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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트만(Rudolf Bultmann)

불트만

by 김경호 진실 2015. 5. 17. 2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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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트만(Rudolf Bultmann)

1. 성경은 전설과 신화로 가득한 책이다.

비록 그것이 요한의 예수님 세례라는 역사적 사실로부터 출발되었다는 것은 확실하지만, 예수님의 세례 이야기(막 1:9-11)는 하나의 전설이다(Theology of the New Testament, I, p. 26).

예수께서 어떤 종류의 메시아인지 혹은 그리스도인들이 어떤 종류의 메시아를 믿는지에 대한 생각을 나타내는 시험받으신 이야기(막 1:12 이하, 혹은 마 4:1-11)는 전설이다. 예수의 예루살렘 입성 이야기는 전설로 채색되었고, 수난 이야기도 상당히 전설로 덮여 있다(Ibid., I, p. 27).

첫눈에 우리는 [요한복음의] 서두를, 그 주제로 판단하여, 신화라고 부를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한 신적 존재, 그의 생애, 그리고 그의 운명에 대해 말하기 때문이다(The Gospel of John, p. 14).

요한복음 서두는, 혹은 그것의 자료는, 그노시스 신화의 언어로 말한다. . . . 그 복음서 저자는 기독교 전파와 신학을 위하여 이 신화를 사용한 첫번째 사람이 아니었다. 바울은, 비록 그 자신이 로고스라는 명칭을 사용하지는 않을지라도 안트로포스(사람) 신화의 용어로 그리스도의 종말론적이고 구원론적인 의미를 빈번히 해석함으로써, 요한보다 앞섰었다(Ibid., p. 28).

2. 그리스도의 선재(先在)하심은 그노시스 신화이다.

[요한복음 17:1-5의] 언어는 신화적이다. 아들의 소원은, 그의 지상의 존재로부터 한때 그의 선재 상태에서 가졌던 하늘의 영광 안으로 다시 올리움을 받는 것이다. 그것은 그노시스 신화의 사상 형식과 완전히 일치한다(Ibid., p. 496).

3. 예수 그리스도의 처녀 탄생은 전설이다.

그러나, 후대의 헬라주의적 교회와는 달리 그들은[아주 초기 교회는] 지상의 예수를 (신화적) 하나님의 아들로 간주하지 않았고, 예수의 처녀탄생의 전설은, 바울에게 그러했듯이, 그들에게도 알려져 있지 않았다(Theology of the New Testa- ment, I, p. 50).

4.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成肉身)은 신화이다.

그가 성령으로 잉태하여 처녀에게서 탄생하셨다고 말할 때 그의 인격은 신화의 빛으로 관찰되며, 이것은 그가 형이상학적 의미에서 하나님의 아들, 즉 우리의 구속을 위해 사람이 되셨고 스스로 고난을, 그것도 십자가의 고난을 당하신 한 위대한, 선재(先在)하신 천적(天的) 존재로 이해되는 헬라주의 기독교 공동체들에서는 한층 더 분명하게 된다. 그러한 개념들은 유대인들과 이방인들의 신화들에서 널리 퍼져 있었고, 그 후 역사적 인물 예수에게 이전되었기 때문에, 그것들이 신화적이라는 것은 명백하다. 특히 인류를 구속하기 위해 인간의 모습으로 세상에 내려오신 선재하신 하나님의 아들의 개념은 그노시스적 구속 교리의 일부분이며, 아무도 이 교리를 신화적이라고 부르기를 주저하지 않는다(Jesus Christ and Mythology, pp. 16, 17).

5. 예수 그리스도의 기적들은 전설이다.

[예수께서 물로 포도주를 만드셨다는] 그 이야기가 이방의 전설에서 취해져 예수께 돌려졌다는 것은 의심할 수 없다. 사실, 그 이야기의 주제, 즉 물을 포도주로 변화시키는 것은 디오니서스 전설의 전형적 주제이다(The Gospel of John, pp. 118, 119).

6.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신적 증거들을 부정한다.

그러나, 후대의 헬라주의적 교회와는 달리, [아주 초대교회는] 지상의 예수를 (신화적) 하나님의 아들로 간주하지 않았다(Theology of the New Testament, I, p. 50).

여하튼, 아주 초대교회는, 비록 예수를 주라고 불렀다 하더라도, 그를 예배하지는 않았다(Ibid., I, p. 51).

7.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죽음은 신화적이다.

그가 성령으로 잉태하여 처녀에게서 탄생하셨다고 말할 때 그의 인격은 신화의 빛으로 관찰되며, 이것은 그가 형이상학적 의미에서 하나님의 아들, 즉 우리의 구속을 위해 사람이 되셨고 스스로 고난을, 그것도 십자가의 고난을 당하신 한 위대한, 선재(先在)하신 천적(天的) 존재로 이해되는 헬라주의 기독교 공동체들에서는 한층 더 분명하게 된다. . . . 특히 인류를 구속하기 위해 인간의 모습으로 세상에 내려오신 선재하신 하나님의 아들의 개념은 그노시스적(Gnostic) 구속 교리의 일부분이며, 아무도 이 교리를 신화적이라고 부르기를 주저하지 않는다(Jesus Christ and Mythology, pp. 16, 17).

8. 예수 그리스도의 육체적 부활은 전설이다.

바울이 여전히 그것에 관하여 아무 것도 알고 있지 못한 바 그 빈 무덤의 이야기들은 전설들이다(Theology of the New Testament, I, p. 45).

만일 부활절 사건이 어떤 의미로든지 십자가 사건에 첨가된 역사적 사건이라면, 그것은 부활하신 주님에 대한 믿음의 발생 이외의 다른 아무 것도 아닐 것이다. 왜냐하면 사도들의 설교를 이끌어낸 것이 바로 이 믿음이었기 때문이다. 부활 자체는 지나간 역사의 사건이 아니다(Hans Werner Bartsch, ed., Kerygma and Myth: A Theological Debate by Rudolf Bultmann and Ernst Lohmeyer, Julius Schnie- wind, Helmut Thielicke, and Austin Farrer, p. 42).

9.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부정한다.

여하튼, 초기 기독교 공동체는 이와 같이 그를[예수를] 신화적 인물로 간주했다. 그들은 그가 세상의 심판자로서 구원과 저주를 내리시려고 하늘 구름을 타고 오실 인자(人子)로서 다시 오실 것을 기대했다. . . . 요한에게는 예수의 부활, 오순절, 그리고 예수의 재림(파루시아)은 한 동일한 사건이며, 믿는 자들은 이미 영생을 얻었다(Jesus Christ and Mythology, pp. 16, 33).

10. 하나님의 나라 개념은 신화적이다.

종말론적 드라마의 개념이 그렇듯이, ‘하나님의 나라’ 개념은 신화적이다(Ibid., p. 14).

 

http://www.oldfaith.net/03modern-data.htm#칼 바르트(Karl Bar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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