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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변하는 시대 속에서의 교회의 길

은혜

by 김경호 진실 2020. 4. 24. 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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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변하는 시대 속에서의 교회의 길
심상법 교수(총신대 신대원 신약학 교수)
 



급변하는 시대 속에서 변하지 말아야 할 것(진리)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변화해야 한다.”는 어느 시인의 말은 의미심장하다. 시대의 변화의 흐름을 읽어야 하고 또한 자기 성찰과 변혁 없이는 참된 진리를 지키기가 어렵다. 참된 소통 또한 시대 변화에 대한 이해 없이 이루어 질 수 없으며 자기성찰과 변혁을 통하지 않고는 이루어 질 수 없다. 이러한 과정을 거칠 때 참된 진리를 지킬 수 있고 참된 소통을 이룰 수 있다. 참된 개혁도 마찬가지며 참된 통합도 마찬가지다. 개혁을 외치고 정의를 부르짖었던 사람들에게 시인의 노래는 다시 한 번 우리를 진정 희망찬 아름다운 슬픔으로 인도한다.

 

고난을 살아낸 그대여

 

그것은 장한 인간 승리이지만

다시 무너지고 깨어져내려 맑은 눈뜨지 못하면

먼지만큼 작은 자신의 참 모습을 보지 못하면

내세운 말 속에 숨어있는 욕망을 보지 못하면

고난을 뚫고 나온 자랑스러운 그대 역시

또 하나의 덫입니다 슬픔입니다.

 

고난을 온몸으로 끌어안고 승화시켜

생의 가장 깊은 절망과 허무의 바닥에서

 

맑은 눈으로 떠오른 사람이 아니라면

우리 앞을 비추이는 희망의 사람이 아닙니다.”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한 사회적 혼란 속에서 2020년을 시작하면서 우리는 다시 한 번 사도 바울의 로마서 121-2절의 말씀을 가슴에 담아본다.

 

어떻게 자기성찰과 자기변혁이 가능한가? 참된 자기성찰과 자기변혁은 은혜로우면서도 의로우신 하나님과의 마주침에서만 가능하다. 그러한 마주침에서 참된 뉘우침이 있고 뉘우침깨우침으로 나아가 마침내 세상을 향한 영향력 있는 복음의 전파자(선교적인 교회)가 된다. 하나님은 역사와 환경과 인간관계를 통하여 자기성찰과 변혁을 갖게 하신다. 불의하고 불평등한 역사와 환경과 인간관계를 통하여 그 속에서 우리를 부르시고 만나시는 하나님과의 마주침과 뉘우침과 깨우침이 없다면 정의와 개혁을 외치고 행하면서도 교만(자기기만)과 미움과 복수의 화신이 될 수밖에 없다. 철학자 니체(Nietzsche)가 경고한 것처럼 악과 싸우면서 악마가 된다. 자기성찰과 자기변혁이 없는 개혁은 또 다른 자기변호(self-defence)이며 자기성취(self-accomplishment)이며 자기 확장(self-extension)에 불과하다.

 

위의 시인의 노래처럼 도리어 맑은 눈 뜨지 못하고 자신의 승리를 자랑하고 그 승리에 취한 존재가 된다. 급변하는 우리 시대를 바라보며 주신 말씀 앞에서 몇 가지를 묵상하고자 한다.

 

보수와 개혁

 

우리 교단을 장로교 보수교단, 개혁교단이라고 부른다. 보수는 진리이신 하나님과 그 말씀에 대한 보수요, 개혁이란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 우리(공동체)의 삶과 세상을 개혁하는 일이다. 그런데 이러한 보수가 하나님과 그 말씀을 빙자하여 우리의 기득권을 보수하는 일에 사용된다면 그것은 잘못된 보수며 기만적인 보수이다. 지금 우리는 절대적 진리(眞理)를 부정하고 일리(一理)만을 주장하는 포스트모던 시대 속에서 하나님을 믿고 성경을 진리로 주장하는 기독교를 독선과 꼴통의 종교로 비난하는 반-기독교적이고 종교 다원주의적인 시대 가운데 살고 있다. 우리의 기독교는 배타성과 독선으로 똘똘 뭉쳐진 무식한 꼴통 종교로 비난받고 있다. 이유는 일리(一理)를 주장하는 포스트모더니즘의 덕목은 관용(tolerance)과 다름/차이(difference/différance)의 모습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시대와 사회 속에서 우리는 어떻게 참되고 영향력 있는 복음 전파자(선교적인 교회)가 될 수 있나? 지금 우리는 기독교 역사 속에 1번도(?)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도전 앞에 서 있다. 성경적 가치가 위협(동성애)을 받고 비록 한시적(?)이지만 공동체적인 모임과 예배가 위협을 받고 있다. 이러한 파고(波高) 속에 우리는 어떻게 성경적 가치(Sola Scriptura)를 보수할 수 있는가? 과연 우리가 취할 행동은 무엇인가? 무력하게 뒤로 물러서 침륜에 빠질 것인가? 아니면 그냥 밀어붙일 것인가? 진퇴양난(進退兩難)처럼 보인다. 어떻게 하여야 우리가 보수교단이 되고 개혁교단이 될 수가 있나?

 

2. 보수와 변혁(자기 성찰)

 

여기에 변화하지 말아야 할 것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변화해야 한다.”라는 시인의 말은 우리에게 시사해주는 바가 많다. 보수(保守) 이전에 자기성찰과 변혁이 우선이라는 말이기도 하다. 성경적 진리를 외치면서 자기 진리를 정당화하지는 않았는지, 성경적 권위를 외치면서 자기 권위를 앞세워 종교적 갑질(종교권력자의 모습)을 하지는 않았는지, 차이와 다름을 말하면서도 차별하지는 않았는지. 시대는 무섭게 변화하고 있는데, 지구는 돌고 있는데 아직도 자신(egoism)과 지구(천동설)에 고정하여 있다면, 그는 진정 변화(변혁)와 개혁의 사람이 아니다. 변화의 시대 속에 들려오는 하늘(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귀가 없는 사람이다. 급변하는 시대 속에 먼지만큼 작은 자신의 참 모습을 보지 못하[] 내세운 말[진리] 속에 숨어있는 욕망을 보지 못한다면이것이 우리 기독교(교회)의 무서운 덫이고 슬픔이다.

 

물론 이 말은 결코 이 세상의 껍데기를 따라 살라’(συσχηματζεσθεταἰῶνι τοτ)는 말이 아니라 자신의 내면을 변화하라’(μεταμορφοσθετῇ ἀνακαινσει τονος)는 의미이다(12:2). 보수(保守) 이전에 자기성찰과 변혁이라는 의미이다. 이러한 성찰과 변혁의 또 다른 모습은 베드로전서에도 잘 나타난다. 비록 성도들이 그 땅에서 나그네와 우거자로 살면서 악행한다고 주변사람들(세상 사람들)로부터 비방을 받을 때에, 먼저는 자신 속에 도사리고 있는 모든 악독과 모든 기만과 외식과 시기와 모든 비방하는 말을 버리고 갓난아기들 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젓(영원한 말씀)을 사모하고”(2:1-2), 나아가 이방인 중에서 행실을 선하게 가져 너희를 악행한다고 비방하는 자들로 하여금 너희 선한 일을 보고 오시는[심판하시는] 날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2:12)고 권면한다. 그리고 이어 인간의 모든 제도를 주를 위해 순종하고 뭇사람을 공경하며 형제를 사랑하며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왕을 존대하며 사환들과 아내와 남편들에게도 순종과 사랑과 배려를 권면하며, 다 마음을 같이 하며 동정하며 겸손하며 형제를 사랑하며 불쌍히 여기며 악을 악으로 욕을 욕으로 갚지 말고 도리어 복을 비는 삶을 살도록 권면할 뿐 아니라 근신과 사랑과 접대와 봉사의 삶을 살도록 권면한다(2:13-4). 이것이 진리 보수를 주장하는 교회의 변혁적인 삶이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의 은혜와 자비만으로 가능하다.

 

3. 오직 하나님의 은혜와 자비만이(Sola Gratia)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12:1)

 

참된 영향력 있는 복음전파자, 선교적 교회가 되는 것도 오직 하나님의 은혜와 자비하심만으로 가능하다. 민족을 치유하고 세상을 변혁시키는 사명의 완수도 하나님의 은혜만으로 가능하다. 민족복음화와 세계선교도 하나님의 은혜만으로 가능하다. 내 삶의 변화도, 맑은 눈 뜨는 것도 하나님의 은혜만으로 가능하다. 우리 모두는 종교개혁자들의 후예답게 오직 하나님의 은혜와 자비로우심을 구하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 먼지만큼 작은 자신(‘지렁이 같은 야곱’)을 볼 뿐 아니라 내가 도리어 교회의 핍박자며 포행자였다.라고 고백하는 우리가 되었으면 한다. 위기가 우리에게 또 다른 갱신과 부흥의 기회가 되기를 진정으로 소원한다.

 

하나님 우리가 여기 있나이다. 우리를 도와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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