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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드니 그레이다누스(Sidney Greidanus)의 “전도서에서 그리스도 설교하기”(1)

구약학

by 김경호 진실 2021. 2. 16. 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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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세 5경이나 예언서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설교하기란 쉽다. 그러나 전도서를 포함한 시가서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설교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시가서를 설교할 때는 윤리 도덕적 설교를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구속사 설교를 강조하는 시드니 그레이다누스는 이러한 문제점을 해결하는 방편으로 전도서를 다루었다.

 

그의 저서인 전도서의 그리스도 어떻게 설교할 것인가에서는 전도서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를 어떻게 설교할 수 있는가를 제시한다. 전도서는 시가서의 대표적인 성경 중 하나이다. 그의 저술을 통해서 우리는 전도서 즉 시가서가 말하는 예수 그리스도를 어떻게 발견하고 설교할 수 있는가를 배우게 된다.

 

1. 신약의 지혜=예수 그리스도

 

시드니 그레이다누스는 설교자들은 교회에서 단순히 구약의 지혜를 복음으로 선포해서는 안된다. 구약의 율법이 복음으로 선포되려면 신약의 검증을 받아야 한다고 했다(시드니 그레이다누스, 전도서의 그리스도 어떻게 설교할 것인가, 56). 이는 적절한 주장이다. 설교자들이 오류를 범하는 경우 중 하나는 바로 풍유적 해석방법이다. 구약성경을 풍유적으로 해석하여 자기가 찾고자 하는 것을 찾아내는 방식이다. 그래서 구약의 지혜를 복음으로 선포하려 한다. 구약의 율법이 복음으로 선포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것이 있다. 그것은 신약의 검증이다. 이것이 없이 구약의 율법, 지혜를 복음으로 선포하면 성경을 곡해하는 것이 된다.

 

구약에서 말하는 지혜도 예외는 아니다. 구약의 지혜도 복음으로 선포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신약의 검증을 받아야 한다. 신약의 지혜는 그 핵심이 어디에 있는가? 지혜롭게 사는 법, 지혜롭게 인생을 설계하는 것에 있는 것이 아니다. 신약의 지혜의 핵심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에 있다. 다시 말해 신약의 지혜는 예수 그리스도가 핵심이다(시드니 그레이다누스, 전도서의 그리스도 어떻게 설교할 것인가, 56). 그 예수 그리스도가 바로 인간으로 나타나신 하나님의 지혜이시다.

 

고린도전서 1:24-30절을 보자. “오직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 25 하나님의 어리석음이 사람보다 지혜롭고 하나님의 약하심이 사람보다 강하니라 26 형제들아 너희를 부르심을 보라 육체를 따라 지혜로운 자가 많지 아니하며 능한 자가 많지 아니하며 문벌 좋은 자가 많지 아니하도다 27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28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 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29 이는 아무 육체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 30 너희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고 예수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와서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원함이 되셨으니.”

 

사도 바울은 고린도에 보낸 첫 번째 편지에서 하나님께 부름을 받은 자들에게는 그의 인종, 소속, 혈통이 유대인이든지 헬라인 즉 이방인이든지 상관이 없이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능력이시고 지혜라고 한다. 예수 그리스도(크리스토스)는 제2위 성자 하나님이시다. 그런데 그 2위 성자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능력, 지혜라고 한다. 예수 그리스도는 성자 하나님 즉 인격체이시다. 그러나 능력(뒤나미스)이나 지혜(소피아)는 인격체가 아니다. 그런데 성경은 인격체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인격체가 아닌 속성에 해당하는 능력과 지혜를 동일한 존재로 본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능력이시고 지혜이신 분이 예수 그리스도라는 것이다.

 

그 예수 그리스도께서 지혜를 권위있는 자와 같이 가르치셨다. “이는 그 가르치시는 것이 권위 있는 자와 같고 그들의 서기관들과 같지 아니함일러라.”( 7:29)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상에 오셔서 천국 복음을 전파하실 때 사람들이 놀랍게 들었다. 그것은 당시 랍비들의 교훈과 전혀 다른 교훈을 전하셨기 때문이다. 단지 전하는 방법론에 놀란 것이 아니라 그 내용에 놀란 것이다.

 

예수님의 가르치심을 보자.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연구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언하는 것이니라 40 그러나 너희가 영생을 얻기 위하여 내게 오기를 원하지 아니하는도다.”( 5:39-40) 예수님이 전하신 내용은 자기 계시이며 하나님 나라의 복음이다. 이것은 당시에 랍비들이 가르칠 수 없는 것들이었다.

 

그레이다누스는 우리는 구약 본문을 단순히 설교하는데 그쳐서는 안되며 사람들이 생명(영생)을 얻도록 그리스도와 연결해야 한다고 했다(시드니 그레이다누스, 전도서의 그리스도 어떻게 설교할 것인가, 56). 구약을 단지 인간중심적으로 해석하여 도덕적 교훈이나 윤리적 교훈을 도출하는데 그쳐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구약의 본문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와 연결해야 한다. 그 이유는 사람들이 생명을 얻도록 하기 위함이다. 이것이 복음의 목적이고 설교의 이유이다.

 

교부들은 설교는 반드시 그리스도를 설교해야 한다고 주장했다(시드니 그레이다누스, 전도서의 그리스도 어떻게 설교할 것인가, 57). 이러한 주장은 확실히 옳은 것이다. 만약 구약의 본문을 가지고 그리스도를 설교하지 않으면 유대교의 설교와 다를 바가 없기 때문이다. 그것이 기독교와 무슨 상관이 있는가? 단지 자기 민족의 우월성과 도덕적 교훈으로 가득한 유대교의 설교를 듣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것을 기독교가 따라 할 이유가 있는가?

 

그러나 막상 우리가 성경을 들고 구약을 읽으면 그리스도를 어떻게 설교할지 막막하다. 그리스도에 대한 직접적 언급이 없기 때문이다. 특히 전도서의 경우는 더욱 그러하다. 전도서는 메시야 본문이 하나도 없다(시드니 그레이다누스, 전도서의 그리스도 어떻게 설교할 것인가, 57). 뿐만 아니라 오실 메시야에 대한 예언도 없다. 메시야에 대한 내용이 전혀 없는 전도서의 경우 어떻게 그리스도를 설교할 것인가? 이것은 아주 중요한 문제이다. 이런 문제로 인해 설교자들은 전도서에서 그리스도를 설교하기가 어렵다고 느낀다.

 

그래서 이런 문제를 해결하는 방편으로 알레고리를 사용하기도 한다. 교회사를 보면 상당히 많은 설교자들이 알레고리의 방법으로 구약 본문을 설교했다. 이들의 목적은 하나같이 그리스도를 설교하려는데 있었다. 그러나 알레고리는 억지로 구약 본문을 그리스도와 연결하는 문제를 가져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방법 외에는 다른 대안이 없다고 여겨 알레고리 해석법이 그리스도를 설교하는데 통용되었다(S. Greidanus, Preaching Christ from the Old Testament, 69-176).

 

사실 이 알레고리 해석법은 첨가식 해석의 하나이다. 이것은 신약의 예수 그리스도를 거꾸로 구약 본문에 끼워 넣어 해석하는 방식이다. 브라운은 이에 대해 그 위험성을 지적한다. “기독교 해석자들 사이에 코헬렛을 단순히 복음서 메시지를 위한 포장지 정도로 취급하려는 유혹이 전반적으로 번지고 있다. 이것은 단호히 바로잡아야 할 어리석고 위험한 시각이다.”(Brown, Ecclesiastes, 121).

 

물론 전도서의 내용과 대조하여 그리스도를 설교하는 방법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이런 경우 매우 신중해야 한다. “신약과 교회사를 연구해보면 구약에서 그리스도를 설교하는 적절한 방법을 적어도 7가지는 발견할 수 있다. 이러한 7가지 방법 가운데 어느 방법이 본문의 메시지를 신약의 그리스도와 이어주는지 살피는 것은 머리를 맞대는 창의적 사고의 한 형태이고 대개 여러 가지의 가능성으로 이어진다. 물론 설교할 때 이 모든 방법을 다 사용해서는 안되고 가장 설득력이 강한 방법을 아마도 나머지 한두 가지 방법의 지지를 받는 방법을 선택해야 한다.”(시드니 그레이다누스, 전도서의 그리스도 어떻게 설교할 것인가, 58). (계속)

 

김순정 목사(말씀사역원 본부장)

 

시드니 그레이다누스(Sidney Greidanus)의 “전도서에서 그리스도 설교하기”(1):리폼드뉴스 (reformed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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