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병수의 목회편지(122)
_ 딤전 6:15-16
가까이 가지 못할 빛
조병수 교수_합신 신약신학
“계시해 주신 하나님께조차 관심이 없다면”
부모의 은덕을 기리는 노랫말을 듣거나 스승의 은혜에 감사하는 시를 읽다보
면 부모와 스승을 묘사하기 위해서 무진장 애쓴 흔적들을 발견하게 된다. 보
통 말로 그들의 사랑과 노고를 설명하는 것은 너무나 죄송한 일이기에 주로
등장하는 단어들이 하늘, 태산, 바다, 이런 것들이다.
부모 은덕 기리기 쉽지 않아
아마도 이런 현상은 추상적인 개념들을 정의하고자 할 때도 동일하게 나타나
는 것 같다. 예를 들어 화가가 열정을 그리려면 붉은 색을 많이 사용하고,
순결을 표현하려면 대체로 흰색으로 꾸미는 것이 당연한 일이겠지만, 색깔
만 가지고는 만족하지 못해 화폭에 어떤 무늬를 그려 넣기 위해 엄청나게 고
뇌한다.
하나님을 설명하는 것은 그 무엇보다도 어렵다. 그래서 성경의 기자들까지
도 이 어려움을 감당하기 힘들다는 듯이, 자주 우주
의 신묘불측한 현상을 가
지고 하나님을 묘사한다. 하나님은 홀로 하늘을 펴시고 땅을 그 자리에서 움
직이시며, 해를 명령하여 뜨지 못하게 하시고 별들을 흑암에 가두신다(욥
9:6-8). 하나님은 눈을 양털같이 내리시고 서리를 재 같이 흩으시며 우박을
떡 부스러기 같이 뿌리신다(시 147:16-17). 특히 욥기 38장에서 41장을 죽
읽으면 하나님의 위용 앞에 그만 숨이 턱 막히는 것을 느끼게 된다. 욥 자신
의 말을 인용하자면, 손으로 입을 가릴 뿐이다(욥 40:4).
이런 어려움은 사도 바울에게도 예외가 아니었을 것이다. 만일 그에게 하나
님의 지혜가 주어지지 않았더라면 하나님을 설명하기 위해서 일획도 긋지 못
했을 것이다. 하나님의 계시를 따라서 사도 바울은 한 단어, 한 단어 그리
고 한 마디, 한 마디가 엄청난 신학을 함의하고 있는 여러 가지 장중하고 엄
숙한 표현을 열거하여 하나님을 묘사한다.
사도 바울은 가장 먼저 하나님이 복되시고 유일하신 능력자이심을 선언한
다. 하나님에게는 능력이 있다. 그런데 하나님의 능력은 그 자체가 복스러
운 것이며, 다른 어떤 것이 견줄 수 없는 것이다. 하나님은 능력을 가지고
있기에
복을 주실 수 있고 자신만이 유일하신 하나님임을 입증하실 수 있
다. 따라서 세상의 모든 것은 하나님으로부터 복을 얻고 오직 하나님을 의존
할 때 능력을 받는다.
또한 사도 바울에 의하면 하나님은 만왕의 왕이시며 만주의 주이시다. 시간
과 공간을 막론하고 모든 왕들과 모든 주들은 하나님 앞에서 왕이 아니며 주
가 아니다. 모든 왕들은 아무리 잘 다스려도 하나님처럼 다스릴 수 없고, 모
든 주들은 아무리 잘 통치해도 하나님처럼 통치할 수 없다. 하나님의 왕권
과 주권만이 영원과 시간에서 그리고 초월과 내재에서 완벽하게 유효하다.
따라서 하나님의 다스림과 통치를 받을 때 모든 것은 안전하고 안정된다. 하
나님의 왕권과 주권을 떠나는 것은 그 자체가 파멸의 길이며 패망의 삶이
다.
더 나아가서 사도 바울은 하나님을 죽지 아니함을 가지신 유일한 분이며 가
까이 가지 못할 빛에 거하시는 분이라고 정의한다. 하나님께는 모든 것이 가
능하지만 절대로 불가능한 두 가지 “안 됨”이 있다. 첫째로 하나님께는 죽
는 것이 안 된다. 하나님은 죽는 것이 가능하지 않다. 왜냐하면 하나님만이
영원한 자존자이시기 때문이다. 따라
서 하나님께만 진정한 생명이 있고, 하
나님이 관련하는 모든 것은 생명을 얻는다. 둘째로 하나님께는 접근하는 것
이 안 된다. 누구도 하나님께 가까이 가는 것은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하나
님은 최상의 광명자이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가장 밝은 빛을 소유하고 계
시므로 모든 것은 하나님과 관련할 때 빛을 얻는다.
마지막으로 하나님은 어떤 사람도 보지 못하였고 또 볼 수 없는 분이시다.
하나님과 관련하여 두 가지 “못함”이 있다. 첫째는 과거와 이전에 아무도
하나님을 보지 못한 것이고, 둘째는 현재와 미래에 아무도 하나님을 보지 못
할 것이다. 그러므로 오직 하나님께서 자신을 보여주실 때만 보일 뿐이다.
그래서 하나님의 계시를 떠나서는 하나님에 대하여 아무 것도 알 수가 없다.
하나님 모습 그리기 쉽지 않아
성경 이상으로 하나님을 묘사하는 것은 우리에게 불가능한 일이다. 그러면
다시 하나님을 묘사하지는 못할망정, 이미 알려진 설명마저 도외시하다니,
그게 말이 되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