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롬 1:14-17. 복음적으로 사는 것

복음

by 김경호 진실 2019. 2. 25. 09:28

본문

롬 1:14-17. 복음적으로 사는 것
  

1. ‘삶에서 만나는 하나님이야기를 위해 우리는 바울이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고린도전서15:10)라고 말한 것처럼 하나님의 은혜를 말하게 된다. 은혜는 내가 받을 수 없는 것을 받는 것이다. , 바울은 교회를 핍박한 핍박 자였고, 교회를 탄압한 폭행자였는데, 그런 바울을 하나님은 은혜로 부르셨고, ‘은혜로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게 하셨다. 예수님을 만난 바울은 예수님 앞에서주여 누구시니이까(사도행전9:5)라고 탄식하면서 예수님을 참된 메시야로 고백하게 된다. 그리고 주님을 위해 일생을 살아갔다. 이렇게 삶에서 만나는 하나님이야기는 살아계신 하나님의 은혜가 무엇인가를 이야기함으로 시작된다. 더욱이 바울은 자신의 삶을 살아가면서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를 바탕으로 더 많이 수고하면서 살았는데, 그것 역시 하나님의 은혜였다고 고백한다. 이 은혜를 바탕으로 바울은 참으로 많은 고난의 삶을 살았다(고린도후서11:23-27). 고난의 삶을 살았음에도 불구하고 바울은 이 외의 일은 고사하고 아직도 날마다 내 속에 눌리는 일이 있으니 곧 모든 교회를 위하여 염려하는 것이라 / 누가 약하면 내가 약하지 아니하며 누가 실족하게 되면 내가 애타지 아니하더냐(고린도후서11:28-29)라고 말한다. 자신이 당한 삶의 고통과 어려움 보다 바울이 관심을 가진 것은 교회였고, 교회의 지체들이었다. 그의 삶은 가난함과 애통함을 바탕으로 한다. , 하나님의 백성으로 복음을 받아들이고, 복음적으로 살아가는 삶의 모습을 우리는 바울을 통해서 볼 수 있다.

2. 복음은 바울이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 장사 지낸 바 되셨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고린도전서15:3-4)신 예수님의 이야기이다. 우리는 복음을 믿음으로 내 능력이 아닌 하나님의 은혜로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삶을 살게 된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의 삶은 그리스도를 따르는 삶이다. 그리스도를 따라가는 삶을 살았던 바울은 고린도교회를 향해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가 된 것 같이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가 되라(고린도전서11:1)고 말한다. 복음적인 삶은 그 중심에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가 아닌가?’라는 질문이 있다.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가 아닌가?’라는 질문에 올바로 답하는 사람을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 /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자(마태복음5:6, 10)라고 말씀하신다. 이렇게 그리스도를 본받는 삶, 복음적인 삶이라고 이야기하자. 복음적인 삶은 한 걸음 더 나아가 예수님이 기뻐하시는가 아닌가?’라는 질문을 던지는 삶에서 드러나는 고통이나 박해를 즐거워하는 삶으로 이어진다. 그래서 예수님은나로 말미암아 너희를 욕하고 박해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도 이같이 박해하였느니라(마태복음5:11-12)라고 말씀하신다. 복음적인 삶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을 사는 것, 즉 하나님의 뜻을 이루며 사는 삶이다. 그리고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은 항상 기뻐하라 / 쉬지 말고 기도하라 / 범사에 감사(데살로니가전서5:16-17)하는 삶이다.

반면에 율법적인 삶은 그 중심에율법을 지키는가 아닌가?’라는 질문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율법적인 삶을 사는 사람들은 율법에 대한 세세한 규정을 연구할 수밖에 없다. 유대인들이 그렇게 열심히 율법을 연구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여기서 율법을 연구하는 사람들에 대한 특별한 위계가 만들어지고, 제의를 담당하는 제사장에 대한 위계가 만들어진다. 로마카돌릭 교회의 위계질서가 이렇게 만들어진 것이다.

그러나 율법적인 삶은 사람에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너희 의를 행(마테복음6:1)하려는 삶이 될 가변성 앞에 놓인다. 그런 사람들은 자신이 누군가를 도와주었다는 것을 세상에 자랑하게 되고, 그런 사람들은 기도할 때에 시장 어귀에서 큰 서리로 두 팔을 들며 기도하게 된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은 금식하면서 초췌한 모습으로 사람들을 만나 자신이 금식하고 있음을 자랑하게 된다. 그리고 그런 과시가 통하지 않을 때 분노하고, 자신을 인정해주지 않는 사람들을 미워하게 된다. 거꾸로 그런 사람들은 자기들에게 주어지는 하나님의 은혜를 과시한다. 잘 먹고, 잘 사는 것이 하나님이 자신에게만 주시는 특권인양 말하게 된다. 교회에 이상한 위계가 만들어지는 이유는 이렇게 율법적인 삶을 사는 사람들 때문이다. 이렇게 율법적인 삶이 자기중심적이고, 관료적으로 변하는 이유는 당연히 은혜가 아닌 자기공로가 중심이 되기 때문이다.

3. 복음적인 삶의 특징은 율법적인 삶이 자신이 공로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것과는 달리 하나님의 은혜에 감격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가난함과 애통함을 바탕으로 외적인 삶의 모습은 기뻐하고 감사함으로자원함으로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삶을 산다. 이렇게 자원하는 삶을 바울은 빚진 자의 삶으로 이야기한다. 빚진 자의 마음은 언제나 미안하고 죄스러운 마음이다. ,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 /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자(마태복음5:6, 10)의 삶으로 드러나는 모습이다. 이런 자들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도리어 복음적으로 살게된다. 그래서 바울은 나는 할 수 있는 대로 로마에 있는 너희에게도 복음 전하기를 원(로마서1:15)한다고 말한다. 이런 바울의 모습은 자원함을 바탕으로 자신의 일에서 드러나는 여러 고난까지도 감사함으로 받아들일 수 있게 한다. 복음은 자발적인 순종을 요구한다. 복음적인 삶이 율법적인 삶과는 달리 자원함으로, 그리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삶이기 때문에 바울은 언제나 빚진 자의 마음으로 살았을 것이다.

우리의 삶이 복음적인가 아니면 율법적인가를 생각해보자.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 기뻐하고, 기도하고 감사하는 것인 이유는 기쁨과 감사는 그리고 기도는 복음적인 삶에서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바울이 말하는빚진 자의 삶이다.


연락처 070-7817-3627, 010-8952-3627(오성환 목사) E-Mail : shsiny@hanmail.net

주소 : 광주시 서구 계수로51번길 4-4(쌍촌동 1318-1) 201호 


http://www.ctimes.or.kr/news/view.asp?idx=3214&msection=2&ssection=5



728x90

관련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