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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빈주의 성령론의 발전

성령론

by 김경호 진실 2015. 5. 12. 2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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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칼빈의 영향과 칼빈주의 성령론의 발전

 

 

 

칼빈의 신학사상이 한 사람의 독백으로 그쳤다면 오늘날 칼빈주의라는 이름으로 널리 공감대를 형성하는 거대한 신학적 유산과 교회들을 형성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가 추구했던 것들은 세계 모든 기독교 신자들이 공유할 수 있는 보편적 신앙이었기에 지역과 언어를 초월하여 널리 공감대를 얻게 되었고, 심지어 오늘날에도 생생한 교훈을 주고 있는 것이다. 칼빈에게 공감하면서도 각각 자신들의 시대가 직면한 문제를 해결하는 가운데 칼빈주의 신학은 다양하게 발전을 이룩하였다. 그 핵심에 해당하는 중요 교리가 바로 성령의 주권적 사역이라는 점을 공통분모로 삼았다. 칼빈주의자들은 구원의 적용을 전적으로 성령께 의존하는 가운데서만 신앙생활이 가능하다는 점을 강조하게 되어졌는데, 이는 칼빈 이후로 모든 칼빈주의자들의 핵심적인 신학사상이 되었다.

 

지난 2천년의 기독교 역사에서 활동한 그 어떤 신학자보다도 칼빈은 신학적인 영향력은 실로 방대하다. 이것은 조금도 과장이 아니다. 칼빈의 위대한 신학사상은 후대의 신학자들과 경건한 성도들에게 엄청난 영향을 주었다. 거의 모든 신학적 주제들은 칼빈에 의해서 체계화 되었기에 후대의 성도들은 편리하게 분별력을 갖출 수 있게 되었다.

 

예를 들면, 17세기로 내려오면서 신학이란 어떤 학문인가를 규명하는 신학서론(prolegomena)이 크게 발전하였는데 이것은 칼빈의기독교강요의 첫 장,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란 무엇인가?”에 대하여 연속적으로 발전시킨 해답들이라고 볼 수 있다. 그 밖에도 삼위일체론을 비롯한 신론, 하나님의 경륜과 언약, 성경과 계시의 이해, 예수 그리스도의 선지자 제사장 왕으로서의 사역, 사람이자 하나님이신 분이 어떻게 한 인격 안에서 가능한가에 대한 설명, 구원론의 전체 과정과 예정론의 이해, 기도의 실제와 이론, 교회의 직분과 권징, 세례와 성찬에서 그리스도의 영적 임재 등 기독교신학에서 다루는 핵심 분야 전반의 발전이 칼빈 사상과의 연속성 속에서 이루어졌다.

 

그 중에서도 우리가 범위를 좀 더 좁혀서 살펴보려는 성령에 관한 이해에 있어서도, 정통 신학을 세우려는 17세기 기독교 교리학자들과 퓨리턴들, 그리고 최근의 개혁주의 신학자들에 이르기까지 칼빈주의자들은 연속성을 갖고 발전시켰다.

 

미국에서 20세기 초엽에 시작된 오순절 운동이 여러 개의 교단을 형성하면서 마치 성령론을 부활시킨 것으로 생각한다거나, 오순절파 교회들만이 성령의 역사를 인정하고 있다는 식으로 생각하는 것은 매우 좁은 시야에서 본 것이다. 칼빈주의 장로교회와 개혁교회에서는 성령이 없었다거나 무시했다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이는 거의 완벽할 정도로 신학의 역사에 대하여 무지한 사람들의 주장에 불과하다. 1907년 미국에서 오순절파의 방언운동 이후로 성령에 대한 바른 이해가 주어졌다는 주장도 잘못된 말이다. 그들은 성령의 은사 중에 한 가지에 해당하는 방언운동을 했다고 하는 것이 정확한 표현이다. 이미 칼빈주의 신학자들과 성도들은 성령의 역사하심에 의지하여 믿음생활을 경주하여 왔고, 철저히 주님의 말씀과 기도로 거룩한 경건을 힘써왔던 것이다. 일부에서 주장하는 대로 장로교회에는 성령이 없어서 힘이 없고 나약하며 딱딱하다는 선입견을 버려야만 할 것이다.

 

칼빈 당대의 문서들과 후기 칼빈주의자들이 요약한 성령론을 들여다보면 칼빈주의자들 사이에 성령의 사역에 대한 이해와 강조에 있어서 연속성과 지속성이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 칼빈의 성령론에서 강조되어진 것들이 역시 16세기 후반과 17세기 칼빈주의자들에게서 그대로 드러난다는 점이다. 앞에서 워필드 박사가 지적한 칼빈의 성령론에 나오는 것들이 주로 칼빈주의자들의 문서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는 것이다. 결국, 성령은 모든 교리의 핵심으로서 신학의 전반에서 다루어졌으나, 오늘의 성도들과 교회 사역자들이 철저히 연구하고 조사하지 아니하여 무지하게 덮어두고 있었던 것이다. 

 

1) 하이델베르그 교리문답

 

 

 

하이델베그 교리문답서에 핵심적인 교리들은 모두 다 성령에 연계되어있다.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과 구원사역과 승천과 중보자의 사역에서 성령의 동역과 개인의 신앙 생활에서 중생, 성화, 믿음, 기도, 확신, 영적 전쟁, 종말론적 기대, 설교, 성례들에 관련되어 있는 성령의 적용적 사역을 다루고 있다. 거의 모든 구조와 문항에서 성령의 사역이 관련을 맺고 있다.

 

1563년에 독일에서 나온 하이델베르그 교리문답은 우르시누스와 올레비아누스가 작성한 간단한 신앙교본이다. 이 문답은 독일 남서부 지역의 영주 프레데릭 3세가 종교개혁의 시대에 자기의 영지 내에 살고 있던 사람들에게 통일된 신앙을 갖추어 주고자 만들게 된 문서였다. 독일에서는 영주의 신앙이 곧 그 지역의 신앙이다는 원칙을 결정하였으므로 그는 객관적인 신앙에 대한 안목을 추구한 나머지 독일 비텐베르그에서 멜랑톤에게 배운 우르시누스와 프랑스 출신의 신학자 올레비아누스까지도 초청하여 신앙고백서를 작성하게 하였다.

 

하이델베르그 교리문답은 서술형식이 아니고, 질문과 답변 형태로 되어있다. 그 이유는 당시 대부분의 무학자들과 문맹자들이 쉽게 깨닫도록 하려는 교육적 의도에서였다. 129개의 문답에 들어있는 내용들은, 성령에 관계된 내용들은 말할 필요도 없고, 거의 칼빈의 주장들과 일치하거나 유사하다.

 

첫 문답에 핵심을 담았는데, 사람에게 유일한 위로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나오며, 성부의 섭리적 보호와 우리 안에 감사하는 마음과 영생의 확신을 창조하는 성령의 사역이다. 3-11문까지 죄책과 불행을 다루면서 성령 하나님에 의해서 거듭나야함을 밝힌다. 21문에서 성령은 믿음을 창조한다고 되어있다. 우리 인간들이 죄의 비참함에서 벗어나는 길은 "성령으로 거듭나야만 한다고 강조한다 (8문답). 칼빈이 기독교강요314항에서 믿음은 성령의 기본적인 사역이다고 주장한 말과 제 327항에서 믿음에 대하여 개념을 정리한 것이 거의 그대로 하이델베르그 교리문답에도 들어있다. , 성령이야말로 믿음의 저자이라는 점이다. “오직 믿음으로만 우리가 그리스도와 그의 모든 은택들에 참여할 수 있는데, 이 믿음은 어디서 오는가? 성령에게서 온다. 그분은 거룩한 복음의 선포로 우리 마음에 믿음을 일으키시고 성례의 시행으로 믿음을 굳게 하신다” (65문답).

 

하이델베르그 요리문답에서 믿음의 정의를 내린 제 21문답은 거의 칼빈의 기독교 강요와 같다. “참된 믿음은 하나님께서 그의 말씀에서 우리에게 계시하신 모든 것이 진리라고 여기는 확실한 지식이며, 동시에 성령께서 복음으로써 내 마음 속에 일으키신 굳은 신뢰이다. 곧 순전한 은혜로 오직 그리스도의 공로 때문에 하나님께서 죄 사함과 영원한 의로움과 구원을 다른 사람뿐만 아니라, 나에게도 주심을 믿는 것이다.”

 

21문과 22문은 삼위일체 하나님을 설명하는데, 24문답에서는 성령 하나님을 설명한다. 성부는 창조주로, 성자는 구속주로, 성령은 우리의 성화를 관장하신다는 경륜적 사역의 구별, 또는 삼위일체 하나님의 외적사역에 관한 구분을 칼빈이 설명한 바와 같이 풀이하였다. 앞에서 본 것처럼 칼빈의 성령이해는 먼저 삼위일체론에서 나오고 있는데, 각 위격이 담당하는 사역을 구별하여 설명한 바 같다.

 

사도신경의 구조를 따라서, 24문에서 64문까지 삼위일체되신 하나님의 사역을 풀이한다. 53문답에서 성령은 첫째, 성부와 성자와 함께 참되고 영원한 하나님이시다. 둘째, 그분은 또한 나에게도 주어져서 나로 하여금 참된 믿음으로 그리스도와 그의 모든 은덕에 참여하게 하며 나를 위로하고 영원히 나와 함께 하신다고 고백하였다.

 

65문에서 82문까지는 은혜의 수단들을 다루는데, 하나님의 백성들 속에서 믿음을 창조하고 확증하는 성령의 사역을 다룬다. 성례를 규정한 68문답과 세례에 대한 설명 (70문답, 73문답)들도 모두 칼빈의 성령론과도 깊은 연계성이 발견되어진다. 가장 결정적인 것은 칼빈이 성령의 사역에서 손꼽는 구원의 적용사역 가운데서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이루는 성령의 역사하심인데 역시 하이델베르그 요리문답에서도 성만찬은 성령에 의해서 연합된 것을 강조하고 있다.

 

 

 

76 :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의 몸을 먹고 그의 흘리신 피를 마신다는 것 은 무슨 뜻인가?

 

: 그것은 믿는 마음으로 그리스도의 모든 고난과 죽음을 받아들이고 이로써 죄 사함과 영원한 생명을 얻는 것이며, 나아가서 그리스도 안에 또한 우리 안에 거하시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그리스도의 거룩한 몸에 더욱 더 연합됨을 의미한다. 성령에 의해서 우리는 그리스도에게 연합되었으며, 그의 참된 몸은 하늘에 있고 하나님 우편에서 우리의 경배를 받으심을 확증한다 (80문답)

 

 

 

마지막 부분, 86문에서 129문까지는 성령을 주제로 우리가 감사하는 삶 속에서 어떻게 그리스도의 형상을 회복하는가를 다룬다. 십계명을 간추린 질문들에서 성령의 역할이 기록되어 있고, 기도에 대한 부분에서도 줄곧 언급되어져있다.

 

2) 돌트 신경

 

 

 

16세기 후반에 큰 희생의 기초 위에서 개혁주의 교회를 발전시킨 네델란드에서는 1618년에 알미니우스파와의 신학논쟁을 통해서 돌트 신경을 작성하였다. 하나님의 주권적인 은총을 강조한 다섯 가지 조항을 담고 있기에 성령에 관한 내용을 그리 많지는 않지만, 칼빈의 핵심 강조점들이 여전히 살아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특히 회심에 있어서 성령의 역사하심을 강조한 칼빈의 입장을 그대로 표현하였다. 그들은 선택된 자들에게 외부적으로 복음을 선포하도록 역사하는 성령에 의하여 말씀 선포의 사역이 필수적이라고 선언하였다. 화란 개혁주의 신학자들은 성도들의 증거사명과 선교를 강조하였다 

 

3)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와 청교도의 회심

 

 

 

영국과 미국에서도 청교도들도 성령에 관한 기본적인 이해와 해석을 한 단계 높여놓았다. 성령에 대한 언급이 광범위하게 등장하는데,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에는 42, 대요리문답에서는 38, 소요리문답에서는 10회나 언급되어있다. 청교도 신학자들은 확장된 성령의 이해를 추구하면서, 성령의 신성, 삼위일체 내에서 성령의 인격, 그리스도의 인격과 사역과의 관련성, 하나님의 말씀과의 관계, 개인에게 적용사역을 하는 주관적 영역과 성도들의 삶에서 인도하심과 객관적인 사역 등이 다루어졌다.

 

회심체험이 가장 중요한 관심사항이었다. 종교개혁 이후로 세대가 점점 흘러가면서 아무런 열심도 없는 명목상의 기독교신자가 많이 양산되어갔다. 16세기 후반에서부터 18세기 초엽에 이르는 청교도들의 시대는 기독교인이라는 형식을 갖추었지만 외형적 신자로 살아가는 사람들과 위선적인 기독교인들도 많아졌다. 그래서 목회자들은 이중생활을 하는 사람들을 분별하고자 회심체험을 강조하게 되었던 것이다. 따라서 청교도들의 신앙이 달라졌다기 보다는 세대가 흘러가면서 그에 합당한 대안을 찾고자 노력한 것이라고 본다. 참다운 신앙을 점검함에 있어서 성령의 역사로 인한 회심을 강조하였는데, 죄인이 회개하였다는 경험을 목회 현장에서 구체적으로 점검하였고, 교회의 책임을 구체적으로 강조하였다.

 

그래서 워필드 박사는 퓨리턴 사상은 총체적으로 성령의 사역을 즐겁게 연구하는 정신으로 거의 가득 차 있다고 본다고 하였다. 우리는 성령의 사역을 강조한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1647)와 대, 소 요리문답서에서 확인할 수 있다. 청교도들은 성령이 사람의 심장 속에서 내적으로 적용하는 사역을 통해서 역사하되 성령의 외적인 도구를 통해서 역사한다는 점을 강조하였다. 성령은 말씀과 함께 우리의 심장 깊은 곳에 다가 새로운 생명과 권능을 심어서 효과적으로 죄를 쫒아내고, 죄인을 복음에 반응하도록 가능하게 하고 기꺼이 초청을 받아들이도록 역사한다.

 

기본적으로 청교도 신학자들은 복음전파에 있어서 목회자들의 공적인 말씀 선포사역과 개인을 변화시키는 성령의 사역을 강조하면서, 모든 그리스도인들의 생활에서 맺어야할 열매에 대해서도 깊이 인식하였다. 대표적인 청교도 신학자 토마스 굳윈은 우리의 구원을 위한 성령의 사역의 마지막 부분에서, 새로운 피조물로부터 즉각적으로 흘러나오는 뛰어난 결정체들은 회심에 대한 열망과 다른 사람들을 하나님께로 인도함이라고 썼다. 굳윈은 하나님께서 영혼을 다루시며 사람들을 가르치는 방법들은 그들을 회심시키는 것이요 또는 무너진 그들을 회복시키는 것은 하나님께서 회심을 일으켜서 거룩하게 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다고 하였다.

 

영국 청교도 최고의 신학자 존 오웬의 성령론은 성령과 삼위일체 하나님 사이의 관계성 연구에 담겨있다. 청교도 교과서를 저술한 신학자 오웬은 성령론에 주목하여 좀 더 심화된 주제들을 다루었는데, 성령의 인격과 개인 성도의 생애 속에서 역사하심에 대해서 상세한 풀이를 하였다. 오웬의 저작전집 4권에서는 성령과 성경의 권위, 조명, 기도, 영적인 위로, 은사들을 실제적으로 풀이했다. 오웬은 종교개혁자 칼빈이 남긴 유산을 연구하면서 왜 아직까지 성령에 관한 교과서가 한권도 없는가에 대해서 의문을 가졌다고 하였다. 그리고 자신이 이해한 성경에 나오는 성령의 사역을 종합적으로 묶어서 제시하였다.

 

오웬을 비롯한 위대한 퓨리턴들이 총망라되어 작성한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1647)는 무려 5년간의 산고 (1643-48) 속에서 나온 기도의 결정체였다. 이들 17세기 절정기의 영국 퓨리턴들은 성령의 역사하심에 대한 강조를 성경과 연결시켜서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에 그대로 담아 놓았다. 간단히 지적하자면 칼빈의 성경관처럼 성령의 내적 증거사역을 강조한 것부터 연속성을 입증해준다.

 

 

 

성경이 무오한 진리요, 신적인 권위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우리가 충분하게 납득하고 확신하게 되는 것은 우리의 심령 속에서 말씀에 의하여 말씀을 가지고 증거 하시는 성령의 내적 사역에 의해서이다.”

 

 

 

회심은 성령에 의하여 발생한다는 것에 대하여는 의문의 여지가 없었다. 그래서 성령은 두 가지로 동시에 일하시는 것으로 이해하였다. 첫째는 말씀이라는 도구에 의해서 우리의 마음속에 이해와 확신을 불어넣으시고, 이와 동시에 즉각적으로 반응을 만들어 낸다고 생각하였다. 그래서 성령이 역사하여 일어나게 되는 특수한 것, 매우 예외적인 사건들에 대해서 기대하였다. 따라서 회심을 기대하던 퓨리턴들은 점차 성령의 축복을 어떤 예외적인 사건에서 구체적으로 찾으려 하였던 것이다.

 

믿음이 약한 자들을 격려하여서 구원의 확신을 갖도록 돌보아 주고 성장시켜 주는 것이라야 하는데 다소 지나치게 이것만을 강조하는 경우도 있었다. 청교도 신학자 토마스 쉐퍼드의 책, 진정한 회심(The Sincere Convert, 1643)이란 책에는 참된 신자의 소수를 분별하기; 그리고 구원받는 회심의 엄청난 어려움이라는 부제가 달려있다.

 

칼 바르트에 의해서 확산된 신정통주의는 청교도 신학자들이 칼빈의 전통에서 벗어났다고 비판한다. 바르트는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의 언약사상을 비난했다. 칼빈을 비롯한 16세기의 기본적인 개혁주의 입장과 17세기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를 작성한 청교도 신학자들은 서로 다르다고 주장하면서, 후대에 조금씩 다른 독특성을 추가하기도 했다고 비판한다. 청교도들이 너무나 완고하게 구원을 얻기 위한 회심체험을 매우 강조하는 바람에, 구원에 이르는 길을 미리 준비를 하게 한 점이 발견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과연 20세기 중엽의 신정통주의자들이 17세기 청교도들의 시대적 과제를 온전히 이해한 것일까? 21세기를 살고 있는 성도들이라도 앞선 세대를 이해하기가 쉽지 않은데 과연 신정통주의자들은 정확하게 잘 파악하였을까? 시대마다 장소마다 신학적인 강조점과 방법론이 약간씩 차이가 날 수 밖에 없다. 17세기라는 시대적 환경은 전혀 그 이전 세대와는 달라졌다. 영국과 미국 신대륙에서 새롭게 대응해야할 심각한 문제점들이 대두되었기 때문이었다.

 

 

 

퓨리턴들은 하나의 규칙을 생각하고 있었던 바, 죄의 확신은 율법을 선포함으로 촉발된다는 것이고, 그것은 믿음을 갖기 전에 일어나야만 한다는 것이었다. 왜냐하 면 그 누구도 자신의 죄로부터 구원을 받아야 한다는 필요성을 알기 전까지는 구원 을 받고자 그리스도에게 나아오려는 의지를 가질 수 없다고 생각하였다. 이것이 매우 강조되었던 믿음을 위한 준비의 필요성을 강조한 요점으로서 퓨리턴의 회심 교리에서 강조된 매우 독특한 것이다.”

 

 

 

하지만, 준비 단계의 지식이나 확신만을 가지고는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 얻는 믿음을 가지고 있다고 확언할 수 없다. “준비단계의 역사하심에 의하여 우리는 확고한 내적인 자격들을 이해하게 되어지고, 죄의 상태에 있는 영혼의 육적인 요소와 율법과 복음의 동시적인 사역 가운데 새겨진 회심과의 사이에 도달한다. 성령의 동시적인 사역으로 인하여 영혼은 즉각적으로 믿음의 사역에 들어가게 되는데, 예를 들면 주 예수 그리스도를 즉각적으로 받아들이는 일이 발생하는 것이다.”

 

성령의 사역을 강조하되 후기 퓨리턴의 거장 리챠드 백스터의 경우, 복음의 선포와 요리문답 교육을 지속하므로 키더민스터에서 행한 그의 목회사역은 많은 열매를 맺었는데, 17년 동안에 무려 육백 명을 회심시켰다. 18세기 마지막 퓨리턴에 해당하는 토마스 보스톤의 경우에도 들과 산으로 다니면서 복음을 전하여 처음 그가 성찬을 베푼 사람들은 60여 명이었지만, 20여년이 지난 후인 1731년에 시행한 마지막 성찬에는 777명이나 참가하는 놀라운 전도의 결실을 맺었다. 그러나, 이런 행동들은 모두 다 정통 칼빈주의자들의 비판에 직면했었다.

 

스코틀랜드 칼빈주의 신학자 제임스 뷰캐넌의 성령론 교과서에서도 역시 퓨리턴 전통에서 중요시되어온 회심 사역이 핵심적으로 다루어졌다. 죄인을 회개케 하시는 일으키시는 성령의 사역을 구체적으로 소개하는데 집중하였다. 

 

4) 부흥운동과 특별한 체험

 

 

 

칼빈의 성령론이 영향을 끼친 개혁주의 부흥 운동의 흐름을 살펴보면, 미국 역사의 획기적인 전환점과 맞닿아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죠나단 에드워드 (1703-1758)와 죠지 휫필드 (1714-1770)가 이끌던 개혁주의 부흥운동에서 가장 강조된 것은 독특한 회심체험이었다. 일상생활에서 느낄 수 없는 자극을 받아서 극적인 반전을 일으키는 것이다. 설교를 통해서 역사하는 성령의 주권적인 사역을 강조한다는 점에서는 칼빈의 입장과 전혀 다를 바가 없었지만, 이들은 교회사에 나타나는 성령의 사역 가운데서 부흥의 중요성에 무게중심을 두었다. 이들 미국의 부흥운동가들은 칼빈과는 전혀 다른 시대를 살았었고, 직면했던 신앙인들의 문제점들도 전혀 달랐다. 지금도 부흥운동은 성령의 특수한 활동으로 생각하고 있으며, 주권적인 개념에서 볼 때에도 일상을 넘어서는 특별한 것을 기대하고 강조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부흥운동은 교회 안에서 다시 체험을 유발하고 있고, 필수적인 것으로 간주되어지고 있다.

 

에드워드는 부흥운동을 다음과 같이 강조하였다: “인류의 타락 이후로 오늘 우리들의 시대에 이르기까지 그 효과 면에서 볼 때에는 구원의 사역이란 하나님의 영의 놀라운 전달수단에 의해서 주로 수행되어졌다고 관측되어진다. 비록 하나님의 영의 지속적인 영향이 평상적으로 일반적인 범위에서는 항상 있어왔다고 말할 수 있지만, 위대한 일을 수행하도록 함에 있어서 취해진 방법은 항상 놀라운 표출이 일어남으로 시행되었는데, 특별한 긍휼의 열매들이 맺히는바 우리의 임무를 지금부터 더 앞으로 수행함으로써 충분히 나타나게 될 것이다.”

 

성령에 의해서 쓰임을 받은 설교자들을 통해서 일어난 것이 부흥운동이다. 그러므로 전문적인 부흥사가 부흥의 방법론을 확산시켜서 일으키는 것이 아니다. 성령의 주권적인 역사로 인하여 주어지는 것일 뿐이다. 부흥사들이 영광을 받거나, 부흥을 일으킨 현장 즉 어떤 특정한 교회가 영광을 가로채서는 안 된다. 휫필드는 자신들의 사역이 놀라운 성령의 역사임을 인정하였다. 휫필드는 교단을 초월하여 부흥운동의 도구로 자신의 모든 역량을 발휘하였다. 마이크가 없던 시대에 수만 명의 사람들에게 선포한 복음이 바람결을 타고 널리 퍼지는 특수한 현상들을 체험하였다. “회심하지 않은 목회사역의 위험성이라는 설교에 담긴 내용들을 당시 미국 장로교회 부흥운동가 길버트 테네츠와 공감대를 형성하였다. 휫필드에 이르러서 뉴잉글랜드와 영국 장로교회는 설교의 강조점이 달라졌는데, 준비단계를 강조하기 보다는 즉각적인 회심을 호소하게 되었다. 이것은 요한 웨슬레의 설교에서 나온 영향이기도 하다. 

 

5) 인간중심적 부흥주의와의 충돌 

 

개혁주의 신학에서 성령론이 점차 소원하게 다루어지게 된 것은 19세기 말에 일어난 잘못된 부흥운동의 영향이 크다고 볼 수 있다. 부흥운동은 개혁주이 신학이 강조하여 온 기본적인 주제들 보다는 사람들의 현장체험으로 치우게 되어졌다. 따라서 개혁주의 진영은 전혀 부흥운동에 참여하지 않게 되면서 성령의 일상적 사역에 대해서만 설교함으로써 사람들의 관심을 끌지 못하는 현상이 발생하였다. 이것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계속되고 있는 흐름이다.

 

하나님의 주권적 사역을 거부하고 인위적인 부흥운동이 일어난 것은 챨스 피니 (Charles G. Finney)가 주도한 19세기 초기 부흥운동은 1837년 구학파(Old School)와 신학파 (New School)로 나뉘어졌다. 에서 나타났다. 피니는 부흥설교에서 먼저 인간의 자연적인 능력을 사용하도록 자극했다. 성령이 설득하는데 도움을 주고 영향을 미치지만, 그러나 하나님의 영이 주도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보고 깨닫고 듣는데 심리학적인 자유의지를 발동하여 회심하도록 유도하였다. 피니의 인본주의적인 부흥설교는 성령에 대한 신학적 곡해이자 나쁜 방법론을 만들어내고 말았다. 죤 네빈은 부흥운동 자체에 대한 거부가 아니라, 피니의 방법이 지닌 모순점에 대해서 강하게 비판하였다. “미국적 낙관론과 복음적인 알미니안주의와의 혼합으로 전개되자 개혁주의는 거의 동참하지 않았다. 다만 무디 (Dwight L. Moody, 1837-1899)의 부흥운동은 피니와 다르다고 확신하였던 챨스 핫지 박사가 적극 후원하였고 신학적으로 부족한 부분들을 지도해 주었다.

 

개혁주의 신학자들이 성령의 사역을 지속적으로 이해하고자 노력하면서 당대의 잘못된 성령운동의 문제점을 적절하게 지적하였다. 워필드 박사는 로마 가톨릭, 알미니안주의자들, 웨슬레안들, 퀘이커주의자들, 정숙주의자들, 케직사경회 운동 등에서 완전주의라는 공통분모가 발견하였다. 이들의 결정적인 문제는 죄에 대한 기본인식이 잘못되어 있다고 설파하였다. 죄가 현존하는 한, 인간이 율법의 조항을 완전히 지키기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이들이 너무 가볍게 간과하고 있다고 비판하였다. 워필드는 특히 챨스 피니의 부흥운동의 문제점을 지적하였다.

 

아브라함 카이퍼는 성령의 주권적 역사하심에 대하여 방대한 저술로 복원시켰다. 성령의 중생 사역을 강조하면서, 유아세례의 이미를 크게 부각시켰다. 점차 감리교회와 부흥운동이 인간적인 방법론 (Methodism)에만 치우게 되면서, 기본적인 교리와 신학을 무시하고 신앙고백의 중요성은 거의 사라지고 말았다. 따라서 이를 간파한 아브라함 카이퍼는 일찍이 감리교회에서 강조하는 회심체험을 위한 부흥회는 축소주의적이요, 펠라기우스적인 부흥회라고 공격하였다: “감리교회는 성례의 예민한 감각을 죽여 버린다; 그것은 매우 차가운 것일 뿐만 아니라, 교회의 교제를 무시해버린다. 신앙고백에서 제시한 진리를 무제한적으로 무시하도록 만든다. 우리 주 하나님이 육십 육권으로 된 아주 두꺼운 책을 우리에게 필수적으로 생각하라고 주셨는데, 감리교는 그 복음을 싸구려처럼 쓸 수 있다고 자랑하는 것이다.” 성령은 자발적인 조직에서 역사하는 것이 아니라, 교회 공동체를 통해서 은혜롭게 주어지며 경험된다고 주장했다.

 

19세기와 20세 초엽, 프린스턴 신학자들은 워필드의 영향으로 인하여서, 미국 개신교회에서는 구원의 집행자로 역사하는 성령의 모든 사역들을 다시금 새롭게 인식할 수 있었다. “프린스턴 신학자들은 지속적으로 성령의 역사하심과 그 체험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다." 알렉산더 핫지도 역시 성도의 믿음생활에 절대적으로 간여하는 성령의 결정적인 역사를 강조하였다. 프린스턴 신학자들을 집중적으로 연구한 마크 놀 교수에 의하면, 프린스턴 신학의 유산과 전통 속에는 균형 잡힌 성령론이 들어있음을 알 수 있다.

 

미국 웨스트민스터 신학대학원에서 칼빈의 성령론은 견고하게 지켜져 내려오고 있다. 리챠드 개핀 교수는 사도행전 2장에 나오는 오순절 날의 성령 역사는 요엘서 28절의 성취로서 이해하되 예수 그리스도의 왕권이 행사되는 날로 보아야 하며, 그러므로 이 세상에서 단 한번 일어났지만 영원토록 그 효력이 유효하다는 입장을 정리하였다. 그리고 성경이 종결된 이후로 예언적 성격의 방언은 완전히 종결되었다는 입장을 전개했다. 퍼거슨 교수는 1995년 자신의 구원론강의 노트를 발전시켜서 성령에 관한 종합적인 교리를 체계화 하면서 많은 현대 오순절 운동의 주장들이 지닌 모순점들에 대하여서 개혁주의 입장에서 다시 해답을 제시하는 획기적인 대안을 제시한 것이다.

 

칼빈에서 퍼거슨에 이르기까지 개혁주의자들이 내놓은 일련의 성령에 관한 연구들은 개혁주의 교회와 장로교회가 결코 성령에 관하여 소홀히 하지 않았음을 충분히 입증하는 신학적인 증거들이다. 성령에 관하여 가장 정확하게 성경적으로 이해하는 보편적 진리들을 추구하였고, 놀랍도록 풍성한 답변들을 찾아 놓았던 것이다. 이제 더 이상 개혁주의 신학에 성령이 빠져버렸다는 잘못된 편견은 버려야 한다. 세계적인 신학자들의 연구 업적들을 자신만 모르면서 마냥 남들이 하는 험담만을 앵무새처럼 반복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물론 이들의 연구가 우리가 지금 궁금하게 생각하는 모든 문제점들을 다 해결해 주었다고 볼 수 없다. 아직도 우리가 해결해야할 문제가 많고, 한국교회 성도들이 더욱 궁금해 하고 있는 문제들에 대한 해결책도 있어야 한다. 하지만, 가장 기본적인 성령의 존재와 사역을 놓쳐 버리고, 좀 더 특수한 것, 좀 더 새로운 것, 좀 더 강력한 것을 직접 체험하려 하면서 성경 말씀을 저버리는 성령운동은 혼돈에 빠지고 만다. 이것이 칼빈으로부터 그리고 그 후 개혁주의 신학자들이 남긴 성령에 대한 강조들 가운데서 우리가 얻어야할 지혜인 것이다. 우리는 지금 지혜도 필요하고, 성령의 권능과 능력에 사로잡혀서 다시금 소망을 새롭게 하는 시기에 처해 있으므로 더욱 더 주의가 필요하다.

 

바울 사도를 통해서 우리는 분명한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으므로 사람의 지혜에 의지하여 살아가지 말고, 하나님이 주시는 성령의 능력으로 살아가고 있을 뿐이다 (16:13-17).

 

우리는 지금 성령 안에서 거룩하게 되어가고 있는 현재 진행형의 기독교인이다. 우리는 하나님이 받으시기에 기뻐하시도록 자신의 욕망을 내어 버리고 제물로 드려지는 삶이라야 한다. 성령의 능력으로 날마다 믿음 안에서 성화의 삶을 매일 살아가는 것은 평범한 생존이 아니라, 종말론적 기대 속에서 소망에 넘치는 성령 충만한 자의 자화상이다 

 

결론

 

 

 

16세기 유럽에서 일어난 개신교들의 운동은 엄청난 변화를 가져왔다. 수직적인 성직주의를 깨트리고 성경적 종교개혁의 종합적인 완성자로서 칼빈의 공헌을 생각할 때에,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신학자라는 찬사가 결코 허황되지 않을 것이다. 더욱이 그가 성경에서 터득하여 제시한 지침들로 인하여서 개신교 전체가 도움을 얻을 것을 생각하면 당연한 평가일 것이다.

 

사실 칼빈은 성령의 신학자라는 명예만이 아니라, 가장 위대한 신학자라는 칭호를 얻기에 부족함이 없는 업적을 남겼다. 적어도 칼빈이 가졌던 다음과 같은 신앙인의 태도는 성령의 신학자라는 찬사가 아깝지 않다. 모든 그리스도인이라면 이와 같아야만 하지 않는가? 칼빈이 자신을 쫒아냈다가 다시 부른 제네바 교회로 돌아가면서, 주변에서 강권하는 분들에게 보낸 심경의 한 부분은 다음과 같이 비장했었다.

 

 

 

나는 나 자신만의 것이 아니라는 것을 기억할 때,

 

하나님에게 바쳐진 희생 제물처럼,

 

나는 나의 심장을 하나님께 드리나이다.

 

......

 

하나님의 영광과 교회의 유익을 위해서 가장 좋은 것이 무엇인지를

 

바라는 것 외에는 전혀 다른 욕심이 없습니다.

 

......

 

나는 하나님께 순종하기 위해서 나의 뜻과 나의 애틋한 감정들을 바치오며,

 

복종시킬 것이며, 흔들리지 않으렵니다.

 

그리고 나 자신의 뜻을 버려야만 할 때에는 언제든지,

 

주님께서 친히 나에게 말씀하실 것을 소망하면서,

 

나 자신을 복종시키고자 합니다.”

 

 

 

칼빈과 개혁주의는 성령의 인도하심과 내주하심에 철저히 의존하는 교회를 중심으로 세워졌다. 칼빈은 혼돈에 빠져있던 제네바 교회를 철저한 신앙공동체로 바꿔놓았다. 그야말로 일생에 걸친 그의 헌신적인 희생과 투쟁의 산물이었다. 칼빈은 분명하고도 확고한 신념을 갖고 말씀을 선포하였다. 성경에 대한 믿음과 확신은 성령의 역사로 갖게 되었다. 무모한 자기 과시나 소영웅주의에 빠진 자만심의 선포가 아니라, 자신의 인격에서 체험하는 자비로우신 하나님의 주권을 신뢰하던 것이다. 칼빈은 자신의 신학을 비판하고 거스리는 수많은 대적자들과 맞서서 목회사역을 감당해야만 했었다. 그는 어떻게 흔들리지 않고 확신을 가지고 나갈 수 있었을까? 종교개혁의 소용돌이 속에서 때로는 약해질 수 있고, 조롱과 비난에 부딪혀서 인간적으로는 비참할 수 밖에 없었는데도, 그가 흔들리지 않는 견고한 믿음과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신뢰를 지속할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이었을까? 깊은 연구와 경건한 생활의 근거는 바로 성령께서 주시는 마음과 위로였다.

 

우리는 하나님을 볼 수 없지만, 성령의 능력으로 마음에 확신한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과 희생을 감사하도록 성령께서는 우리의 연약함을 채워주시고, 위로해 주신다. 한국교회도 다시 한번 신뢰를 받고 활발하게 살아나려면, 칼빈에게 주어졌던 성령의 감화와 감동을 모두가 체험하여서 성령의 사람으로 확고하게 일어나야 한다. 모두 성도들이 확실한 은혜를 받아서 성령의 열매를 맺어야만 한다. 아름다운 열매들은 성령으로 살아가는 사람이 영생의 맛을 보는 내용이다. 살아있는 역동성을 유지하면서, 창조적인 비전을 안고 나아가려면, 오직 성령의 인도하심에 의존하여야 한다. 사람의 감정이나 흥분이나 종교적 체험은 일시적이다. 사람이 만들어낸 프로그램이나 목표들도 시간이 지나면 낡아지고 만다. 오직 심령을 새롭게 하시는 성령의 부어지심이 있어야만 거룩한 사랑이 역사하게 된다.

 

 

김재성 박사

국제신학대학원대학교 부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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