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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 수위권에 대한 칼빈의 비판 연구

로마 카톨릭

by 김경호 진실 2019. 12. 31. 1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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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 수위권에 대한 칼빈의 비판 연구

김요섭(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 역사신학)

 

이 논문은 총신대학교에서 역사신학을 교수하는 김요섭 박사가 「개혁논총」에 기고한 논문이다. 종교개혁자인 칼빈은 교황의 수위권에 대해 성경적 입장에서 강력하게 비판을 가하였다. 오늘 교회들은 일치와 타협이하는 명분하에 성경과 신학을 내려놓으려 한다. 이것이 심각한 교회의 오염과 타락을 가져오게 될 것이다.

1 서론: 종교개혁자 칼빈의 교황 제도 비판

종교개혁자 칼빈은 참된 종교를 회복하기 위한 세 가지 개혁의 주제로 서 첫째 바른 진리의 가르침을 회복하는 것, 둘째 성례를 순수하게 시행하는 것, 그리고 셋째 성경적인 교회 통치의 실현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 가운데 성경적인 교회 제도의 실현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당시의 로마가톨릭의 교황제도와 차별되는 성경적인 교회제도를 세워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는 교황제도의 비성경적인 신학적인 전제와 이로부터 나오는 성례전의 우상숭배적인 왜곡이 참된 종교를 부패시킨 중요한 요인이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최근의 에큐메니칼적인 관점을 가지고 종교개혁자들의 교황제도에 대한 비판을 제도 자체를 거부한 개혁적 제안이라기보다는 당시 부패한 교회 제도를 개선하려 한 시도로서 해석해야 한다는 주장들이 나타나고 있다. 한 예로 로마 가톨릭 칼빈 연구자인 가녹지는 “칼빈은 결코 가톨릭 교회의 일치에 대한 그의 흔들림 없는 애착을 중단한 적이 없으며 칼빈이 원했던 것은 가톨릭 교회의 교체가 아니라 그 회복이었다”라고 평가한 바 있다. 그러나 교황제도에 대한 칼빈의 비판은 외적제도에 대한 단순한 개선의 제안이 아니었다. 그의 비판은 교황제도가 근거로 삼고 있는 신학적 전제들의 오류를 지적하고 이 제도로 인해 발생하는 심각한 실천적 왜곡들을 개혁함으로써 참된 종교를 회복하기 위한 종교개혁의 필수적인 과제였다.

본 연구는 칼빈이 교황제도의 남용 상태를 단순히 개선을 목적으로 한 조건적인 관점에서의 비판이 아니라 도리어 교황제도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교황의 수위권 주장의 성경 해석적 근거와 교회론적 기초에 대한 근본적인 관점에서의 비판임을 밝히고자 한다. 이를 위해 칼빈의 교황 수위권에 대한 비판이 가장 체계적으로 진술되고 있는『기독교강요』4권 6장과 7장을 중심으로 그의 저술들 가운데 관련된 교황제도 비판 주장들을 면밀하게 분석할 것이다. 이 분석을 통해 칼빈이 교황 수위권을 비판함으로써 궁극적으로 주장하려 했던 것은 교황제도의 개선이 아니라 교회의 머리이신 그리스도의 주권(Christ’s Headship)을 실현할 수 있는 바른 성경적인 교회 제도의 수립이었음을 논증하려 한다.

2 칼빈의 교황 수위권 비판에 대한 해석

2.1 칼빈의 교황 수위권 비판에 대한 새로운 해석

칼빈은 자신이 이해한 교황 수위권의 개념을 다음과 같이 요약한다. “즉 로마 교황은 교회의 머리이신 그리스도의 대리로서 그리스도 대신에 온 교회를 주관하며 로마 교구가 모든 다른 교구들 위에 수위권을 유지하지 않으면 교회가 잘 조직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에큐메니칼적 시각에서 칼빈의 교황 수위권 비판을 재해석한 헬레만(Adrian A. Helleman)은 교황제도에 대한 칼빈의 이와 같은 이해와 비판이 조건적인 것이었다고 주장한다. 즉 교황제도에 칼빈의 비판은 교황지상주의(papism)에 대한 비판이지 당시 공의회주의(conciliarism)에 대응되는 개념인 교황주의(papalism)에 대한 절대적인 비판은 아니었다는 것이다. 헬레만은 자신의 주장을 위해 칼빈의 저작을 분석하여 세 가지 근거를 제시한다. 첫째, 칼빈의『기독교강요』의 증보판들을 살펴보면 교황 수위권에 대한 칼빈의 비판은 교황수위권 “자체”에 대한 비판이라기보다는 교황 수위권의 “행사”에 대한 것임을 알 수 있다.
 
특히 1536년 초판에서부터 교황수위권의 잘못된 독재적 행사를 비판한 것이 사실이지만 이어지는 1543년 이후 증보판에서부터는 더 긍정적인 입장에서 교황 수위권을 유지하면서도 로마 가톨릭이 개혁될 가능성을 인정하고 있다. 둘째,『기독교강요』최종판(1559)과 여러 주석과 소논문들에 나타난 교황 수위권에 대한 비판을 검토해 보면 칼빈이 사실상 베드로로부터 계승된 교황 수위권을 전제적으로 인정하고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셋째, 칼빈은 그리스도의 절대적인 주권 사상인 “오직 그리스도”(solus Christus) 사상을 강조하면서도 세속권세에 있어 군왕에 의한위계적 통치를 거부하지 않았으며 다만 위계적 통치의 독재적 악용을 경계했을 뿐이고, 이와 같은 악용에 대한 조건적인 거부는 교황 수위권에 대한 칼빈의 비판에도 동일하다. 헬레만은 이런 근거를 바탕으로 칼빈은 교황제도가 본연의 목회적 사역을 잘 감당하는 모습으로 개혁된다면 교황 수위권을 받아들일 용의가 충분히 있었다고 결론 내리고, 더 나아가 그런 의미에서 칼빈의 교회론은 최근의 에큐메니칼 맥락에서 여전히 유용한 의미를 가질 수 있다고 평가한다.

그러나 과연 칼빈이 교황 수위권 자체를 비판한 것이 아니라 단지 교황 수위권의 잘못된 독재적 남용만을 비판하고, 따라서 교황청이 스스로 반성하여 제도적 개혁을 시행한다면 교황 수위권을 얼마든지 인정하려 했을까? 이 질문에 대한 정확한 해답은 무엇보다도 칼빈의 교황 수위권 비판 주장들이 어떤 방향으로 발전했으며, 어떤 맥락에서 제시되었는지 정확하게 분석함으로써 정당하게 주어질 수 있을 것이다.

2.2 칼빈의 교황 수위권 비판의 발전과 핵심

우선 교황 수위권에 대한 칼빈의 비판이 점진적으로 발전이었다는 헬레만의 첫 번째 근거 제시와는 달리 칼빈은 그의 사역 전체에 걸쳐 일관된 신학적 이해를 유지하며 교황 제도의 근본적 토대를 거절했다. 칼빈은 『기독교강요』초판(1536)에서 이미 교황 수위권의 허구성과 위험성을 다음과 같이 지적했다.

“그들은 자기네가 말하는 소위 맹목적인 신앙으로 교회의 판단에 따르기만 하면, 하나님과 그리스도를 믿든지 믿지 않든지 이런 것을 별로 중요한 일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사도직의 수위성과 그 거룩한 모교회의 권위를 반대만 하지 않으면 비록 하나님의 영광이 공공연하게 모독을 당해 더럽혀져도 조금도 마음의 고통을 느끼지 않는 자들입니다.”

이와 같은 비판의 핵심 주장은 이어지는 증보판에서 일관적이며 차라리 더 강화되고 있다.『기독교강요』최종판(1559)에서 발견할 수 있는 칼빈의 교황 수위권에 대한 비판은 주로 4권 6장과 7장에서 나타난다. 그런데 이 장에 나타나는 비판의 논의는 대부분 1543년 판에 추가된 내용이다. 칼빈은 1539년『기독교강요』를 새로 증보한 후 4년 만에 네 장을 추가해 다시 증보 출판했는데 그 중 세 장이 교회 제도에 대한 내용이었다. 이는 칼빈이 1541년 다시 제네바에서 교회개혁 사역을 시작하면서 교회제도에 대한 논의를 시급하고 중요한 주제로 여겼음을 보여준다. 1543년의 『기독교강요』증보는 칼빈이 스트라스부르크에서 실제 목회 사역을 통해 교회제도를 직접 운영하고 부처와 함께 여러 종교회의에 참여하여 교황주의자들의 입장과 태도를 충분히 경험한 이후 이루어졌다.

자크만은 1543년 교회 제도와 관련한 칼빈의 추가적인 논의에서 1536년 초판의 논의와 분명한 차이를 보이는 일종의 “위계제도”(hierarchy)에 대한 긍정적인 변화를 발견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이와 같은 변화는 칼빈이 스트라스부르크에 머무는 동안 부쳐와 멜랑히톤의 교회 일치 노력에 영향을 받았고, 또 여러 로마 가톨릭 신학자들과의 대화를 통해 교황제도에 대한 이전의 강경한 비판 입장을 완화시킨 결과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자크만의 주장과 달리 칼빈은 1543년 교황제도의 발전과 타락에 대한 역사적 비판을 추가하여 1536년 초판에서 이미 서술한 교황제도의 문제를 더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그리고 이 논의를 전개하기 위해 단지 교황 제도의 본격적인 등장 이전 초대 교회의 감독 제도는 성경적인 특징을 보존하고 있음을 언급하고 있을 뿐이다.

1543년 추가되어 1559년 라틴어 최종판『기독교강요』최종판에서 정리된 교황 수위권 비판 논의의 위치 역시 1543년 판『기독교강요』에 추가된 교황 수위권에 대한 칼빈의 비판 주장이 그의 일관된 입장과 비판의 강화는 방향성을 더 명확히 보여준다. 칼빈은 교회론을 주로 다룬『기독교강요』4권을 1장에서 3장에 걸친 교회의 정의와 바른 교회의 제도를 서론적으로 논의한 후, 이어지는 4장과 5장에서 교회 제도의 역사적 발전과 타락의 과정을 서술한다. 그리고 이어지는 6장과 7장에서 교황 제도의 문제들 가운데 교황 수위권 문제를 비판하는 데 집중한다. 이런 논의의 순서는 칼빈이 아무런 성경적, 역사적 근거를 갖지 못한 교황의 수위권 주장이야말로 그리스도가 아닌 사람이 교회의 주권을 독점하고 지배하고 있는 교황 제도가 갖고 있는 문제의 근본적인 기초라고 보았음을 반영한다.

그러나 우리는 구조 전체의 갓돌(capstone)에 대해서, 즉 로마 교황청의 수위권에 대해서는 아직 논하지 않았다. 그들은 이것을 출발점으로 삼아 전 세계의 교회가 그들의 독점물이란 것을 증명하려고 노력한다. 이 수위권을 우리가 논하지 않은 까닭은 그것이 그리스도께서 제정하신 것도 아니며 고대 교회가 사실상 인정한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기독교강요』4권 6장은 교황 수위권 주장에 대한 비판의 핵심을 다음과 같이 분명히 밝혀준다. “그러면 여기서 우리는 무엇이 문제인가를 밝히겠다. 그들이 말하는 성직제도, 즉 교회 조직의 진정한 형태를 위하여 어느 한 교구의 위신과 권한이 모든 다른 교구를 능가하며 전체의 머리가 될 필요가 있느냐 하는 그 문제이다.” 칼빈은 이처럼 교황 제도의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제도의 운영상 발생하는 부패가 아니라 이 제도의 근간이 되는 교황의 수위권 자체라고 생각했다.
 
칼빈은 분명한 문제의식을 기초로 삼아 교황 제도를 비판하면서 자신이 처한 상황이나 경험에 따라 비판의 논의를 변경시키지 않았다. 도리어 1536년 출판한 『기독교강요』초판에서부터 1559년 라틴어 최종판에 이르기까지 그의 성경해석과 역사적 사례연구, 그리고 일관된 교회론적 전제를 바탕으로 비판의 논의를 발전시켰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교황수위권에 대한 칼빈의 “조건적 반박”이라는 주장을 위한 헬레만의 다른 두 가지 근거들 역시 정확한 것이 아님은 이제부터 살펴 볼 교황 수위권에 대한 칼빈의 성경적, 역사적, 신학적 반박내용을 구체적으로 검토해 보면 분명해진다.

3 칼빈의 교황 수위권 비판 주장

3.1 성경적 비판

성경의 가르침을 기준으로 교회 개혁을 추구했던 종교개혁자 칼빈은 『기독교강요』4권 6장에서 가장 먼저 교황 수위권 주장이 과연 충분한 성경적 근거를 가지고 있는지에 초점을 맞춘다. 그 첫째 초점은 과연 성경이 베드로를 모든 사도들 위에 수위권을 가진 인물로 기록하고 있는가에 대한 것이다. 둘째 초점은 베드로가 가진 상대적인 우위를 가졌다고 하더라고 그것이 과연 이후 로마 교황들이 전 세계 교회에 대해 갖는 수위권의 근거가 될 수 있는가에 대한 것이다. 칼빈은 비판의 첫 번째 초점과 관련해 베드로가 우월한 지위를 주장하기 위해 교황주의자들이 사용하는 증거 본문들은 실제로는 교황 수위권을 위한 근거가 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이와 관련해 칼빈은 마태복음 16장의 “이 반석 위에 교회를 세우리라”는 약속과 요한복음 21장의 “내 양을 치라”는 명령을 다음과 같이 해석한다. “그러나 그들의 증명에 충분한 근거가 있으려면 그들은 우선 양을 먹이라는 그리스도의 명령을 받은 사람에게 모든 교회에 대한 지배권이 위임되었다는 것과 매며 푸는 일은 곧 전 세계를 지배하는 일이라는 것을 증명해야 한다.” 물론 사도들 가운데 베드로가 차지하는 위치의 중요성은 인정할 수 있지만 이 중요성이 곧 베드로가 사도들 위의 수위권을 의미하지 않는다. 따라서 마태복음 16장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교회의 기초는 베드로라는 한 인간이 아니라 그가 고백한 바른 신앙고백이다. 칼빈이 볼 때 이 본문에서 베드로에게 받은 열쇠의 권한은 복음을 받아들이는 믿음의 결과에 대한 약속이지 특정 인물에게 부여한 수위권에 대한 것이 아니다.

복음의 교훈이 우리 앞에 하늘을 열어 주는 것이므로 “열쇠”라는 말은 적절한 은유이다. 그런데 사람들이 매이며 풀린다는 것은 어떤 사람은 신앙에 의해서 하나님과의 화해를 얻으며 어떤 사람은 불신앙으로 인해서 더욱 속박을 받는다는 뜻에 불과하다. 교황이 일만을 자기의 일이라고 주장한다면 아무도 그를 시기하거나 싸우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 일을 계승하면 수고만 많고 이익은 적겠기 때문에 교황은 싫어한다.

칼빈은 그의『공관복음 주석』(1555)에서도 교황의 수위권에 대한 주석적 반박을 전개한다. 그리고 이에 덧붙여 그의 비판적 해석을 위한 문법적 근거를 제시한다.

“나는 베드로와 돌(반석)이라는 두 헬라어 단어 사이에 전자는 고대(attic) 헬라어, 후자는 일반(koine) 헬라어에 속한다는 점을 제외하고는 의미의 차이가 없다는 것을 인정한다. 그러나 우리는 여기에서 마태가 이런 다양한 표현을 사용한 적절한 이유를 가지지 못했다고 생각할 수는 없다. 이와는 반대로 이 명사의 성은 마태가 지금 베드로라는 인물과 구별되는 무엇인가 다른 것을 말하고 있음을 보여주기 위해 의도적으로 바뀌어 있다.” 이와 같은 문법적 이해는 그리스도만이 교회의 유일한 머리이시라는 그의 일관된 교회론적 이해로부터 나온 것이다. “그러나 장황해지기 않기 위해 우리는 바울의 선언이 보여주는 진리와 확실함을 인정해야만 한다. 즉 교회는 그리스도 한 분 이외에는 다른 기초가 없으며(고전 3:11, 엡 2:20), 교황이 또 다른 기초를 꾸며낼 때 이것은 신성모독과 도적질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기독교강요』는 요한복음 21장에 나타나는 “내 양을 먹이라”는 베드로에게 주신 예수님의 말씀을 베드로 개인과 그의 후계자에게 국한된 것이 아니라 모든 장로들을 향한 보편적인 명령이라고 해석한다. 그리고 이와 같은 해석을 통해 베드로가 지닌 수위의 권력이 곧 로마 교황의 수위권의 성경적 근거라는 주장을 반박한다. “이 점을 보아서 우리는 그리스도의 이러한 말씀이 베드로에게 다른 사람들보다 높은 무엇을 준 것이 아니라고 추론할 수 있으며 또한 베드로는 받은 것을 다른 사람들과 동등하게 나누었다고 할 수도 있다.”
 
칼빈은 요한복음 주석(1553)에서도 21장 15절의 “내 양을 먹이라”는 명령은 교황주의자들의 주장과 달리 베드로에게 부여하신 “가르침의 직분”에 대한 것임을 주장한다. 칼빈은 이런 해석을 바탕으로 교황주의자들이 요한복음 21장 15절의 명령을 왜곡하여 교황의 수위권의 근거로 삼고 있다고 강하게 비판한다. “베드로가 받은 모든 것은 마호메트보다도 교황에게 속해 있지 않다. 어떤 근거에서 교황은 자신을 베드로의 상속자라고 주장할 수 있으며, 어떤 정상적인 이해를 가진 사람이 이 본문에서 그리스도께서 베드로에게 유전적 권한을 수여하셨음을 받아들일 것인가?” 칼빈은 결론으로 교황주의자들이 성경 본문을 근거로 삼아 베드로와 그 후계자들의 수위권의 근거로 삼는 것은 비성경적이며 어리석은 주장이라고 평가한다.

두 번째 성경적 비판의 초점과 관련해 칼빈은 하물며 베드로가 예수님으로부터 사도들 가운데 독특하게 우월한 지위를 인정받았다고 할지라도 이것이 이후 교황의 수위권을 위한 성경적 근거가 될 수 없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들이 베드로에 대해서 그가 사도들 중의 제일인자였다고 다른 사도들보다 탁월한 위신을 가졌다고 하는 말을 인정한다고 하더라도 특수한 예를 일반적인 법칙으로 만들며 한 번 있었던 아주 다른 일을 영구화할 이유는 없다.”

그러나 헬레만은 위와 같은 칼빈의 비판 진술로부터 칼빈이 사실상 베드로의 수위권을 인정하고 있다는 자신의 주장을 위한 두 번째 근거를 추출해 낸다. 그러나 칼빈은 이어지는 반박주장들을 전개하기 위해 단지 베드로의 수위권을 가정적으로 전제할 뿐이다. 그는 베드로 한 명에게만 적용될 수 있는 독특한 지위에 대한 성경의 설명을 이후 모든 교황들의 수위권으로 확장시키는 것은 논리적 비약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소수 사이에 있는 일을 직접 세계 전체에 적용할 수는 없다. 아무도 단독으로 전 세계를 지배할 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헬레만은 칼빈이 조건부로만 교황 수위권을 거절한 것임을 주장하기 위해 칼빈이 세속 정치에서의 왕정을 인정했음을 세 번째 근거로 든다. 그러나『기독교강요』의 같은 장에 나타난 칼빈의 다음의 논의를 살펴보면 이런 주장 역시 설득력이 없다.

“다음에 그들은 정치 관계의 예를 든다. ‘다수의 지배는 좋지 않다’라고 한 호머의 말을 인용하며, 군주 정치를 칭찬한 세속 문인들의 발언도 같은 뜻으로 해석한다… 그들이 말한 뜻은 한 사람이 온 세계를 지배해야 된다는 것이 아니라 한 나라에 두 임금이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그의 말과 같이 권력은 동료를 용인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칼빈은 베드로가 로마의 감독으로서 상당 기간 사역을 했다는 교황주의자들의 주장 역시 성경적 근거가 약하다고 주장한다. 칼빈은 성경을 따르자면 도리어 이방인의 사도로 부름 받은 바울이 이방 지역에 속하는 로마에서 더 큰 사역적 권위를 부여 받는 것이 더 타당해 보인다고 말한다. 칼빈이 보기에 성경이 베드로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갖는 것은 다만 그가 모든 사도들과 장로들과 동등한 예수님의 제자로서 그들의 대표로서 바른 신앙을 고백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베드로라는 한 인물이 모든 사도들 위에 차지하고 있던 수위권의 주장이나, 그 수위권으로부터 로마 교황이 전 세계 교회 위에 차지하고 있다고 하는 주장하는 수위권 주장 모두 충분한 성경적 근거를 가지고 있지 않다.

3.2 역사적 비판

칼빈은 교황의 수위권을 위한 성경적 근거가 없음을 비판함과 더불어 1543년 추가된『기독교강요』4권 7장에서 이 수위권 주장을 위한 역사적 근거도 빈약함을 비판하고 어떤 과정을 거쳐 근거가 없는 교황수위권 주장이 확립되었는지 설명한다. 첫째, 로마교황의 수위권이 고대로부터 시작되었다는 교황주의자들의 주장은 초대 교회의 교회회의 기록과 대표적인 교부들의 언급들을 살펴볼 때 역사적 근거가 없다. 이와 관련해 칼빈은 니케아회의 이전과 이후의 대표적인 교회회의인 니케아회의(325), 에베소 회의(431)와 2차 에베소 회의(449)에서 로마 감독이 회의를 주관했다는 기록을 찾을 수 없다는 사실을 지적한다.
 
칼케돈 회의(451)에서 최초로 로마의 교회의 대표들이 회의의 첫 자리에 앉게 된 것도 로마 교구의 수위권 때문이 아니라 단지 교황레오가 보낸 대표들이 유능한 의장으로서 황제의 호의를 얻었기 때문이다. 칼케돈 이후의 5차 콘스탄티노플회의와 어거스틴이 참석한 카르타고회의 역시 로마감독이 회의를 주재하지 않았다. 특히 가장 존경할만한 로마 감독이었던 그레고리우스 1세 본인의 진술은 초대 교회 당시 교황의 위치가 어떤 것이었는지를 잘 보여준다. “‘보편적 감독’을 자칭하거나 다른 사람들이 불러 주기를 원하는 사람은 스스로를 높이는 점에서 적그리스도의 선봉, 즉 다른 사람들보다 자기를 높다 하여 뽐내는 자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한 사람이 ‘보편적’이라는 이름을 가진다면 그 보편적 감독이 넘어질 때 보편 교회도 넘어지게 된다.”

둘째, 칼빈은 초대 교회에서는 주장된 바가 없었던 교황의 수위권이 등장하여 확립된 과정은 세속 권력과 교회 권력의 부패한 타협의 결과라고 비판한다. 칼빈은 초대 교회 시대 로마 교구는 본래 감독 임명과 회의 소집, 상소 수락 또는 재판권, 그리고 징계 명령과 견책의 네 가지 영역에서 다른 교구와 구별되는 우월한 권위를 소유하지 않았었다고 말한다. 교회 회의의 소집이나 견책과 관련해서는 교황보다는 도리어 황제가 더 큰 권한을 행사했었다. 또 칼빈은 이처럼 교회 제도는 시대적 상황에 따라 변화될 수도 있는 것이고 또 마땅히 융통성을 가질 수도 있다고 보았다.

특히 초대 교회 당시 어느 교구가 가장 중요한 교구인지의 문제는 제국의 정치적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문제였다. 비록 일반적으로 초대 교회 때부터 로마 교구가 가장 중시되었으며 제국에서의 위치로 인해 그 중요성이 점차 강화된 것이 사실이지만 제국 내에서 로마 교구만큼이나 콘스탄티노플 교구가 중요했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로마 교황의 수위권 주장이 본격적으로 부각되기 시작된 것은 그레고리우스 1세 때 콘스탄티노플 교회를 주관한 요한이 558년 자신을 “보편적 총대감독”이라고 주장하면서부터였다.
 
그리고 서로마 제국이 멸망한 이후 프랑크 왕국의 페핀이 자신의 권력 확보를 위해 로마감독 자카리아스에게 모든 감독들의 머리라는 칭호를 수여하고 샤를마뉴 대제가 로마 감독의 종교적 권력을 강화함으로써 교황의 수위권 주장이 정착되었다. 칼빈은 이렇게 새로운 신성로마제국의 세속적 권력과 로마교황의 종교적 권력이 결탁하면서 이전까지는 주장된 바가 없던 교황의 수위권 주장이 전면에 등장하여 정착되었다고 분석한다. 그리고 중세 시대 로마 교황청은 자신들의 절대 권력을 옹호하고 유지하기 위하여 여러 조작 문서들을 역사적 근거로 삼았음을 비판한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이런 결탁과 타협이 중세를 거치며 발전한 원인은 이후 교회 지도자들의 무지와 태만이었다고 지적한다. “그때부터 사태는 날로 악화되어 로마 교황청의 전제는 점점 강화되고 증대 되었다. 이렇게 된 원인의 일부는 감독들의 무지에있었고 일부는 그들의 태만에 있었다.”

셋째, 칼빈은 역사적 비판의 결론으로서 당시 로마 교황의 수위권이 역사 속에서 발견할 수 있는 로마 감독의 본래 역할과 비교해 볼 때 얼마나 많이 부패해 있는지를 비판한다. 또 로마교황을 비롯한 당시 로마가톨릭의 주교들이 상실해 버린 목회자로서의 본연의 책임과 의무가 무엇이었는지를 지적한다. “로마 감독에게 어떤 감독의 자격이 있는지 나는 알고자 한다. 감독직의 첫째 임무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사람을 가르치는 것이다. 둘째 임무는 성례전을 집례하는 것이다. 셋째는 충고하며 권고하며 죄 짓는 자를 바로잡고 신자들을 거룩한 권징 하에서 살게 하는 것이다.”

칼빈은 교황제도의 부패상과 관련해 베르나르두스의 비판적 언급을 인용하면서 중세 시대 로마 교황청의 부패와 근거 없는 수위권 주장의 참담한 결말을 비판한다. “교회들은 갈기갈기 찢기고 수족이 잘렸다고 외친다. 잔인한 타격들을 한탄하거나 무서워하지 않는 교회가 전연 없거나 또는 거의 없다.… 이런 행동으로 당신은 많은 권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증명하지만 의는 증명하지 못한다. 그러나 문제는 마땅히 해야 하느냐 하는 것이다. 당신을 임명한 목적은 각 사람의 영예와 지위를 보존 하라는 것이지 결코 그 영예와 지위를 탐내라는 것이 아니다.”

칼빈이 보기에 교황의 수위권 주장의 핵심은 교황이 전 세계 교회 위에 독점적 재판권 소유했음을 주장하는 점이었다. 그러나 교황이 모든 세계 교회 위에 최고의 권력을 소유했다는 주장은 정작 자신들의 오류를 시정할 제어 장치를 부인하기 때문에 심각한 문제를 불러일으킬 수밖에 없었다. 역사적으로 볼 때에도 이와 같은 교황의 주장은 초대 교부들이 말하고 있는 로마 감독에 본래 역할에 대한 이해와 다르다. 이와 관련해 칼빈은 다시 한번 그레고리우스의 말을 직접 인용한다.

베드로는 몸의 가장 중요한 지체였다. 요한과 안드레와 야고보는 특수한 사람들의 집단에서 각각 머리였다. 그러나 교회의 모든 지체는 한 머리 아래에 있었다. 율법 이전의 성도들과 율법 하의 성도들과 은혜 안에 있는 성도들은 모두 그리스도의 몸을 완성하는 지체들로 선정되었다. 또 아무도 자기를‘ 보편적’이라고 불러 주기를 원하지 않았다.

이처럼 교황주의자들이 주장하는 교황의 절대 권력 개념은 인간적인 상식에도 위배된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이와 같은 교황주의자들의 반역사적이며 비상식적 타락상이 나타나게 된 것은 그들의 잘못된 신학적 이해 때문이다. “그들 사이의 지배적인 비밀신학(arcanae illius theologiae)의 제 1조는 하나님이 없다는 것이며, 제 2조는 그리스도에 관한 모든 기록과 교훈은 허위요 기만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내세와 최후의 부활에 관한 교리들은 우화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 제 3조이다.”

칼빈은 이런 비판을 바탕으로 로마 교황을 “적그리스도”라고 부르는 것이 전혀 지나친 평가가 아니라고 말한다. “굳이 베드로에게 하신 말씀을 모두 그의 후계자들에게 적용할 경우 그 후계자들은 모두 사탄이라는 결론이 나올 수도 있겠다. 주께서는 베드로에게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라고 말씀하셨다.” 칼빈이 교황을 적그리스도라고 부르는 것은 단순히 그들의 도덕적 타락 때문만이 아니다. 그것은 교황주의가 보여주는 치명적인 영적 권리 침해 때문이다. 그것은 첫째 로마 교황이 그리스도의 영적인 나라를 압박하며 대항하는 것이며, 둘째, 이 독재적 제도가 그리스도와 교회의 이름을 말살하지 않으면서도 그리스도와 비슷한 것을 만들어 악용하는 것이고, 셋째, 하나님의 영예를 빼앗아 차지하려고 하는 것이다.
 
칼빈은『기독교강요』4권 6장에서 이와 같은 역사적 비판을 전개하면서 다시 한 번 교황주의자들의 수위권 주장이 사실이라고 전제해 보자는 수사적 논법을 전개한다. 즉 그리스도의 말씀에 의해서 베드로는 전 교회의 머리로 임명되었으며 그가 받은 영예를 로마 교황청에 맡겼고 고대 교회의 권위가 그것을 시인하고 오랜 관습이 확인했으며 모든 사람이 항상 이구동성으로 최고의 권한을 로마 감독에게 주었고 그는 모든 사건과 모든 사람의 재판장이었으며 어떤 사람의 재판도 받지 않았다고 가정하자.

그러나 이와 같은 칼빈의 가정은 이어지는 평가를 위한 수사적 가정일 뿐이지 헬레만이 주장하듯이 이상의 교황 수위권 주장을 실제로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라고 볼 수는 없다. 칼빈의 의도는 이런 가정을 한다고 해도 로마 교황청은 자신들의 주장에 부합한 모습이 아님을 논증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교황 제도의 현실적 부패에 대한 칼빈의 비판은 교황 제도의 개선 가능성을 촉구하기 위한 조건적인 비판이 아니다. 칼빈은 교황 제도의 운영에 대한 표면적인 비판이 아니라 교황 제도의 부패가 나타나게 된 본질적 오류를 지적하고자 한다. “참으로 교회는 그 자체의 명백한 표지에 의해서 알아볼 수 있으며 ‘감독직’은 한 직책의 이름이다. 나는 지금 사람들을 문제 삼는 것이 아니라 교회 안에서 영원히 빛나야 할 교회 질서 자체를 말하는 것이다.”

물론 교황 수위권의 기원과 발전 과정 및 현실적 부패에 대한 칼빈의 역사적 비판이 얼마나 역사적 자료들을 정확하고 객관적으로 다루고 있는지에 대한 평가는 또 다른 논의의 주제로 다루어질 필요가 있다. 그러나 이상에서 살펴본 칼빈의 역사적 비판을 통해 확실히 말할 수 있는 것은 그가 단순히 로마 교황의 수위권의 잘못된 운영을 비판한 것이 아니라 교황 제도의 본질적인 문제를 지적하여 비판하려 했다는 점이다. 칼빈은 교황 수위권을 중심으로 하는 교황 제도의 문제는 단순히 그 당시 운영의 실패로 인해 발생한 일시적인 문제로 본 것이 아니라, 그 시작에서부터 성경적, 역사적 근거를 결여한 채 특정 계급의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 신앙의 본질을 훼손하며 발전한 근본적인 문제로 보았다.

3.3 신학적 비판

교황 수위권에 대한 칼빈의 성경적 비판과 역사적 비판은 결국 교황 수위권이 전제하고 있는 신학적 기초의 문제를 지적하고 궁극적으로는 성경적인 참된 교회 제도의 신학적 기초를 제시하는 논의로 이어진다. 교황수위권에 대한 칼빈의 신학적 비판의 초점은 교황주의자들이 로마의 주교를 그리스도를 대리하는 보편적인 “머리”라고 주장하는 점이다. 그들이 우리에게서 교회를 빼앗고 자신들이 독점하려고 할 때에 특히 의지하는 논점은 하나인데, 즉 자기들에게는 머리가 있고 교회의 단결은 그 머리에 달렸으며 그 머리가 없으면 교회가 산산 조각이 난다는 것이다. 그들의 이론은 교황청을 머리로 여겨, 거기에 복종하지 않으면 교회는 목이 잘린 불구가 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교황 수위권을 반박하면서 칼빈이 강조하고자 하는 참된 교회제도의 신학적 기초는 “그리스도의 유일하신 머리이심”(Christ’s Sole Headship)이라는 영적 원리이다. 칼빈은 에베소서 1:22을 주석하면서 이 본문이 그리스도께서 “머리”라는 이름을 가지신다고 말하는 것은 그리스도께서 단순히 명예로운 직함을 가지셨다는 의미가 아니며, 이 이름의 권위가 온 우주의 “전체적인 지휘권과 구체적인 체제 가운데 실질적으로 구현되어 함”을 의미한다고 해석한다. 그리고 이어서 온 만물의 “머리” 이신 그리스도의 권위는 무엇보다도 우선 교회의 제도 가운데 실현되어야 함을 강조한다. “모든 것들이 그리스도의 뜻과 능력으로 다스려져야 하지만, 바울은 무엇보다도 교회의 영적인 정치 체제를 구체적인 주제로 삼고 있다.”
 
칼빈은 그의 고린도전서 주석(1546)에서 3장 11절을 해석하면서 교회의 유일한 기초는 그리스도임을 강조한다. “이제 결코 경시해서는 안 되는 근본적인 교리는 우리는 그리스도를 배워한다는 것인데 이는 그리스도께서만 교회의 유일한 기초이시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이름만을 거짓으로 들이대면서 그 뿌리에서부터 하나님의 모든 진리를 흩어버리는 자들이 많이 있다.” 그의 주석에서는 구체적으로 거명하지 않았던 교회의 근본 교리를 흔드는 자들은『기독교강요』에는 교황수위권을 주장하는 교황주의자들로 명시된다. “교회에서는 그리스도께서 유일한 머리이시며 우리는 모두 그의 지배 하에서 그가 제정하신 질서와 조직에 따라 서로 연합된다. 교회에 머리가 없다는 구실로 세계 교회 위에한사람을앉히려고하는그들은그리스도를현저히모욕한다. 교회의 머리는 그리스도시기 때문이다.”

칼빈은 교황 수위권의 성경적 근거를 비판할 때 “그리스도의 머리이심”이라는 신학적 원리를 지속적으로 강조한다. 한 예로 칼빈은 교황주의자들이 교황의 수위권의 근거를 구약 제사장 제도로부터 찾으려 하는 논리를 반박하면서 이 주장의 문제는 결국 유일한 구속의 중보이신 그리스도를 거절하는 데 있다고 말한다. 교황은 자기가 교황이 된 때에 그 권리를 이양받았다고 감히 파렴치하게 주장하지만 그런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에게 이양되었다. 그리스도께서는 대리나 후계자를 필요로 하지 않고 홀로 친히 그 권리를 지키시며 따라서 아무에게도 이양하지 않으신다. 이 제사장직은 가르치는 일뿐 아니라 하나님의 진노를 푸는 일도 하는 것인데, 그리스도께서는 자기의 죽음에 의해서 또 현재 아버지 앞에서 하시는 중보 기도에 의하여 하나님의 노염을 푸시기 때문이다.

또 베드로의 수위권이 교황에게 계승되었다는 주장의 문제 역시 유일한 교회의 머리이신 그리스도의 영예가 누군가에게 위임된 성경의 기록이 없다는 데 있음을 지적한다. 곧 그리스도께서는 머리이시며 이 영예는 그리스도에게만 있는 것이라고 성경이 확언하였으므로 그리스도께서 친히 자기의 대리로 임명하신 사람이 아니면 아무도 이 영예를 양도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임명이 있었다는 것은 어느 곳에서도 읽을 수 없고 오히려 그런 생각을 반박할 만한 구절만 많다(엡 1:22, 4:15, 5:23, 골 1:18, 2:10). 교황 수위권의 역사적 발전 과정을 비판할 때에도 칼빈은 참된 교회 제도의 신학적 기초는 그리스도께서만 교회의 유일한 머리로 인정받으셔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칼빈이 보기에 권력 유지를 향한 욕망에 사로 잡혀 “자기들의 강단과 가정과 생명까지 지키려는 듯 치열하게 싸우는” 교황주의자들의 문제는 궁극적으로 그들이 교회의 유일한 머리이신 그리스도의 영예를 손상시키고 가로채려 하는데 있다.
 
그러므로 칼빈의 교황 수위권 비판은 교황 제도가 바르게 실행되지 못하는 역사적 상황에 대한 조건적인 비판이 아니라 교황 제도가 전제하고 있는 신학적 이해의 치명적인 오류와 그 당연한 결과에 대한 근본적인 비판이다. “현재 그리스도를 가장 미워하는 원수이며 복음의 최고의 적이며 교회를 가장 황폐하게 만들며 모든 성도의 가장 잔인한 도살자인 자를 여전히 그리스도의 대리요 베드로의 후계자자요 교회의 제일 주교라고 생각한다는 것은 더할 나위 없이 우습고 미련한 짓이다… 나는 여기서 사람들의 악행을 말하지 않고 교황 제도 자체가 교회 질서와 정면으로 충돌한다는 사실을 보여주고자 한다.”

칼빈은 실천적인 측면에서도 당시 교회의 부패와 타락의 원인은 근본적으로 교황의 수위권을 주장하면서 교회의 유일한 머리이신 그리스도가 가시셔야 할 권위를 손상시키고 있기 때문이라고 보았다. “즉 로마 교황은 교회의 머리이신 그리스도의 대리로서 그리스도 대신에 온 교회를 주관하며 로마 교구가 모든 다른 교구들 위에 수위권을 유지하지 않으면 교회가 잘 조직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정작 교황을 모든 교회 위에 대리로 세워진 그리스도의 대리이며 보편적인 “행정적 머리”(administrative head)라고 주장하면서 결국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는 참된 머리를 잃고 혼돈에 빠져 버렸다. 칼빈은 교황이 베드로의 계승자로서 이제 그리스도의 대리이며 행정적 머리라는 교황주의자들의 주장을 유치하고 미련한 논리가 아닐 수 없다고 반문한다. “목자장, 최고의 감독, 교회의 머리이신 그도 한 장소에 대하여 영예를 얻으실 수 없었는데 그보다 훨씬 열등한 베드로가 그렇게 할 수 있었겠는가? 그들은 그리스도께서 수위권을 베드로에게 주셨고 베드로는 로마에 정좌했으며 따라서 베드로가 수위권자의 교구를 거기에 설치했다고 말한다. 이것은 유치하다는 정도를 넘은 미련한 이야기가 아닌가?”

칼빈은 감독 제도까지도 인정할 만큼 교회 제도와 관련해 유연한 입장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로마 교황의 수위권과 같은 비성경적인 제도까지 용납하려 한 것은 아니었다. 칼빈이 주장하는 감독제도의 허용 조건은 모든 목회자들이 어떤 종류의 특권 주장도 포기하고 오직 유일한 머리이신 그리스도께 복종하며 서로 동일한 형제로서 교제하는 것이다. “그런 교회 제도는 주교가 그리스도에게 복종하기를 거절하지 않고 오직 하나의 머리만 신뢰하듯이 그리스도에게 붙어서 그에게 종속되어 있다는 이유만으로 존경을 받으며, 오직 그리스도의 진리로 묶여져 있다는 이유로 서로 형제의 교제를 맺는 제도입니다.”

그러나 교황 수위권에 대한 칼빈의 비판은 단순한 비판을 넘어서 바람직한 교회 제도의 신학적 기초가 무엇인지를 밝히는데까지 나아간다. 칼빈은 교회 안에 세워진 사역자들의 역할과 목회의 중요성을 무시하지 않았다. “그는 그리스도께서 우리와 함께 계신다고 말한다. 어떻게? 교회를 다스리도록 세운 사람들의 봉사에 의해서라고 한다.” 그러나 분명히 해야 할 것은 사역의 효력은 인간 사역자에게 달린 것이 아니라 믿음의 유일한 대상이자 근거인 그리스도에게 달려 있다는 점이다. “왜 그의 기능을 위임하신 사역자의 머리에 의해서라고 하지 않는가? 바울은 하나가 되는 문제를 말하지만 그것은 하나님 안에서와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 안에서라고 한다.” 교회 안에서 그리스도께서 갖고 계신 절대적 권위와 관련해 칼빈은 승천하신 그리스도께서 지금도 교회 안에 계셔서 사역자들의 봉사를 통해 신자들을 친히 통치하심을 강조한다.

“그리스도께서는 승천하심으로써 우리 눈으로 볼 수 없게 되었지만 만물을 충만케 하기 위하여 승천하셨다. 그러므로 지금 교회에는 여전히 그리스도가 계시고 앞으로도 항상 계실 것이다. 바울은 그리스도께서 자신을 나타내시는 방법을 우리에게 알리고자 할 때, 그리스도께서 사용하신 봉사의 직분을 상기시킨다.”

칼빈이 볼 때 로마 교황의 수위권 주장의 근본적인 문제는 교회의 머리이신 그리스도의 통치를 온전히 인정하지 않는 데 있었다. 칼빈은 교황주의자들이 말하는 바와 같이 그리스도께서 교회 제도의 제정과 운영에 대한 권한을 대리자로 세운 베드로와 그의 후계자들에게 완전히 위임하셨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리스도께서는 사역자들의 봉사를 사용하시지만 결코 그들을 대리로 삼아 그의 몸인 교회의 모든 권한을 맡기지 않으셨기 때문이다. 머리이신 그리스도께서 교회 안에서 현재적으로 가지시는 절대적 주권과 그에 비해 상대적이며 유한한 사역자들의 권위에 대한 칼빈의 대조는『기독교강요』1543년 판에서 처음 진술한 다음의 문장에서 잘 표현되고 있다.

“교회에서는 오직 주께서 다스리시고 통치하셔야 하고 권위와 최고의 자리를 차지하셔야 하며 또 이런 권위는 오직 그의 말씀으로만 시행되고 운용되어야 한다. 그러나 주께서 우리 가운데 눈에 보이는 상태로 임재하여 거하시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우리는 주님께서 사람들의 사역을 사용하셔서 일종의 대리자로서 그의 뜻을 입으로 우리에게 공개적으로 선포하게 하신다고 말한 바 있다. 그러나 그들에게 주님의 권한과 존귀를 전수하여 주시는 것은 아니고 다만 그들의 입을 통해서 주께서 그 자신의 일을 행하시는 것뿐이다. 마치 일꾼이 도구를 사용하여 일을 행하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 참된 교회는 몸으로서의 한계를 넘는 주장을 멈추고 머리이신 그리스도께서 진술하신 교회 제도를 구현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그들은 세세하게 하늘과 땅의 위계질서를 비교하는 것처럼 해서는 안된다. 교회 제도에 대해 주께서 친히 자신의 말씀으로 진술해 주신 것을 넘어서는 제도를 시도하거나 그와 다른 제도를 따르는 것은 안전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참된 교회의 일치 역시 교황을 머리로 하는 조직체의 일원으로서 남아 있을 때 유지되는 것이 아니라 지금도 통치하시는 그리스도의 말씀에 순종할 때 가능하다.

4 결론: 칼빈의 교황 수위권 비판의 현재적 의의

500년이 지난 20세기 이후 로마 가톨릭의 형편은 많이 개선되었으며 교황 수위권에 대한 입장 역시 많이 달라졌기 때문에 종교개혁자들의 비판을 오늘날 로마 가톨릭을 향해 그대로 적용하는 것은 시대착오적인 적용이라는 주장이 가능하다. 그러나 한스큉이 지적한 것처럼 교황무류성(infallibility) 교리로 발전한 교황 수위권에 대한 주장은 여전히 로마 가톨릭 제도를 지탱하고 있는 가장 중요한 제도적 축으로 남아있는 것이 사실이다. 무엇보다도 오늘날 로마가톨릭의 공식적인 입장을 대변하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 교령은 교회에 관한 교의 헌장인 “인류의 빛”(Lumen Gentium)에서 교황 수위권에 대한 로마 가톨릭의 일관된 주장을 더 분명히 한다.

그러나 주교들의 단체인 주교단은 동시에 그 단장으로서 베드로의 후계자인 교황과 더불어 이해되지 않을 때에는 권위를 가지지 못한다. 목자들이든 신자들이든 모든 이에 대한 교황의 수위권(Primatus)은 온전히 유지된다. 교황은 자기 임무의 힘으로 곧 그리스도의 대리이며 온 교회의 목자로서 교회에 대하여 완전한 최고의 보편 권력(supremam et universalem potestatem)을 가지며 이를 언제나 자유로이 행사할 수 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로마 가톨릭이 교회론에 있어 이전보다 더 유연한 입장을 보여주는 것이 사실이지만 교회의 영적인 특징과 보편성은 다만 베드로의 후계자인 교황과, 또 그 교황과 친교를 이루는 주교들이 다스리는 “가톨릭교회” 안에서의 일치를 재촉한다는 점에서만 의미가 있을 뿐이다. 지난 50년 동안 교황 수위권에 대한 로마 가톨릭의 공식적인 입장은 크게 변화된 바가 없다. 그리고 베드로의 계승자이며 예수 그리스도의 대리로서 보편적이며 최고의 수장으로서의 교황에 대한 이해, 그리고 교황과의 친교로 이루어지는 주교단과 함께하는 것을 교회의 일치로 여기는 사고, 공의회를 비롯한 공식적인 교회의 교리와 예전은 근거를 교황의 수위권에 기초시키려는 입장은 모두 종교개혁시대 칼빈이 비판했던 교황 수위권의 핵심적인 주장과 특별히 다르지 않다. 따라서 로마 가톨릭 교리와 제도의 여러 많은 변화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어지는 장에서 분석할 종교개혁자 칼빈의 교황 수위권에 대한 성경적, 역사적, 신학적 비판 주장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하다고 말할 수 있다. 칼빈은 그의 교회론 전반에 걸쳐 바르고 건강한 교회 제도의 실현은 교회의 모든 지체들이 스스로의 한계를 인정하고 주어진 사명에 충성하면서 궁극적으로 유일한 머리이신 그리스도의 통치를 드러내려 최선을 다하는가에 달려 있음을 강조했다.
 
칼빈은 이와 같은 일관된 교회론적 이해를 따라 당시 교황 제도와 그 근간이 되는 교황의 수위권 주장이 성경적, 역사적 근거를 결여했을 뿐 아니라 무엇보다도 사제 계급의 세속적인 권력욕과 인간적인 편의를 위해 교회의 유일한 머리이신 그리스도의 영예와 권위를 침해하는 잘못된 주장이라고 비판한다. 칼빈의 이와 같은 비판은 교황 수위권을 주장하는 로마 가톨릭뿐 아니라 언제든지 같은 오류에 빠질 수 있는 모든 신앙 공동체들에게 중요한 의미를 던져준다. 이 지상에 존재하는 모든 신앙공동체들 안에 특정 인물이나 일부 계층의 기득권을 유지하고 사람들의 편의와 만족을 위해서 교회의 머리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주권을 침해할 가능성이 여전히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칼빈의 교황 제도에 대한 종교개혁적 비판의 실천적 의미를 오늘날 상황에서 효과적으로 적용하기 위해 바람직한 자세는 외적인 제도나 인간적인 권력에 의한 교회 일치나 성장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말씀에 순종함으로써 그의 주권을 구현하기 위해 늘 교회를 새롭게 하려는 노력이다.


요약 정리: 김순정 목사

 

 

http://www.reformednews.co.kr/41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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