이 둔화되어 가식의 문제점을 느끼지 못하며, 헛된 말을 주절거
리는 것을 깨닫지 못하는 언어의 무감각 상태에 빠진다. 한 마디로 요약하자
면 화인 맞은 양심은 총체적인 문제이다.
오늘날 기독교는 양심이 화인 맞지 않았는지 스스로 점검해야 한다. 성경에
서 떠난 잘못된 신학과 사상에 물들어 진리종교를 단순히 윤리종교로, 구원
의 종교를 단순히 웰빙의 종교로 변질시키면서 버젓이 목사노릇을 하고 있
는 사람들이나 그것을 듣고는 은혜를 받았노라고 떠들어대는 신자들은 양심
에 화인 맞은 것이 아닌가!
중세의 교회보다도 훨씬 더 심각할 정도로 교회당을 치장하는 데 혼신을 쏟
거나 기름때가 줄줄 흐르도록 신체와 외모를 가꾸는 데 온통 마음을 빼앗기

것, 그리고 오직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는다는 이신칭의를 향한 종교개혁의 외침을 고스란히 말아먹고 구원에 도
달하기 위해서는 헌신적인 행위가 필요하다고 부르짖는 것, 이것은 양심에
화인 맞은 것이 아닌가!
가정이나 건강 같은 것들을 소홀히 해서는 안되겠지만 어디에서 배웠는지 기
독교가 그저 가정의 행복과 건강의 보존 따위를 장려하기 위하여 존재하는
것으로 생각하여 모든 관심, 모든 메시지, 모든 행사를 총집중하는 것은 양
심에 화인 맞은 것이 아닌가!

총체적 문제를 안고 있어

우리의 양심은 하나님과 사람에 대하여 살아있어야 한다. 우리는 화인 맞
은 양심으로부터 사회적인 의미에서는 물론이고 영적인 의미에서 감각을 둔
화시키는 각질을 벗겨내야 한다. 이것은 사도 바울의 노력이었다. “이것을
인하여 나도 하나님과 사람을 대하여 항상 양심에 거리낌이 없기를 힘쓰노
라” (행 2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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