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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수아와 갈렙의 자리

구약학

by 김경호 진실 2020. 12. 8. 10:01

본문

“온 회중이 그들을 돌로 치려 하는데 그 때에 여호와의 영광이 회막에서 이스라엘 모든 자손에게 나타나시니라.”(민 14:10)

 

[리폼드뉴스] 구약성경을 읽다보면 많은 인물들을 만나게 된다. 여러 인물뿐만 아니라 많은 사건들도 만난다. 사건뿐만 아니라 시대시대 마다 다양한 역사를 만나게 된다. 족장시대의 역사, 이스라엘의 역사, 그리고 그 주변 이방 민족들의 역사를 접하게 된다. 성경은 이러한 다양한 내용들을 이야기 형식으로 혹은 사건 내용을 전개하는 형식으로 이어간다. 우리들은 이러한 기록들을 하나님의 말씀이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이란 무슨 뜻인가?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이야기는 무슨 뜻인가? 성경에는 다양한 이야기들로 구성되어 있다. 그런데 이러한 내용들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말은 무슨 의미를 갖고 있는가? 우리는 여기서 ‘의미’라는 단어를 접하게 된다. 의미(意味)란 말이나 글이 나타내고 있는 내용을 의미한다.

 

성경에 기록된 다양한 이야기들을 통해 드러내고자 하는 내용이 무엇인가를 확인하는 것이 중요하다. 성경은 특별한 의미를 담고 있는 하나님의 말씀이다. 즉 하나님의 특별한 어떤 의도를 드러내기 위한 하나님의 말씀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본문인 민수기 14:1-10절 말씀을 접근해야 한다.

 

여호수아와 갈렙 중심의 본문 이해

 

우리는 오래 동인 본문을 접근할 때 ‘여호수아와 갈렙을 보라. 이들의 긍정적인 사고를 보라. 모두가 부정적인 시각을 갖고 있을 때 이들은 믿음으로 긍정적인 시각을 갖고 판단하고 행동했다. 우리들도 여호수아와 갈렙처럼 긍정적인 믿음을 갖자’였다.

 

나무랄데 없는 좋은 이야기이며 논리다. 우리들 역시 여호수아와 갈렙처럼 긍정적인 믿음을 가지고 신앙생활하는 것이 중요하다. 모두가 부정적인 시각을 갖고 원망하고 불평할 것이 아니라 긍정적으로 감사하며 살아야 한다. 이러한 이야기를 반대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런데 무엇이 문제인가? 이런 이야기가 본문에서 가장 먼저 나와야 하느냐는 것이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한다면 무엇을 위한 하나님의 말씀인가? 하나님 앞에서 원망과 불평하지 말고 감사하며 긍정적으로 살라는 목적으로 주신 하나님의 말씀인가? 이렇게 말하기에는 무언가 부족한 느낌을 받는다. 성경은 원래 기록 목적대로 이해해야 하는데 이런 목적을 위해 성경이 기록 되었겠는가? 여기서 우리는 내 자신에게 이런 질문을 던져야 한다.

 

하나님 중심인가, 인간중심인가?

 

‘성경은 하나님의 자기계시’라는 대명제를 받아들인다고 한다면 성경은 하나님이 어떠한 분이신가를 이해하는 것으로부터 출발해야 한다. 적용은 그 다음 일이다. 하나님은 본문 말씀을 통해 우리들에게 전해주고자 하신 계시의 의도를 정확히 먼저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성경은 창세기에서부터 계시록에 이르기까지 여러 이야기를 기록한 여러 권의 책이 아니라 한 권의 책이다. 성경은 처음서부터 끝까지 하나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그 중심 맥을 짚어야 한다.

 

성경 본문을 통해서 먼저 하나님이 어떠한 분이신가를 먼저 본문의 앞뒤 전후 문맥을 통해서 확인해야 한다. 성경은 하나의 줄거리를 처음서부터 끝까지 전개해 간다고 믿기 때문에 전체 이야기 속에서 본문의 내용을 확인해야 한다. 영화를 관람할 때 처음서부터 끝까지 보아야 영화의 내용과 의미를 알 수 있다. 영화 중간부터 관람하면 영화의 의도와 의미를 전혀 알 수 없다.

 

마찬가지이다. 본문만을 가지고 이해하면 다양한 이야기들이 나올 수 밖에 없다. 이런 경우 본문의 의미 역시 이해하는 사람 수만큼 다양할 것이다. 설교자가 이런 개념을 갖고 있다면 설교 자체는 설교자 마음대로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하는 것으로 끝날 것이다. 설교자의 성경 이해력에 따라 설교내용도 달라진다. 따라서 설교자의 설교는 성경을 이해하는 결과적 산물이라 할 수 있다.

 

기록 목적대로 성경 이해하기

 

야곱의 아들 12명이 애굽으로 내려갔다. 그곳에서 민족적인 단위로 성장했다. 애굽에서 많은 고통을 받았다. 하나님은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 민족을 구출해 냈다. 애굽에서 해방을 받아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가나안 땅을 향해가고 있다. 광야 40년이 마쳐질 때쯤 바란광야에 머물게 되었다(민 12:16).

 

민수기 13:1에는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사람을 보내어 내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주는 가나안 땅을 정탐하게 하되 그들의 조상의 가문 각 지파 중에서 지휘관 된 자 한 사람씩 보내라”고 했다. 여기서 하나님의 말씀이 모세에게 임했다는 것이 중요하다. 하나님께 서 모세에게 어떤 의도를 가지고 입성하게 될 가나안 땅을 정탐하라고 했는가?

 

이러한 하나님의 의도는 성경 속에서 찾아야 한다. 이를 위해 우리는 창세기 15:1-21절 말씀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아브람과 언약을 맺는 장면이다. 창세기 15:18절에 “여호와께서 아브람과 더불어 언약을 세워”라고 말씀한다. 언약의 내용은 무엇인가?

 

창세기 15:14-16절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반드시 알라 네 자손이 이방에서 객이 되어 그들을 섬기겠고 그들은 사백 년 동안 네 자손을 괴롭히리니 그들이 섬기는 나라를 내가 징벌할지며 그 후에 네 자손이 큰 재물을 이끌고 나오리라 너는 장수하다가 평안히 조상에게로 돌아가 장사될 것이요 네 자손은 사대 만에 이 땅으로 돌아오리니 이는 아모리 족속의 죄악이 아직 가득 차지 아니함이니라 하시더니”라고 기록한다.

 

여기서 첫째, 아브람의 자손이 이방에서 객이 되어 그들을 섬기게 될 것이다. 둘째, 객이 된 이방에서 4백 년 동안 괴로움을 당할 것이다. 셋째, 하나님이 이방을 징벌하실 것이다. 넷째, 후에 아브람의 자손이 큰 재물을 이끌고 나오게 될 것이다. 다섯째 모세는 평안하게 세상을 떠날 것이지만 4대 만에 이땅, 즉 가나안 땅으로 돌아오게 될 것이다. 이같은 언약은 하나님이 책임을 지겠다는 약속이었다(창 15:17).

 

이러한 약속은 430년이 지난 후 본문인 민수기 14:1-10절에서 이루어져 가고 있다. 하나님의 약속은 430년이 지났을지라도 꼭 이루어가시는 신실한 하나님이시다. 그 약속을 통해 무엇을 보여주고 계신가? 성경 전체의 이야기를 통해서 보여 주신 것은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의 구원이다. 구원하시는 일을 통해 하나님은 자신을 보여주고 계신다.

 

우리들은 먼저 하나님을 바르게 이해해야 한다. 하나님의 바르게 이해해야 내가 어떻게 행동하고 살아갈 것인지에 대한 좌표가 설정된다. 칼빈이 그의 기독교강요에서 내가 나를 아는 지식은 성경을 통해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전제될 때에 가능함을 강조했다. 내가 하나님 앞에서 무슨 일을 하겠다는 것보다 먼저 하나님이 어떠한 분이심을 알아야 한다. 내가 창작해서 하나님을 알아가는 것이 아니라 성경을 통해서 바른 하나님을 알아야 한다.

 

마치 자녀가 부모에게 어떻게 효도할 것인지를 말하기 전에 먼저 부모님은 나에게 어떠한 분이신가? 하나님은 나에게 어떤 희생적인 사랑을 주셨는가? 부모님에 대한 바른 이해는 내가 어떻게 효도할 것인지에 대한 문제가 해결된다.

 

하나님의 약속에 의한 본문 이해하기

 

지금까지 살펴본 바와 같은 맥락에서 본문이 이해되어져야 한다. 본문 1절에 “온 회중이 소리를 높여 부르짖으며 백성이 밤새도록 통곡하였더라”고 했다. 430년 전에 이스라엘의 조상인 아브람과 언약한 대로 하나님은 지금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해방시켜 주셨다. 그리고 그 약속대로 광야를 거쳐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직전에 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정탐꾼을 통해 자신들이 목표로 삼고 있는 가나안 땅의 이야기를 듣고 보니 겁이 났다. 그래서 그들은 “밤새도록 통곡”했다. 애굽에서 자신을 인도해 낸 “모세와 아론을 원망”했다. 그리고 다시 “애굽으로 돌아가는 것”을 희망했다. 구체적으로 모세를 배척하고 “한 지휘관을 세우고 애굽으로 돌아가자”고 했다(민 14:2-5).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굽에서 자신들의 힘으로 지금 현재 위치인 바란광야까지 온 줄로 착각한 것이다. 가나안 땅 입성 역시 자신들의 능력으로 가능한 줄 착각했다. 하나님께서 왜 자신들을 애굽에서 해방시켜 주셨고 광야를 거쳐 가나안 땅에 들어가게 하신 이유를 모르고 있는 것이다. 아니 의도적으로 알려고 하지 않았다. 그들의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거절했다.

 

하나님께서는 이미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네가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백성과 함께 여기를 떠나서 내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맹세하여 네 자손에게 주기로 한 그 땅으로 올라가라”고 말씀하시기도 했다(출 33:1).

 

이러한 하나님의 약속을 거부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불순종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아브람과 맺은 언약을 이루어가고 계신다. 더 넓게는 장차 주어질 하나님의 구원을 위해 역사를 진행해 가고 계신다. 이러한 하나님의 구원을 위해 선택받은 사람들이 있다. 반면에 버림과 심판을 받는 사람들이 있다. 구원과 심판이 역사 속에서 계속 진행해 가면서 장차 종말에 나타난 메사야의 약속을 바라보면서 민수기서의 역사를 진행해 가고 계신다.

 

본문은 12명의 정탐꾼 가운데 여호수아와 갈렙의 보고를 클로즈업 시키고 있다. 여호수아와 갈렙의 이야기는 마치 430년 전 아브람과 맺은 언약이 그대로 성취고 있음을 보여준 하나님의 대 역사의 파노라미이다. 여호수아와 갈렙의 보고 내용을 보면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무엇을 보여주고 있는가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여호수아와 갈렙의 보고 내용을 통해 하나님을 바르게 알려주신다. 하나님의 이미 창세기에서 약속해 주신 약속을 430년 지난 후에도 지키신 신실한 하나님을 보여주고 있다. 그래서 “여호와는 우리와 함께 하시느니라”고 했다. 말 그대로 하나님께서 주신 약속의 땅이었다(민 14:6-9). 하나님의 말씀을 불순종한 자들에게는 두렵겠지만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자들에게 두려워할 이유가 없다(민 14:9).

 

본문 민수기 14:10절에서 “온 회중이 그들을 돌로 치려 하는데 그 때에 여호와의 영광이 회막에서 이스라엘 모든 자손에게 나타나시니라”고 말씀한다. 여호수아와 갈렙의 보고내용이 부정될 순간에 하나님의 영광이 임재했다. 10명의 정탐꾼들은 거부당했다. 여호수아와 갈렙이 믿는 하나님의 영광이 충만했다.

 

이스라엘은 10명의 정탐꾼의 보고 내용이 아닌 여호수아와 갈렙의 보고 내용에 의해 생명이 보존되었다. 그런 의미에서 원망했던 모든 이스라엘 회중에게도 여호와의 영광이 임했다. 그 영광은 회막에서 여호와의 영광이 이스라엘에게 임했다는 사실이다. 불순종과 심판 중에서도 회막을 통해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만나 주셨고 긍휼을 베풀어 주셨다.

 

맺는 말

 

우리들이 하나님의 만나는 자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의 자리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지 않는 그 어떠한 방법으로는 하나님을 만날 수 없다. 언제나 하나님의 영광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나타났다.

 

고후 4:6절에 “어두운 데에 빛이 비치라 말씀하셨던 그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추셨느니라”고 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그 자리가 거룩한 자리요, 축복의 자리이다.

 

고전 4:6절에 “기록된 말씀 밖으로 넘어가지 말라”고 하셨다.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며 살아야 한다. 여호수아와 갈렙의 자리는 하나님의 약속의 계시를 전달해 주는 자리였다. 여호와의 영광을 드러내는 자리였다.

 

우리들은 지금 현재 내 자리가 어떤 자리인가를 살펴보자. 회초리로 사용되고 있는가, 아니면 하나님의 긍휼과 사랑과 자비를 전하는 은혜의 자리로 사용되고 있는가를 살펴보자. 우리의 자리가 하나님의 심판의 자리인 10명의 정탐꾼들 처럼 원망과 불평의 자리인가. 아니면 여호수아와 갈렙 처럼 하나님의 영광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충만한 은혜와 영광의 자리인가를 살펴보자.

 

소재열 목사(새사랑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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