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람의 실체
우리는 이미 과거 9.11사태를 비롯한 세계 곳곳에서 일고 있는 무슬람들에 의해 자행되고 있는 수많은 폭력적 현상들을 통해, 이슬람이라는 종교가 가지고 있는 폭력적 성향을 경험하고 있다. 게다가 지난 2004년 김선일씨 사건이나 2007년 여름 온 세계를 떠들썩하게 했던 아프가니스탄 피랍 사태를 통해 그 문제가 단순히 남의 나라에서나 일어나는 문제가 아님을 실감도 해 보았다.
그런데, 이같이 이슬람 사회에서 일고 있는 일들을 소개하는 매체들의 입장을 보면 한사코 “ 이슬람은 ‘본래’ 폭력적 종교가 아니다. 이슬람은 ‘평화의 종교’ 이다” 는 사실들을 부각시켜 소개하면서, 그러한 폭럭적 행동들은 ‘소수의 극렬분자’들의 소행일 뿐이라고 주장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런데 그들의 이러한 주장은 바로 ‘이슬람권에서 일상적으로 일고 있는 폭력적 현실을 애써 축소하고 자신들의 종교를 미화하여 전달하기 위해 펼치는 무슬림들의 주장’이라는 사실이다. 이같은 무글림들의 거짓 주장을 우리나라 매체들이 대변하고 있다는 사실은 우리나라 뉴스메이커들 역시 이슬람에 관해 무지하다는 현실을 반영해 주며, 또한 그 결과 대중들의 이슬람에 대한 ‘반대편에서의 편견’을 어찌할 수 없게 만들고 있다. 즉, 대부분의 한국인들은 이슬람에 관한 한 대중 매체가 들려주고 보여주는 것으로 이슬람을 이해하고 있다는데 있다.
a. 이슬람의 두 얼굴
그런데, 그들의 말처럼 정말 이슬람은 평화의 종교이며, 폭력을 일삼는 극렬 원리주의자들은 정말 ‘소수의 테러분자’ 들일 뿐인가? 그들의 주장처럼 이슬람이 정말 그 정도이기만 하다면 얼마나 다행일까? 하지만 이슬람은 ‘ 두 얼굴 ’ 을 가지고 둘 중의 어느 한 쪽을 편의에 따라 선택하여 사용하는 변신에 능한 이들임을 사람들은 잘 모르고 있다. 심지어 많은 그리스도인들조차도 ‘이슬람은 평화를 사랑하는 종교이며, 테러를 자행하는 극렬 원리주의자들은 소수일 뿐이다. 대부분의 무슬림들은 온건한 이들이며 우리와 같은 선한 이웃일 뿐이다’ 는 주장들을 당연하듯 하고 있다. 안타깝게도 바로 이 점이야 말로 이슬람 전략가들이 가장 노리는 전략이기도 하다.
사람들은 “ 이슬람은 ‘평화’를 의미하며 따러서 이슬람은 평화의 종교이다” 라고 말하길 좋아한다. 하지만 ‘이슬람'이 ‘평화’의 뜻이라 주장하는 것은 명백한 거짓이다. ‘평회’를 의미하는 아랍어 단어는 ‘쌀람’(히브리어의 샬롬)이며, ‘이슬람’은 단순히 ‘복종’(submission)을 의미할 뿐이다. 이슬람은 알라의 뜻에 절대적으로 복종하는 사람들(무슬림)로 구성된 종교요, 그 종교의 경전인 꾸란(Quran)은 최소한 다음과 같이 무슬림들에게 명령한다.
“ 박해가 없어질 때까지, 종교가 알라의 것이 될 때까지 그들과 싸워라”(꾸란 2:193)
먼저 이해해야 할 것은, 이슬람의 세계관은 기본적으로 이 세계를 ‘평화의 집(Dar Es-Esalam. 다르에 쌀람)’ 과 ‘전쟁의 집(Dar Al - Harb. 다르 알 하릅)’ 으로 이분한다는 사실이다. 간단히 말하자면 여타의 종교들을 물리치고 그들이 꿈꾸는 이상적 이슬람 공동체(움마)를 이루어 이슬람의 율법(샤리아)으로 다스림 받는 ‘ 평화’ 를 이룩하기 위해서는 ‘ 전쟁’은 불가피하다는 세계관인 것이다. 다시 말해, 이 땅에 이슬람이 아닌 다른 종교들이 공존하는 현실을 가장 견디지 못하는 종교가 바로 이슬람인 것이다.
흔히 “꾸란이냐 칼이냐?” 라는 문구로 이슬람을 이해하던 과거의 표현을 두고 무슬림들은 ‘이슬람은 그렇지 않다. 평화의 종교인 이슬람에 대한 서구 기독교인들의 극단적인 편견이 담긴 표현이다.’ 라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이 표현이야 말로 이슬람의 실체에 대해 가장 짧은 표현으로 그 이중성을 가장 잘 표현하고 있는 말이다. 이슬람의 실체는 과거나 지금이나 그 근본에 있어서 변함이 없으며, 그 전략에 있어서도 옛 방식을 그대로 고수하고 있기 때문이다. 변화가 있다면 ‘ 칼 ’ 대신 ‘총과 폭탄’ 과 같은 현대식 무기로의 무장이라 하겠다.
이슬람은 처음부터 ‘칼’로 세계를 정복해왔고 여전히 ‘칼’을 휘두르며 세계를 위협하고 있다. 이슬람에선 아무리 ‘아니라’ 하지만 이슬람의 종주국인 사우디아라비아 국가만 봐도 알 수 있다. 녹색바탕 위에 선명하게 보이는 아랍어 글씨와 그 아래에 놓인 긴 칼을 보게 될 것이다. 그것은 ‘알라외에는 다른 신이 없고, 무함마드는 알라의 사도이다!’ 하는 그들의 ‘신앙고백’이요, 그 신앙고백의 기초에는 엄연히 긴 ‘ 칼’ 이 놓여 있다. 그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왜 거기에는 그 고백과 함께 다른 상징은 아닌가?
하지만 그것이 굳이 평화를 위한 ‘칼’이라고 우긴다면, 그 ‘평화’는 ‘모든 이교도와의 전쟁을 그치고 난 후의 평화’임을 알아야 한다. 왜냐하면 이슬람은 ‘알라의 이름으로’ ( 비스밀라) 이 땅에 이교도들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을 때까지 ‘성전(聖戰. 지하드)해야 하는 종교이기 때문이다.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온 세계가 ’이슬람 율법‘이 다스리는 이슬람 세계가 오기 전까지 ’ 전쟁‘은 쉼이 없다는 의미인 것이다. 오늘날 세계 속에서 테러소식이 가장 많은 나라들을 꼽아보라. 모두 이슬람이 국교이거나 절대 다수인 국가들이다. 왜 그럴까?
b. 경전을 통한 판단과 분별
아무리 무슬림들이 이슬람을 ‘ 평화’ 로 포장하여 소개한다 하더라도 그들의 절대적이고 규범적인 권위의 원천인 꾸란)코란)의 진술을 부정할 수는 없다. 꾸란에는 수많은 구절들이 무슬림들을 독려하면서 알라를 위해 투쟁(지하드)할 것을 명령하고 있다. 여기에 몇 구절만 소개해 본다.
“ 알라를 위하여 당신을 적대시 하는 자와 싸워라”
(꾸란 2:190, 이하 김용선 번역본)
“ 박해가 없어질 때까지, 종교가 알라의 것이 될 때까지 그들과 싸워라”(2:193)
“ 알라와 그 사도에 싸움을 걸고 지상에 해악을 뿌리려 하는 자가 받는 벌은 살해되든가
십자가서 박히든가 손발을 반대쪽부터 절단하든가 그렇지 않으면 국외로 추방을 당하게
될 것이다. 이것은 현세에서 받는 그들의 굴욕이며 내세에서도 그들에게는 무서운 벌이
기다리고 있다 “ ( 5:33)
“ 그런데 신성월이 지났으면, 다신교도를 발견하는 즉시 죽여라. 잡아라 억류하라, 모든
길에 복병을 두고 기다리라. 그러나 만일 그들이 회개하여 예배를 지키고 희사를 한다
면 방면해 주라, 알라께서는 관용하시고 자비로운 분이시다“ (9:5)
어떤 이들의 반박과 같이 기독교 역시 역사 속에서 수많은 살상과 전쟁들을 일으켜 온 것을 부인하는 것이 아니다. 최소한 그것을 경전을 통해 신의 이름으로 명시적으로 명령하는 것과, 원수마저 사랑하라는 명령에도 불구하고 칼을 든 것은 현실적으로 큰 차이가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
어쨌든 이 명령들이 실제로 오늘날 무슬림들에 의해 수행된다고 가정해 보라. 세계는 어떻게 되겠는가? 이 구절들에만 의거해 보더라도 오늘날 ‘테러행위’ 를 서슴지 않는 극렬 무슬림들을 가리켜 어찌 ‘ 소수의 극렬 윈리주의자 ’ 라고 비난하겠는가? 오히려 무슬림들은 이러한 꾸란의 명령을 문자 그대로 수행하는 ‘전사’ 들에게 환호하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이 땅에 사는 모든 무슬림들이 이러한 꾸란의 명령들을 문자적으로 실행하지 않고 있다는 점은 정말 다행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는 마치 수많은 그리스도의 제자들이 ‘ 땅 끝까지 이르러 모든 족속을 제자 삼으라’는 복음서의 지상명령을 끊임없이 읽고 또 듣고 살아가고 있음에도, 그렇게 심각하게 문자적으로 그 명령 따라 살아가지 않는 것과 같은 현상이다. 그 결과 예수님께서 그 명령을 발하신지 2천년이 되도록 그 명령이 아직도 끝나지 않은 과업으로 남아 있는 것처럼, 꾸란을 읽는 수많은 무슬림들 역시 위에 명시한 구절들을 무자적으로 수행하지 않은 결과 그나마 세계는 이만큼이나 유지하고 있는 지도 모른다.
하지만, 오늘날 아무리 주위에는 ‘온건한 무슬림’ 들이 많이 있다고 하지만, 이같은 알라의 절대적 명령들이 무슬림들의 가슴에 끊임없이 각인되는 한, 어느 날 예기치 않는 때에 그들은 오늘날의 테러분자들로 돌변하여 나타날 가능성들을 안고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마치 수많은 기독청년들이 자아실현을 꿈꾸며 자기만의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면서도, 마음 한구석에는 언제나 예수님의 제자 삼으라는 지상명령에 부담을 안고 살아가는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이슬람에 있어서 심각한 문제는, 그것이 단순한 ‘도를 전하고 생명을 전하는’ 선교가 아니라, 알라의 이름을 위해서는 테러와 피흘림도 불사한다는데 있다. 기독교의 선교 명령이 준행되는 곳이면 어디든지 생명을 살리는 역사가 자연스런 열매인 반면, 이슬람의 지하드가 수행되는 곳이면 어디든지 생명을 멸하고 파괴와 죽음이 열매로 맺어 나오는 현실이라는데 있다.
c. 이슬람의 실체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인터넷에 이슬람에 관한 글이 올라오면 어떤 이들은 ‘기독교를 반대’하기 위해 ‘ 이슬람’ 을 무조건적으로 찬동하는 댓글을 다는 이들이 있다. 하지만 정말 그러할까? 그들은 자신들이 하는 말이 정작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지 못하고 있다. 우리의 기대와는 달리 이슬람은 여러 종교들 중의 하나가 아니다. 이슬람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다고 말하는 사람들 역시 이슬람이 기독교와 교리적으로 상당한 유사성을 갖고 잇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 오늘날 이슬람이 유대교나 기독교와 그토록 많은 충돌의 양상을 빚는 것만 보아도 이슬람과 기독교 사이에는 건너지 못할 커다란 강이 놓여 있다.
극단적인 예를 들어보자. 만일 아시아 최고의 축구스타 중에 그리스도교인인 한 선수가 이슬람으로 오늘 개종했다고 하자.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사실을 이슈화 하지도 않을 뿐 아니라 그를 아는 그리스도인들 역시 잠시 의아해 하고 말 것이다. 그러나 이란이나 사우디 아라비아의 한 축구선수가 오늘 기독교로 개종했다고 하자. 내일 아침이면 그의 몸이 시체로 발견될 확률이 99%에 이를 것이다. 이슬람이 꿈꾸는 알라의 법 샤리아는 그를 ‘자유롭게 개종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겨두지 않는다.
우리가 아는 바와 같이 ‘악마의 시’ 라는 소설을 썼던 인도 출신의 살만 루시디라는 작가는 그 소설에서 꾸란을 모욕했다는 이유로 이란의 호메이니로부터 살해명령(파트와)을 받고 십 수 년간을 영국 경찰의 보호를 받으며 감옥 아닌 감옥 생활을 하며 지내야 했다. 그 책을 일본어로 번엮했던 일본인은 그 일로 인해 살해당하고 말았다. 하지만 오늘날 예수님의 신성을 부정하거나 심지어 사생아 취급을 하는 이들이 한 둘이 아니며, 심지어 그 사실을 책으로 내고 영화로까지 만들어 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는 반면, 무함마드에 관한 네 컷짜리 만평 하나를 가지고도 폭력사태를 겪어야만 하는 이슬람 세계를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이슬람은 결코 다른 종교와 같지 않음을 알아야 한다. 이슬람은 한국인들이 친숙한 불교나 무교와 같지 않다. 불교는 자신의 해탈을 위해 상대와 투쟁할 이유가 없지만, 이슬람은 ‘알라을 위해’ ‘ 이교도들’에게 칼을 휘두르는 자들을 격려하는 종교이다. 그러한 사람이 ‘진정한 이슬람교도’의 전형이요, 낙원은 바로 그러한 이들을 위해 준비되어 있다고 가르치는 종교인 것이다.
그리고 우리나라 내 무슬림으로 인한 피해를 입은 한국 여성들이 지속적으로 발생하고 있습니다.
"무슬림의 한국 이슬람화 전략, '결혼'"
투아이즈 네트워크, 무슬림 남성과 결혼한 한국 여성들의 피해 사례 발표
무슬림 남성과 결혼한 한국 여성들의 피해 사례 잇따라…
지난 19일 투아이즈 네트워크는 아프간 사태 1주년 행사 준비모임에서 "무슬림 남성과 결혼한 한국 여성들의 심각한 피해 사례"를 발표했다. 이슬람 문화에 대한 지식없이 포교 활동을 하는 무슬림 남성의 감언이설에 속아 결혼한 한국 여성들의 정신적 육체적 경제적 피해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이슬람 국가는 모스크에서 혼인 서약을 해야만 혼인신고가 가능하다. 그러나 서약 중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다"라는 선서를 해야 한다고 한다. 따라서 그에 따른 피해를 줄이도록 법적 제도적 보완과 이슬람 문화와 가치관을 포함한 무슬림과의 국제결혼 안내서 등 홍보와 교육이 필요한 실정이다.
결혼의 목적, 국적취득과 개종요구
<무슬림과 결혼하는 한국인 여성, 사랑인가? 노예인가?>를 발제한 GNI 최헵시바 소장은 "사랑이 라는 이름으로 끈질기게 유혹한 파키스탄인은 결혼 후 이혼을 요구하는 김씨에게 국적취득 후 이혼해 주겠다고 본성을 드러냈다"며 모 사이트에 충격고백을 한 김씨 사례와 "결혼 생활 내내 코란 읽기와 기도하기를 강요하며 폭력을 가하는 것은 기본, 어린 딸을 두고 협박하는 파키스탄 무슬림과 최근 3년 만에 결혼생활을 마무리 했다"는 김모씨의 사례를 소개했다. 최 소장은 "이 외에도 피해사례는 상당하며 공통적으로 끈질긴 유혹과 감언이설로 결혼한 후 국적취득과 개종을 요구하며 비도덕적 행위(협박, 폭력, 성폭력, 사기, 재물탈취 등)를 일삼은 범죄"라 했다.
무슬림 남성과 결혼한 한국 여성 인권보호를 위한 제안: 법적·제도적 장치 보완-국제 결혼관리소 설치
최헵시12바 소장은 "외국인 노동자 인권확보를 위한 센터가 오히려 문제"라며 외국인 노동자들과 한국인 여성과의 결혼을 통한 피해사례를 다루는 카페 사이트(파키스탄*방글라데시 외국인에 의한 피해자 모임 : http://cafe.daum.net/leavingpakistan) 운영자의 주장을 전했다. 덧붙여 "외국인 노동자들의 거짓과 한국 여성들의 인권은 묵인하며 행해지는 외국인 노동자 센터의 인권보호는 누구를 위한 법인가, 이슬람의 교리 안에 합법적인 범법행위는 무시하고 인권운동 하는 그들은 누구를 위한 인권행위인가"라며 "이러한 주객전도의 사태는 시급히 해결해야 한다"고 설파했다.
<무슬림 남성과 결혼한 한인여성 인권보호를 위한 제안서>를 발제한 안상준 사관(구세군개운교회, 명지대 아랍지역학 박사)은 "외국인과 결혼할 경우 반드시 외국정부에 의한 공식문서인 독신 증명서(총각, 이혼남, 사별 등) 등을 발급받아 한국정부에 제출하고 그것을 기초로 한국여성은 결혼신고를 조사하는 정부내 조직이 필요하다"며 "국제 결혼관리소를 설치할 것"을 주장했다. 또한 "가능하다면 출입국 관리소에서 여권을 통해 외국인들을 통제하면서 동시에 국제결혼도 관리하도록 건의한 다"며 피해를 사전에 차단하는 데 관심을 기울였다.
더불어 안 사관은 "대한민국은 일부일처를 표명한다"며 "일부다처는 헌법에서 규정된 것이 아니므로 어떠한 경우라도 범죄행위로 간주되며 범법자로 취급되어야 함"을 명백히 주장했다.
무슬림 남성과 결혼한 한국인 여성 인권보호를 위한 제안 2 : 무슬림과의 국제결혼 안내서 발간
최 소장은 "일부다처제가 합법적인 그들의 문화 안에 내재되어 있는 다른 여성관과 결혼관을 한국인 여성은 감언이설로 속고 있는 것이기에 이제는 더 이상 간과해서는 안 될 일"로 간주하며 "정확한 이슬람의 이해를 위해 한국교회와 시민단체 여성인권 단체는 앞장서야 할 때임"을 밝혔다.
안 사관은 그것을 위해 "무슬림들과 결혼시 필요한 절차와 주의해야 할 것 등 전반적인 일에 관한 지침서를 발간하여 미리 홍보하는 것이 필요하겠다"며 "이슬람에 대한 소개와 무슬림들의 삶과 결혼, 출산과 육아, 의복 등에 관한 것을 수록하여 미리 결혼 전에 숙지도록 하는 것을 제안한다"고 말했다.
한국을 타깃으로 삼은 무슬림 vs 이슬람화 막기 운동, 4HIM(Halt Islamization Movement)
이만석 목사(한국이란인교회)는 <한국 여성들의 이슬람권 남성들에 의한 결혼피해 사례를 들으면서>를 발제했다. "무슬림들이 한국을 이슬람화하기 위해서 본격적으로 몰려오는 것은 무함마드가 이슬람을 전하기 위해서 메카에서 메디나로 이주한 사건을 들어 이해 할 수 있다"며 "이주는 이슬람의 매우 중요한 선교전략 중의 하나"라고 말했다.
이 목사는 "무슬림들은 이 전략으로 유럽과 동남아 아프리카 미주 등지를 다산정책으로 선진국의 일반적 인구성장율의 3배에 달하는 인구의 폭발을 보이며 이슬람화 하고 있다"고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며 경계했다. 그리고 "한국교회가 이 나라를 복음으로 굳게 지켜 대한민국이 이슬람의 제물이 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 4HIM(Halt Islamization Movement)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전 세계 각 국에 지부를 두어 네트워크를 구성하여 정보교환과 사례들을 공유하고 기도해 나가야 할 것이다"라고 피력했다.
이 운동의 중요 목적은 일차적으로 다음과 같다.
1.이슬람의 정체를 연구하고 알린다.
2.이슬람의 확산을 예방한다.
3.각국의 이슬람 단체들의 전략과 움직임을 확인한다.
4.말씀과 기도로 무장하고 공감대를 형성하여 영적 기류를 바꾼다.
이슬람 이해하기: 이슬람권의 결혼관과 여성관
이 목사는 "이슬람권의 가치관을 보려면 코란과 무함마드의 언행록을 살펴야 한다"고 했다. "무함마드가 다른 무슬림들에게는 4명까지 허용된 아내를 16명씩 거느렸던 이유를 이슬람학자들은 서로간의 사랑을 전제로 한 것이 아니라 정치적인 혹은 다른 목적 때문에 결혼을 했다고 설명한다"며 "이를 통해 이슬람의 결혼은 일부다처이며 그 결혼 동기는 서로간의 인격적 사랑이 아니라 어떤 다른 목적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무함마드의 경우를 모델로 하여 무슬림들이 따라 배우게 된다"고 설명했다.
그러므로 "한국에 온 무슬림들이 한국의 국적 취득을 위해 한국 여성들의 일생을 망쳐가면서 그들의 육체를 이용하고 있다는 것에 대해 이슬람의 문화에서는 전혀 이상할 것이 없는 자연스러운 것이라"며 "한국 여성들이 이것을 몰랐기에 이용당할 수밖에 없었다는 결론"이라며 안타까움을 표했다.
또한 이 목사는 "여인은 그 남편에게 절대 복종을 해야 한다. 만일 복종하지 않을 경우에는 세 가지 조치가 취해지는데, 먼저 타이르고 그래도 듣지 않으면 동침하는 권리를 박탈하고 그래도 듣지 않으면 매질을 하라고 되어 있다"며 이슬람 법을 설명했다.
이슬람에서 아내를 매질할 수 있는 경우를 다음과 같이 4가지로 설명하고 있다.
1) 남편이 원치 않는 복장을 했을 때
2) 합법적인 이유 없이 남편의 동침 요구를 거절했을 때
3) 기도하기 위해서 부정한 몸을 씻으라고 하는데 거절했을 때
4) 남편의 허락 없이 외출했을 때
그리고 현 실태를 잠깐 보여드리겠음
한국의 이슬람화 실태
게다가 이슬람은 지금 체계적인 세계의 이슬람화를 위해 국가와 민족을 초월하여 전 세계적으로 투쟁(지하드)하고 있다. 이미 영국을 포함한 유럽 각국에서 지대한 성공을 거두고 있다. 이대로 가면 유럽의 무슬림 숫자는 2025년에 이르면 지금의 두 배가 될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경고하고 잇다. )이에 관하여는 <윌리엄 와그너, ‘이슬람의 세계 변화전략’>을 참고하라).
문제는 한국도 예외가 아니라는데 있다. 최근 한국교계는 2020년까지 한국을 이슬람화 하겠다는 이슬람권의 행보에 고심하고 있다. 투아이즈 네트워크에 따르면, 1988년 서울 올림픽이 열리던 해에 이미 중동 국가의 한 언론은 무슬림들이 한국을 이슬람화하겠다는 전략을 수립한다는 기사를 보도한 바 있고, 이 전략은 2005년 11월 서울에서 개최된 중동 이슬람 지도자 선교대회에서 한국을 2020년까지 이슬람국으로 만들겠다는 소위 ‘비젼 2020전략’으로 구체화됐다는 것이다.
실제로 한국에는 이슬람권에서 온 많은 유학생들과 근로자들이 그들의 선교적 노력을 강화하고 있는 것들이 현실로 드러나고 잇다. 최근 한국에 들어와 활동 중인 외국인 근로자들은 45만 ~ 50만(2006년 노동부 발표 자료)정도로 추산되는데. 그들 중 상당수가 이슬람권에서 입국한 근로자들로 무려 10만 명에 이른다. 그것은 ‘지성의 산실’ 을 표방하는 캠퍼스들에도 마찬가지이다. 특히 서울대학교와 KAIST를 중심으로 한 무슬림 유학생들 커뮤니티 결성의 움직임은 단순한 교류와 예배를 위한 모임을 넘어선 이슬람 선교를 위한 행보임을 구체화 하였고. 이는 한국으로 유학을 오게 된 본래적 목적이 무엇임을 드러내어 보여주고 있다.
다행이 중동선교회, 투아이즈 네트워크, 한국이란인교회와 같은 기관을 중심으로 이슬람의 실체와 한국 이슬람화 개획들이 폭로되고 있다. 그들이 밝히는 바에 따르면 이슬람의 한국 침투는 매우 전략적이다. 다음은 지난 2005년도에 한국 이슬람교 중앙회에서 출판한 ‘한국이슬람 50년사’ 에 소개된 이슬람의 한국 선교전략을 간추려 본 내용이다.
① 사원 건립 : 현재 있는 서울 중앙성원을 비롯해 9개의 이슬람 성원, 4개의 이슬람 센터와 50
여개의 임시 예배처소를 점차적으로 확대하고자 한다.
② 국제 이슬람학교 설립 : 무슬림 자녀들을 양육하기 위한 교육시설이라는 명목으로 영어로
가르치는 초등학교, 유치원을 만들어 어려서부터 이슬람 교육을 받으며 자랄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한다.
③ 이슬람대학 건립 : 1970년대 말부터 구체화 되어 현재 진행 중에 있다. 이 대학을 통해 최고급
무슬림들이 쏟아져 나올 것이며 한국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교육 등 모든 분야들에 침투할 것이다.
④ 이슬람 문화센터 건립 : 이를 다와 센터 (Da'wah Center)라고 부르는데, 선교센터라는 말이다.
아랍어와 이슬람 교리강좌, 벨리 댄스 등을 통해서 한국에 이슬람을 뿌리내리는데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 .
⑤ 꾸란 번역 위원회 : 꾸란을 더 완벽하게 한글로 번역하기 위해서 꾸란 번역위원들의 정기모임이
매주 열리며 비정기적으로 연구토론모임도 이루어지고 있다.
⑥ 이슬람 서적 출판위원회 : 지금까지 많은 이슬람 서적들이 나와 있으며, 더 많은 책들과 인쇄물들을 만들어 홍보하고자 한다.
⑦ 결혼 및 출산 전략 : 외국인 노동자들이 합법적인 체류 자격을 획득하기 위해서 취하는 가장 손쉬운 방법이 한국 여성과 결혼하는 방법이다. 그들은 한국 여성과 결혼해 가능하면 많은 자녀들을 낳아서 무슬림들의 숫자를 늘리고자 한다.
현재까지 한국의 이슬람교의 물리적 형편은 아직 미미한 수준이다. 중동선교회에 따르면 국내 무슬림 인구는 약 5만여명으로 전체 인구 중 0.1%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각 도시들의 이슬람 사원과 기도처 건립은 물론, 위에서 언급한 이슬람의 전방위적 선교활동은 점차 확장 일로에 놓여 잇다. 거기에 온라인을 통한 포교의 노력까지 곁들여 한층 그 힘을 더해가고 잇다. 보다 근본적인 문제는 한국사회가 크게 관심하지 않는 사이에,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무슬림들은 한국의 이슬람화 전략을 단계적으로 착착 시행해 나갈 것이라는데 있다.
한국에 이슬람이 안정적으로 뿌리내리게 되는 날 한국은 테러에서 자유 할 수 없게 될 것이다. 이미 유럽의 역사가 이를 말해주고 있다. 이슬람은 소수일 때는‘평화’ 를 강조하지만, 그 사회에 5%만 점하여도 당장 테러는 이슬람 다와의 매우 유용한 도구로 변화된다. 이미이슬람은 ‘테러’ 를 통해 그들의 주장이 효과적으로 멱혀들었던 전례들을 수없이 가지고 있다. 게다가 ‘테러’는 알라의 ‘거룩한 멸령’ 이다. 만일 한국에서도 ‘이슬람’ 이 자연스레 ‘인식’ 되기 시작하는 날이 온다면, 때는 이미 늦게 될 것이다. 그 테러의 희생자는 바로 나와 내 사랑하는 가족과 친지가
아니라는 보장이 없는 것이다.
우리가 알던 무슬림들은 사람만 좋아보일 뿐
그 속은 무서운 정복욕으로 가득 찬 사람들이지요.
우리가 아는 무슬림 테러집단 뿐만이 아닙니다.
언젠가 모든 무슬림들이 테러집단화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두셨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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