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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너희에게 있는 것을 내가 올 때까지 굳게 잡으라

정병길목사(안양)

by 김경호 진실 2014. 11. 12. 2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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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너희에게 있는 것을 내가 올 때까지 굳게 잡으라
정병길  (강변교회 목사)

 

교회는 복음을 굳게 지키며 항상 깨어 있어야 하고, 특히 교회의 지도자들은 더욱 그렇게 해야 합니다. 그러지 못하면 그 안에 아무리 선미(善美)한 것이 많이 있다 할지라도 이 세상과 함께 그리스도의 심판 앞에 놓이게 될 것입니다. 주께서는 그러한 교회를 철장으로 질그릇 깨뜨리듯 부숴 버리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주께서 두아디라 교회의 사자들에게 이와 같이 경고하셨습니다.

두아디라 교회는 바울 사도가 에베소에서 3년을 유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전할 때에 복음을 받아 세워진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그로부터 40여 년 후에 주께서 이 교회에 하시는 말씀을 들으면 그 교회가 참으로 아름답게 서 가고 있음을 알게 됩니다. “내가 네 사업과 사랑과 믿음과 섬김과 인내를 아노니 네 행위가 처음 것보다 많도다”(계 2:19). 여기에서 "사업"이란 무슨 구제나 전도나 교회 정치 제도 같은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바로 뒤에 나오는 ‘행위’라는 말과 같은 뜻으로서 "사랑과 믿음과 섬김과 인내"라는 말로 수식 받고 있습니다. 이 교회가 그동안 모든 일에서 사랑과 믿음과 섬김과 인내를 나타내 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일이나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일에서 이러한 사업, 곧 이러한 행위를 나타내 왔고, 그것도 처음 행위보다 나중 행위가 더 풍성하다고 칭찬하십니다.

그러므로 이 교회는 복음을 받은 이후 장성하지 못하여 난쟁이로 머문 것이 아니라 그 행위에 장성이 있었습니다. 따라서 어떤 면에서는 에베소 교회보다 더 나았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에베소 교회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하여 분별력이 있어서 자칭 사도라 하되 아닌 자들을 시험하여 그 거짓된 것을 드러냈습니다. 그러나 처음 사랑, 곧 처음 행위를 버렸다는 책망을 받았고, 만일 회개치 않으면 주께서 친히 임하셔서 교회됨의 본질을 앗아가 버리시겠다는 무서운 경고의 말씀을 들었습니다(계 2:1-5). 여기에 비하면 두아디라 교회에는 행위가 있었고, 더구나 그 행위가 점점 더 많아지는 장성도 있었습니다. 참으로 귀감이 되는 교회입니다.   

그러나 어느 교회든지 모든 면에서 온전하게 서서 나아가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듯이, 이 두아디라 교회에도 아주 치명적인 약점이 있어서 주께 엄중한 책망을 받았습니다. “자칭 선지자라 하는 여자 이세벨을 네가 용납함이니 그가 내 종들을 가르쳐 꾀어 행음하게 하고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하는도다”(계 2:20). 이 교회가 과거 아합 시대에 이세벨이 이스라엘에 행했던 것과 같은 성격으로 교회를 작해(作害)하는 거짓 선지자를 그 안에 받아들였다는 것입니다. 이 거짓 선지자는 두아디라 교회에 들어와서 사단의 깊은 것을 가르쳤고, 그 결과 교회에 배도하는 무리가 생겼습니다. 그리고 그의 악한 교훈은 심지어 주께서 "내 종"이라 부르시는 자들, 곧 교회에서 지도적 위치에 있거나 신앙이 가장 우수하다는 사람들을 꾀어서 믿음을 훼절(毁節)하게 하였습니다. 모범적인 행위가 있던 교회에 이러한 일이 발생한 것입니다. 이 교회가 지금은 우수하고 뛰어나 보이지만, 조만간 전체적으로 변절하여 그리스도와는 아무 상관이 없는 한낱 사람의 종교 집단으로 전락할 위기에 처한 것입니다. 이에 주께서는 이렇게 무서운 경고의 말씀을 하셨습니다. “볼지어다. 내가 그를 침상[병상]에 던질터이요 또 그로 더불어 간음하는 자들도 만일 그의 행위를 회개치 아니하면 큰 환란 가운데 던지고 또 내가 사망으로 그의 자녀를 죽이리니……그가 철장을 가지고 저희를 다스려 질그릇 깨뜨리는 것과 같이 하리라”(계 2:22-23, 27).

두아디라 교회에는 행위가 있었는데, 그 행위는 아름다운 것입니다. 주께서 그 점을 인정하시고 그 행위를 버리지 말 것을 당부하셨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교회가 그러한 아름다운 행위를 나타내도록 가르치고 독려해 왔을 그 교회의 지도급 인사들이 거짓 선지자를 따라갔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그들의 분별력에 문제가 있었음을 보여 줍니다. 행위는 믿음과 함께 나타나야 하고, 믿음이 그 행위를 추인해야 합니다. 행위가 그리스도의 복음을, 믿음을 앞설 수 없습니다. 이것이 진리입니다. 이런 점에서 볼 때에 이 교회는 그리스도의 복음이 아닌 것으로 행위를 나타내려 한 것이 분명합니다. 교회는 도덕적으로 정결하고 그 생활이 단정해야 합니다. 그런데 이러한 행위는 때로 믿음이 아닌 것으로도 나타낼 수가 있습니다. 선한 행위를 속히 나타내려면, 어떤 때에는 차라리 복음을 따라 행하기보다는 사람의 선의지(善意志)나 열심에 호소하는 편이 더 효과적일 때가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성경이나 교회의 역사를 살펴보면, 하나님의 말씀과 성신의 인도를 받아 나아가기보다는 차라리 사람의 열심과 선의지를 의지하여 교회의 외모를 단장해 보려는 그릇된 운동들이 많이 있었음을 알게 됩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나라와는 먼 일이요 단지 겉치레일 뿐이므로 하나님의 말씀은 이를 엄히 경고합니다. 이러한 경고의 말씀이 성경 도처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가장 현저한 예가 바로 바리새인들에 대한 우리 주님의 책망의 말씀입니다. 바리새인들은 스스로 율법의 교사요 수호자임을 자임하면서 백성들에게 가르쳐 하나님의 나라를 나타내려 하였습니다. 그러나 주께서는 그들의 외식을 지적하시며,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회칠한 무덤 같으니 겉으로는 아름답게 보이나 그 안에는 죽은 사람의 뼈와 모든 더러운 것이 가득하도다. 이와 같이 너희도 겉으로는 사람에게 옳게 보이되 안으로는 외식과 불법이 가득하도다”(마 23:27-28). 바울 사도는 에베소 교회에 도덕적 문제가 나타난 틈을 이용하여 거짓 교사들이 일어나서 율법주의나 금욕주의를 가르친 사실을 지적하며 그들이 그러한 일을 하지 못하게 하라고 디모데에게 명했습니다(딤전 1-3장). 그리스도의 교회가 거룩하고 정결하게 서서 나아가는 것은 필수적인 일이지만, 그리스도의 복음과 성신의 인도를 따라 믿음으로 행하지 않으면 그리스도와 상관없는 교회가 되고 마는 것입니다. 교회를 정결하게 하는 일이란 시간이 걸리더라도, 복음으로 사람을 새롭게 하시고 거룩하게 하시는 주님의 역사를 기다림으로 되는 일입니다. 주께서 두아디라 교회에 당부하시는 바도 이것입니다. 그들이 이미 받은 것, 곧 그리스도의 복음을 주께서 다시 오실 때까지 굳게 잡으라고 하셨습니다. 이렇게 복음을 의지하여 주를 기다린다는 것은 게으름이 아니라 오히려 주님만을 의지하며 이 시대와 치열하게 싸우는 영적 전투입니다.

오늘날은 교회가 심지어 도덕적으로도 저급하여 세상 사람들에게 조롱을 받고 있습니다. 이러한 현실을 보며 슬픔을 품지 않을 신자는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이 아무리 분하고 슬픈 일이라 하더라도 교회를 거룩하게 세우는 것은 단시간에, 그것도 사람의 힘으로는 이룰 수 없는 일입니다. 마음만 급하여 복음이 아닌 다른 것을 의지하면 교회는 행동주의에 떨어지고 맙니다. 그러면 결과적으로 복음의 능력이 약화되고 분별력이 떨어집니다. 그래서 교회가 외모를 가꾸고 그 행위를 증진시키기 위해서라면 심지어 속이는 자들도 받아들이고 이 일에 교회의 지도자들이 앞장서게 됩니다. 이러한 일은 별로 의식이 없는 교회보다는 오히려 바른 교회로 서서 나아가려는 열의가 있는 교회, 즉 개혁 의지가 높은 교회에서 일어나기 쉽습니다. 특별히 지도자들이 정신을 차려야 합니다. 두아디라 교회도 그 안에 아름다운 행위가 많았으나 오히려 분별력이 부족하므로 배도의 위기에 몰려서 주께 큰 책망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네게 책망할 일이 있노라. 자칭 선지자라 하는 여자 이세벨을 네가 용납함이니 그가 내 종들을 가르쳐 꾀어 행음하게 하고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하는도다. 다만 너희에게 있는 것을 내가 올 때까지 굳게 잡으라”(계 2: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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