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계명(77) - 제8계명(9)
구제; 도둑질을 넘어서
설교본문낭독: 에베소서 4장 28절; 마태복음 6장 3-4절
신조 낭독: 웨스트민스터 대요리문답 제141문답;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제111문답
설교: (십계명 강해 77) 구제; 도둑질을 넘어서
Ⅰ. 구제
금지명령에 포함된 긍정명령
십계명은 “~~을 하지 말라”라고 하는 금지명령과 “~~을 하라”라고 하는 긍정명령으로 되어 있습니다. 예컨대, 제1,2,3,6,7,8,9,10계명은 금지명령입니다. 제4,5계명은 긍정명령입니다. 그런데 금지명령은 긍정명령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반대로 긍정명령은 금지명령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금지명령을 보면서 긍정명령을 깨닫지 못하면 십계명을 제대로 이해 못한 것입니다. 반대로 긍정명령을 보면서 금지명령을 깨닫지 못하면 십계명을 제대로 이해 못한 것입니다.
제8계명은 “도둑질하지 말라”입니다. 이 명령은 금지명령입니다. 그러므로 이 명령 속에는 긍정명령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제8계명의 긍정명령은 무엇입니까?
에베소서 4:28에 나타난 제8계명의 긍정명령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 에베소서 4:28에 잘 나와 있습니다. 다함께 다시 읽어보겠습니다. “도둑질하는 자는 다시 도둑질하지 말고 돌이켜 가난한 자에게 구제할 수 있도록 자기 손으로 수고하여 선한 일을 하라” 이 말씀은 제8계명을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하는 본문입니다. 도둑질 하던 사람이 도둑질을 멈췄다고 해서 그것이 곧 제8계명을 다 지킨 것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되며, 이제는 자기 손으로 수고하여 먹고 살아야 합니다. 도둑질이 아닌 자기 손으로 수고하는 노동을 통해서 자기의 필요를 채워야 합니다. 이 ‘노동’에 관한 부분은 우리가 그동안 살펴보았습니다. 도둑질을 통해서가 아니라 자기의 손으로 일하여 자기의 필요를 채우는 노동은 제8계명의 긍정명령입니다.
그런데 노동하는 이유가 자기의 필요를 채우는 것만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노동의 이유가 자기 자신에서 멈추지 않고 더 나아가 다른 사람에게까지 미쳐야 합니다. 그래서 가난한 자에게 구제할 수 있도록, 선한 일을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자기 손으로 수고하는 것입니다. 도둑질에서 노동으로, 노동에서 구제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도둑질이 남의 것을 훔치는 것이라면, 노동은 자기의 것을 버는 것이고, 구제는 다른 사람에게 주는 것입니다. 바로 이 ‘구제’가 제8계명의 또 다른 긍정명령입니다.
제8계명을 적극적으로 지키는 방법
그러므로 우리가 제8계명을 제대로 지키기 위해서는 먼저 도둑질을 하지 않아야 하고, 나아가 정당한 방법으로 재산을 축적하는 노동에 최선을 다해야 하며, 궁극적으로는 그렇게 모은 돈을 다른 사람을 위해서 자발적으로 내어놓을 수 있는 구제하는 일까지 해야 합니다. 이렇게 하는 것이 바로 제8계명을 제대로 지키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설교의 제목이 “구제; 도둑질을 넘어서”입니다. 구제하는 것이 곧 제8계명을 지키는 것입니다. 구제는 도둑질을 넘어서 더 능동적이고 더 적극적으로 제8계명을 지키는 방식입니다.
종교개혁자 칼뱅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나님의 재산을 위탁받은 부유한 청지기가 가난한 이웃에게 물질을 순환시키지 않은 것은 도둑질이고 신성모독이다” 도둑질이란 단지 다른 사람의 것을 훔치는 것만이 아니라 ‘사랑의 법칙’이 우리에게 명하는 바 이웃과 나누기를 거부하는 것입니다. 도둑질은 사랑의 질서에 의해 다른 사람에게 마땅히 돌려주어야 할 것을 자신이 착복하는 것입니다.
구제에 대한 성경의 다른 가르침들
성경에는 구제하라는 말씀이 여러 곳 나옵니다. 그 중에 몇몇 구절들을 함께 찾아보도록 하겠습니다.
레위기 25:35-55 “(35)네 형제가 가난하게 되어 빈 손으로 네 곁에 있거든 너는 그를 도와 거류민이나 동거인처럼 너와 함께 생활하게 하되 (36)너는 그에게 이자를 받지 말고 네 하나님을 경외하여 네 형제로 너와 함께 생활하게 할 것인즉 (37)너는 그에게 이자를 위하여 돈을 꾸어 주지 말고 이익을 위하여 네 양식을 꾸어 주지 말라 (38)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며 또 가나안 땅을 너희에게 주려고 애굽 땅에서 너희를 인도하여 낸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이니라 (39)너와 함께 있는 네 형제가 가난하게 되어 네게 몸이 팔리거든 너는 그를 종으로 부리지 말고 (40)품꾼이나 동거인과 같이 함께 있게 하여 희년까지 너를 섬기게 하라 (41)그 때에는 그와 그의 자녀가 함께 네게서 떠나 그의 가족과 그의 조상의 기업으로 돌아가게 하라 (42)그들은 내가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내 종들이니 종으로 팔지 말 것이라 (43)너는 그를 엄하게 부리지 말고 네 하나님을 경외하라 (44)네 종은 남녀를 막론하고 네 사방 이방인 중에서 취할지니 남녀 종은 이런 자 중에서 사올 것이며 (45)또 너희 중에 거류하는 동거인들의 자녀 중에서도 너희가 사올 수 있고 또 그들이 너희와 함께 있어서 너희 땅에서 가정을 이룬 자들 중에서도 그리 할 수 있은즉 그들이 너희의 소유가 될지니라 (46)너희는 그들을 너희 후손에게 기업으로 주어 소유가 되게 할 것이라 이방인 중에서는 너희가 영원한 종을 삼으려니와 너희 동족 이스라엘 자손은 너희가 피차 엄하게 부리지 말지니라 (47)만일 너와 함께 있는 거류민이나 동거인은 부유하게 되고 그와 함께 있는 네 형제는 가난하게 되므로 그가 너와 함께 있는 거류민이나 동거인 또는 거류민의 가족의 후손에게 팔리면 (48)그가 팔린 후에 그에게는 속량 받을 권리가 있나니 그의 형제 중 하나가 그를 속량하거나 (49)또는 그의 삼촌이나 그의 삼촌의 아들이 그를 속량하거나 그의 가족 중 그의 살붙이 중에서 그를 속량할 것이요 그가 부유하게 되면 스스로 속량하되 (50)자기 몸이 팔린 해로부터 희년까지를 그 산 자와 계산하여 그 연수를 따라서 그 몸의 값을 정할 때에 그 사람을 섬긴 날을 그 사람에게 고용된 날로 여길 것이라 (51)만일 남은 해가 많으면 그 연수대로 팔린 값에서 속량하는 값을 그 사람에게 도로 주고 (52)만일 희년까지 남은 해가 적으면 그 사람과 계산하여 그 연수대로 속량하는 그 값을 그에게 도로 줄지며 (53)주인은 그를 매년의 삯꾼과 같이 여기고 네 목전에서 엄하게 부리지 말지니라 (54)그가 이같이 속량되지 못하면 희년에 이르러는 그와 그의 자녀가 자유하리니 (55)이스라엘 자손은 나의 종들이 됨이라 그들은 내가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내 종이요 나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이니라”
신명기 24:19-21 “(19)네가 밭에서 곡식을 벨 때에 그 한 뭇을 밭에 잊어버렸거든 다시 가서 가져오지 말고 나그네와 고아와 과부를 위하여 남겨두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손으로 하는 모든 일에 복을 내리시리라 (20)네가 네 감람나무를 떤 후에 그 가지를 다시 살피지 말고 그 남은 것은 객과 고아와 과부를 위하여 남겨두며 (21)네가 네 포도원의 포도를 딴 후에 그 남은 것을 다시 따지 말고 객과 고아와 과부를 위하여 남겨두라”
잠언 14:31 “가난한 사람을 학대하는 자는 그를 지으신 이를 멸시하는 자요 궁핍한 사람을 불쌍히 여기는 자는 주를 공경하는 자니라”
잠언 19:17 “가난한 자를 불쌍히 여기는 것은 여호와께 꾸어 드리는 것이니 그의 선행을 그에게 갚아 주시리라”
잠언 28:27 “가난한 자를 구제하는 자는 궁핍하지 아니하려니와 못 본 체하는 자에게는 저주가 크리라”
디모데전서 6:17-18 “(17)네가 이 세대에서 부한 자들을 명하여 마음을 높이지 말고 정함이 없는 재물에 소망을 두지 말고 오직 우리에게 모든 것을 후히 주사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께 두며 (18)선을 행하고 선한 사업을 많이 하고 나누어 주기를 좋아하며 너그러운 자가 되게 하라”
야고보서 2:14-17 “(14)내 형제들아 만일 사람이 믿음이 있노라 하고 행함이 없으면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그 믿음이 능히 자기를 구원하겠느냐 (15)만일 형제나 자매가 헐벗고 일용할 양식이 없는데 (16)너희 중에 누구든지 그에게 이르되 평안히 가라, 덥게 하라, 배부르게 하라 하며 그 몸에 쓸 것을 주지 아니하면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17)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
요한일서 3:17-18 “(17)누가 이 세상의 재물을 가지고 형제의 궁핍함을 보고도 도와 줄 마음을 닫으면 하나님의 사랑이 어찌 그 속에 거하겠느냐 (18)자녀들아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
이 외에도 성경에는 구제에 관한 말씀이 여러 곳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성경에서 구제하는 일에 힘쓴 사람
그리고 성경에는 구제하는 일에 힘쓴 사람을 몇 명 소개하고 있습니다. 사도행전 9:36을 보시면, “욥바에 다비다라 하는 여제자가 있으니 그 이름을 번역하면 도르가라 선행과 구제하는 일이 심히 많더니”라고 말씀합니다. ‘다비다’라 하는 여제자로 그 이름을 번역하면 ‘도르가’라는 사람이 바로 구제하는 일에 힘쓴 사람이었습니다. 사도행전 10:1을 보시면, 가이사랴에 고넬료라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 사람을 2절에서 이렇게 표현합니다. “그가 경건하여 온 집안과 더불어 하나님을 경외하며 백성을 많이 구제하고 하나님께 항상 기도하더니” 고넬료의 경건을 표현하면서 하나님을 경외하고 기도하는 일과 함께 백성을 구제하는 일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성경은 구제하는 일에 대해서 중요하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항상 존재하는 가난한 사람
이 세상에는 그 어떤 곳이든 항상 가난한 자는 있기 마련입니다. 잠언 22:2은 “가난한 자와 부한 자가 함께 살거니와 그 모두를 지으신 이는 여호와시니라”라고 말씀합니다. 그렇기에 이 세상에 부자와 가난한 자가 존재하지 않는 경우는 전혀 없습니다. 하나님이 왕을 통해서 친히 다스리던 신정국가인 이스라엘에도 부자와 가난한 자가 있었습니다. 성령의 역사하심이 가장 왕성했던 때라고 볼 수 있는 초대교회에도 부자와 가난한 자가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부와 가난을 없애기 위해서 추구한 공산주의 사회에도 부자와 가난한 자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부와 가난이라는 것 자체를 아예 없애기는 어렵습니다. 오히려 우리는 부와 가난이라는 것이 이 세상이 사라지기까지는 항상 존재한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그렇게 지으셨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사실을 인정하면서 부자인 사람은 가난한 사람을 위해서 구제하는 일에 힘써야 합니다. 사람은 재산이나 부로 값없이 주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하며, 그 물질과 재산으로 그의 이웃을 섬기는데 사용해야 합니다.
구제에 대한 요리문답의 가르침
제8계명이 단순히 도둑질에 관한 문제만이 아니라 구제에 관한 문제이기도 하다는 사실은 장로교회의 요리문답인 웨스트민스터 대요리문답이 우리에게 잘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웨스트민스터 대요리문답 제141문답
141문: 제8계명에서 요구된 의무들은 무엇입니까?
답: 제8계명에서 요구된 의무들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계약contracts과 거래commerce에 있어서의 진실함, 신실함, 공정함,1) 모두에게 각자의 몫을 주는 것rendering to everyone his due,2) 정당한 소유주로부터 불법으로 압류한 것의 배상restitution of goods unlawfully detained,3) 우리의 능력abilities과 다른 사람들의 필요necessities에 따라 자유롭게freely 주고 빌려주는 것,4) 이 세상 재물worldly goods에 대한 우리의 판단judgments과 의지wills와 애정affections을 절제하는 것moderation,5) 우리의 본성의 유지for the sustentation of our nature에 필요하고 편리하며 우리의 형편에 맞는 것suitable to our condition을 얻고get6) 보존하며keep 사용하고use 처리하는dispose 일에 대해 신중하게 살피는 것provident care과 연구하는 것study,7) 합법적인 직업a lawful calling과8) 그 일에 근면하는 것,9) 검소함frugality,10) 불필요한 소송lawsuits을 피하는 것,11) 보증서는 일suretyship이나 그와 같은 약속들engagements을 피하는 것,12) 우리들의 것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부wealth와 재산estate을 획득하고procure 보존하고preserve 증진하기further 위하여 모든 공정하고 합법적인 방법으로by all just and lawful means 노력하는 것endeavor입니다.13)
1) 시 15:2,4; 슥 7:4,10; 8:16-17 2) 롬 13:7 3) 레 6:2-5; 눅 19:8 4) 눅 6:30,38; 요일 3:17; 엡 4:28; 갈 6:10 5) 딤전 6:6-9; 갈 6:14 6) 딤전 5:8 7) 잠 27:23-27; 전 2:24; 3:12-13; 딤전 6:17-18; 사 38:1; 마 11:8 8) 고전 7:20; 창 2:15; 3:19 9) 엡 4:28; 잠 10:4 10) 요 6:12; 잠 21:20 11) 고전 6:1-9 12) 잠 6:1-6; 11:15 13) 레 25:35; 신 22:1-4; 출 23:4-5; 창 47:14,20; 빌 2:4; 마 22:39
“다른 사람의 필요에 따라 자유롭게 주는 것”을 언급하고 있는데 바로 구제입니다. 그리고 그 근거구절이 오늘 우리가 살펴본 말씀 중에 있었던 요한일서 3:17과 에베소서 4:28이 언급되고 있습니다.
제8계명과 구제에 관한 문제는 개혁교회의 요리문답인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이 더욱 분명하게 잘 설명하고 있습니다.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제111문답
111문: 이 계명에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무엇입니까?
답: 내가 할 수 있고 해도 좋을 경우에는
나의 이웃의 유익good을 증진시키며,
내가 남에게 대접을 받고 싶은 대로
이웃에게 행하고,8)
더 나아가
어려운 가운데 있는 가난한 사람을 도울 수 있도록
성실하게faithfully 일해야 합니다.9)
8) 마 7:12 9) 사 58:5-11; 갈 6:9-10; 엡 4:28
“어려운 가운데 있는 가난한 사람을 도울 수 있도록 성실하게 일하는 것”이 바로 제8계명에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근거구절 역시 오늘의 본문인 에베소서 4:28이 언급되고 있습니다.
구제를 할 수 있는 동력
사람들은 흔히 구제를 ‘이웃 사랑의 발로(發露)’라고만 생각합니다. 물론 이웃을 사랑해야 구제를 할 수 있습니다만, 그것으로만 가능하지 않습니다. 신자에게 있어서 구제하는 일은 단순히 이웃에 대한 사랑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로 하여금 구제를 할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힘은 더 궁극적으로는 자신이 가진 재산이 과연 어디에서부터 왔는지를 알 때에 가능합니다.
우리가 제8계명을 시작할 때에 제8계명을 이해하기 위해 필요한 2가지 전제를 배웠습니다. 하나는 사유재산의 원리입니다. 또 다른 하나는 청지기 정신입니다. 이 2가지 전제는 제8계명을 이해하고 실천하는데 있어서 반드시 필요한 부분입니다.
만약 어떤 사람이 이 2가지 전제 중에서 사유재산의 원리에 대한 전제만 갖고 있다면 그 사람은 자신의 것을 남에게 주기가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자기의 것을 자기의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자기의 것이라고 생각하니 다른 사람에게 쉽게 주기가 어려운 것입니다. 혹여나 준다고 하더라도 자기의 것을 준다는 생각을 갖기가 쉽니다. 그리고 아까운 마음이 들 수 있습니다.
하지만, 청지기 정신을 갖고 있다면 그 사람은 쉽게 다른 사람에게 줄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주는 것에 대해서 아깝다는 생각을 전혀 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자기가 가진 것은 자기의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맡겨주신 것이니 하나님이 명령하신 바 대로 사용하는 것에 대해 전혀 아까워 할 이유가 없는 것입니다.
구제는 시혜(施惠)가 아닌 의무
자본주의적 사고를 갖고 있는 사람에게 구제는 ‘시혜’(施惠) 즉 은혜를 베푸는 일이 될 수 있습니다. 자기의 것을 다른 사람에게 베풀어준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하지만, 성경적인 가치관을 갖고 있는 사람에게 구제란 자기의 것을 다른 사람에게 주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을 다른 사람에게 주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은혜를 베푼다는 생각을 전혀 할 수가 없습니다. 그저 주인의 명령에 따른 마땅한 의무를 하는 일일 뿐입니다.
사실, ‘구제’란 자기의 것을 다른 사람에게 주는 것이 아닙니다. 다시 말하면 청지기 정신이 없이 사유재산의 원리만으로 행하는 구제는 구제가 아닙니다. 구제란 청지기 정신에 근거해서 해야만 비로소 구제입니다. 즉 자기의 것을 주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자신에게 주신 것을 다른 사람에게 주는 것이 구제입니다. 이런 점에서 구제는 시혜(施惠)가 아니라 의무입니다. 그래서 구제를 할 때는 그 누구도 베푼다는 마음이 전혀 생길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구제할 때에 결코 자랑스러워 하지 않습니다. 원래 내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마땅한 의무를 했을 뿐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점에서 가난한 사람들을 돕는 것은 윤리의 문제가 아니라 신앙의 문제입니다. 구제를 윤리로 생각하는 것은 짧은 생각입니다. 구제는 신앙의 한 표현입니다.
구제의 방식 - 공적인 통로를 통해
구제를 함에 있어서 우리는 어떤 방식이 좋을까요? 그냥 가난한 사람에게 직접 주는 것도 한 방법일 수 있습니다만, 우리는 이 부분에 대해서 신중하게 생각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성경의 가르침을 생각해 보아야 하겠습니다. 마태복음 6:1-4을 봅시다. 여기에는 구제에 관한 내용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전에도 보았지만, 마태복음 5:21 이하에는 십계명과 관련된 내용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마태복음 5:21-26은 제6계명과 연관되고, 마태복음 5:27-32은 제7계명과 연관되고, 마태복음 5:33-37은 제3계명과 연관됩니다. 이런 점에서 마태복음 6:1-4은 제8계명과 연관된다고 보아도 전혀 무리가 없습니다. 이 중에서 오늘 우리가 본문으로 읽은 마태복음 6:3-4을 보시면 “(3)너는 구제할 때에 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여 (4)네 구제함을 은밀하게 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너의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라고 말씀합니다. 이 말씀은 구제의 방식에 대한 좋은 원리를 제공해 주고 있습니다.
구제하는 일은 가급적 남이 모르게 은밀하게 하는 것이 좋습니다. 남에게 보이기 위해서 하는 구제는 사실상 그 원리에서 벗어납니다. 그렇기에 구제는 사사롭게 하기보다는 가급적이면 공적인 통로를 통해서 하는 것이 좋습니다. 이것은 제3자가 모르게 할 뿐만 아니라 구제를 받는 사람도 과연 누가 주는지 모르게 하는 것입니다. 구제를 받는 사람을 보호할 뿐만 아니라 구제를 하는 사람도 스스로 의로워지지 않도록 하는 좋은 방식입니다.
구제를 하는 사람은 쉽게 자기 의에 빠질 수 있습니다. 그리고 구제를 받는 사람은 구제를 하는 사람에 대한 태도가 달라질 수가 있습니다. 사람은 타락한 존재이기 때문에 충분히 그런 가능성이 생길 수 있다는 점을 생각해야 합니다.
제 개인적으로는 신학교에 입학하기 전에 사회복지사로서 일을 한 적이 있습니다. 그 때 보면서 안타까웠던 것 중에 하나가 후원을 독려하고 후원자에게 보람을 주게 한다는 취지에서 후원자와 대상자의 만남을 추진하는 일이 있었습니다. 그렇게 하는 것은 후원하는 사람에게는 기쁨을 주고 독려가 될지 모르지만 후원을 받는 사람 입장에서는 엄청난 상처가 됩니다. 오히려 누가 주는지 모르고, 주는 사람도 누가 받는지 모르게 하는 것이 좋고, 이를 위해서 공신력있는 구제의 기관이 생겨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구제를 받는 사람들의 당당해야 할 태도
지금까지는 구제를 하는 일에 대해서 말씀을 드렸는데, 이제는 구제를 받는 일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려고 합니다.
성경에는 구제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옵니다. 그 말은 구제를 하라는 말이기도 하지만 또한 동시에 구제를 받으라는 말이기도 합니다. 사실 이 세상의 모든 사람이 구제하는 사람이 될 수는 없습니다. 어떤 사람은 구제하는 사람이지만 또한 동시에 어떤 사람은 구제를 받는 사람입니다. 부자라면 구제를 해야 하지만 가난한 사람이라면 구제를 받아야 합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교회에서 이웃에게 베풀라는 설교나 강의는 많이 듣지만, 가난한 자로서 구제를 당당하게 받을 것에 대해 가르치는 경우는 매우 드뭅니다. 청중이 구제를 해야만 하는 사람으로 구성된 것이 아니라 구제를 받아야만 하는 사람도 있는데도 불구하고 받는 일과 관련해서는 전혀 다루지 않습니다. 그래서 저는 오늘 구제를 받는 일에 대해서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우리가 사는 사회에서 구제를 받는다는 것에 대해서 굉장히 부담을 갖는 경우가 있습니다. “좀 도와 주세요.”라고 말하는 것, “이것으로는 부족합니다. 좀 더 주셔야 합니다.”라고 말하는 것에 대해서 부담을 가져야만 하는 분위기가 많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말하는 사람에 대해서 이상한 눈으로 바라봅니다. 마치 돈을 밝히는 사람처럼 바라봅니다. 구제 뿐만 아니라 그 외의 여러 가지 문제에 대해서도 그렇지요. 예컨대, 임금의 문제나 목사생활비의 문제도 그렇습니다. 받는 사람은 아무 말 하지 말고 그냥 주는 사람이 주는 대로 받아야만 한다는 인식이 우리에게 팽배해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생각은 매우 잘못된 생각입니다.
구제 받는 것을 부끄러워 할 필요가 전혀 없습니다. 구제를 받는 사람이 있기에 구제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모두 구제를 하는 사람만 있다면 구제라는 것 자체가 없을 것입니다. 게다가 가난하다는 것은 그 이유가 본인에게 있을 수도 있지만, 오늘날의 시대에는 사회 경제적 구조의 불안정 때문인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개인의 책임이라고만 말할 수 없습니다. 오히려 공동체 전체의 책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부자가 가난한 자에 대한 책임을 다하는 것은 마땅한 일입니다. 가난하다는 것으로 인해서 부끄러워 할 필요가 없습니다.
나아가 자기의 필요에 대해서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웨스트민스터 대요리문답 제141문답에는 “우리의 능력abilities과 다른 사람들의 필요necessities에 따라”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구제란 주는 사람의 형편 뿐만 아니라 받는 사람의 필요(need)도 고려되어야 합니다. “그냥 주는 사람이 알아서 하면 되지”라고 하는 것은 구제의 원리에 맞지 않습니다.
특히 이 부분에 있어서 구제를 받는 사람 뿐만 아니라 구제를 할 수 있는 처지에 있는 사람들의 생각이 바뀌어야 합니다. 이 내용은 구제를 받는 사람보다도 어쩌면 구제를 하는 사람이 더 분명하게 들어야 할 내용입니다.
제8계명에 있어서 중요한 삶의 태도인 자족(自足), 즉 자기가 가진 것에 만족하는 태도도 중요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가난한 상태에 있는 사람에게 “당신은 그냥 가난한 그 상태로 자족하세요.”라고 해서도 안되고, “나는 가난하지만, 이것이 나의 몫이니 그냥 이 상태로 자족해야지.”라고 하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구제를 받는 것은 마땅한 일입니다. 절대로 구걸이 아닙니다. 당연한 권리입니다. 구제를 받는 일에 절대로 부끄러워 할 필요가 없습니다. 당당히 요구해야 합니다. 그리고 당당히 요구하는 사람에 대해서 절대로 나쁜 생각을 가져서는 안됩니다.
그동안 우리가 살폈듯이 노동은 우리가 재물을 얻는 가장 기본적인 방식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자기의 손으로 열심히 일한 것을 통해서 자기의 필요를 채우기를 원하십니다. 그런데 그 와 동시에 하나님은 좀 더 많이 가진 사람의 손을 통해서도 우리의 필요를 채워주십니다. 하나님께서 노동 뿐만 아니라 구제를 통해서도 우리의 필요를 채워주신다는 사실은 매우 아이러니한 일이지만 매우 분명한 사실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직접 가난의 문제를 해결해 주실 수 있으심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하지 않으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오히려 가난한 사람의 문제를 부한 사람의 손을 통해 해결되기를 원하십니다.
물론 이 사실을 악용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아무 일도 하지 않아도 부자들이 혹은 교회공동체가 나를 먹여 살리겠지 하는 태도는 바람직한 태도가 아닙니다.
Ⅱ. 구제를 실천하는 교회 공동체
제8계명이 가장 잘 드러나야 하는 교회 공동체
구제가 곧 제8계명이라고 할 때에, 이 제8계명이 가장 잘 구현되어야 할 곳은 바로 교회공동체입니다. 우리가 그동안 십계명을 살피면서 각각의 계명들은 교회 공동체와 관련해서 생각했습니다. 제1-4계명이 곧 교회를 통해서 성취됨을 보았습니다. 무엇을 통해서입니까? 바로 예배입니다. 예배는 제1-4계명이 가장 잘 드러나는 시간입니다. 제1계명은 예배의 대상, 제2계명은 예배의 방식, 제3계명은 예배의 태도, 제4계명은 예배의 시간입니다. 이 계명들은 모두 다 교회 공동체와 관련됩니다. 제5계명도 마찬가지로 교회에 적용이 됩니다. 바로 직분자를 향한 순종을 통해서 교회에 적용이 됩니다. 제6계명도 교회에 적용이 됩니다. 예배 시간의 말씀 선포를 통해서 사람을 살리는 일을 통해 적용이 됩니다. 성도의 교제를 통해 서로가 서로를 세우줌으로써 적용이 됩니다. 제7계명도 그렇습니다. 결혼은 교회의 일입니다.
이제 제8계명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제8계명은 교회 안에서 분명하게 드러나야 합니다. 어떻게? 바로 구제를 통해서입니다. 이와 관련해서 성경구절 두 군데를 보겠습니다.
사도행전 2:43-47 “(43)사람마다 두려워하는데 사도들로 말미암아 기사와 표적이 많이 나타나니 (44)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45)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주며 (46)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47)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
사도행전 4:32-35 “(32)믿는 무리가 한마음과 한 뜻이 되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자기 재물을 조금이라도 자기 것이라 하는 이가 하나도 없더라 (33)사도들이 큰 권능으로 주 예수의 부활을 증언하니 무리가 큰 은혜를 받아 (34)그 중에 가난한 사람이 없으니 이는 밭과 집 있는 자는 팔아 그 판 것의 값을 가져다가 (35)사도들의 발 앞에 두매 그들이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누어 줌이라”
방금 살펴본 말씀은 초대교회가 구제하는 일에 얼마나 잘 하였는지를 보여줍니다. 초대교회의 여러 가지 특성 중에 하나는 바로 구제하는 것이었습니다. 초대교회는 교회 공동체 안에 물질이 필요한 사람들이 있을 때 그 필요를 채워주기 위해 기꺼이 희생을 감수할 수 있었습니다. 이 일에 있어서 믿는 무리 전체가 한마음과 한뜻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자기의 것을 자기의 것이라고 하는 사람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구제하는 일에 철저히 자발적이었습니다.
공산주의가 아님
그런데 여기에서 우리가 1가지 기억할 것이 있습니다. 이 부분은 이미 제8계명의 첫 번째 시간에도 말씀드린 적이 있습니다만, 초대교회가 자기의 것을 나누어주었다고 할 때에 그것이 마치 너와 나의 것의 구분이 없었다는 것이 아닙니다. 각자의 물건에 대한 구분이 없었다는 말이 아닙니다. 마치 그러한 경계가 없는 것처럼 보일 정도로 자기의 것을 자발적으로 나누어줬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누어 준 것도 그냥 주는 것이 아니라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행 2:44; 4:35) 나누어 준 것입니다. 초대교회는 공산주의 정신에 근거한 것이 아닙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의 재산과 소유는 사회주의 원리와 공산주의 조직에 기초한 재산의 공동소유제도를 기초한 것이 결코 아닙니다. 초대교회 안에서 사유재산의 처분은 강요된 것도 의무적인 것도 아니었습니다.
초대교회의 구제 방식
앞서 제가 마태복음 6:3-4을 기초로 말씀드리기를 구제를 함에 있어서는 사사롭게 하기보다는 가급적이면 공적인 통로를 통해서 하는 것이 좋다고 했는데, 방금 읽은 사도행전 4:32-35에는 그와 연관된 내용을 볼 수 있습니다. 34-35절을 보시면 “(34)그 중에 가난한 사람이 없으니 이는 밭과 집 있는 자는 팔아 그 판 것의 값을 가져다가 (35)사도들의 발 앞에 두매 그들이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누어 줌이라” 라고 말씀합니다.
여기에 보면 사람들이 자기의 것을 팔아다가 직접 가난한 사람에게 주는 것이 아닙니다. 35절에 “사도들의 발 앞에 두매”라고 되어 있습니다. 사람들이 자기의 것을 사도들의 발 앞에 둡니다. 일종의 헌금 방식입니다. 그리고 사도들은 그렇게 모은 것으로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누어 줍니다. 개인이 개인에게 구제를 하는 것이 아니라 개인이 교회에 내고, 교회는 개인에게 전달을 합니다.
이것이 처음에는 사도들을 통해서 이루어집니다. 아직은 사도들이 구제를 맡습니다. 그런데 사도행전 6장에 가면 사도들이 하다 보니 구제에 문제가 생깁니다. 교회의 규모가 작을 때는 사도들이 해도 상관이 없었는데 교회가 점점 확장되다보니 사도들이 그 일을 하기에는 여러 가지로 힘든 점들이 생깁니다. 그래서 직분자를 세웁니다. 성령과 지혜가 충만한 7명의 사람을 세웁니다. 스데반, 빌립, 브로고로, 니가노르, 디몬, 바메나, 니골라 입니다. 이 7명의 사람들이 사도의 역할을 나누어집니다. 이들을 통해서 구제를 담당케 합니다. 그러다가 점점 시간이 흘러 집사(執事)라는 직분이 생겨납니다(빌 1:1). 그래서 이후에는 집사라는 직분이 구제를 담당하는 직분으로 교회 역사 속에서 완전히 자리를 잡게 됩니다.
이러한 성경의 가르침을 볼 때에 교회 안에서 구제할 때에는 공적인 방식으로 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예를 들면, A 성도가 가난해 보인다고 해서 B 성도가 바로 그 사람에게 돈을 주는 것보다는 B 성도는 교회에 헌금을 하고, 집사회로 하여금 A 성도가 구제를 받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특히 교회 공동체는 오랫동안 함께 지내는 공동체이므로 그렇게 하는 것이 서로에게 유익을 줍니다.
구제를 받는 사람들의 당당함
앞서 말씀드리기를 구제를 받는 일에 있어서 전혀 부끄러워 할 필요가 없다고 했습니다. 그렇기에 교회 안에서 구제가 필요한 사람들은 당연하게 직분자에게 말해야 합니다. 집사에게 혹은 아직 집사가 없을 때에는 목사에게 말을 해야 합니다.
우리교회의 질서에는 이 부분을 아주 잘 설명해 놓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냥 그대로 읽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10. 경제적 어려움에 처했을 시
그러한 일이 가급적 없어야 하겠으나, 살다보면 가정에 경제적 어려움이 생길 수가 있습니다. 실직이나 그 밖의 여러 가지 사정으로 인하여 생계에 어려움이 생길 수가 있습니다. 이럴 때에 불신자라면 개인적으로 그 형편을 해결하기 위해서 노력하겠으나, 성도는 조금 다릅니다. 한 지역교회의 지체인 성도는 개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노력할 뿐만 아니라, 또한 동시에 교회와 함께 그 문제를 해결해 나가야 합니다(행 2:45; 4:32-37;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제26장 2절). 이를 위해 집사회에 그 사실을 알려야 합니다. 그리고 집사회를 통하여 구제를 받아야 합니다. 집사회에 그 사실을 알리는 것을 부끄러워 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집사라는 직분을 교회에 허락하신 이유가 그것이기에 그 일을 행하는 것이 마땅한 일입니다(행 6:1-3). 집사는 교회 안에서 성도의 가정의 경제적 형편을 살펴 가난한 자를 위한 자비의 사역을 하도록 맡겨진 직분입니다(벨기에 신앙고백서 제30조; 웨스트민스터 정치모범 중 집사). 이를 위해 교회의 재정을 집사회가 관리하는 것입니다. 집사회는 성도들의 헌금으로 모여진 교회의 재정을 하나님께서 주신 지혜를 따라(행 6:3) 말씀봉사자의 생활비(고전 9:4-14; 딤전 5:17-18), 구제(행 4:32-37), 선교(빌 4:15-19), 다른 교회를 돕는 일(행 11:27-30; 롬 15:26; 고전 16:1-4), 그 외 교회 경상비를 위하여 사용합니다. 성도가 지역교회에 속하였다는 것은 함께 한 몸을 이루어 간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영적인 형편뿐만 아니라 육적인 형편도 함께 공유해야 합니다. 그렇기에 성도의 가정에 닥친 경제적 어려움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교회 전체의 문제입니다. 그래서 성도는 자신의 경제적 형편의 문제를 교회와 함께 해결하려고 해야 할 것입니다. 교회에 ‘핍절(乏絶)한’ 성도가 없도록 해야 할 책임은 교회에 속한 모든 성도에게 있습니다(행 4:34). 혹여나 경제적 어려움을 알리기 부담스럽다면, 집사회에 알리되 비밀로 해 주기를 부탁하면 됩니다. |
교회 안에 핍절한 사람이 없도록
사도행전 4:34에서 “그 중에 가난한 사람이 없으니”라고 말하는 것처럼, 개역한글에서 “그 중에 핍절(乏絶)한 사람이 없으니”라고 좀 더 분명하게 표현하고 있는 것처럼 우리 안에 그러한 일이 없어야 할 것입니다.
가난한 사람이 생겨난 이후에 구제를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또한 가난한 사람이 생겨나기 전에 미리 서로를 돌아보아야 할 것입니다.
결론
말씀을 맺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도둑질을 하지 않는다고 해서 우리는 자랑할 것이 없습니다. 그것으로 제8계명을 잘 지키고 있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도둑질을 넘어 우리의 손으로 일하고, 나아가 우리가 일하는 이유가 나 혼자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가난한 자에게 구제하고 선한 일을 할 수 있기 위해서 라는 점을 기억하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허락하신 물질에 대해 청지기 정신을 가지고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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