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3년 신교자유 칙령과 391년 데오도시우스 대제(Theodosius The Great 346~395)를 통해 기독교가 로마 국교로 선포된 이후 교회는 안정된 가운데 성장하게 되었다. 계층적인 교직제도가 확립되면서부터 목회자의 신분은 다양하게 되었다. 소위 고위 성직자들은 복음서가 말하는 전도자의 상과는 거리가 먼 신분이 된다. 예배가 점차 복잡한 의식을 갖추면서 성직자들이 현란한 사제복을 입게 되었고 사제복은 곧 성직자의 신분을 대변하는 것으로 변하였다.
7,8세기가 되면서 위대한 정복자 샤를마뉴대제는 정복지의 모든 민족들을 기독교로 개종시켰다. 이후로 온 국민이 수입의 십일조를 드리는 것이 법제화되면서 교회가 쌓은 부는 성직 수임권으로 비화된다. 9세기 후반에 이르러 평신도인 제왕이 성직자를 임명하는 일이 오토대제(Otto the Great 936~973)하에서 벌어진다. 이일로 성직 수임권을 도로 찾으려는 교황 그레고리 7세와 하인리히 4세의 충돌로 비화되면서 교회사에 카노사의 굴욕이라는 대 사건을 남긴다. 결국 이일로 성직수임권이 교황에게로 가면서 마침내 성직매매가 교황청에 의하여 자행되기에 이른다.
교황청은 주교, 대주교를 이동시킴으로서 어마어마한 수입을 올리고 있었다. 결국 부는 교회를 타락시켰고 16세기 중교개혁이라는 전대미문의 사건을 맞게 된 것이었다. 그 시절의 성직자는 영적으로나 지적으로나 무지하고 무책임한 자들이었다. 중세 말 성직자들 사이의 주요 화두는 돈 애기였다. 당시 대주교였던 마그데부르크의 균터는 사제가 된지 35년만에 처음으로 미사를 집례했는가하면 스트라스부르그의 주교 로버트는 평생 한 번도 미사를 집례한 적이 없었다.
문예부흥의 작가 보카치오의 <데카에론>은 성직자들의 무지와 성직퇴폐를 풍자적으로 묘사한 것이었다. 성직자들이 재물에 대한 탐욕을 제어하지 못하면 이미 성직자들로서의 모습을 상실한 것임을 잊지 말자. 부를 소유하는 것 그 자체가 죄는 아니나 세상이 보는 성직자의 자세는 청빈임을 명심하자. 성직자들이 경계해야 할 것은 재물에 대한 탐욕과 명예욕과 색욕이다. 선거철이 또 다가온다. 이때만 되면 후보자들에게 전화를 하는 교단의 단체들, 그 사이에서 관행이라면서 재미 보는 선거꾼들이 사라져야 한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계시면서 가르치신 전대도 차지 않아야할 사역자들이 막대한 재정을 관장하고, 부를 축적하며 화려한 생활을 하는 것은 제자의 삶이 아닌 것이다. 진정한 성직의 회복을 통해 선한 청지기들이 되자.
http://www.kidok.com/news/articleView.html?idxno=97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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