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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의 목회: 바울서신에 나타난 바울 목회의 윤곽 ②

신약학

by 김경호 진실 2018. 2. 9. 0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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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의 목회: 바울서신에 나타난 바울 목회의 윤곽 ②



이진섭 교수 / 에스라성경대학원대학교 신약학


3.2. 교회 형편에 따른 목회: 칭찬 받는 교회와 책망 받는 교회

  
▲ 이진섭 교수
ⓒ<교회와신앙>

로마서와 에베소서와 골로새서가 목회의 본질, 목표, 방향을 말하고 있다면, 빌립보서, 데살로니가전후서, 갈라디아서, 고린도전후서는 바울 목회의 구체적 모습과 방법을 보여주고 있다. 이 여섯 개의 서신은 다음의 세 가지 점에서 앞의 세 가지 서신과 구별된다.


첫째, 이 여섯 개 서신은 앞의 세 서신과 달리 편지를 받는 네 교회(빌립보교회, 데살로니가교회, 갈라디아교회, 고린도교회)에 대한 바울의 직접적인 목회 영향력을 보여주고 있다. 이 네 교회에 대한 바울의 목회 영향력은 직접적이고 지대했다.24) 둘째, 이 네 교회는 각각 바울의 목회 지도를 받을 만한 특별한 상황에 직면해 있었다. 앞에 다룬 세 서신의 교회에도 구체적인 목회 상황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이 여섯 서신에 나타난 네 교회에는 목회자 바울이 꼭 감당해야 하는 특별한 상황이 드리워져 있었다.25) 셋째, 이 네 교회에 주는 서신은 목회적 칭찬과 책망의 어조가 보다 분명하게 드러나고 있다. 빌립보교회와 데살로니가교회는 책망보다는 칭찬을 받고 있고, 갈라디아교회와 고린도교회는 칭찬보다는 책망을 받고 있다.


바울은 이 네 교회에 여섯 개의 편지를 전달하며 각 교회에 필요한 목회적 필요를 채우고 있다. 그래서 각 서신은 각 교회의 구체적 문제와 사안에 따른 목회적 처방을 다루고 있다. 따라서 이 서신들은 목회자 바울이 어떤 방식으로 목회하고 있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3.2.1. 칭찬받는 교회


바울의 칭찬을 많이 받는 교회는 빌립보교회와 데살로니가교회이다. 이 두 교회는 바울에게 많이 칭찬받는다는 점에서는 유사점이 있지만, 칭찬받는 상황과 배경은 사뭇 다르다. 빌립보교회는 오랫동안 바울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며 바울의 사역에 동참하여 칭찬을 받지만, 데살로니가교회는 세워지지 얼마 되지 않은 상황에서 외부의 환난을 잘 견디며 삶의 열매를 맺고 있는 것으로 칭찬받는다. 이 두 교회가 칭찬 받는다는 점은 동일함에도, 두 교회를 목양하는 바울의 목회 방법과 지침은 각 교회의 상황에 따라 다르다. 따라서 빌립보서와 데살로니가전후서 세 서신은 바울이 잘되고 있는 교회를 어떻게 목회하는지 보여주고 있다.


3.2.1.1. 빌립보서: 잘되는 교회


바울서신의 교회 중에 바울과 가장 친밀한 관계를 맺고 있는 교회가 있다면 그 교회는 빌립보교회이다. 바울과 빌립보교회 사이의 끈끈한 관계는 빌립보서 이곳저곳에 잘 표출되어 있다(빌 1:4, 6, 7, 8, 24; 2:24, 30; 4:9, 14-18 등). 이런 긴밀한 관계는 아마도 크게 두 가지 사실과 관련된 듯 보인다.


첫째, 빌립보교회는 바울이 사역했던 그 어떤 교회보다도 처음부터 잘 자라는 교회였다는 사실이다. 바울이 빌립보에서 복음을 전하자 여러 사람들이 복음을 받아들이게 되었고(행 16:11-15), 반대가 있는 중에도 믿는 자는 늘어갔다(행 16:19-40). 아마도 이런 흐름은 계속되어 빌립보교회는 다른 어떤 교회보다도 빨리 교회 지도력을 확립하고 교회를 조직화하여 빌립보서가 쓰일 당시에는 이미 ‘감독들과 집사들’을 세웠던 것처럼 보인다.26) 자연히 바울은 잘되는 교회에 더 깊은 애정을 가질 수 있었을 것이다.


둘째, 더 중요한 사실은 빌립보교회가 바울의 사역에 깊은 관심을 갖고 함께 동참하는 모습을 보였다는 점이다. 빌립보교회는 교회가 설립 된 초기부터 바울의 사역에 함께 하려고 경제적 지원을 한 것으로 보인다(빌 4:15-16). 바울이 로마 감옥에 갇히게 되었을 때에도 빌립보교회는 바울과 함께 하였다(빌 1:7; 4:14).27) 경제적으로 도왔을 뿐 아니라, 감옥에 있는 바울을 옆에서 돕게 하려고 에바브라디도를 보냈다(빌 2:25-30; 4:18). 이런 빌립보교회의 사랑과 수고를 아는 바울은 그 교회를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사모한다(빌 1:8).


이렇듯 바람직한 교회로 자라가는 빌립보교회는 바울에게 큰 기쁨이 되고, 바울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게 된다.


하지만 이렇게 잘되는 빌립보교회에도 어려움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빌립보서는 대체로 두 가지 어려움을 보여준다. 첫째는 바울을 돕고 후원하려던 일과 관련하여 교회 안에 일어난 갈등의 문제이고(빌 1:27b; 2:1-4; 2:19-30), 둘째는 유대주의자들이 신학적 이유로 (로마제국을 등에 업고) 빌립보교회를 핍박하는 문제이다(빌 1:28; 2:5-11; 3:1-21). 전자가 내적 연합의 문제라면, 후자는 외적 대결의 문제이다(빌 1:27-28).28)


바울은 잘되는 교회라고 해서 이런 문제의 조짐과 상황을 그냥 덮어두고 넘어가지 않는다. 그렇다고 무분별하게 책망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빌립보교회의 상황과 필요를 고려하여 목회적 권면과 지침을 적절히 제공한다. 이런 목회 권면의 특징을 몇 가지로 압축할 수 있다.


첫째, 바울은 교회가 잘한 것을 분명하게 칭찬한다. 빌립보교회는 어려운 처지에 있는 바울을 도우려고 사람과 헌금을 보내왔다(빌 1:7; 2:25, 30; 4:14-18). 사실 로마 감옥에 있는 바울과 한 편이 된다는 것이 당시에 그리 쉬운 것처럼 보이지는 않는다.29) 하지만 빌립보교회는 그런 위험을 감수하며 바울과 함께 했다. 바울은 그런 빌립보교회의 행동을 칭찬한다. 목회 지도자로서 칭찬해야 할 때 분명하게 칭찬해야 한다는 점을 보여준다.


둘째, 바울은 또한 칭찬의 내용과 이유를 분명히 밝힌다. 바울의 칭찬은 단순한 입발림이 아니다. 단순히 인사 차원이나 불필요한 마찰을 피하려는 칭찬이 아니었다. 오히려 칭찬의 요점과 이유가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밝혔다. 갇힌 바울과 함께 하려던 빌립보교회의 결정을 칭찬했다(빌 1:7). 또한 바울 자신이 경제적 도움을 받아서 칭찬하는 것이 아니라 빌립보교회가 바른 삶의 열매를 맺고 있기 때문에 칭찬한다는 점도 분명히 밝혔다(빌 4:10-18). 자칫하면 이런 말이 상대의 기분을 상하게 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바울은 무엇을 칭찬하며, 왜 칭찬하는지 명확히 제시하고 있다. 이점은 목회자가 무엇을 어떻게 칭찬해야 하는지를 잘 알려준다.


셋째, 바울은 잘되는 교회라고 해서 문제점을 그냥 덮어두지 않는다. 비록 빌립보교회가 바른 열매를 맺고 있지만, 그 안에는 균열과 대결의 문제가 있었다. 바울은 이점을 인식하고 그에 대한 목회적 권면을 적절하게 제시하고자 한다. 그래서 그는 자기 상황을 말하며 권면한다. 바울 주위의 다른 형제들이 힘써 연합하여 핍박하려는 무리와 대결하고 있다는 점을 드러내면서(빌 1:12-26), 빌립보교회도 잘 연합하여 대적자를 두려워하지 말라고 권면한다(빌 1:27-30).30) 이런 바울의 모습은 목회자가 교회의 어려움과 문제를 적절히 인식하여 바른 권면을 제대로 해야 함을 적절히 제시해 준다.


넷째, 바울의 이런 권면은 체계적이고 구체적이며 실제적으로 진행된다. 예를 들어 바울은 균열의 문제와 관련하여, 먼저 연합의 원리를 제시하고(빌 2:1-4), 그 균열의 동기가 되었던 에바브로디도 문제를 적절히 처리할 것을 말하며(빌 2:19-30), 결국 이 균열의 중심에 있는 두 여인(유오디아와 순두게)과 교회 전체에게 한 마음이 될 것을 강하게 요청한다(빌 4:2-3). 원리도 제시하고, 구체적 사안도 언급할 뿐 아니라, 실제적으로 효과를 얻을 수 있는 권면을 한다. 바울 권면의 이러한 성격은 바울이 얼마나 목회적 필요와 해결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는지를 잘 알려준다.

이처럼 빌립보서는 바울이 잘되는 교회에 어떤 목회 권면을 하고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바울은 깊은 사랑의 관계에 있는 빌립보교회를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목회하려고 한다(빌 1:8). 구체적으로 칭찬하지만, 문제점 또한 명확히 지적하며 실제적으로 해결하려고 한다. 빌립보서는 잘되는 교회에 맞는 목양 방법을 한편에서 잘 알려준다.


3.2.1.2. 데살로니가전후서: 개척 교회


데살로니가교회 또한 바울에게 칭찬받는 교회이다. 어쩌면 겉으로 보기엔 바울이 빌립보교회보다 데살로니가교회에 더 많은 칭찬을 하는 것처럼 보인다(살전 1:2-10; 2:13-26; 3:6-13; 살후 1:3-12; 2:13-17).31) 하지만 이런 칭찬은 데살로니가교회의 사정과 상황을 감안해서 생각할 필요가 있다. 고려할 점은 두 가지이다.


첫째, 데살로니가 교회는 개척된 지 얼마 되지 않은 어린 교회였다. 아마도 바울은 이 교회에 몇 개월 정도 머물고 떠나게 되었는지 모른다.32) 하지만 데살로니가교회는 가르치는 장로가 없는 어린 교회였음에도 믿음과 사랑과 소망의 열매를 맺고 있다(살전 1:3; 살후 1:3-4).33) 바울은 데살로니가교회가 개척된 지 얼마 되지 않았음에도 열매를 맺고 있는 점을 칭찬하며 감사하고 있다.


둘째, 이 어린 교회가 환난 속에서도 잘 인내하고 있다는 점이다. 데살로니가교회는 바울 일행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환란을 인내하고 있었다. 교회가 환난 중에도 잘 참고 있는 모습을 바울은 매우 높게 평가하며 칭찬하고 있다(살전 3:6-13; 살후 1:3-12).


따라서 데살로니가교회에 대한 칭찬은 어린 교회가 환난 받는 중에도 잘 인내하며 신앙의 열매를 맺고 있다는 점을 감안한 칭찬이다. 격려의 의도가 다분히 들어간 칭찬이다. 데살로니가교회가 칭찬 받는 것은 분명하지만, 그 칭찬은 교회의 특정 상황에 맞게 적절히 고안된 것이다.


이 교회에 바울은 목회자의 마음으로 특별히 세 가지 점을 권면한다. 첫째는 교회에 필요한 가르침이다(참조. 살전 4:1-5:22). 아직 어린 교회이기에 당장 배우고 알아야 할 가르침이 절실하기 때문이다. 둘째는 바울 일행에 대한 오해를 푸는 일이다(참조. 살전 2:1-12; 2:17-3:5). 지도자인 바울 일행이 환난을 피해 나온 점이 환난 받는 교회 입장에서 오해로 남을 수 있기 때문이다. 셋째는 교회에 남은 문제를 해결하는 일이다(참조. 살후 2:1-3:12). 갓 개척된 교회가 환난의 와중에서 여러 가지 각종 문제에 직면하고 있기 때문이다. 바울은 지금 교회와 함께 있지 못하기에 편지로나마 목회 사역을 감당하려고 한다.


데살로니가전후서에 나타난 바울의 목회를 몇 가지 특징으로 압축할 수 있다.

첫째, 바울은 개척 교회의 상황에 맞게 대응하고 있다. 칭찬이 데살로니가전후서에 자주 반복되는 것은 환난에 직면해 있는 어린 교회의 상황을 특별히 고려한 처사로 보인다(살전 1:2-10; 2:13-26; 3:6-13; 살후 1:3-12; 2:13-17). 어린 교회에는 격려가 필요하고, 환난에 있는 교회에는 더욱 그렇다.


둘째, 바울은 직접 만나려는 노력을 꾸준히 시도하고 있다. 데살로니가를 떠난 후 바울은 그 교회가 걱정되어 노심초사했다. 자신이 직접 가보려했지만 여의치 않아 대신 디모데를 보낸다(살전 3:1-5). 바울 일행에 대한 오해도 있을지 모르고(살전 2:9, 17-20), 환난으로 각종 다양한 문제가 생길지도 모르기 때문이다(살전3:6-8). 바울은 이러한 점을 분명히 알아 교회를 목양하기 원한다. 그만큼 바울은 현장 목회를 중시하고 있다.


셋째, 갓 시작된 교회가 배워야 할 점을 지속적으로 가르치고 있다(살전 4:1-5:22; 살후 2:1-3:12). 개척된 교회는 단순간의 가르침으로 모든 것을 배울 수 없다. 차근차근 필요한 점을 체계적으로 배울 필요가 있다. 바울은 자신이 함께 있어서 가르칠 수 없었기에 편지로나마 필요한 가르침을 주는 방법을 취했다. 바울에게 데살로니가전후서는 곧 목회적 가르침의 방편이었다.


넷째, 바울은 문제 될 것을 미리 막으려는 예방 목회를 하고 있다. 데살로니가교회는 여러 잠재적인 문제를 안고 있었다. 바울은 이러한 잠재적 문제를 직시하여 그에 맞는 목회적 권면을 한다. 신비 종교 영향으로 인한 성적 음행의 문제(살전 4:3-8), 일손을 놓는 문제(살전 4:11-12; 살후 3:6-12), 신자의 부활과 주의 강림에 대한 문제(살전 4:13-18; 5:1-10; 살후 2:1-12), 교회 지도력의 문제(살전 5:12-13) 등을 내다보며 권면한다. 손 쓸 수 없을 때까지 문제를 키우기보다, 미리 문제를 내다보고 예방하는 목회를 한다.


이처럼 데살로니가전후서는 개척된 교회가 잘 자라가면서 당하게 되는 각종 어려움과 문제를 바울이 어떻게 처리하고 있는지 잘 보여준다. 데살로니가전후서는 개척 교회와 환난 당하는 교회를 어떻게 목회해야 하는지 가르쳐주는 서신이다.


3.2.2. 책망받는 교회

바울에게 심한 책망을 받는 교회는 갈라디아교회와 고린도교회이다. 바울은 이 두 교회를 엄하게 책망한다. 그 책망은 교회의 본질을 무너뜨리고 그들의 구원에 의문을 던지는 지경까지 나갈 만큼 심각하다(갈 1:6-9; 3:3; 5:12; 5:19-21; 고전 3:3, 14-15, 16-17; 6:19-10; 고후 13:2).34) 하지만 이 두 교회가 책망받는 이유와 상황에는 차이가 있다. 갈라디아교회는 이미 받은 복음을 떠나 다른 복음을 받아들이는 문제로 책망받고 있는 반면, 고린도교회는 받은 복음을 삶 속에서 진정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문제로 책망받는다. 갈라디아교회가 가르침과 교리의 문제로 책망받는다면, 고린도교회는 삶과 현실적 문제로 책망받는다. 전자가 이론적 신학적 문제이라면, 후자는 실제적 윤리적 문제이다. 이 두 교회를 책망하는 바울의 심정은 모두 심각하고 간절하다. 이러한 바울의 심정과 책망은 갈라디아서와 고린도전후서에 잘 반영되어 있다. 따라서 갈라디아서와 고린도전후서는 문제의 교회를 다루는 기본 원리와 다양한 방법을 보여준다.


3.2.2.1. 갈라디아 교회: 다른 복음을 받아들이는 교회


바울서신의 교회 중에 바울에게 책망을 가장 심하게 받는 교회는 갈라디아교회이다. 갈라디아교회는 복음을 받아들였지만 교인들은 얼마 되지 않아 그 복음을 저버리는 가르침을 받아들인다(갈 1:6). 바울은 그런 가르침을 ‘다른 복음’이라고 규정하고, 그 ‘다른 복음’을 따르는 사람들을 책망하며 자기가 전한 복음의 타당성을 변론한다(갈 1:6-9). 그 변론은 크게 네 단계로 진행되고(갈 1:11-2:14; 2:15-4:11; 4:12-20; 4:21-31), 그에 따른 권면이 제공된다(갈 5:1-6:10).35) 이런 변론과 권면으로 바울은 어그러진 갈라디아교회를 바로 잡는 목회 활동을 한다.


여기에 나타난 목회 활동의 특징을 네 가지로 살필 수 있다.

첫째, 바울은 복음의 본질을 사수하는 목회를 감당한다(갈 1:6-10). 바울은 복음의 본질이 왜곡 당할 때 가만 있지 않았다. 복음을 무너뜨리는 잘못된 가르침을 지적하고 그 문제의 본질을 철저하게 파헤치며 변론한다. 복음의 본질과 관련된 중요한 부분은 매우 강력하게 대응하고 있다. 바울의 목회는 복음의 본질을 지키려는 목회라고 말할 수 있다.


둘째, 바울의 목회는 바른 가르침의 목회였다(갈 1:11-2:14; 2:15-4:11; 4:12-20; 4:21-31). 바울은 단순히 바른 교리를 암기하라는 식으로 말하지 않는다. 오히려 무엇이 바른 복음인지를 차근차근 다시 설명하고 다양한 각도로 자세히 따져 가르친다. 문제가 심각하다고 해서 밀어붙이기 식으로 해결하려고 하지 않는다. 오히려 사실에 근거하여 말하고 바른 지식과 현실 체험에 기초하여 교인을 설득해 간다. 바울은 문제 교회를 철저하게 가르치고 설득하는 목회를 하고 있다. 바울이 문제 교회를 목회하는 방식은 바른 가르침을 회복하는 것이었다.


셋째, 바울의 목회는 윤리를 회복하는 목회였다(갈 5:2-6:10). 복음의 본질을 규명하려는 바울의 노력은 결국 윤리적 권면과 다른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함께 가는 것이다(갈 1:11-5:1; 5:2-6:10). 따라서 갈라디아서에서 바울이 보여주는 목회 활동은 일차적으로 복음의 진리를 사수하는 것이지만, 그것은 동시에 윤리적 삶이 온전하게 드러나는 것이다. 바울의 목회 활동은 신자의 윤리적 삶을 향한 목회이다.


넷째, 바울은 문제 회복에 필요한 다양한 점을 고려한다(갈 6:1-10). 단순히 논쟁에서 이기기 위해 갈라디아서를 쓰지는 않는다. 논쟁에서의 승리가 목표가 아니라, 교회의 온전한 회복이 목표이다. 그래서 바울은 회복될 때의 여러 상황을 고려하고 있다. 잘못된 길을 간 교인들이 돌아 올 때는 그들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어려움 속에서도 바른 가르침을 이끌던 사람들에게는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바른 가르침에 남아 있던 사람들은 스스로를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지 등을 모두 고려한다(갈 6:1, 2-5; 6-9, 10). 논쟁을 위해 논쟁하지 않고 교회를 온전히 만들려는 목회자의 마음으로 논쟁한다. 바울의 목회는 회복되는 과정을 내다보는 목회이다.


이처럼 갈라디아서는 복음의 본질이 위협받는 어려움에 처했을 때 바울이 어떻게 목회했는지를 잘 보여준다. 따라서 교회가 잘못된 가르침에 직면했을 때 어떻게 목회해야 하는가를 갈라디아서를 통해 배울 수 있다.


3.2.2.2. 고린도교회: 삶에서 복음을 거부하는 교회


바울에게 크게 책망 받는 또 다른 교회는 고린도교회이다. 고린도교회는 바울이 적지 않은 기간 머무르며 사역했던 교회일 뿐 아니라(행 18:11)36) 적지 않은 사람이 복음을 듣고 모인 교회였다(행 18:9-10). 하지만 고린도교회는 기대와는 달리 바울의 교회 중에서 가장 많은 문제를 일으킨 교회였다.


문제는 주로 교인들의 삶에 대한 것이었고, 그 삶의 문제는 매우 다양했다. 고린도전서는 그 다양한 문제를 잘 보여준다. 분파(1:10-4:21), 음행(5:1-13), 법정 소송(6:1-11), 음행에 대한 잘못된 주장(6:12-20), 성관계와 결혼에 대한 오해(7장), 우상 제물 먹는 것(8-11장), 예배 때 수건을 쓰지 않는 행동(11:2-16), 성찬시의 불화(11:17-34), 은사 경쟁(12-14장), 부활 사상 거부(15장) 등이다.


이처럼 고린도교회가 가진 문제는 다양했지만, 그 문제들에는 공통적인 요소가 있었다. 교인들이 복음을 받아들이는 듯 보이긴 하지만, 실제 삶으로는 복음을 온전히 받아들이지 않는 모습이 그것이다. 이런 모습 때문에 바울은 고린도교회를 심하게 책망하며 바른 것을 가르치고 권면한다.


이 권면을 네 가지 특징으로 살필 수 있다.


첫째, 바울은 교인들의 심각한 윤리적 문제를 그냥 덮어두지 않았다는 점이다. 고린도전후서는 고린도교회의 삶의 문제를 심각하게 다룬다. 갈라디아서가 복음의 본질을 파괴하는 잘못된 가르침의 문제를 심각하게 다루었듯이, 고린도전후서는 복음의 본질을 무기력하게 만드는 잘못된 윤리적 문제를 심각하게 다룬다. 영역에는 차이가 있지만, 갈라디아서나 고린도전후서에 나타난 목회 권면은 모두 복음의 본질이 무시되는 점을 극복하고자 한 것이다.


둘째, 바울은 각종 문제에 대해 원리를 제시하며 구체적인 답과 대안을 제공한다는 점이다. 예컨대, 은사 경쟁 문제를 다룰 때에는 1) 은사의 다양함과 은사의 이유에 대해 먼저 원론적으로 제시하고(12장), 2) 은사를 발휘하는 적절한 방법을 말한 후(13장), 3) 은사 경쟁 질문에 대한 바른 답을 제시한다(14장).37) 원론과 원리를 제시하며 동시에 구체적 답을 제공한다. 바울은 원리와 실제가 함께 가는 방식으로 교회 문제를 다루고 있다.


셋째, 바울은 교회에 등장하는 문제를 모두 총체적으로 다루고 있다는 점이다. 고린도전후서는 바울이 교회 문제를 얼마나 다양하게 다루고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긴박한 문제를 다루지만(고전 1:10-6:20), 또한 중요한 문제들도 다룬다(고전 7:1-15:58). 개인적 측면도 다루지만(고전 7:1-11:1), 공동체적 측면도 다룬다(고전 11:2-14:40). 일상생활의 문제를 다루고, 예배시의 문제도 다룬다. 그렇다고 해서 이 모두를 섞어 혼란스럽게 처리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바울은 각각의 문제를 철저히 다루면서, 결국은 교회 안에 있는 다양한 문제를 처리해나간다. 바울의 목회는 꼼꼼하고 총체적이다.


넷째, 바울은 교인들의 삶을 바르게 회복하려는 목회를 한다는 점이다. 갈라디아서와 마찬가지로 고린도전후서도 교인들의 회복을 염두에 두고 있다. 각종 가르침과 권면은 궁극적으로는 회복을 향해 있다. 교회의 회복을 생각해서 바울은 자신의 계획도 변경하며(고후 1:15-2:4), 교회의 회복을 위해 징계의 조치도 고려한다(고후 13:1-7). 고린도전후서에는 바울의 책망이 강하게 드러나지만, 그 책망은 교회의 회복을 바라는 순간적인 조치일 뿐이다.


이처럼 고린도전후서는 복음에 합당한 삶을 크게 벗어난 교회를 바울이 어떻게 목회했는지를 잘 보여준다. 고린도전후서는 삶에 심각한 윤리적 문제를 가진 교회에서 어떻게 목회해야 하는지를 가늠하게 한다.    < 계 속 >


  

각주)---------

24) 이 네 교회에 대한 바울의 사역은 사도행전에 요약적으로 기술되어 있다. 행 13:13-14:25(갈라디아교회); 16:12-40(빌립보교회); 17:1-9(데살로니가교회); 18:1-17(고린도교회)

25) 바울서신 각각에 나름대로의 배경과 상황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 여섯 편지에 반영된 네 교회와 바울의 상황은 앞에서 다룬 세 편지에 나타난 교회와 바울의 상황보다 좀 더 직접적이고 구체적으로 드러나는 측면이 있다. 앞의 세 서신에 나타난 교회의 상황이 바울과 간접적으로 연결되어 있다면, 여기 여섯 편지에 나타난 교회의 상황은 바울과 보다 직접적으로 연관된다고 볼 수 있다.

26) 바울서신의 수신자로 ‘감독’과 ‘집사’가 등장하는 것은 빌립보서가 유일하다. 그 이유를 여러 각도에서 살펴볼 수 있겠지만, 아마도 가능성이 가장 높은 것은 다른 어떤 교회보다 빌립보교회가 건전하게 잘 자라서 보다 쉽게 조직화 되었을 것이라는 추측이다(참조. Hawthorne,<빌립보서>, p. 78). ἐπίσκοοπι καὶ διάκονοι(‘에피스코포이 카이 디아코노이’)를 ‘감독들과 집사들’로 번역하지 않고, ‘섬기는 감독들’이라고 번역하는 가능성에 대해서는 Hawthorne,<빌립보서>, pp. 80-81을 보라.

27) 빌립보서가 가이사랴에서 쓰였거나(Hawthorne, <빌립보서>, p. 54) 에베소에서 쓰였다고 보기도 하지만(Carson, Moo and Morris, New Testament, pp. 319-21), 로마에서 쓰였다고 보는 전통적 시각이 아직 유효하다고 판단된다(Fee, Philippians, pp. 34-37). 특별히 빌립보서 전체에서 바울의 상황과 빌립보 교회의 상황이 거의 동일시되는 점은 로마설을 더욱 지지하게 만든다(이진섭, ‘빌 1:15’, pp. 264-65). 쓰인 장소에 대한 여러 입장의 주장과 논쟁을 간략하게 보려면, Hawthorne, <빌립보서>, pp. 44-54를 참조하라.

28) 바울은 빌립보교회에게 권면하려는 점을 1:27-28a에서 두 가지로 제시한다. 한 가지는 빌립보교회가 복음의 신앙을 위하여 하나로 연합하라는 것이며, 또 한 가지는 대적하는 자를 두려워 말고 굳건히 서라는 것이다. 이 두 가지 초점은 이후 2:1-4:9에서 자세히 확대 설명된다. 참조. 이진섭, ‘빌 1:15’, pp. 265-67.

29) 바울이 전하는 ‘하나님(신)의 아들의 복음’(참조. 롬 1:2-4, 9)은 자칫하면 로마 황제를 거부하는 것이나 로마 제국의 정치 이데올로기를 반대하는 것으로 비춰질 수 있었다. 로마 황제는 ‘신의 아들’로 여겨졌고(Scarre, <로마황제>, pp. 19-20, 33, 47-48), ‘복음’(εὐαγγέλιον)은 그리스-로마 사람들에게 전쟁의 승리나 황제의 탄생을 알리는 표현으로 이해되기도 하였기 때문이다(Friedrich, ‘εὐαγγέλιον’, pp. 721-25). 데살로니가 유대인들은 교회와 바울을 핍박할 때 바울 일행이 로마 황제를 거역하며 새로운 정치적 아젠다를 주장한다고 고소했었다(행 17:7). 바울이 로마 제국의 심장부인 로마에서 이와 유사한 죄목으로 갇혀 있다면, 바울 편에 선다는 것이 그다지 간단한 문제는 아닐 것이다. 참조. 이진섭, ‘빌 1:15’, pp. 260-62.

30) 이진섭, ‘빌 1:15’, pp. 264-67.

31) 보통 바울의 편지 앞부분에는 교회의 모습에 감사하는 내용이 한번 등장한다. 하지만 데살로니가전서에는 교회 모습에 대한 감사 내용이 세 번 반복해 등장하고(살전 1:2-20; 2:13-26; 3:6-13), 데살로니가후서에서는 두 번 반복해서 등장한다(살후 1:3-12; 2:13-17). 두 서신에 나타나는 이러한 특이점 때문에 바울 저작권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거나 편집설이 제안되기도 한다. 하지만 어린 교회를 격려하려는 바울의 의도로 볼 수 있는 여지가 충분히 남아 있다. 참고. 김세윤, <데살로니가전서>, pp. 31-32.

32) 바울이 유대인 회당에서 세 번의 안식일에 강론했다는 사도행전 17:2의 기록 때문에 데살로니가에서의 바울 체류 기간을 꼭 3주로 볼 필요는 없다. 매주 강론한 것이 아닐 수도 있고, 강론한 후에 더 머물렀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데살로니가전후서에는 바울이 3주 이상 체류했을 가능성을 보여주는 표현(예컨대, 교인에게 본이 되게 하기 위해 바울이 일했다는 표현)이 등장하기 때문이다. 아마 최고 몇 달 정도까지 머물렀을 가능성이 있다. 참고. Carson, Moo and Morris, New Testament, p. 347.

33) 살전 5:12에는 ‘수고하고’ ‘다스리며 권하는 자들’이 등장하지만 이들을 교회에 공식적으로 세워진 장로라고 보기는 어렵다. 칼빈은 이 표현이 가르치는 목사(가르치는 장로)를 지시한다고 보지만(<데살로니가전서>, pp. 463-64), 이는 좀 지나친 판단이라 생각된다(이진섭, ‘치리장로 개념은 성경적인가?’, pp. 241-42 n. 47). 12절에 세 동사가 모두 분사로 나란히 이어서 쓰였다는 점이 ‘다스리는’이라는 표현을 공식적 칭호로 보기 어렵게 할 뿐 아니라(pro. Bruce, <데살로니가전후서>, p. 216), 장로의 본질적 역할에 해당하는 ‘가르치는’이란 수식어가 빠진 것 또한 5:12의 표현을 공적 칭호로 보기 어렵게 한다. 초대교회에 장로는 모두 ‘가르치는 장로’였다는 점에 대해서는 이진섭, ‘치리장로 개념은 성경적인가?’, pp. 225-57을 참조하라.

34) 이런 의문을 대표적으로 표현한 구절은 고전 3:14-15이다. 보통 이 구절은 신자 개인이 상급은 받지 못하고 구원은 받는 것으로 해석되곤 했다. 하지만 그것이 본문이 뜻하는 점이라고 보기는 힘들다. 바울은 이 구절에서 엉터리 신자들 무리(교회)의 멸망 위험을 경고하며 사역자 자신만은 구원 받게 되는 것을 표현하고 있다. 이런 입장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이진섭, ‘교회의 구원과 멸망 위험(고전 3:14-15)’, pp. 177-206을 보라.

35) Longenecker(<갈라디아서>, pp. 5-6, 458-61)는 4:11까지 바울의 변증이 마무리되고, 4:12이후부터 바울의 부탁이 시작된다고 생각한다. 반면 Dunn(Galatians, pp. 21-22, 260-61. 284-86)은 5:1-12을 논증의 결론으로 보고, 바울의 논증이 5:12까지 진행된다고 판단한다. 하지만, 바울의 변증은 4:31(또는 5:1)까지 마무리되고, 5:1(또는 5:2)부터는 권면이 시작되는 것으로 보는 것이 낫다(pro. Betz, Galatians, pp. viii, 253-55). 5:1-11은 할례를 받지 말라는 소극적 측면의 권면이며, 5:12이후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사랑으로 살라는 적극적 측면의 권면이다.

36) 행 18:11에 따르면 바울은 처음에 1년 6개월 정도를 고린도에 머물며 사역했다고 한다. Fee(Corinthians, p. 4)는 이 기간이 CE. 51-52년 사이라고 추측한다. 바울이 다른 지역에 통상 머물렀던 기간과 비교해 볼 때 고린도에 머문 기간은 상대적으로 길다. 이 사실은 고린도에 대한 바울의 깊은 관심을 반영하고 있으며, 또한 이런 관심은 고린도에 있을 때 주께서 바울에게 나타나 말씀하신 내용과도 깊은 연관이 있어 보인다(행 18:9-10).

37) Fee(Corinthians, p. 571)는 고린도전서 12, 13, 14장을 A-B-A 형식으로 이해한다. 12장은 문제에 대한 일반적 측면으로 시작하고, 13장은 신학적 측면을 언급한 후, 14장이 문제에 대한 구체적 답변을 제시한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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