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現下 한국교회 전도의 문제점

간하배선교사

by 김경호 진실 2021. 8. 17. 0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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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하배 교수는 미국정통장로교회 소속 선교사로 한국에 파송되어 오랜시간 동안 총신대에서 교수사역을 감당하였다. 이 논문는 간하배 교수가 총신대에서 사역하며 「신학지남」에 기고한 논문이다.

서론

오늘날 한국교회에 있어 전도사업의 상태는 어떠한가?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복음전파의 운동이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는가? 한국교회는 세상에서 하나님도 소망도 없이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증거 해야 할 의무를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것이다. 한국교회는 이 같은 의무를 충실하게 이행하고 있는가?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함에 있어 교회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그것은 충분히 실천되고 있는가? 그렇지 않으면 불충분한 것인가? 무엇이 행해질 수 있는가? 우리들이 사용하기에 유용한 방법은 어떠한 것인가? 전도에 관해 여러 가지 문제점이 필요로 하는 연구란 무엇인가? 또한 앞날에 있어 우리가 피하지 않으면 안 될 여러 가지의 위험이란 무엇인가? 어떤 일반적 원칙이 한국에 있어 우리들의 전도사업의 수행을 도울 수 있을 것인가?

이 아주 간단한 졸고는 이 같은 여러 가지 문제점의 약간만 취급해 보려고 한다. 본고에서 바랄 수 있는 모든 것이란 오직 널리 일반화된 어떤 점만을 말하는 것뿐이다. 이 문제는 더욱더 자세하고 세밀한 연구와 조사를 필요로 한다. 여기서는 주로 한국장로교회에 대한 예로서 국한하려한다. 장로교회는 한국 개신교회의 50%에 이른다.
 
우리는 복음주의에 의해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에 관해 주로 생각하고 있다. 이것은 아주 좁은 의미에서 복음 전도이다. 아마 마땅히 복음전도로 언급되어야 하는 교회사업의 한 중요한 부분은 복음에 관한 불충분한 지식을 가진 신자들의 생활에 대해 빈약한 생각을 가진 신자들의 가르침과 교육을 그의 목적으로 가져야만 한다는 것은 아주 참된 사실이다.

그러나 본고에서는 간단한 것만 취급해서 죄 가운데서 죽었던 사람들에게 대해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구원에 관한 사랑의 좋은 소식인 메시지로서 전도하는 것에만 한정하는 것이다.

한국교회의 전도계획에 관해 두 가지 상이한 생각이 있는 것 같다. 그 중 하는 교회가 전도에 대한 노력을 명령받은 것이다. 「장로교인의 생활」이란 잡지의 논설은 한국교회는 아세아에서 가장 빨리 자란 교회란 점에 관해서 언급했다. 한국주재 연합장로교 선교사 S. Moffet은 Christianity Today란 잡지 중에서 “아마 남양군도를 제외하고는 역사가 얕은 교회 중에서 복음주의가 한국보다 더 도덕적이고 영적인 기틀에 깊이 파고든 곳은 아무데도 없을 것이다. 이 두 세대에 있어 고립된 이교도의 나라가 아세아의 최고의 프로테스탄트 국가가 되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전도의 노고를 인식함에 있어 보이지 않는 음성이 역시 있는 것이다. 한 작은 책자는 1961년 한국교회를 소개하고 뉴델에서의 3차 WCC총회에 대한 새로운 발전을 소개하기 위해 한국기독교 연합회에 의해서 발간되었다. 「한국교회」란 이 작은 책자 중 한국기독교 연합회의 임무가 “전도”란 제목으로 간단하게 요약되어 있다.
 
이 기사 중 있는 말은 확실하게 과장된 말이기도 하다. 즉 “재검토”니 “재평가와 쇄신”이니 하는 말이다. 또한 이것은 교회전도의 본질에 관한 성서적 이해의 “완전한 결여”라고 말하고 있다. 이는 마치 시계추가 한편으로 흔들려 갔을 때를 말하는 편견일 것이다. 그러면 엄밀히 오늘날 교회의 전도 상태는 어떠한가? 과거에 있어 교회는 무엇을 해왔는가? 그렇게 현저하게 변화된 두 가지의 판단을 정당하게 하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1. 초기 50년간

초기 50년에 있어 한국교회가 놀랍게 자랑했던 것은 극히 간단하고 명확한 사실이다. 처음 세계교인들은 1886년의 교회록에 기록되어 있는데 그해 9명이었다. 그런데 50년 후인 1936년에는 세례교인수는 119,955명이었고 42,972명의 어린이들이 역시 학습교인으로 나타나고 있다. C. A. Clark은 1937년 「선교 사업을 위한 Nevius 계획」이란 저서에서 1927년부터 36년까지에 18만명의 새로운 신자가 교회에 나오게 되었다고 기록했다. 그것은 112%를 획득한 것을 나타내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다음의 15년간도 역시 초기의 반세기에 있어서 이 성장에 대해 예외가 될 수 없었다. 연합장로교회의 기관지 Presbyterian Life는 1959년 2월 15일 판에서 1950년에 있어 한국장로교의 교인은 약 40만명이라고 말했다. 만일 이와 같은 사실이 믿을 만한 것이라면 15년간에 한국장로교회는 1936년에 있었던 성장보다 4배나 더 크게 발전한 셈이 된다.

사가들과 교회일꾼들은 이 초기의 놀라운 교회발전에 있어 아주 명확하고 일반적으로 사용된 전도방법에 대해 거의 일치한 의견을 보여주고 있다. 그 방법은 Nevius 계획을 일반적으로 들고 있다.

1890년 6월 한국주재 장로교 선교회의 초빙으로 중국 주재 선교사 J. Nevius 목사는 서울에 와서 선교사들이 그 일을 수행하는데 있어 명심할 사업의 원칙을 논의하면서 두 주일을 보낸 일이 있었다.

전 장로회 평양신학교 목회학 교수 C. A. Clark 목사는 한국에서 「선교사업을 위한 Nevius 계획」이란 저서 중 훌륭한 개요로서 그의 계획을 요약하고 있다.

1)선교사는 널리 순회하면서 친히 전도할 것.

2)신자는 저마다 한 교사로서 합당한 사람을 만나면 복음을 전하고 가르침으로 개인 혹 단체가 저마다 복음사업의 확장에 다라서 교회발전에 힘쓸 것.

3)각 교회는 자치적으로 운영하되 그 교회에서 선택된 무보수의 지도자에게 의해 교훈을 받고 치리되도록 할 것이며 그 지방의 조사는 각 교회가 봉급을 분담하여 지불하게 하고 조사는 성경지식과 경험을 쌓아 나중에 목사가 되게 할 것.

4)모든 교회는 자급적으로 운영하되 예배당 건축, 교회경비, 순회조사의 봉급 등을 신자들 자신이 부담하도록 해야 할 것.

5)각 교회는 성경반을 조직하여 그 교회의 장로나 영수 또는 조사로 하여금 신자들에게 성경지식을 넓히도록 할 것.

6)교규를 엄중히 지키어 성경상의 죄를 범함을 엄금할 것.

7)다른 교회와 단합하고 협력하여 사업을 장려할 것이며 특히 같은 지방에 있는 교회들은 서로 밀접한 유대를 맺고 교회 사업의 발전에 힘쓸 것.

8)다른 교회의 소송사건이나 그와 유사한 사건에 불간섭주의를 취할 것.

9)할 수만 있으면 백성의 경제생활에도 도움이 될 만한 사업을 할 것.

2. 초기 50년간의 방법

Nevius 계획의 목적은 자급제도의 확립, 교인 스스로의 복음전파, 개인 또는 교회의 자치를 육성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것은 성경의 가르침과 설교의 중심에서 강력하게 강조되므로 행해졌다. 이 계획의 실제적 핵심은 성경공부의 계획에 있어 강력한 강조로 나타나 있었다. 모든 교인들은 그들의 성경공부를 위해 격려를 받았고 그 성경공부 가운데서 발견한 진리를 다른 사람에게 증거할 수 있었다. 그 얼마 되지 않는 신자들은 지도자들에 의해 성경의 가르침을 받았다. 지도자들은 보다 확실한 성경공부를 위해 지도자를 위한 사경회를 가곤했다. 그리고 나중에는 일반신자들을 위해 지방적으로 사경회를 열어 성경공부를 시키기도 했다.

그 후에는 초청 성경강사를 모신 사경회 비슷한 모임이 각 교회에서 개최되었다. 후기에 와서 적당한 시기에 계절성경학원 같은 것을 세우기에 이르게 되었고 이같은 것은 교회의 처음 믿는 신자들을위해 한달 또는 그 이상 일정한 장소에서 개최되었다. 저들은 전문적 교회의 일군을 양성시키기 위한 의도에서가 아니라 오늘날 일반적으로 성경학원의 경우처럼 보이기도 했다.

최근 몇 년 동안에 한국 초대교회 선교정책에 관한 저서들이 많이 나왔다. 이 저서들은 모두가 성경중심의 성격과 초대선교정책의 성경 연구체계에 대해 시종일관하게 말하고 있다. 세계장로회 선교부회장인 S. Soltau 목사는 “조직적인 성경의 가르침은 한국교회에 있어서 전도사업의 현저한 특징 가운데 하나였고 교회의 놀라운 발전을 이룩한 비결 중 하나이다”라고 말하였다.

한국의 개척선교사 W. N. Blair 목사는 “남녀 교인들을 위한 성경공부반은... 아마 우리 사업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었다”고 했다. 1909년 한국의 개척선교사 S. A. Moffett박사는 “그로부터 우리들의 사업에 크나큰 두 개의 원칙을 가져왔는데 이것은 곧 성경공부반의 체재와 자급제도의 확립인 것이다”고 했다.
 
그러나 그 성경공부의 체제와 강조는 단지 초대교회의 전도사업의 성취에 있어 사용되었듯 방법이나 수법만이 아니었다. 한국초대교회에 있어 그 생활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경향은 1907년의 대부흥인 것처럼 보인다. 물론 이 대부흥을 전도의 한 방법이나 수단이라고 부르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우리는 방법론적 면에서 생각할 때 그것은 신자들에 의해 시작되었고 계속되었던 것을 생각할 수 있다. 이 대부흥은 가장 충실하고 진실된 의미에서 성령의 능력에 의해 시작되고 계속된 것이었다.

그리고 교회에서는 새로운 열심과 열의가 있어났다. 1909년과 1910년에 있어 백만인 구령운동은 바로 그 열심의 결과였다. 이 기간 동안에 한국 기독교인들은 1년 내에 전국적 복음전파를 위한 중대한 노력을 했다. 저들은 10일 이상이나 가가호호를 방문하면서 전도했다. 이것은 개인적으로 서약된 결심이었다. 하나의 특별한 노력은 집집마다 마가복음을 반포한 것이다.
 
이 운동이 시작되었을 때 거기에는 교회에 정식으로 나오는 교인이 8000명밖에 안되었고 아마 기독교에 관심을 가지고 지지한 사람들이 30만 명밖에 되지 못했다. 교회에 의해 이 운동이 첫 번째로 널리 전국적으로 이루어졌을 때 그리스도를 위해 획득된 수가 100만 명에는 이르지 못했지만 아마 100만 명 이상의 사람들이 구주에 대해 관심을 가졌을 것이다. 이것은 놀라운 사업이었고 교회의 전도사업에 대한 새로운 능력과 정력을 가져온 주님의 사업을 위한 열심, 열의의 아주 구체적인 예를 주는 것이다.

또한 초대교회의 방법론에 관한 다른 재미있는 특색은 복음 전도에 있어 평신도들이 참가하는 관습이었다. 이것이 전도사업을 위해 바친 기간에 관한 관습에 있어 가장 실제적으로 성취되었던 것이다. 농촌교회의 신자들은 그들의 십일조로 전도사를 모시기에는 충당될 수 있는 금전을 마련하지 못했다.
 
어떤 사람들은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전도하기 위해 여러 날 계속하였고 일주일간 혹은 그 이상을 바치기도 했다. 백만인 구령운동이 전개될 때 10만인 이상의 전도일 목표가 발표되었다. 많은 지방적 사경회 때 성경공부를 위해 일주일간 혹 10일간 집회가 끝 날 때마다 전도인을 위한 헌금이 있었다. 그것은 전도 사업에 있어 일반교인의 강력하고 효과적인 전도운동에 참가를 뜻하고 있는 것이다.

3. 지난 13년간

한국교회의 전도에 있어 지난 20년은 적어도 간단한 고찰로 분리된 표제를 부칠만한 가치가 있다. 아직까지 이곳의 교회사의 가장 난처하고 복잡한 부분이 되어 온 것이다. 교회의 통계는 교회성장의 한결같고 완전한 본보기를 시현함을 계속한다. 1936년부터 1950년까지에 한국장로교회는 119,955명으로부터 1950년에는 40만 명으로 성장했다. 1962년 말의 유효한 통계는 장로교회는 그 여러 가지 분파에서 합한 수가 710,346명에 달한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이와 같은 경우에 있어서 통계란 전혀 사용되고 있지 않다. 한국교회사의 15년간 또는 그 이상은 계속적인 변화와 고난의 시기를 나타내고 있다. 1930년부터 15년간 한국교회는 큰 핍박의 기간을 통과해왔다. 일본의 속박 아래서 기독교인의 단체가 신사참배를 거절함으로 핍박을 당한 것 같이 개개의 기독교인들도 심한 핍박을 받았다.
 
결국 200교회 이상이 문을 닫게 되었고 2000명 이상이 투옥되었다. 신사참배의 반대로 말미암아 순교당한 교역자만도 50여명이나 되었다. 한국교회가 일본 기독교단의 명칭아래 합병이 강요되었을 때 100여명 이상이 투옥되었고 그들의 강단은 비게 되고 그들의 집은 차압을 당하게 되었다. A. Clark 목사는 1961년 그의 저서 「한국교회사」에서 “그리하여 교회를 떠나는 교인이 많게 되어 전에는 프로테스탄트 교인의 수가 70만이던 것이 거의 반으로 줄었다”고 했다.

이 같은 가혹은 판국에서 교회는 자유로워졌지만 한편 공산주의의 공포를 당면하게 된 것이다. 1945년부터 50년까지 북한에 있는 교회는 다시 큰 핍박의 고통을 느끼기 시작했다.

그러나 아직도 대다수가 북한에 아직 남아 있다. 그러나 비참한 일은 한국전쟁 후 저들은 교회에서 예배를 드릴 수가 없는 것이다. 그리고 기독교인의 운동은 전적으로 지하적인 것이 되고 말았다. 그래서 지금 북한에서는 교회의 문을 열지 못한다. 교회의 전면적 모습이란 하나의 고난과 파괴인 것이다. 남북한에서 약 40만을 가진 한국장로교회는 큰 손실을 당해왔다. 900여명의 목사들 중에서 400여명이 공산주의자들에 의해 순교를 당하고 전쟁에서 죽었다. 2,259교회 건물의 1/3이상이 완전히 파괴 혹은 심한 손해를 입었다. 그 교인의 대부분은 죽음에 사로잡히게 되고 피난민이 되었다. 학교와 병원, 신학교는 비게 되고 거의 폐허가 되었다.

그러나 이와 같은 모든 가난과 지도력의 상실이 있는 가운데 까지도 교회는 성장했다.

4. 지난 15년간의 방법

이같이 교회가 성장하는 동안 많은 방법에 있어 집단전도는 한국의 전도사업에 보다 중요한 도구가 되어 왔다. 기독교방송은 한국에서 처음으로 나타났다. 국내적으로 널리 전도의 프로그램은 교회에 의해 시작되었고 계획되었다. 장로교회는 교회가 없는 490면에 새로운 교회를 세우기 위한 5개년 계획을 세웠고 감리교회는 100여개의 새로운 교회를 세울 것에 착수했다. 그리고 전도에 관한 프로그램은 공산포로들에게까지 수행되었다. 16만 4000명의 포로 중에서 정식으로 그리스도를 믿기로 결심한 자가 6만 여명이나 되었다.

전도에 관한 다른 집단적 방법은 어린이들에 대한 전도로 사용되었다. 고아들, 가난한 집에서 받아들인 어린이들은 교회의 후원으로 초등교육을 받게 되었다. 그 교육이란 읽고 쓰는 것이었고 기타의 과목은 성경을 중심으로 한 것이었다. 1959년에 장로교회에 관련된 성경구락부가 약 7000여 개소에 달했는데 그 아동의 수는 7만 명으로 추산되었다.

이때 또한 광범한 사회복지에 관한 문제가 교회에 의해 시작되었다. 전쟁시대의 피해를 없애기 위해 교회는 그 계획에 새로운 여러 시설을 마련했다. 고아원, 모자원, 양로원, 정신병원, 절단수수술자의 외족을 위한 시설 등이 모든 것은 주님의 사업을 위해 많은 기여가 되었다. 지방교회의 수준은 전도사들에 의해 복음전도의 사업이 성취되었다. 어떤 이는 지방교회에 있어 전도의 달성을 위해 교회를 비판했다. 많은 곳에서 믿지 않는 사람들을 위한 부흥회가 개최될 때 정력을 바치게 되고 동리를 방문하면서 전도하게 된다. 동시에 교회 내에서 평신도 그룹이 많이 편성되고 기회가 생기는 대로 한 달에 한 번씩 하루 종일 이웃을 방문하면서 전도지를 나누기도 하며 복음을 증거한다.

결론

여러 가지 면에서 한국의 전도의 모습은 필자에 대해 격려를 주고 건전한 것 같다. 여러 가지 경우에서 한국교회사의 초기를 형성했던 전도를 위한 열심, 열의는 계속적으로 약화되지 않고 있다. 선교사들에 의해서 세워진 자립, 자치적이고 자급제도 확립인 초대교회의 목적은 아직도 교회 강화에 중심적인 것이 되고 있는 것 같다.
 
지방과 시골교회에서는 열정적이고 투쟁적인 증거가 아직 주님과 구주로서의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남녀들 가운데 강력한 힘이 되고 있다. 교회의 전도사업에 있어 평신도들의 참가에 대한 강력한 강조가 아직도 있다. 한국교회의 전도의 전력인 KNCC의 판단은 오히려 그 말에 있어 에큐메니칼 운동의 연구자들에 가까운 말씨에서 그 자체를 가혹하고 결정적인 표현이 되게 하는 것처럼 생각하기도 한다.

동시에 여전히 해결되어야만 할 문제들이 남아 있다. 또한 교회의 전도계획에 대한 발전에 필요한 영역이 있다고 하는 것이 더욱 좋을 것이고 이 같은 필요성에는 명백한 이유가 있다. 신사참배 및 공산주의에 대한 교회의 투쟁은 그의 훈련된 지도자를 참혹하게 죽였다. 훈련된 목사의 과반수가 전쟁동안에 순교를 당했다.
 
북한에는 아직까지도 기독교인의 많은 수가 남아 있는데 그들은 공산주의자의 잔인한 수단으로 지하에 감금되고 있다. 또한 남한에서도 수많은 기독교인들의 생명을 잃었다. 즉 전후 교회는 목사와 일반신자 가운데서 가장 힘 있는 많은 지도자들을 잃은 것이다. 그것은 사실상 이때부터 전혀 새 교회의 훈련과 회복을 뜻하는 것이었다. 이런 조건하에서 전도사 필요에 의해 성질상의 변화 아마 열심 안에서 고생하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닌 것이다.

이제 다른 강력한 요인이 작용하고 있다. 그것은 한국교회 내에 자라나고 있는 자유주의의 태도인 것이다. 1954년 장로교회의 분열과 한국 기독교 장로교회의 형성은 교회에 영향을 준 강력한 증거이다. 한국신학교 강사인 강원용 목사는 Koreana란 잡지에서 “본교의 모든 지도교수들은 당시 세계신학의 주류를 형성하고 있는 신정통파신학을 주장했다”고 했다. 오늘날 칼 발트의 신학이 WCC와 일반적으로 관계된 장로교의 지파에서 얼마나 중요시되고 있는가는 말하기 곤란하다. 오늘날 신정통파가 한국에서 일하고 있는 비교적 큰 장로교회의 선교사들 가운데 몇 사람 정도 있다고 하는 것은 확실히 틀임이 없는 사실이다.

또한 오늘날 한국전도사업의 혼란성에 바쳐진 다른 요인은 한국 전쟁 후 많은 새 선교부의 출현과 구교의 확장, 성장인 것이다. 믿지 않는 사람들은 많은 그룹의 동시적 전도에 직면했다. 이들 그룹 중 어떤 그룹은 철저히 복음주의적인 것도 있었다. 또한 비록 복음주의적이라고 해도 거기에는 비교파적이거나 자유주의나 보수주의나 다 같이 일할 것을 주장하는 교파간의 불투명한 관계를 만드는 염려가 있다. 또한 장로교회의 설교를 위해 초청받은 강사나 그 밖의 사람들 가운데는 유아세계나 혹은 하나님의 주권과 같은 장로교 교리와 관례를 비난한다.
 
최근 한국에 들어온 이들 무리 가운데 어떤 이들은 사람을 끌기 위해 막대한 재원과 보상을 쓰면서 이른 바 밥벌이 기독교인을 만들고 있다. 이에 대한 세심한 주의가 필요한 것이 아닌가! 이런 방법으로 비기독교인들이 교회 안에 들어오게 되어 이름만이 기독교인이며 신앙이 얕은 사람들은 이러한 유혹에 넘어가버리게 되기도 한다. 한국의 구교는 이러한 방법으로 최근에 많은 새로운 개종자를 얻음으로 해서 비난을 받고 있다. 그런데 그것은 교회에 의해서 효과적 구제 사업이 수행되어야만 하는 것이다.

유해로운 방법에서 교회의 오늘날 전도 사업에 강력하게 영향을 끼치고 있는 넷째 요인은 광신도 생활의 수준에서 발견되는 것이다. 영적 발전과 성장의 성숙이 부족한 이들 새 개종자들은 아직도 개인이나 가정, 부락, 교회생활을 위한 복음의 완전한 함축성을 알지 못했다.

한국 초대교회의 성장에 있어 강력한 요인은 단체에 있어 기독교인의 생활의 영향이 있어 왔다. 그 영향은 전후에 있어 대단히 감소되어 왔다. 그것은 복음전도의 결과에 영향을 끼치고 있다.

이와 같은 모든 요인의 결과는 선교회에 의해 세워지고 한국교회에 의해 열심히 수행된 초대전도의 원칙에 관한 지나친 절단이었다. 한국에서 수천의 개종자를 얻고 세계적 존경과 칭찬을 받고 교회를 세운 바 있는 Nevius방법이 오늘날에 있어 아주 무시되어 왔다. 그 체계의 열쇠였던 성경의 해석과 가르침에 관한 중심적 강조는 크게 손상되어 왔다. 교회에 있어서의 지도자의 훈련을 위한 지방적 혹 지교회적인 사경회는 희소하다. 평신도들을 위한 사경회도 역시 드물다.
 
오늘날 지교회에 있어 사경회보다는 부흥회가 더욱 강조되고 있다. 한국의 초대교회는 교회의 모든 교인들이 성경을 읽을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성경을 읽을 수 있을 때까지는 교회의 일원이 될 수 없었다. 이같은 규칙은 이미 교회에서는 적용되지 않고 있다. 그 결과로서 많은 기독교인들이 읽고 쓸 수 없고 성경을 공부할 수도 없다. 덧붙여 말하면 성경의 정확무오성에 대한 자유주의적 공격이 성경의 권위를 손상하는 많은 영향을 끼쳐왔던 것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고로 성경을 읽을 수 있어야 하고 읽어져야만 하는 것이다.

자급제도는 역시 또한 실패를 보았다. 공산주의자들의 남침 결과 전재의 황폐의 결과로 한국에 보내온 구호물자와 구호자금의 많은 액수는 아마 전쟁이전의 경우나 한국 초대교회 이전보다 한국교회가 외국선교자금에 의존하는데 격려와 도움이 되었을 뿐이다.

사실 우리는 일찍이 초대교회의 선교정책으로서 들어왔든 여러 가지 점에서 변화된 것과 없어진 것을 쉽게 들을 수 있다. 여기서 우리교회의 근본적 실패만 지적하기 위해 이 같은 모든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발전의 본은 아직도 여러 가지 방법에서 격려되고 있는 것 같다. 오늘날 서구교회에 있어 전도에 관한 중요한 문제는 보다 더 적극적인 평신도의 협력과 그들의 참가에 있는 듯하다. 이런 면에서 한국교회의 부흥에 건전한 발전과정이 되어질 것 같다.

초대교회의 사업은 우리들에게 많은 지침을 주었다. 오늘날 교회에 있어 전도의 과정은 전도의 요령이나 전도의 새로운 어떤 방법에 의해서 해결되지는 않는다. 이 같은 어떤 것은 배울만한 여지가 확실히 있다. 그러나 하나님의 전도자들로서의 우리의 사업에 있어 보다 큰 진전에 관한 열쇠는 우리들이 어떻게 말해야만 하는 것이 아니고 우리가 무엇을 말해야 하는가에 있다. 바꾸어 말하면 우리가 과거에서부터 배워야만 하고 실험을 해야 하지만 우리는 역시 우리들의 신앙을 위한 하나님의 정확무오한 말씀과 행위에 대한 우리들의 계획에 거듭 되돌아가야만 할 것이다.

만일 우리들이 영혼을 얻기 원할 것이면 더욱 열심있게 간절해야만 한다. 우리들의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발걸음에서 걷기를 원하고 우리들에게 있는 맹세를 충만하게 하려면 우리는 더욱더 열심 가운데 거해야만 할 것이다. 만일 우리들이 외식하지 않으려면 보다 더 열심해야 할 것이다. 우리들이 기쁨으로 우리의 갈 길을 마치고 주님이 오실 때 면류관을 얻으려면 더욱 열심 가운데 있어야 한다. 우리는 낮일 대 일해야 한다. 밤이 오면 아무도 일할 수 없다.

[논문] 現下 한국교회 전도의 문제점:리폼드뉴스 (reformed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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