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터 마터 버미글리 평전 북 콘서트
손재익 객원기자
개혁정론이 주최한 김진흥 교수의 『피터 마터 버미글리 평전』 북 콘서트가 2019년 4월 18일(목) 저녁 7시 고려신학대학원 102강의실에서 열렸다. 고려신학대학원생 10여 명과 개혁정론 관계자 등이 참석한 가운데 진행된 이번 북 콘서트는 개혁정론 편집장 안재경 목사의 사회와 운영위원장 성희찬 목사의 기도로 시작됐다.
김진흥 교수는 우리가 잘 아는 루터와 칼뱅 외에도 당시에 수많은 종교개혁자들이 있었다는 사실로 운을 뗐다. 불링거, 버미글리 등은 종교개혁자들 중에서도 매우 중요한 이들이다.
▲ 강의하는 김진흥 교수 ⓒ 손재익
버미글리(Peter Martyr Vermigli, 1499년 9월 8일–1562년 11월 12일)는 이탈리아에서 태어났다(1499). 일찍이 라틴어 교육을 받고 1514년 피에솔레에 있는 산바르톨로메오인갈도 수도원에 입문하였다. 그곳에서 아우구스티누스파 수도회에 가입하고 4년 후에 정식으로 수도사 서원을 하고 ‘피터 마터’라는 이름을 받았다. 이후 8년 동안 그는 산 지오반니 데 베르다라 수도원에서 지내며 인근의 파도바 대학교에서 신학과 철학을 공부하였다. 1537년 4월에 나폴리의 산 피에트로아드 아람 수도원 원장으로 선출된 이후, 그는 한 인문주의자 서클에서 북 유럽의 개신교 신학자들의 저서들을 접하고 이신칭의를 받아들이게 되었다. 이후 로마가톨릭 내에서 도덕적 개혁과 교리적 개혁운동을 주도하던 와중 여러 계기로 인해 진로에 대한 결정적인 시기를 맞게 되고 1542년에 개혁주의 개신교 교회로 망명하였다.
이탈리아에서 순회설교자로 활동했고, 볼로냐(1530-1533), 스뽈레또(153-1536), 나폴리(1537-1540), 루카(1541-1542) 등에서 사역하다가 알프스를 넘어 스트라스부르크에서 사역했다(1542-1556). 그리고 옥스퍼드(1547-1553), 취리히(1556-1562) 등에서 사역했다. 스트라스부르크에서는 마틴 부처와 함께 했으며, 취리히에서는 불링거와 함께 했다. 1547년 11월에 토마스 크랜머(Thomas Cranmer)의 초청을 받아 영국으로 건너가 이듬해 3월 옥스퍼드의 레기우스 신학교수로 임명되었다. 이후 에드워드 6세 치하의 영국의 종교개혁 진행에 공헌하였다.
버미글리의 신학 중 대표적인 부분은 성찬론이다. 버미글리는 개혁파 성찬론을 완성한 인물이다. 김진흥 교수의 박사학위도 그의 성찬론을 연구한 것이다. 칼뱅은 그의 성찬론에 대해서 “버미글리가 말하는 바만으로도 충분하다”고 했다. 버미글리는 하늘에 계신 그리스도의 인성과 성찬 재료와의 관계를 중요하게 다뤘다. 버미글리의 성찬론 옹호에서 나타난 중요한 원리는 오직 성경의 원리다. 다른 종교 개혁가들과 마찬가지로 오직 성경만이 진리를 세우는데 있어서 최고의 권위라고 믿었다.
▲ 버미글리의 대표작 “성찬 교리 옹호”와 김진흥 교수의 박사학위 논문 ⓒ 손재익
이후 질의응답시간에 한 참석자는 “버미글리의 성찬론이 오늘날 한국교회에 어떤 시사점을 주는지”를 물었다. 이에 대해 김 교수는 지적장애인에게 성찬을 베풀 수 있는가? 라는 주제와 관련해서 베풀어도 된다고 말하면 로마가톨릭의 입장과 크게 다르지 않게 되고, 그들의 부모가 은혜 받으면 되지 라고 말한다면 츠빙글리의 상징설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하면서, 자신이 부교역자로 섬기던 당시의 경험을 소개했다.
▲ 참석자 단체사진 ⓒ 손재익
김 교수는 이외에도 마르틴 루터의 95개조 논제와 하이델베르크 명제를 자세히 해설한 책과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아 고신Refo 500에서 기획하여 저술한 「교리문답으로 배우는 장로교 신앙」등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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