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순절운동에 대해
라은성 교수(국제신학대학원, 역사신학)
오순절주의는 미국 감리교회 뿌리를 둔 캔사스 출신의 젊은 대학생 Charles Parham 으로부터 시작합니다. 그를 가리켜 ‘오순절주의의 아버지’라 부릅니다. 웨슬리안들을 오순절파라 부르지 않지만, 그들의 신학은 엄연하게 오순절 운동의 근거가 됩니다. 구원과 분리시켜 성화를 은혜의 두 번째 사역으로 보고, 세 번째 경험인 성결파의 신념, 성령과 불의 세례을 추구합니다. 파함은 신적 치유와 방언의 경험을 실제로 원했습니다. 초대교회, 즉 사도시대에 있었던 것을 19세기에도 추구했던 것이죠.
1900년 파함은 성경대학교를 개학하여 ‘사도적 신앙’을 증진시켰습니다. 그 결과 복음전파가 쉽게 일어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파함은 성령세례의 처음 증거로서 방언을 가르친 최초의 사람이었습니다. 1900년 새해 전날 철야예배 때, 그러니까 파함의 제자들 중 한 사람 애그너스 오즈먼(Agnes Ozman)이 방언으로 말했습니다. 그 주간이 끝나기 전에 파함을 비롯한 34명의 학생들이 방언으로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오순절주의는 이렇게 하여 탄생하게 됩니다. 하지만 많은 비판을 받았습니다. 25,000명 이상의 추종자들이 1904~1905년에 생기면서 이 운동은 점차 확산되기 시작했습니다.
‘웨슬리 부흥’과 ‘대각성’(Great Awakening)이 다른 것은 현대 부흥운동의 선구자들에게 잘 알려진 사실은 아닙니다. 웨슬리 부흥은 미국의 오순절주의와 다른 점이 있습니다. 여러 면에서 웨슬리 부흥은 오순절운동에 촉매역할을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웨일즈에서 이런 현상들과 이적들을 수행하고 계셨다면 여기서도 하실 수 있다는 생각을 할 수 있었습니다.
아무튼 1905년 파함이 성경학교를 개학하고 ‘사도적 신앙’(The Apostolic Faith)이라는 신문을 출판하기 시작했던 텍사스 주의 오순절주의는 새로운 장을 형성하게 됩니다. 성경학교에서 오순절운동을 주도하게 될 윌리엄 시모(William J. Seymour)가 등장합니다. 그는 남부 흑인출신의 성결파(Holiness) 설교자였습니다. 시모는 갖가지 사건들을 경험한 후 로스앤젤레스로 이주하여 ‘아주사 스트릿 미션’(Azusa Street Mission)이라 불리는 부흥운동을 주도하였습니다.
1906년 9월에 이르러 13,000명의 사람들이 성령세례를 받았다고 합니다. 시모가 많은 설교를 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모임은 아침 10시에 시작하여 다음 날 새벽 2~3시까지 지속되었습니다. 수천 명의 참여자들이 시모가 제안하는 것을 사모하여 1906년과 1909년 아주사 스트릿에 모여들었습니다. 이에 대한 비난도 많이 일어났습니다. 그래서 파함과 시모는 서로 화해하지 못하고 결렬했습니다. 이것을 가리켜 ‘제 1물결’이라 부릅니다.
‘제 2물결’은 ‘뉴 카리스마 운동’(New Charismatic Movement)이라 불립니다. 이전에 일어났던 카리스마 운동, 즉 오순절운동처럼 방언을 비롯한 어떤 은사들을 사모하는 운동이었습니다. 교파와 교단을 초월하여 여기저기서 일어났습니다. 1960년 캘리포니아 주의 밴누이스(Van Nuys)에서 현대 카리스마 운동이 감독교회(Episcopalian Church)에서 시작했습니다. 방언으로 시작된 이 운동은 ‘타임즈’와 ‘뉴스윅’에도 실려 루터란과 장로교까지 번져 나갔습니다. 대학교들에서도 일어났는데 특별히 뉴잉글랜드 지역이었습니다. 그러니까 1962년 10월 방언(glossolalia) 현상이 IVP 모임, 예일 대학교에서 일어났습니다. 새로운 오순절부흥은 감독교회, 루터란교회, 장로교회, 감리교회, 그리고 심지어 로마 카톨릭 교회들까지도 포함되었습니다.
1967년 봄 방학때 30명의 열렬한 카톨릭들이 ‘성령의 세례’를 갈구하면서 노트르담에서 모임을 가졌습니다. 1968년 100~150명 가량이 되는 어느 로마 카톨릭 오순절 모임이 있었습니다. 1968년 450명의 로마 카톨릭 카리스마들이 모였습니다. 1970년 점점 성장하여 1,300명이 참여하는 모임이 개최되었습니다. 1973년 22,000명의 로마 카톨릭 카리스마들은 노트르담에서 모임을 가졌습니다. 다시 1974년 같은 장소에서 30,000명의 사람들이 운집했습니다. 1975년 국제적 모임으로 확대되어 50개국에서 참여하는 모임으로 성장했습니다.
‘제 3물결’은 1983년 피터 와그너(Peter Wagner)에 의해 명명되었는데, 제 3물결의 역사적 현장에 있습니다. 성령의 1물결은 오순절운동으로 시작되었고, 2물결은 주요한 교파들에서 시작된 카리스마운동이었고, 두 운동은 여전히 지속되고 있습니다.
오순절파와 카리스마들이 경험했던 것처럼 엄격한 복음주의자들과 여러 기독교인들이 성령의 초자연적인 사역을 바라는 80년대의 제 3물결을 보고 있습니다. 우리 시대에 이러한 새로운 물결은 지속될 것입니다(Pastoral Renewal, [July-August, 1983], 1~5).
이 운동은 흔히 이적과 표적 운동(Signs and Wonders Movement)라 불리든지 아니면 ‘빈야드 운동’(Vineyard Movement)이라 불립니다. 카리스마들이나 비카리스마들이든지 할 것 없이 모든 교회들에서 일어났습니다.
이 운동의 세 가지 주요한 지도자들이 있는데 ① 존 윔버(John Wimber)입니다. 이 운동의 중심에 있는 자로서 척 스미스의 갈보리 채플 운동에서 나온 빈야드 교회를 설립한 자입니다. 그는 피터 와그너와 함께 풀러 신학교에서 가르쳤습니다. 그 과정은 ‘표적, 이적과 교회 성장’이었습니다. ② 풀러 신학교 교수인 피터 와그너였습니다. ③ 폴 캐인(Paul Cain)입니다. ‘현대 선지자’(modern prophet)라 불리는데 자신이 ‘우리 시대의 가장 탁월한 신앙 치유자’라 불리는 윌리엄 브란햄(William Branham의 제자입니다. 브란햄은 신격과 삼위일체에 대한 그릇된 견해로 이단성을 가진 거짓 선지자였습니다.
이적과 표적운동에서 방언이 포함되어 있지만 방언을 오순절이나 카리스마운동들처럼 강조하지 않습니다. 표적과 이적운동(빈야드 운동)은 예언과 치유를 강조합니다.
이제는 제 4물결이 시작되었습니다. 한국교회의 영성운동의 현주소는 ‘제 3의 물결’을 지나 수도원적 관상신학이라는 ‘제 4의 물결’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 출처 :
현대의 신비주의 영성훈련, 교회의 지도자들이 “관상기도 운동”을 얼마나 알고 있는가? (0) | 2021.07.21 |
---|---|
영성 개념의 문제들과 성경적 경건의 길 (0) | 2021.07.19 |
예장합동, 김요한 대표에 엄중경고 (0) | 2019.11.01 |
천국지옥 체험 ‘유튜브’ 간증 ‘위험하다’ (0) | 2019.04.25 |
신자들은 신비주의에 왜 속을까? (0) | 2018.05.3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