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는 인간의 확장(extensions of man)이다. 이것은 1964년에 미디어 연 구의 선구자인 마셜 맥루언 박사가 세상에 제출한 유명한 책의 제목이며 동 시에 그의 주장의 요점이다. 맥루언 박사의 주장은 여러 가지 점에서 맞다.
한때 유행했던 “부~ 자 되세요”
미디어가 인간의 확장이란 정의에 타당성이 있다는 것은 예를 들면 미디어 가 내 지식을 멀리 있는 남에게 전달하거나, 남의 지식을 멀리 있는 내게 전 달하는 것을 가능하게 만든다는 사실에서 그렇다. 미디어는 손을 뻗는 것, 발로 걸어가는 것, 동물이나 기계를 타고 가는 것의 효과적 확장이다. 그러나 미디어가 인간의 확장이라는 말은 물리적인 확장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닌 것 같다. 그것은 심리적 기능의 확장이기도 한데 심지어 죄의 확장이기 도 하다. 불행하게도 미디어는 좋은 것 뿐 아니라 아주 나쁜 것까지도 너무 나 강력 하게 보급한다. 미디어가 죄의 확장이란 말에 기분이 나쁘다면 잠시 양보하기로 하고, 때때로 곧잘 욕심의 확장이 된다는 점만을 주지시키고자 한다. 한동안 “부자 되세요”라는 말이 유행한 적이 있다. 그 유행어는 부자의 “부”자를 길게 발음함으로써 코믹한 분위기를 고조시키면서 삽시간에 사람 들의 입을 장악했다. 내가 알기로는 이 말이 어떤 텔레비전 광고의 한 토막 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이 말이 미디어를 통해서 광고된 후에 순식간에 퍼져나가 우리나라에서 뿐 아니라 세계 어디에서나 우리말을 쓰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 유행어를 마 치 인사말처럼 사용했다. 그래서 사람을 만났을 때, 사람과 헤어질 때 “안 녕하세요”, “안녕히 가세요”라는 인사 대신에 “부자 되세요”라는 말을 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심지어 목사들까지 그런 유행어를 사용하는 것으로 무슨 재치 있는 사람임을 증명하는 것처럼 생각했는지 설교를 하는 중에 몇 번이고 그 말을 써먹는 생각머리 없는 일을 저질렀다. 물론 그런 유행어가 히트를 친 까닭은 단순히 인간의 확장이라는 미디어의 역할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이미 인간의 내면 가장 깊은 밑바닥에는 부자 가 되고 싶은 마음이 꿈틀거리고 있는데 미디어가 그것을 풀어준 것일 뿐이 다. 인간은 자고로 부자가 되고 싶어한다. 이것은 모든 인간에게 공통되는 소망이다. 사람들이 재물이 많으면 행복할 것이라는 소박한 생각 때문에 부 자가 되고 싶어하다. 우리는 재물이 많으면 하고 싶은 것을 마음대로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 다. 이런 믿음 때문에 사람들은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재물을 모으는 데 열심 을 낸다. 우리는 부지런함을 칭찬해야 한다. 근면함은 훌륭한 것이다. 그런 데도 불구하고 부자가 되는 일을 무조건 잘하는 일이라고 말하기가 어렵다. 사도 바울은 그 이유를 제시한다. 부자가 되려고 하면 반드시 거쳐야 할 무 서운 문들이 있다는 것이다. 사도 바울은 그것을 이렇게 열거했다. “시험 과 올무와 여러 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욕심.” 부자가 되려고 하는 사람은 때때로 악한 사업인 줄 뻔히 알면서도 모른 척하며 손을 대려는 시험을 만나 고, 시도하면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그밖에 여러 가지 차원에서 반드시 엄 청난 고통을 수반하게 될 사업에 말려들고, 욕심을 낼수록 손해를 가져다 줄 일에서 벗어 나지 못하는 어리석음을 저지른다. 이것은 부자가 되려는 사 람들이 거의 언제나 당면하는 문제점들이다. 미안한 말이지만 이런 무서운 관문들을 정직하게 통과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래서 청렴한 부자라는 말 은 정당성을 가질 수가 없는 것이다. 사도 바울은 이런 통과 절차 앞에서 부자가 되려는 사람들이 도달하는 지점 이 어디인지 알려준다. 시험과 올무와 욕심은 사람들을 파멸과 멸망으로 떨 어뜨린다. 결과를 볼 때 사업에 실패한 사람들은 열 명이면 열 명이 이구동 성으로 이 사실을 증언할 것이다.
치러야 할 혹독한 시험들 많아
그들은 만일에 악한 사업을 모른 채 하지 않았더라면, 고통을 가져다 줄 일 에 말려들지 않았더라면, 손해를 야기할 일에 욕심을 내지 않았더라면, 지금 도 재미있게 사업을 하고 있을 것이라고 말하겠지만 때는 이미 늦었다. 그러 므로 그런 늦은 때로 빠져드는 길은 처음부터 피하는 것이 옳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