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주의 신학 이야기
이종찬 목사(주필)
현대 기독교의 자유주의는 18세기 독일에서 배태되었다. 이 자유주의는 칸트(Immanuel Kant 1724~1804)에게서 기인된다. 칸트는 신의 존재는 인간의 이성을 통해서만 알 수 있다고 했다. 한 사람으로 이러한 사고는 당시 절대왕권과 교회의 권위에 도전하는 것이기도 했다. 이러한 칸트의 주장은 인간 이성에 권위를 두어야 한다는 계몽주의 사상에 근거한 것으로 이러한 계몽주의와 칸트의 신학사상에 현대적 사고라는 현대주의가 대두되었던 것이다.
한편 슬레이허르 마허는 종교에서 감정을 강조하는 새로운 신학사조를 도입한다. 그는 종교가 신조와 동일시되면 안 된다고 하면서 예술과 문학의 감정 표현들과 깊은 관계를 갖고 있다고 가르친다. 그는 여기서 한걸음 더 나아가 종교란 절대의존의 감정이며 죄란 이기적인 선입관일 뿐이라고 말한다.
같은 시대의 또 다른 자유주의 신학자 헤겔은 다른 방향에서 자유주의적 사고를 시도한다. 그는 역사와 종교는 상반된 운동(正과反 thesis-antithesis) 으로 생긴 합(合 synthesis)의 방향으로 발전해 간다는 진화론적 사고를 적용하였다. 헤겔의 이러한 철학적 사고는 독일 자유주의 신학자인 바우르와 벨하우젠에게 자유주의 신학의 영향을 주어 그들로 하여금 성경을 비평하는 자리로 이끌었던 것이다.
소위 성경무오를 금기시하는 고등비평은 이런 경로로 배태되었다. 이들은 성경의 기자들과 기록 연대에 대한 역사적 기독교회의 전통적 신학에 강한 의문을 제기하고 있었다. 여기에서 발전된 현대신학은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초자연적인 기사나 기적을 당시의 문화적 상황에서 이해하려고 시도하면서 성경기록의 초자연성과 역사성을 부인하게 된다. 따라서 현대신학은 성경의 무오성과 절대성을 인정하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인간의 이성과 과학적 경험에 권위를 두게 되었던 것이다. 이러한 인간 이성과 과학적 사고를 기초로 한 낙관적 자유주의 신학은 제1차 세계대전을 계기로 쇠퇴하기 시작한다.
자유주의 신학의 쇠퇴는 보수신학의 공격을 받기 시작하면서였다. 웨스트민스터 신학교의 설립자였던 메이첸 교수는 자유주의 신학은 기독교가 아니며 기독교와는 다른 범주에 속하는 종교일 뿐이라고 주장했다. 보수신학이란 성경의 권위와 역사적 기독교의 신앙과 신학의 전통 위에서 성경적 신앙을 지키려는 개인이나 단체가 자유주의 신학과 차별된 의미로 일컫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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