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골선교 초기의 일화들 | |
1885년 4월5일 언더우드와 아펜젤러 선교사는 한국 선교의 문을 열었다. 이들은 선교사로서 파송 받아 한국에 온 공식적인 목사 선교사였다. 하지만 그들이 한국 땅을 밟기 전에 이미 앞서서 길을 닦고 있었던 수많은 사람들의 기록이 함께 전해지고 있다. 1866년 8월9일 영국 토마스 선교사, 1884년 9월20일 도착한 의사 알렌선교사, 1883년 만주에서 로스 선교사를 도와 성경을 번역한 서상륜, 서경조 형제.등등한국 선교 역사는 공식적인 선교 이전에 마치 세례요한처럼 길을 닦고 준비했던 사람들, 특히 성경번역에 대한 역사를 잊지 않고 기억한다. 왜냐하면 한 국가의 선교 역사에서 성경 번역이 차지하는 비중이 가장 크다고 할 수 있기 떄문이다. 몽골의 선교 역사도 마찬가지다. 교회가 세워진 이면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성경번역은 어떤 과정으로 이루어졌는지 확인하는 것이 필요하다.몽골은 1989년 개방이 되자 그동안 준비하고 있었던 기독교 선교 활동이 시작된다. 그 중심에 최초의 조직 교회를 세운 영국 선교사 존 기븐스가 있다. 그는 1972년 몽골국립대학교 유학생 신분으로 입국하여 몽골어를 배우면서 기숙사에서 대학생들에게 복음을 전했고 1980년 그의 선교 활동이 경찰 당국에 발각되어 체포된 후 추방되었으나 1978년부터 사귀어 온 몽골 여인 알탄치멕과 1987년 영국에서 결혼하여 합법적인 신분으로 다시 몽골에 돌아와 은밀히 몽골사람들을 전도하고 개방후 1990년 8월에 신약성경을 몽골어로 번역 출판하여 보급하였다. 여기서 그가 어떻게 신약 성경을 출판 보급하게 되었는지?의 일화를 전 몽골 선교사였던 안경갑목사(현 세종 본향교회 담임)가 이렇게 전한다. “1990년 2월 존 기븐스는 영국 위클리프 성경 번역 선교회를 방문하여 자기를 WBT 선교사로 허입해 주고 그가 번역한 몽골어 신약성경을 출판해 달라고 요청하였으나 그의 사람됨과 그가 번역한 몽골어 신약성경의 신학적 문제점들을 이유로 WBT는 그의 요청을 거절하였다. 그는 이때 WBT의 SIL(Summer Institute for Linguistic) 연수차 영국에 와있던 한국 예장 고신 총회 선교부 간사 하민기 목사를 만났다. 이 두 사람은 몽골인과 한국인의 언어, 혈통, 문화적 유사점들을 발견하고 놀라는 한편 뜨거운 한국교회의 선교 열기를 몽골로 향하게 하기위하여 한국교회에 몽골선교를 소개하기로 의기투합하였다. 하민기 목사는 그 길로 연수를 중단하고 귀국하여 1990년 2월에 진행중이던 고신 선교사 훈련원(KMTI) 필드스터디(Field study) 특강을 통하여 그가 들은 몽골 선교의 필요성을 강조하였다. 이에 고신 총회 선교부는 당시 인도네시아 선교를 준비하던 안경갑목사 부부를 몽골로 파송하기로 결정하고 먼저 1년간 한국해외선교훈련원(GMTC)에 위탁하여 창의적 접근 지역에서의 사역 훈련을 받게 하였다. 한편 하민기목사는 존 기븐스가 한국을 방문하여 1990년 7월 서울 한양대에서 개최되었던 ‘'선교한국90’'에서 몽골 선교 필드 스터디 강사로 활동하도록 소개하고, 서울의 큰 교회들을 방문하도록 주선하였다. 그 결과 한국 교회들이 후원한 헌금으로 1990년 홍콩에서 그가 번역한 몽골어 신약성경 5천권이 인쇄되어 몽골에 보급되었으며, 존 기븐스의 강의에 도전받은 한국의 청년, 독신 여선교사들이 몽골 선교사로 헌신하게 되었다.” 이런 사실을 아직도 잘 모르는 몽골 교회 지도자들이 있다. 이런 일화는 몽골에 한국 선교사가 많이 존재하고 많은 교회를 개척한 사실 보다도 더 중요한 의미가 있다. 현대 몽골 선교 초기에 성경 번역과 출판 및 보급은 선교 부흥의 토대를 닦는데 있어서 결정적인 필수 조건이다. 존 기븐스에 의해 성경은 번역되었지만 그 번역한 원고를 출판할 출판비가 없어서 사장될지 모르는 안타까운 순간에 한국 교회가 손을 내밀고 거액을 후원, 헌금한 일은 번역 선교사의 수고와 더불어 칭송받아야 마땅한 일이다. 이 외에도 1990년 3월에 시작된 한국 평신도들의 소그룹 예배 모임도 주목할 일이다. 주지하다시피, 현대 몽골 교회는 영국 선교사 존 기븐스에 의해 1990년 9월에 처음 세워졌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할 일이 있다. 1990년 3월에 한국과 몽골이 수교를 하면서 몽골 땅을 밟은 대사관 직원들을 중심으로 가정교회 형태의 예배 모임이 시작된 일이다. 시기적으로 조직교회가 세워지기 6개월 전이다. 비록 가정교회 형태의 소그룹이지만 몽골에서 조직 교회가 세워지기 전에 벌써 한국인들의 예배가 존재하고 있었음은 선교적 의미가 크다. 한국 교회는 몽골 선교의 배후에서 성경 번역을 할 수 있도록 힘껏 후원했고 한국의 신실한 평신도들은 몽골 땅의 문호가 열리자마자 곧 소그룹 예배를 드리며 기도했다. 그 후 6개월 뒤 최초의 조직 교회가 세워졌고 많은 선교사들이 세계 각국에서 들어왔다. 대사관 소그룹 예배는 현재의 울란바타르 한인교회의 모체가 되었다. 이런 일화들이 시사하는 바는 무얼까? 한국 교회는 몽골 선교의 토대를 놓았다. 그러므로 중단하지 말고 끝까지 건강한 교회들이 세워지도록 책임을 다해야 한다. ![]() 연경남 선교사(몽골 초이발산) |
http://www.ctimes.or.kr/news/view.asp?idx=2337&msection=1&ssection=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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