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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부, 사순절 용어 사용금지 총회결의 재확인 결의

로마 카톨릭

by 김경호 진실 2020. 4. 10. 0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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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순절 용어 사용금지 총회결의 재확인 및 사순절 교독문 사용금지의 건


본 연구는 대구노회가 청원한 “사순절 용어 사용금지 총회결의 재확인 및 사순절 교독문 사용금지”에 관한 청원의 건을 연구 검토한 결과의 보고서이다. 청원의 취지는 “로마 카톨릭의 경절이자 종교개헉자들이 없앤 사순절 용어”를 사용하는 일이 퍼져가고 있는 상황에 대한 우려 때문이다.


따라서 사순절 용어 사용금지를 결의한 것을 재확인 함과 더불어 21세기 찬송가에 첨가된 사순절 교독문을 “찬송가 제작 시 삭제”할 것을 함께 청원하였다. 그 이유는 “한국교회가 전통적으로 지켜온 고난주간을 그대로 지키는 것이 유익”하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사순절 용어 사용 확산의 배경: 예배갱신운동과 교회력 복원 근래 일부에서 사순절을 비롯한 교회력의 절기에 대한 관심이 늘어나고 있는 것은 20세기 후반에 일어나기 시작한 예배갱신운동과 관련되어 있다. 특히 카톨릭의 “예배복고운동”에서 시작된 예배 갱신운동은 초대교회의 예배 회복이라는 과제를 통해 개신교에도 많은 자극을 주었다.


문제는 문화적 흐름에 맞추려는 이 예배갱신운동을 계기로 중세로부터 내려오는 교회력에 따른 절기와 행사나 축제를 복원하려는 움직임이 일어나는데 있다. 뿐 아니라 절기나 행사에 상징적으로 사용되는 색의 선택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교회 전통을 되살리려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


이런 움직임은 특히 에큐메니칼 운동에 참여하는 교단의 실천신학자들 사이에서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이들은 종교개혁이 교회력과 축일을 폐지한 것을 마치 어린아이를 목욕물과 함께 내어다 버린 것 인듯 비유하기도 한다. 이들은 종교개혁이 중세의 예전과 교회력과 예배 의식을 버린 것이 예배의 통전성을 훼손한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이들의 주도하에 중세의 전통을 다시 도입하여 예배를 활성화시키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는 것이다. 이 흐름에 따라 한국교회에서도 예배가 변화하면서 여러 혼란을 불러왔기에 분명한 목회적 지침과 방향의 제시가 시급한 상황이다.


이 사안의 검토에는 먼저 교회력의 역사적이며 신학적 의의를 되돌아 볼 필요가 있다. 사순절에 대한 관심은 결국 교회력과 절기의 전통을 되살리려는 보다 큰 움직임의 일환이기 때문이다. 특히 사순절 용어와 교독문이 성경적 규범을 따라서 어떤 문제점이 있는지를 살펴 바른 방향을 찾아야 한다.


예배를 비롯해 기독교가 문화의 흐름에 대해 무관심하고 도외시하는 것도 문제지만 지나치게 문화에 적응하려는 경향도 마찬가지 위험이 있다. 이러한 극단을 오가는 일을 방지하기 위해 예배에 관한 성경적이며 신학적 원리를 확립하는 것이 필요하다.


교회력 (Ecclesiastical Calendar/ Church Year)과 기독교 절기


교회력이란 단순히 말하자면 교회의 절기 또는 기독교 절기를 명시한 달력을 뜻하기에 “기독교 절기”나 “교회 절기”로 부르는 것이 더 적절하다. 한다. 그에 관한 언급을 성경에서 찾아볼 수는 없다. 교회력의 신학적 의미는 하나님의 구속적 계시와 그의 역사를 일년의 계절적 변화에 결부시켜 예배와 축제를 제도화한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교회력은 “구속 역사를 경험하도록” 도와주는 하나의 “신학적 제도”라고 할 수 있다. 절기들은 성경의 진리를 행사와 의식을 통해서 가시화시켜 체계적이며 효과적으로 드러낼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생각은 개신교에서도 일부 받아들여왔다. 교회력를 훨씬 체계적으로 짜여져 지키는 가톨릭의 경우는 절기가 훨씬 많다.


교회력은 4세기 이후 교회가 핍박으로부터 벗어나 자유화된 다음에 체계화되기 시작했다고 보는 것이 정설이다. 기독교가 공인되고 자유화되면서 급속도로 확장되며 이교도들이 대거유입 되기 시작한 것도 교회력의 형성에 또 다른 요소였다. 교회력의 여러 절기들이 이교적 관습과 절기들과 연관되어 형성된 것을 추정할 수 있는 많은 증거들이 있다. 교회는 이교의 축제들을 기독교 신앙의 절기들에 흡수하기 시작하였다. 일종의 토착화이며 상황화라고도 할 수 있다.


교회력은 구원의 언약과 성취가 “시간 안에서” 이루어지고 있음을 통해 “기독교 복음의 특성”을 드러내는 유익이 있다. 절기는 1년을 주기로 하여 구원의 역사를 되새기며 소망의 안목을 열어 믿음을 강화하는 것을 도울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교회력은 “단순히 반복되는 경축과 금식의 연례적인 행사 이상”의 의미가 있다. 특히 교회가 구원의 진리를 절기에 따라 공동체로서 함께 축하하는 것은 개인이나 사회 또는 국가의 기념일을 경축하는 것 이상의 큰 영적 의미를 가진다.


물론 절기에만 영적 축복이 임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절기를 특정한 구속 사건의 의미를 되새기는 계기를 삼는 것은 유익하다. 교회력 자체는 “성령의 인도를 받아 여러 세기에 걸쳐 서서히 발전”한 것일 수 있다. 이는 “시간 안에서” 하나님께서 인류의 구원을 위하여 하신 일을 기념하며 그 의미를 교회 공동체가 되새기는데 그 목적이 있다.


16세기 종교개혁 당시에도 루터를 포함한 보수적인 개혁자들은 교회력을 보존하려 했으며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근거로 하여 보증되지 않은 축전만은 제거하였다.” 가장 큰 문제는 교회력이 점차 미신화되었다는 점이다. 종교개혁자들은 2,000명에 달하는 성자들의 축일로 넘쳐나는 교회력을 단순화시켰다. 종교개혁자들은 교리와 의식과 교회 정치만 개혁한 것이 아니었다. 교회력도 성경 진리에 입각해 그리스도 중심적인 절기를 회복시켰던 것이다.


부활절, 고난(성)주간(the Holy Week)과 사순절 (四旬節 Lent)


교회 절기를 체계화한 교회력의 근간은 기독교 절기의 핵인 부활절에 있다. 교회력의 출발점은 기독교 신앙의 모든 근원이 되는 부활 사건이다. 부활의 경축은 주일의 기원일 뿐 아니라 모든 교회 절기의 기원이다. 초기 기독교는 고난과 부활을 구분하지 않고 기념했다. 그것이 파스카(Pascha) 절기이다. 이는 본래 초대교회에서 그리스도의 수난과 부활을 함께 기념하는 절기였다.


사순절은 부활절 40일전에 오는 이마에 재로 십자가를 그리거나 바르며 죄를 통회하는 성회 수요일(Ash Wednesday)에서 시작하여 6주간 금식, 절제, 회개로 그리스도의 고난을 기념하는 되는 절기를 말한다. 오늘날 지켜지는 사순절 Lent는 7세기 말이나 8세기초에 시작되었다.


사순절의 절정은 “고난주간 또는 성주간 Holy week”이다. 그것은 예루살렘 교회에서 행해지던 성지순례에서 고난주간에 일어났던 일들을 재현하는 것에서 비롯되었다. 종려주일과 세족 목요일, 성금요일과 부활절을 차례로 기념하는 예전 행사를 시행했던 것이다.


역설적인 것은 오늘날 유럽이나 남미에서 매년 2월 중순이나 하순에 벌어지는 요란한 세속적 축제인 사육제(謝肉祭)가 사순절과 관련이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사순절이 시작되기 앞서 마음껏 먹고 놀자는 생각에서 비롯되었다.


사육제의 원어인 카니발(carnival)은 고기(carne)를 금한다(levare)는 말에서 유래했다. 그리스도인들이 “명절을 지킬” 때 오직 순전함과 진실함의 떡”으로 그렇게 해야한다.(고전5:8) 왜냐하면 기독교의 절기는 이교도의 만취와 부도덕의 난장판으로 타락해 버리는 축제와는 달리 거룩한 특색을 띠어야 한다.


대한예수교 장로회(합동)의 제84회 총회는 사순절이 성경적 근거가 없는 카톨릭의 문화적 유산임과 그것의 실질적인 폐해를 들어서 철폐할 것을 결정한 바 있다. 이 결정에는 칼빈을 위시한 종교개혁자들은 “사순절이 미신적으로 시행되고 공로를 세우며 금식이 하나님께 예배가 된다고 주장하고 실행”했기에 폐지한 것을 중요한 근거로 삼았다.


특히 마음의 변화 없는 금식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바도 아니며 혐오스러운 위선이며 이를 의무처럼 강요하는 것은 잘못이라고 보았다. 총회는 사순절을 지키는 것이 성도들의 건덕을 위해 득보다는 실이 많다고 판단했다. 특히 6주간에 걸친 긴 사순절을 “교회의 경절”로 채택해 지키는면서 고기를 금하고 철야를 하는 관습은 성도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하기 어렵고 이로 인해 양심의 “심히 괴로움”을 당할 수 있음을 지적한다.


또 그로 인한 정상적인 생활의 지장이 초래될 것을 우려하였다. 그리하여 절기 자체가 형식화될 것도 또 다른 우려 요소이다. 특히 일단 사순절을 교회의 경절로 받아들일 경우 다른 로마교회의 경절도 받아들일 수 밖에 없을 것이라는 점도 지적했다.

 

성경적 예배 원리와 고난주간의 바른 기념


한국교회는 대체로 사순절 전체가 아니라 부활주일 앞 한주를 고난주간으로 기념해왔다. 결국 사순절 용어와 교회력 절기의 문제는 예배의 성경적 원리에 입각하여 판단해야 한다. 예배의 원리를 성경 이외에서 찾을 수는 없다. 이에 관한 성경 연구는 교회 역사의 교훈, 교의적 고려와 사회와 문화의 필요에 대한 목회적 판단 보다 훨씬 중요하다. 성경이 모든 시대와 문화에 획일적으로 적용될 수 있는 예전은 아니더라도 예배의 원리를 계시하기 때문이다.


성경의 예배는 하나님께서 역사 속에 행하신 구원을 기념하는 "역사적인 예배"이다. 기독교는 신비적이며 명상적인 종교들과 달리 하나님이 역사 속에서 행한 일들의 의미를 중시한다. 기독교의 예배는 자연의 절기를 따라 하는 경축 행사가 아니라 하나님의 역사를 기념하는 일이 중심이다.


즉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사건을 재현하고 그 의미를 기념한다. 초대교회로부터 예배가 그리스도의 구원을 선포하는 말씀과 가시적으로 보여주는 성찬으로 되어진 것은 그 때문이다. 이런 예배는 “무역사적인 신비적” 경험을 본질로 하는 이교의 예배와 아주 다른 모습이다. 교회력과 절기의 도입도 바로 이런 역사적 차원을 보다 분명히 한다는 점에서 주장되고 있다.


그러나 교회력과 절기의 제도적 장치들이 과연 하나님과의 만남의 적절한 수단인가를 반성해 볼 필요가 있다. 고난주간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심령으로 삶을 돌아보며 죄를 겸손히 회개하는데 초점이 맞추어져야 한다. 특히 죄로 인해 심판과 저주를 받아 마땅한 우리의 고난을 그리스도께서 대신 당하신 것을 기억하는 주간이 되야 한다.


개혁주의의 특성은 의식적이기보다 의미를 살려 일상의 예배로 나가는 것이다. 사순절 뿐 아니라 성경적 근거가 없는 것을 모두 경계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교회력은 중세이후 이교화와 미신화의 오염되었다. 종교개혁자들이 이를 바로 잡은 것은 바른 성경적 전통을 세운 것이다. 전통을 되살린다고 잘못된 관습을 다시 도입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교회력과 절기의 복원에 대한 또 다른 중대한 우려도 있다. 그것은 상업화의 힘이 교회절기를 세속화시키는 것이다. 오늘날 교회절기의 이교화나 미신화 뿐 아니라 “소비자 문화”에 굴복하는 위험도 경계해야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대신 색깔 달걀과 초콜렛 토끼가 주인공이 된 부활절과 산타클로스와 선물이 구주 탄생을 대신하고 있으며 이른바 “성 발렌타인데이”처럼 아예 연인들의 날이요 초콜렛과 캔디를 주고받는 관습으로 세속화된 경우도 있다. 여기에 또 다시 교회력을 바탕으로 사순절을 비롯한 교회절기들이 제도화될 경우 또 다시 비성경적일 뿐 아니라 상업화의 오염도 심화될 수 있음을 경계해야 한다.


결론


사순절 문제에 관하여는 이미 본 교단 84회 총회가 사순절 용어 사용금지를 결의한 바 있다. 뿐만 아니라 “한국교회가 전통적으로 지켜온 고난주간을 그대로 지키는 것이 유익”하다고 판단하였다. 이런 결정의 배경에는 20세기 후반 카톨릭의 영향으로 일어난 “예배갱신운동”의 영향이 큰 것으로 사료된다.


이런 상황에 비추어 볼 때 “사순절 용어 사용금지 총회결의 재확인 및 사순절 교독문 사용금지”에 관한 청원을 한 것은 시의성이 있다고 할 수 있다. 이 청원은 84회 총회 신학위원회의 연구결과를 다시금 확인하고자 하는 목회적 우려에서 비롯되었다고 생각된다.


사순절을 비롯하여 교회의 절기를 규정한 교회력은 성경적 근거가 약하다. 역사적으로 볼 때에 4세기 이후에 비로서 제정되어 중세를 거쳐 체계화되었다. 교회력은 하나님의 구원 역사를 일년 주기로 재연하는 예배와 축제적 관습을 통해 신앙을 강화하려는 목적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역사적으로 다양한 문화와 종교와 뒤섞이면서 이교화되고 미신화되는 폐단이 싹텄던 것이 사실이다. 종교개혁자들이 사순절 뿐 아니라 교회력 자체를 철폐한 것은 그것이 비성경적이며 이교적 요소와 미신화로 인한 폐단을 보았기 때문이다.


사순절 문제는 역사적 교훈과 오늘날 문화적 경향을 고려할 때, 84회 총회의 결의를 따르는 것이 타당하다고 사료된다. 끝으로 사순절 용어 사용을 금지할 경우 자연히 21세기 찬송가의 개편시 첨가된 사순절 교독문을 “찬송가 제작 시 사용하지”않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일 것이다.



http://www.reformednews.co.kr/sub_read.html?uid=7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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