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3월 1일 삼일운동 100주년을 앞두고 2018 미래교회포럼(이하 미포)이 “삼일운동 백 주년과 한국기독교”라는 주제로 지난 3일과 4일 공주제일교회당에서 열렸다. 70여 명의 목회자와 CBS, 국민일보, 기독교보, 개혁정론, 한목협 등의 기자들과 관계자들이 참석했다.
2018 미포를 끝으로 대표회장 직을 오병욱 목사(천안 하나교회 담임)에게 넘겨준 박은조 목사는 1919년 당시 신앙 선배들의 정신과 지혜를 배우자며, 1% 정도에 불과했던 당시 기독교인들이 3.1운동의 주역이 되어 민족과 사회의 문제를 풀어갔던 그 지혜와 정신이 오늘 우리 교회와 사회에 절실하게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번 포럼에서 감신대 이덕주 교수가 "3.1운동에 나타난 기독교 권위와 지도력", 연세대 최재건 교수가 "삼일정신과 대한민국의 건국정신", 고신대 이상규 교수가 "삼일운동과 한국기독교"란 제목으로 각각 발제했다.
삼일운동, 기독교 빼고 설명할 수 없다!
이덕주 교수는 3.1 운동이 전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날 수 있었던 것은 교회의 조직망 덕분이었다며, “정교분리 원칙의 선교사들을 방어벽으로 해서 총독부가 개입할 수 없는 상대적 자율적 공간 안에서 기독교인들의 회합이 이뤄지고, 독립운동을 위한 연락망이 형성됐다”고 밝혔다.
최재건 교수는 대한민국 건국정신의 기반이 삼일운동임을 밝히고 삼일운동의 중심에 기독교가 있었음을 다음과 같이 증명 설명했다.
“삼일정신의 요소나 자유민주주의적 개념인 자주독립, 정의, 인도, 평등, 평화의 정신을 두루 갖춘 기독교 사상은 사실상 건국정신의 기초가 되었다. 이러한 정체성에 따라 한국의 기독교회 인물들은 독립협회 만민공동회의, 신민회, 삼일운동,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주도해 온 경험이 있었다.”
이상규 교수는 박은식의 『한국독립운동지혈사』와 국사편찬위원회가 간행한 『일제침략 하 한국 36년사』 등을 인용하며, 기독교회가 삼일운동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했음을 다음과 같이 증명했다.
“당시 기독교 인구는 20만에서 22만 정도로 전 인구의 1-1.5%로 간주되는데, 1919년 4월 말까지 투옥된 기독교인은 2,120명으로 불교 천도교 유교도의 총수 1,556명보다 훨씬 많은 숫자였다. 이런 점은 기독교인들이 만세운동에 적극적으로 가담하였음을 알 수 있다.”
“종교별로는 기독교(개신교) 22%, 천도교 15%, 기타종교 2%, 무종교 61%로 되어있다. 이를 통해서 볼 때 기독교는 타 종교보다 월등하게 만세운동에 가담했음을 보여주고 있고, 만세운동의 준비단계, 거사 실행단계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했음을 알 수 있다.”
“체포된 신자가 3,804명이었고, 체포된 목사 장로는 134명, 기독교 관계 지도자는 202명에 달한다는 기록이 과장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이상의 정보를 종합해 볼 때, 전 인구의 1-1.5%에 불과했던 기독교회가 삼일운동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감당했음을 알 수 있다.”
삼일운동 가능케 한 기독교인 저항정신은 어디서?
그렇다면 당시 전체 인구의 1.5%도 채 되지 않던 기독교인들이 어떻게 독립운동을 주도적으로 이끌 수 있었을까?
이덕주 교수는 “종교적 경건과 실천에 기초한 영적 권위가 복음주의 신앙에 근거한 민족구원으로 연결될 때, 기독교는 교회 영역을 넘어 종교연대와 사회연대를 이룰 수 있으며, 그 과정에서 기독교인의 솔선하는 양보와 희생이 교회의 대(對) 사회적 영향력과 지도력은 향상된다.”라고 했다. 이 교수는 “3·1운동 기간 중 기독교 지도자들이 보여준 ‘영적 권위’(Spiritual Authority)와 그것에 근거한 ‘사회적 지도력’(Social Leadership)”의 근거를 언급하며 오늘날 목회자들이 복음주의 신앙에 근거한 경건과 실천을 회복해야 한다고 강조 했다.
최재건 교수도 일본 제국주의에 저항한 “기독교인의 3.1정신은 신앙의 확신을 행동화한 것이었다.”라며, 105인 사건으로 투옥된 동안에도 계속하여 경건 생활을 유지했던 이승훈 장로의 본을 따라 오늘을 살아가는 한국기독자도, 교회도 ‘통일은 하나님이 하실 것이다.’라는 하나님의 절대 주권 신앙을 확고하게 하고 선교적 사명을 감당하자고 전했다.
이상규 교수는 “기독교계의 만세운동에 대한 관여 혹은 참여는 ‘기독교회’라는 교단적 합의나 결의에 의한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인 개인의 신앙적 결단에 의한 참여였다는 점은 중요한 의미가 있다.”고 했다. 이 교수는 이런 개인적 결단에 의한 독립운동을 “가이사의 것과 하나님의 것 사이에 경계를 지키면서도 그리스도인의 민족적 혹은 사회적 책임을 실현하려는 의지로 해석”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이 교수는 삼일운동 당시 그리스도인들의 저항을 불러일으킨 3가지 요인을 첫째, 폭압적인 식민통치에 대한 반발, 둘째, 기독교계의 민족의식 혹은 민족운동 전통, 셋째, 기독교 신앙과 신교(信敎) 자유에 대한 탄압이라고 정리했다.
결론적으로 삼일운동을 가능케 한 기독교인의 저항정신은 ‘하나님의 절대주권을 믿는 복음주의 신앙에 근거한 결단과 실천’이라고 정리할 수 있다.
http://www.kscoramdeo.com/news/articleView.html?idxno=14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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