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단 제명 후 새벽에 교회 설립
새벽기도 명목 하에 처녀와 ‘천국결혼’ 예습 논란 빚기도
원산 백남주의 예수교회
▲ 임웅기 소장 |
백남주는 26세에 장로교 평양신학교에 입학하여, 3년 뒤인 1930년 3월 12일에 동기 22명과 함께 제25회 졸업생이 된다. 신학교를 졸업한 백남주는 함경남도 원산으로 가서 ‘루씨여학교’에서 교편생활을 한다. 루씨여학교는 중등교육을 담당한 개신교 미션학교로 의료시설 등도 갖추고 있었다. 백남주와 한준명은 처남매부지간으로 한준명의 누이 한인자가 백남주의 부인이었다.
원산 예수교회의 탄생
원산에서 백남주와 한준명이 스베덴보리(Swedenberg)의 저서를 읽고 여러 해를 기도하던 중 신(神)이 유명화에게 친히 임(臨)하여 대언하기를 “백남주와 한준명 그리고 박승걸이 1933년에 새 교회를 세울 것을 명(命)하셨다”고 한다. 유명화의 예언에 따라 백남주와 한준명이 먼저 나서서 기성교회와는 구별되는 새 교회를 창립하자는 움직임을 일으켰다. 그 뒤를 이어 이호빈 이용도 이종현이 합류했다. 1932년에는 한준명이 이용도의 소개장을 받아 평양을 방문하였고, 동행했던 여인 이유신을 집회에 세워 강신행사를 하였다. 평양교계에서는 이 행사를 부정적으로 봤고, 1932년 11월 28일 임시회의를 열어 한준명 백남주 황국주를 소속 노회에서 조사하기로 했다. 한준명을 소개시켜 준 이용도 목사도 감리회 경성지방회에서 조사하기로 결의를 하게 된다. 결국 이들은 기성교단에서 이단으로 결의되어 제명됐다.
그러나 이들은 유명화를 필두로 기도모임을 계속했고, 모든 신도들에게 1933년 1월 3일 새벽 흰옷을 입고 백남주 자택으로 모이라는 전갈을 내렸다. 그 날 새벽 3시쯤에 50~60명의 신도가 모인 가운데 예배가 시작됐다. 백남주는 설교가 끝날 즈음에 유명화를 통해 영계(靈界)의 심판을 눈에 볼 수 있도록 연출했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예수교회’의 설립을 공표했다.
또한 백남주 한준명 박승걸의 이름으로 <새 생명의 길>이란 제목의 선언문도 발표했다. <새 생명의 길>의 핵심 내용은 구원의 과정을 ‘삼시대’로 구분하는 것이다. 제1시대는 구약시대, 제2시대는 신약시대, 제3시대는 새 생명의 길이라는 시대로 구분하고 있다. 이어 1933년 6월 3일 이용도 백남주 이종현의 이름으로 <새 교회 창립 선언서>가 발표된다. 6월 6~8일까지 평양교회에서 ‘예수교회의 창립공의회’로 모였다. 이 자리에는 116명이 참석했는데 여기서 총회장격인 선도감(宣道監)에 이용도를 선출하고, 예수교회 헌장 및 그 세칙의 기초위원으로 이용도 이호빈 백남주를 선출했다.
원산(元山) 신학산(神學山) 설립과 백남주의 천국 결혼잔치
예수교회가 설립 된 후 1933년 9월 9일 전후로 백남주를 책임자로 부설 수도원인 ‘원산(元山) 신학산(神學山)’이 세워졌다. 그리고 1933년 11월 1일 중앙선도원(中央宣道院)을 평양에 세우고, ‘예수교회 설립 선포식’을 거행한다. 백남주는 1934년 1월에 창간되는 기관지 <예수>의 편집책임을 맡게 된다.
1934년 백남주는 매일 새벽 2~3시가 되면 새벽기도를 한다는 명목 하에 여(女)신학생 방에 들어가서 날이 밝도록 나오지 않았다. 그리고 1934년 겨울에 백남주는 처녀와 새벽 3시에 눈길을 걸으며 천국결혼을 미리 연습했다. 이런 일이 일어난 지 3~4개월 후 처녀는 임신을 했다. 이 사건을 지켜본 예수교회 교직자들은 천국결혼잔치 사건의 장본인인 백남주와 처녀 조필을 치리하기로 결정했고, 백남주는 원산을 떠나게 된다. 이 때 따라나선 이가 초원 김백문이다.
김성도 ‘새주파’와 백남주
원산(元山) 신학산(神學山)을 떠난 백남주와 처녀 조필, 김백문은 1935년 봄 김성도의 ‘새주파’가 있는 평안북도 철산으로 갔다. 백남주는 김백문과 함께 새주파의 지교회를 다니면서 부흥회를 인도하는 강사가 되었으며, 일제 탄압으로 곤혹을 치르던 ‘새주파’를 조선총독부 종무과에 ‘성주교’라는 이름으로 등록시키는 일에 앞장을 섰다. 하지만 성주교는 1944년 4월경 김성도의 사망으로 흩어지게 됐다. 백남주는 원산의 루씨 여학교에서 교사로 재직하던 시절에 만난 유증소(柳曾韶)의 도움으로 충남 공주의 공주사범학교에서 백상조(白祥朝)로 이름을 바꾸고 교편을 잡게 된다. 백남주는 1949년이 끝나갈 무렵 어린 아들만을 남겨 둔 채 쓸쓸한 죽음을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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