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락으로 인한 하나님과의 단절
아담의 후손들이 인간 사회를 형성하여 땅위에서 번성토록 하셨지만, 죄에 대한 형벌은 피할 수 없다. 죄에 대한 가장 과격한 형벌이
죽음이다.
죽음은 상실이요 단절이다. 하나님께서는 죄에 대해서 형벌을 내리신다고 정해 놓으셨다 (시 5:5, 나훔 1:2, 출
34:7, 민 14:18, 신 7:9-10, 시 7:11, 11:5-7, 사 5:16, 10:22, 59:16-18, 단 9:14, 계
16:5-7). 이 형벌은 사탄에게도 동일하게 그가 범한 일에 대해서 내려졌다.
“여호와 하나님이 뱀에게 이르시되 네가 이렇게
하였으니 네가 모든 가축과 들의 모든 짐승보다 더욱 저주를 받아 배로 다니고 살아 있는 동안 흙을 먹을지니라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창
3:14-15)
하나님이 처음 지으신 세상에는 아름답고 선한 것이었다. 이제 죄가 들어온 후에는 여인의 후손과 뱀의 후손 사이에
영원한 원수관계가 설정되었다. 이것이 바로 전쟁이요, 대립이요, 다툼이다. 그 누구도 예외없이 이 세상에 태어난 사람은 모두 다 이 전쟁에
개입하게 되어졌다.
아담과 이브가 죄를 범하기 전에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일에만 초점을 맞춰서 살았었다. 하나님은 만물을
지으신 분이기 때문이다.
이제는 두 가지 권세가 대립적으로 싸우고 있다. 하나는 전능하신 하나님의 권세와 영광이요, 다른 하나는
사탄과 그 세력들이 지배하려고 하는 힘이다. 물론, 사탄의 세력이나 권세는 하나님과 비교할 수 없다. 결코 하나님과 동등한 세력이 아니다.
그렇지만, 이 싸움은 역사가 종결될 때까지 지속되면서 심각한 댓가를 만들어나간다.
이 세상에 태어난 모든 사람은 언약의 머리와
연계되어져 있다. 이제는 오직 두가지 입장 중에 하나를 택하지 않을 수 없게 되어졌다. 사람은 이 두 가지 입장에서 어느 쪽이는 한 편에
가담하여 살아가게 되어졌다. 하나는 범죄한 아담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으로, 하나님에 대해서 저항하며 반항하며 거부하는 자들이다.
다른 하나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살아가는 자들로서, 하나님의 은혜로 인해서 자신의 죄를 사함 받고 영생을 상속받는 자가 된다.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를 설정하는 자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살아가는 자들이다. 악과 싸우며, 지속적으로 뒤꿈치를 물려고 하는 하나님의 대적들과
맞서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인간에게 주어진 언약적인 지위이다.
아담의 죄는 죄의 근원이자, 모든 인류의 죄악이며, 모든 사람이
각각 참여하는 죄악이다. 아담의 죄악에 물든 본성이 모든 인류에게 영향을 끼쳐서 태어날 때부터 죄의 상황 하에서 후손을 낳고, 살아있는 동안에
죄를 범한다.
로마서 5장 12절로부터 19절을 주목하여 보면, 아담의 행동이 모든 사람에게 죄의 실체를 뿌리고 있음이
선포되어있다. 초대교회 신학자 어거스틴의 해석을 계승한 종교개혁자 요한 칼빈은 원죄 (original sin)과 원천적 부패 (original
pollution)가 긴밀하게 연관을 맺고 있음에 주목하였다. 아담과 연계된 모든 인간은 원천적인 부패에 의해서 영향을 받아서 원천적인 죄책을
벗어날 수 없다.
원죄의 영향 하에 살아가는 인간은 이미 하나님 앞에서 저주 받은 자로 서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 앞에서 보면,
원죄나 원천적 부패함이나 하등 차이가 없다. 굳이 두 가지를 나누어서 분리시킬 필요가 없다. 부패함에서 원죄가 나온다고 말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인간의 본성은 이미 하나님의 통찰력 앞에서는 더럽고 불결하여서 심판 앞에 놓여있다.
로마서 12장 5절과 고린도전서 12장
12절을 통해서 아담과 후손들 사이에는 단순히 육체적인 후손이 될 뿐만 아니라, 피조물의 구조와 인류의 구속을 포함하는 연속되어지는 통일성의
본질이 있음을 지적한다.
고린도전서 15장 22절에, “아담 안에서” 원천적인 죄와 근본적인 부패 가운데 있는 것이고, “그리스도
안에서” 그에게 속한 자들은 다시 일으킴을 받게 될 것이다 (마 25:32, 요 5:28, 행 24:15, 고후 5:10, 계
20:12-13).
많은 기독교 신자들은 다음과 같이 질문을 한다; 왜 하나님께서는 사탄이 미혹하려는 순간에 파멸시키지 않았던가?
철저하게 박멸해 버렸더라면 이처럼 하나님과 대립하면서 싸우는 일은 없었을 것이 아닌가? 어찌하여 하나님께서는 계속해서 대립적으로 맞서서 공격하는
사탄의 세력을 함께 존재하도록 허용하셔서 이렇게 불순종하며 반항하는 세상으로 변질되도록 놓아두시는가? 언제라도 하나님께서는 모조리 다 멸망시킬
수 있지 않는가? 이런 의문에 대해서 분명하게 사람의 지식으로는 충분히 다 이해할 수 없다.
자기 모순에 빠진 인간의
사고방식으로는 해답을 얻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초월적인 하나님의 계획과 통치와 섭리가 진행되고 있음을 잘 알아야 한다. 모든 만물의 진행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도록 조치되어져있고, 합력하여 선을 이루도록 통제하고 있다 (롬 11:36).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은
하나도 예외 없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완벽하신 계획대로 진행시키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결코 그 어떤 영적인 세력과의 싸움이라도
방치하지 않고 직접 간섭하시며, 통치하고 계신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들은 선한 싸움을 싸우도록 격려와 지원을 받는다 (엡 6:10-18).
그 싸움에는 믿음의 변호와 옹호가 포함된다 (벧전 3:15, 유 3).
<계속>국제신학대학원대학교 부총장/
조직신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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