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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주차. <섭리시리즈> 계약 위반의 대가

최더함목사(서울)

by 김경호 진실 2017. 8. 30. 0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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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주차. <섭리시리즈> 계약 위반의 대가



야곱이 밧단아람에서부터 평안히 가나안 땅 세겜 성읍에 이르러 그 성읍 앞에 장막을 치고, 그가 장막을 친 밭을 세겜의 아버지 하몰의 아들들의 손에서 백 크시타에 샀으며, 거기에 제단을 쌓고 그 이름을 엘엘로헤이스라엘이라 불렀더라. 레아가 야곱에게 낳은 딸 디나가 그 땅의 딸들을 보러 나갔더니, 히위 족속 중 하몰의 아들 그 당의 추장 세겜이 그를 보고 끌어들여 강간하여 욕되게 하고, 그 마음이 깊이 야곱의 딸 디나에게 연연하며 그 소녀를 사랑하여 그의 마음을 위로하고, 그의 아버지 하몰에게 청하여 이르되 이 소녀를 내 아내로 얻게 하여 주소서 하였더라. 야곱이 그 딸 디나를 그가 더럽혔다 함을 들었으나 자기의 아들들이 들에서 목축하므로 그들이 돌아오기까지 잠잠하였고, 세겜의 아버지 하몰은 야곱에게 말하러 왔으며, 야곱의 아들들은 들에서 이를 듣고 돌아와서 그들 모두가 근심하고 심히 노하였으니 이는 세겜이 야곱의 딸을 강간하여 이스라엘에게 부끄러운 일 곧 행하지 못할 일을 행하였음이라.”(33:18~34:7)

성문으로 출입하는 모든 자가 하몰과 그의 아들 세겜의 말을 듣고 성문으로 출입하는 그 모든 남자가 할례를 받으니라. 제삼일에 아직 그들이 아파할 때에 야곱의 두 아들 디나의 오라버니 시므온과 레위가 각기 칼을 가지고 가서 몰래 그 성읍을 기습하여 그 모든 남자를 죽이고, 칼로 하몰과 그의 아들 세겜을 죽이고 디나를 세겜의 집에서 데려오고, 야곱의 여러 아들이 그 시체 있는 성읍으로 가서 노략하였으니 이는 그들이 그들의 누이를 더럽힌 까닭이라”(34:24~27)




1. 세겜의 가치




하나님의 통치에 있어서 큰 원칙 중 하나는 약속준수를 절대적인 원칙으로 삼는다는 것입니다. 약속을 지키는 사람에겐 복을 주시고, 약속을 어기는 사람에겐 반드시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치루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이른바 신상필벌이라는 하나님의 공의의 법칙이 적용되는 부분입니다. 오늘은 하나님과의 약속을 어긴 야곱이 어떤 대가를 치루는지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야곱은 형 에서와의 문제를 잘 풀고 홀가분한 마음으로 고향으로 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본문 3318절에 보니 야곱이 평안히 가나안 땅으로 가게 되었다고 보도합니다. 그런데 웬일인지 야곱은 갑자기 고향으로 가던 발걸음을 멈추고 세겜이라는 땅에 정착하고 맙니다. 가던 여정을 멈추더니 그곳의 밭을 매입합니다. 그것도 일반인도 아닌 세겜의 추장의 형제들의 밭을 100 크시타를 주고 샀다고 하였습니다. 그런 다음 제단을 쌓았습니다. 이 기사에서 우리는 두 가지를 살펴보아야 합니다.



하나는 왜 야곱이 세겜에 머물렀는가 하는 것입니다. 두 번째 질문은 100 크시타는 대체 어느 정도 되는 액수인가 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어느 정도 규모의 밭을 매입했는지 대충 감을 잡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먼저 세겜에 대해 알아봅니다. 이름의 뜻은 어깨 혹은 목인데 이는 팔레스타인 지역에서 위치상 인체의 목 부분에 해당한다고 여긴듯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봅니다. 지리적으로는 에발산과 그리심 산 사이에 위치한 작은 성읍으로서 아브라함이 가나안에 도착한 후 이곳에서 단을 쌓음으로 성경에 처음 등장합니다(12:6-7). 이후 야곱의 시대에는 히위 족속의 족장인 하몰과 세겜이 다스리는 지역으로 등장하고, 가나안 정착 후에 이곳은 레위지파의 성읍인 동시에 도피성이 되었지만 사사시대에는 바알의 신전을 모시는 곳으로 전락했습니다(9:4, 46). 특이한 것은 훗날 솔로몬의 아들 르호보암이 예루살렘이 아니라 이곳 우상숭배의 도시인 세겜에서 즉위식을 가졌는데 이는 르호보암의 신앙을 들여다 보는 단초가 됩니다. 드디어 르호보암의 때에 이스라엘은 나라가 둘로 쪼개집니다. 르호보암은 겨우 남쪽 지방을 다스리는 왕으로 전락하고 북쪽지역은 여로보암 1세가 세겜을 수도로 삼고 북 이스라엘이라는 나라를 건국했습니다.(왕상12:20, 25). 결국 이 도시는 아브라함과 야곱이 단을 쌓은 곳으로 시작했지만 우상숭배를 하다가 주전 722년 앗수르에 의해 파괴되고 맙니다. 그러므로 세겜이라는 도시는 신앙적으로 볼 때 별로 영감을 주는 곳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야곱이 이런 우상숭배의 땅에 거주하는 것을 원치 않으셨습니다.




그런데 왜 아브라함과 야곱은 이곳을 택하여 거주하려고 하였을까요? 그 단초는 바로 창 12:6에 있는 상수리나무입니다. 이 나무는 주로 세겜에서 자라는 나무로서 성경에서 늘 여호와의 성소 곁에 심겨진 나무로 등장합니다. 너도밤나무과에 속한 이 나무의 특징은 잎이 매우 크고 무성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햇볕이 따갑기로 유명한 이스라엘 사람들에겐 나무그늘과 함께 좋은 휴식처를 제공하는 매우 귀한 존재입니다. 특히 상수리나무와 샘물은 깊은 연관이 있습니다. 다시말해 이 나무가 있다는 것은 땅 밑에 우물 샘이 잇을 확률이 높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런 점을 미루어볼 때 아브라함과 야곱이 왜 세겜에 정착하려고 하였는지 이해가 갑니다.




그렇다면 야곱이 세겜 족에게 준 100 크시타는 대체 어느 정도의 액수입니까? 크시타는 히브리어로 케시타인데 욥42장에선 케쉬타로 등장하는 화폐단위로 대력 은돈 한 개에 해당한다고 합니다. 은은 구약에서 가장 일반적으로 통용된 금속 화폐였습니다. 은은 보석이었고 부의 상징이었으며 궁전과 신전을 장식하는 데 사용되기도 하였습니다. 물론 열왕기시대에 이르러서는 금보다 상대적으로 가치가 낮았지만 은은 금보다 더 풍부한 화폐로서 사용되었습니다. 화폐단위로서 은은 세 가지 종류가 있었습니다. 하나는 세겔로서 약 11.4g이고, 또 하나는 달란트로서 약34.27kg이고 세 번째가 크시타인데 도무지 어느 정도인지 알지 못하는 화폐단위입니다. 그러나 추정하기로 크시타는 늘 달란트를 언급한 뒤에 언급되는 것으로 보아 달란트보다 더 큰 화폐단위가 아닌가 여겨집니다. 그러므로 오늘 야곱이 지불한 100 크시타는 상당히 많은 은을 지칭하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절대 손해 보지 않기로 유명한 우리 야곱이 이렇게 비싼 대가를 치루고서도 이 땅을 샀다는 것은 그만큼 세겜이 가치가 있다는 반증인 것입니다

 



2. 잘못된 선택의 대가




그러나 야곱의 이 선택은 결코 좋은 선택이 아니었습니다. 전에도 살폈듯이 좋은 선택에는 반드시 하나님께 먼저 기도하는 것으로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야곱의 이 선택에는 사전에 기도했다는 기록이 없습니다. 잠깐 여기서 우리는 위기를 맞은 야곱과 위기를 넘긴 야곱이 어떻게 다른가에 대해 알아보아야 합니다. 위기 대의 야곱은 철저히 하나님께 간구하고 의존하는 모습이었습니다. 형 에서와의 재회를 앞둔 그는 먼저 하나님께 자신을 구원해 달라고 간구했습니다.

내가 주께 간구하오니 내 형의 손에서 에서의 손에서 나를 건져 내시옵소서 내가 그를 두려워함은 그가 와서 나와 내 처자를 칠까 겁이 나기 때문이니이다”(32:11) 

 

그리고 그는 얍복 나루를 건너기 전에 홀로 남아 밤새도록 하나님과 씨름하면서 이렇게 떼를 썼습니다.

당신이 내게 축복하지 않으면 가게 하지 아니하겠나이다”(32:26)




그런 야곱이 하나님의 은혜로 모든 위기에서 벗어나자 다시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갔습니다. 야곱은 자신이 하나님에게 서원한대로 아버지 이삭이사는 브엘세바로 돌아가야 했습니다. 그런데 에서 형이 자신이 사는 세일로 돌아가고 평안이 찾아오자 야곱은 해이해지기 시작했습니다. 가는 도중에 숙곳이라는 곳에 도착합니다. 그런데 갑자기 야곱이 그곳에다 자기를 위해 집을 지었습니다(33:17). 숙곳에 얼마동안 야곱이 살았는지 우리는 모릅니다. 성경은 18절에서 다시 야곱이 길을 떠나더니 세겜에 이르자 이곳에 정착한 것입니다. 그리고 세겜 족에게 값을 치루고 밭을 샀습니다. 이 정도면 야곱은 고향은 까마득하게 잊어버리고 세겜에서 완전히 정착해서 살려고 작정한 것입니다. 얼마나 기분이 좋았으면 야곱은 세겜을 자기식대로 이름까지 지었습니다. 그 이름이 33:20에 있는 엘엘로헤이스라엘입니다. 좀 의역하여 풀이하면 이스라엘에게 좋은 은혜를 베푸신 하나님이 됩니다. 세겜 같이 좋은 땅을 주신 것이 하나님의 은혜라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두고 은혜의 남용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뜻인지 아닌지 하나님게 물어보지도 않고 자기 마음대로 결정해 놓고 당장은 좋아 보이니까 그것은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증거라고 운운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야곱은 이렇게 중요한 결정에 대해 한 번도 하나님에게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인간의 표리부동한 모습을 발견하게 됩니다. 위기에 처할 때엔 그렇게 하나님께 도와달라고 매달리다가 모든 위기가 사라지면 어느새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맙니다. 물에 빠진 사람을 구해주었더니 오히려 내 보따리를 내 놓으라고 떼를 쓰는 격입니다. 이를 두고 적반하장이라 합니다. 은혜를 잊어버린 사람은 사람이 아닙니다. 가장 위험하고 용서를 받지 못한 사람이 배신자입니다. 전쟁에서도 일반 포로들은 다 살려주지만 배신자는 즉각 처형합니다. 하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은 은혜를 저버리는 사람에게 그에 상당한 보응을 행하십니다. 그 보응은 아픔입니다. 배신의 정도가 클수록 아픔도 큰 법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아픔을 통해 말씀 하시고 징계하시고 불순종한 자를 회심시키십니다. 타락한 인간은 이런 벌을 받아야 정신을 차리고 자신의 행동을 고칩니다.




드디어 하나님이 행동에 나섭니다. 342절에 보니 야곱에게 청천벽력 같은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자신이 애지중지하던 외동딸 디나가 세겜 족의 추장인 세겜에게 강간을 당한 것입니다. 디나는 요셉 바로 이전에 태어난 딸이기에 나이로는 약 15세 전후로 보입니다. 당시 근동에서 여자들의 결혼 적령기가 우리 나이로 13세 전후였는데 디나는 결혼적령기를 조금 지난 것으로 봅니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결혼적령기의 딸이 다른 사내에게 겁탈을 당했으니 얼마나 야곱이 놀랐을까요? 성경은 이에 대해 야곱이 잠잠하였다’(5)고 보도합니다. 히브리어로 하라쉬인데 이는 할 말을 잃어버리다라는 뜻입니다.




인생을 살면서 적어도 이런 아픔은 겪지 않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아픔도 정도가 있기 때문입니다. 어떤 아픔은 너무 깊은 상처를 내기에 쉽게 아물지 않습니다. 인간에게 가장 깊고 쓰린 아픔은 자식들에 대한 징벌이 발생했을 때입니다. 부모들은 자식이 아프면 차라리 자신이 아픈 것이 낫다고 말합니다. 우리 주변에 자식을 먼저 하나님에게 보낸 부모들이 있습니다. 월이 흐를 만큼 흘렀지만 부모의 얼굴에는 어딘지 모를 그늘이 있음을 봅니다. 그만큼 자식에게 변고가 일어난다는 것은 가장 가슴 아픈 일입니다. 오죽하면 천추의 한’(가을 하늘이 천 번이 바뀌어도 변하지 않을 한)이라 하였을까요?




3. 복수의 활극




야곱에게 디나의 사건은 아마 천추의 한을 품게 만들었을 것입니다. 그래서일까요? 야곱은 히우 아들들에 의해 벌어지는 복수의 할극을 적극적으로 막지 않고 방조합니다. 아들들은 누이동생의 일을 복수하기 위해 할례를 가지고 세겜 족을 속이고 그들을 기습하여 모든 남자를 살해합니다.




죄악에도 경중이 있습니다. 가장 중형을 선고받아야 할 장본인들은 이 살인사건을 앞장 서 주도한 두 아들입니다. 바로 시므온과 레위입니다. 시므온과 레위는 야곱이 레아에게서 얻은 둘째와 셋째 아들입니다. 25절을 보세요. 이들은 세겜의 남자들이 모두 할례를 받고 거동이 불편한 제 3일 날을 틈 타 성읍을 기습하여 모든 남자들을 죽입니다. 참으로 천인공노할 만행입니다. 하나님은 이 둘을 절대로 잊지 않고 훗날 이들에게 저주를 내리십니다. 495~7절입니다.


시므온과 레위는 형제요 그들의 칼은 폭력의 도구로다. 내 혼아 그들의 모의에 상관하지 말지어다 내 영광아 그들의 집회에 참여하지 말지어다 그들이 그들의 분노대로 사람을 죽이고 그들의 혈기대로 소의 발목을 끊었음이로다. 그 노여움이 혹독하니 저주를 받을 것이요 분기가 맹렬하니 저주를 받을 것이라 내가 그들을 야곱 중에서 나누며 이스라엘 중에서 흩으리로다




하나님의 이 저주에 따라 훗날 모세는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축복함에 있어서 시므온에 대해선 아예 언급조차 하지 않으며(33), 훗날 시므온 지파는 유다 지파에 종속되어 지파로서의 자격을 상실했고(대상12:25), 레위지파는 자신의 땅을 할당받지 못하고 여러 성읍으로 나뉘어져 흩어져 살아야 했습니다.




다음으로 범죄자들이 또 있습니다. 27~28절을 보면 사람을 죽인 것도 모자라 야곱의 다른 아들들이 세겜에 시체가 널부러진 곳을 찾아가 주인을 잃은 영과 소와 마귀와 모든 재물을 약탈한 것입니다. 인간의 탈을 쓰고 어떻게 이런 짓을 할 수 있습니까? 자기 여동생을 강간했다고 하여 이렇게 집단학살을 하고 남은 재물들을 모두 노략질하면 세겜족의 여자들을 비롯한 남은 사람들이 무엇을 먹고 살겠습니까?




더욱이 우리를 놀라게 하는 것은 이런 만행에 대해 야곱과 아들들의 인식입니다. 30절과 31절을 보세요. 야곱이 뭐라고 합니까? 아들들의 만행을 꾸짖고 즉시 하나님 앞으로 나아와 회개를 하도록 유도하기는커녕 가나안족과 브리스 족속이 복수를 하러 오면 자신이 위험에 질 것이라며 걱정하고 있습니다. 얼마나 이기적인 태도요인식입니까? 이에 대해 아들들도 마찬가지입니다. 31절의 말을 풀이하면 자신들의 행위가 정당하다는 것입니다. 이들의 기본적인 인식은 당한만큼 돌려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의 계산법을 도입하고 있습니다.




4. 교훈




오늘 이 야기를 통해 우리는 두 가지 교훈을 얻어야 합니다.

첫째, 하나님께 대한 약속을 지키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약속은 신뢰의 핵심입니다. 약속을 어기는 사람을 신뢰하지 못합니다. 하나님도 약속을 어긴 아담과 하와에게 합당한 벌을 주었습니다. 하나님나라는 약속으로 이루어지는 나라입니다. 약속을 어기는 자가 배신자입니다. 약속은 인간의 모든 영역에 적용됩니다. 그래서 약속을 사회적 생명이라 하는 것입니다. 신의를 저버린 사람은 사회에서 매장됩니다. 특히 하나님과 한 약속을 어기는 대가는 혹독합니다. 야곱이 하나님과의 약속을 어긴 대가가 얼마나 크고 놀라운 것인지 아마 야곱은 땅을 치고 후회했을 것입니다.




둘째, 복수는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주님은 왼 뺨을 맞거든 오른 뺨마저 돌려대라고 가르치셨습니다. 이 가르침에는 진짜 복수는 사랑이라는 의미가 담긴 것입니다. 당신을 괴롭히는 사람이 있습니까? 그렇다면 당신은 더욱 그 사람을 사랑하십시오. 하나님의 나라는 약속을 지킨 사람에게 하나님의 사랑의 선물을 주시는 곳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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