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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려동물을 키우는 문제에 대한 신앙교육, 어떻게 할 것인가?

목회

by 김경호 진실 2020. 9. 22. 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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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려동물을 키우는 문제에 대한 신앙교육, 어떻게 할 것인가?

 

 

 

안재경 목사

(온생명교회)

 

 

이번 제70회 고신총회에 ‘반려동물에 대한 신학적인 입장을 정리해 달라는 청원(발의 : 충청서부노회장 오병욱 목사)이 발의되었다. 제안설명은 아래와 같다.

 

 


(제안설명)

최근 반려동물에 관한 사회문화적 관심이 커지고 있습니다. 국내 반려동물 인구가 천만 시대라고 합니다. 요즘 반려동물이 등장하는 TV 프로그램 증가는 반려동물 인구가 얼마나 많은지를 보여줍니다. 현재 반려동물에 관련 문화는 단지 개인의 기호에 관련된 것으로만 볼 수 없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오늘날 교회 내에도 반려동물 성도 수가 상당히 많습니다. 그로 인해 신앙교육 자체가 어렵기도 합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지금까지 교회 안에서의 반려동물에 관한 신앙교육은 오롯이 목회자 개인에게 맡겨 두었습니다. 그러나 점점 늘어가는 반려동물 인구(성도)를 생각할 때 교회 안에서도 반려동물에 대한 서로 다른 의견과 문화로 인해 목회자와 성도, 성도와 성도 사이에도 갈등이 예견되고 있습니다. 자칫 교회의 영적 성장에도 큰 장애가 될 수 있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아래의 질문 예들처럼 반려동물에게 세례 주는 문제나, 반려동물 장례 문제로 갈등을 겪게 될지도 모릅니다. 미국이나 유럽에서만 일어나는 일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이러한 때에 반려동물에 관한 고신총회의 통일된 바른 교육지침을 통해 교회 내의 혼란과 갈등을 방지하고, 바른 가치관을 위해 바른 교육의 필요성이 대두되고 있다고 할 것입니다.

 


 

 

 

사실, 반려동물에 대한 신학적인 입장을 정리해야 할 때가 되었다. 우리나라도 벌써 국민 4분의 1에 해당하는 수가 반려동물을 돌보고 있다. 참고로 농림축산검역본부가 실시한 ‘2018년 동물보호 국민의식 조사’ 결과에 따르면 반려동물 보유 가구의 비율은 2010년 17.4%에서 2015년 21.8%, 2017년에는 23.7%로 증가했다. 반려동물을 돌보는 사람들이 급속도로 늘어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코로나 사태는 사람들과의 만남을 꺼리게 만들기 때문에 반려동물에 대한 생각은 더 커져갈 것이다. 본 글에서는 반려동물 문제에 대해 원론적인 차원에서 간략하게나마 정리해 보려고 한다. 위와 같은 제안설명과 함께 이 헌의안에서는 아래와 같은 구체적인 질문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1. 사람이 반려동물의 엄마, 아빠가 될 수 있는가?

반려동물을 키우는 이들은 그 동물을 자식처럼 생각하곤 한다. 유럽에 있을 때 섬기던 교회 성도가 반려견을 키웠는데 미국으로 발령을 받아 가야 하는데 반려견 신분증을 잃어버려서 미국으로 데려가지 못하고 잠시 맡아달라고 해서 맡은 적이 있다. 그 성도가 공항에서 인사를 하고 출국장으로 들어갔는데 잠시 후에 온 얼굴이 눈물범벅이 되어 반려견 이름을 부르면서 뛰어나와 다시 작별(?)을 하고는 들어가는 것을 보았다. 반려견이 자식 이상이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반려견의 평균 수명이 15년 내외라고 하니 어린아이로 취급할 수 있다. 그래서 반려견을 자기 자식이라고 말하고, 그 반려견과 말을 건네면서 ‘애야, 엄마 봐’라고 한다든지, ‘아빠가 먹을 것을 주는데 왜 안 먹어?’라는 말 등을 한다. 어떤 사람이 지인으로부터 ‘지금 자식 장례식을 치루고 있다’는 문자를 받아 깜짝 놀라서 어떻게 된 일이냐고 물으니 반려견이 죽어서 장례식을 치르고 있다는 말을 듣고는 황당했다고 한다. 이렇게 반려동물이 아무리 가족 같다고 생각되더라도 자식이라고 부르고, 자신을 부모라고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을 것이다.

 


2. 반려동물과 결혼할 수 있는가?
사람은 반려동물과 결혼할 수 없다. 성경을 보라. 하나님께서 모든 생물을 만드셨을 때에 그 짝을 주셨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제일 마지막으로 만드셨는데 첫 인간인 아담에게는 짝이 없었다. 하나님께서 모든 동물을 아담 앞으로 이끌어 오셨고 아담은 이름을 지어 주었다. 모든 동물의 이름을 지어 주면서 아담은 그중에 자신의 짝이 될 만한 존재가 있는지 찾았을 것이다. 모든 동물은 그 짝이 있었고, 자신은 아무리 살펴보아도 자신의 짝이 될 존재가 없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래서 외로움을 느끼고 있을 때 하나님께서는 그를 잠들게 하시고 그의 몸 일부분을 가지고 짝 될 존재를 지으셨다. 그것이 바로 하와였다. 즉, 사람에게는 다른 어떤 동물도 짝이 될 수 없다.

하나님께서는 동물과 성관계를 하는 것을 크게 죄악시하셨다(레 18:23). 약속의 땅에 들어가서 모든 백성들이 함께 모여서 수간(獸姦)하는 이들은 저주하라고 하셨다(신 27:21). 수간하는 이들은 남자든지 여자든지 관계없이 죽이라고 하셨다(레 20:15-16). 사람은 동물과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것을 보여준다.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을 받았지만 동물은 그냥 동물에 불과하다. 어떤 경우에도 사람이 반려동물과 결혼할 수 없다. 이것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받은 인간이 스스로 동물의 자리로 떨어지는 것이다. 반려동물과 결혼하려고 하는 것은 하나님이 주신 창조질서를 어지럽히는 것일 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모독하는 것이다.

 


3. 반려동물과 함께 예배당에서 예배드릴 수 있는가?
반려동물을 키우는 분들이 주일이 되면 곤란할 것이다. 반려동물을 집에 두고 예배당에 가야 하니 예배를 하면서도 홀로 있는 반려동물로 인해 마음이 편치 않을 것이다. 주말에 겨우 반려동물과 함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는데 주일에 예배당에서 시간을 보내어야 하니 말이다. 예배와 교회모임을 빨리 끝내고 서둘러 집으로 가고 싶을 것이다. 지금은 코로나로 인해 이 문제가 어느 정도 해소되었을 것이지만 말이다. 앞으로는 예배당 옆에 반려동물을 돌보는 공간을 따로 만들어야 한다는 소리마저 나올 것이다. 그러면 반려동물을 키우는 이들이 너무나 좋아할 것이다.

반려동물을 집에 버려두기보다는 주일에 데리고 와서 함께 예배하면 좋지 않겠냐고 생각하는 이들이 있을 것이다. 어떤 성도는 다른 성도들의 눈치를 보면서 가방에 몰래 반려견이나 반려묘를 넣어 와서 예배 때 얼굴만 쏙 내게 하고는 데리고 있는다. 심지어 성찬식에서 떡을 받아서 그 반려견에게 떡을 떼어주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이것은 그리스도의 살과 피를 모독하는 것이다. 신앙적인 의미를 떠나서라도 생각해 보자. 호텔이나 슈퍼 등 거의 웬만한 공공장소는 반려동물을 데리고 갈 수 없다. 예배당은 사적인 공간인가? 그렇지 않다. 예배당은 공공장소이고, 그래서 반려동물을 데리고 와서 함께 예배하는 것은 삼가야 할 것이다.

 


4. 반려동물의 장례식을 치르고 납골 안치는 해도 되는가?
유럽에서는 반려동물을 위한 병원뿐만 아니라 호텔도 있고, 장례식장도 있다. 반려동물을 위한 장례업이 큰 인기를 얻고 있다. 반려동물을 위한 장례식도 정성껏 치르고 있다. 한국에도 이미 반려동물 장례업체가 수십 군데나 된다고 한다. 이들 업체는 반려동물을 사람처럼 똑같이 장례를 치뤄주고 묘지와 추모공간도 만들어 준다. 애견인들 카페에서는 ‘삼가 고견(故犬)의 명복을 빕니다’라는 추모의 댓글이 있고, 경우에 따라서는 조의금을 건네기도 한다.

종교의 경우는 어떤가? 일본에서는 ‘애완동물공양처’라고 해서 사찰의 지장전(知藏殿)에 사람의 위패보다는 동물의 위패가 더 많다고 한다. 원불교에서는 개에게도 불성이 있다고 주장하면서 반려견을 위해 천도재를 드려주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유럽의 반려동물 장례식장에는 종교별로 맞춤형 빈소도 차려져 있다.

그런데 로마교회는 장례미사가 성례이기 때문에 반려동물의 장례미사를 허락하지 않는다. 우리 개신교회도 마찬가지이다. 반려동물의 장례식은 치를 수 없다. 반려동물을 너무나 아끼는 신자라고 하더라도 사체는 잘 처리해야 하겠지만 굳이 납골 안치까지 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5. 반려동물이 죽으면 천국에 갈 수 있는가?

반려동물은 죄를 짓고, 그래서 그리스도의 피 공로로 인해 구원받고 하는 것이 있을 수 없다. 그렇다면 반려동물이 죽으면 천국 갈 수 있느냐의 질문은 원천적으로 잘못된 질문이다. 어떤 신학자는 동물을 인간 삶의 동반자라고 했다는데, 이 말을 오해하면 안되겠다. 우리는 이 지구상의 생물들과 함께 살아가도록 지음을 받았다는 의미 정도로 받을 수 있겠다. 하나님께서 첫 사람 아담에게 온 세상을 다스리라고 하셨을 때 하나님이 지으신 모든 생물들과 더불어 살고 그들을 잘 돌보아야 한다고 말씀하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물은 구원의 대상일 수가 없다. 그래서 반려동물이 죽으면 천국 갈 수 있느냐는 질문 자체가 성립되지 않는다.

천사의 경우를 생각해 보자. 천사의 경우에는 그들이 영적인 존재라고 하더라도 타락한 천사들이 있기에 천국에 갈 천사들과 지옥에 갈 천사들이 있다. 사탄은 영원히 음부에 던져질 것이다(계 20:10). 동물들은 천사의 경우와 다르다. 동물들에게 영혼이 있냐, 없냐를 가지고 논쟁하기도 하는데 성경에서는 사람만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을 받았다고 말씀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반려동물의 경우에 천국에 갈 수 있느냐는 질문 자체를 논외로 해야 한다. 반려동물이 천국에 갈 수 있냐는 질문을 뒤집으면 반려동물이 지옥에 갈 수 있냐는 질문이 되기 때문이다.



6. 종말에 예수님이 재림할 때 반려동물들은 어떻게 되는가?

동물들이 천국에 갈 수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와는 별개로 종말에 반려동물들이 어떻게 될 것인지에 대해 묻는 이들이 많다. 반려견을 너무나 아끼던 어떤 성도는 천국에서 자기가 아끼는 그 반려동물과 함께 하지 못한다면 천국에 가고 싶은 마음이 없다는 말까지 했다. 제발 그 천국에 자기가 아끼는 그 반려동물과 함께 있을 것이라고 말해 달라고 했다. 우리가 잘 알듯이 구약성경에서 맹수들과 연약한 짐승들이 함께 뒹굴고, 독사의 굴에 어린아이가 손을 넣어도 아무런 해를 입지 않는다는 말씀(사 11:6-9)은 여호와의 증인들이 천년왕국이 시작될 때 벌어질 모습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셔서 최종심판이 있고 난 다음에 천국이 어디에 건설될지 알지 못한다. 이 지구가 완전히 파괴되고, 우리가 알지 못하는 이 우주의 어떤 곳이 천국이 될지, 아니면 이 지구가 완전히 새로워져서 이 지구상에서 천국이 펼쳐질지 모른다. 어디가 되었든지 우리는 하나님께서 처음에 지으셨고 타락하여 신음하고 있는 온 우주만물이 회복될 것이다. 그리스도의 구속은 하나님께서 지으신 모든 것에 적용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 때문인지 로마가톨릭에서는 ‘동물 축복 예식’을 행하는데 “짐승들도 인간의 속죄 의식에 참여하여 다른 모든 피조물과 함께 그리스도의 구원에 참여”한다고 말한다. 개신교회에서는 동물축복예식이란 것이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우리는 천국에서 반려동물들도 함께 있게 될 것이라고 기대할 수 있다.

 


7. 반려동물에게 세례를 주고 반려동물 목회를 할 수 있는가?

동물은 사람처럼 죄를 짓지 않는다. 동물은 본성대로 움직일 따름이다. 그렇다고 동물이 선하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인간의 타락 이후에 동물도 함께 타락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에 과격하게 서로 공격하는 성향도 가지고 있다. 심지어 반려동물이 다른 동물이나 생물을 물어뜯어서 죽이는 경우도 있다. 그렇다고 할지라도 그 반려동물이 사람처럼 하나님과 다른 생물을 향해 죄를 지었다고 볼 수 없다. 그런 의미에서 반려동물은 구원의 대상이 아니다. 우리는 반려동물에게는 세례를 줄 수 없다.

반려동물에게 세례를 줄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반려동물을 대상으로 목회한다는 것은 가능하지 않다. 대신에 반려동물을 키우는 성도들이 있기에 그들이 반려동물로 인해 겪은 문제들을 가지고 목회하는 것은 필요하다. 반려동물이 병든다든지, 심지어는 오랫동안 키워서 너무 정이 든 반려동물이 죽는 경우에 ‘펫로스 증후군’이라고 해서 큰 고통으로부터 헤어나오지 못하는 경우가 있기에 이런 성도들을 잘 위로해 주어야 할 것이다.

반려동물을 키우는 사람들이 일천 만 명이라고 할 정도로 우리나라도 이 문제는 일상화가 되었다. 반려동물을 키우는 것이 외로움을 해소하기 위한 목적이라고만 생각해서는 안될 것이다. 반려동물을 키우는 이들을 향해 그들이 사람에게 관심이 없기 때문에 동물을 키우는 것이라고 말해서는 안될 것이다. 어떤 유학생 부인이 자기에게 영어를 가르쳐주는 기독교인에게 미국사람들이 반려동물을 너무 많이 키우고 거기에 너무나 많은 돈을 쏟아붓는데 그 정성과 돈이면 아프리카 사람들의 가난을 다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 이야기했더니 그 다음부터는 자기를 보려고도 하지 않더라는 말을 들었다. 가난한 이들을 돕는 것으로 유명한 어떤 교회는 교인들이 반려동물을 키우는 것을 아예 반대한다고 하는데 그렇게 극단적으로 생각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차제에 반려동물에 관한 신앙교육이 헌의안으로 올라온 것을 기화로 총회적으로 반려동물 돌봄에 대한 신학적인 정리와 목회적 지침을 제시하면 좋겠다. 일차적으로 총회에서는 신대원 교수회가 되었든지 신학위원회가 되었든지 이 문제에 대해 잘 연구하여 보고서를 작성하도록 요청해야 할 것이다.

대충 다음과 같은 내용을 담으면 좋지 않을까? 1) 반려동물을 키우는 것이 일상화되었다는 것을 알리는 것, 2) 반려동물과 함께 생활하는 것이 우리의 신앙생활과 연결되어 있다는 것, 3) 하나님께서 주신 자연만물을 누리고 즐기듯이 반려동물을 키우는 것 자체가 하나님이 주신 세상을 누리는 것 중에 하나라고 보아야 한다는 것, 4) 교회는 반려동물을 키우는 것, 그리고 반려동물과 함께 생활하는 것이 신앙생활과 일상 삶에 미치는 영향 등을 잘 살펴야 한다는 것, 5) 반려동물을 돌보고 시간을 보내는 것이 다른 성도들이나 세상과의 접촉을 기피하는 것이 되지 않아야 한다는 것, 6) 반려동물을 키우면서 사람들과 더 교감하고 세상에 더 관심을 기울이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는 것, 7) 반려동물을 키우는 것을 통해 영적으로, 사회적으로, 정서적으로 더 성숙하고 풍성해질 수 있어야 하겠다는 것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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