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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칼빈(John. Calvin)의 핍박을 받고 있는 신앙 동료들을 위한 탄원

존 칼빈

by 김경호 진실 2021. 11. 2. 0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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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로마교로부터 핍박을 받고 있던 개혁교회들을 위해 칼빈이 프랑스의 왕 프란시스 1세에게 드리는 헌사에 담긴 글이다. 칼빈은 하나님에 대한 믿음과 올바른 신앙을 위해 핍박을 받는 성도를 향한 사랑으로 이 글을 써 내려갔다. 이 글을 통해 우리는 다시금 우리의 신앙을 돌아보고 개혁신앙으로 회복해야 할 것이다.

 

핍박을 받고 있는 신앙동지들을 위한 탄원

 

그러므로 무적의 폐하시여! 이 주장에 대하여 폐하께서 충분한 심리를 해주시도록 요구하는 것은 부당하다 생각되지 않습니다. 지금까지 혼란 가운데서 이 주장은 전혀 법질서에 따라 취급을 받지 못했고 또한 법적으로 신중하게 다루어지기보다는 오히려 난폭한 격정에 따라 대우를 받아 왔습니다. 그러나 이것 때문에 내가 안전하게 조국으로 돌아가는 길을 얻기 위해 지금 사적인 변호를 마련하고 있는 것으로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사람마다 조국에 대해 마땅히 품어야 할 그런 애정을 나 역시 느끼고 있습니다. 그러나 현재와 같은 사정하에서 조국에 있지 못함을 조금도 유감으로 생각하지 않습니다. 나는 오히려 그리스도의 주장이자 모든 신자가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주장을 지금 변호하려는 것입니다. 이 주장은 현재 폐하의 나라에서 완전하게 찢기고 유린당하여 가장 비참한 상태에 놓여 있고 이것도 폐하의 승인도 없이 어떤 바리새인들의 횡포에 의해 자행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어떻게 해서 이런 일이 발생하게 되었는가를 지금 여기서 말하려 하지는 않지만, 우리의 주장이 어려운 상태에 놓여 있는 것만은 확실한 사실입니다. 이는 비록 그리스도의 진리가 근절되고 파멸되지는 않았다 하더라도 불경건한 자들의 득세로 인해 그것이 감추어지고 매몰되어 불명예스러운 것으로 되어버렸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가련하고 어린 교회는 잔인한 학살로 인해 쇠잔해지고 혹은 추방당하고 혹은 위협과 공포에 압도되어 감히 입 한번 열지 못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더욱이 그들은 상습적인 분노와 광란으로 이미 흔들리고 있는 벽을 계속 쳐서 그들이 시작한 그 일을 기어코 끝내고 맙니다. 한편 그러한 광포에 맞서서 교회를 변호하려고 나서는 사람은 단 하나도 없습니다. 그러나 진리를 가장 사랑하는 것처럼 보이려는 자들이 있기는 하나 저들은 다만 무지한 사람들의 그 잘못과 무분별을 용서해야 한다고 생각할 뿐입니다. 그래서 이 온건한 사람들은 그렇게 말함으로써 그들이 알고 있는 오류와 무분별을 하나님의 가장 확실한 진리라 부르며 그리스도께서 하늘나라의 지혜의 신비를 주시기를 적합하다고 생각하여 조금도 멸시하지 않으신 지성 있는 사람들을 무지한 사람들이라 부르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저들은 모두 복음을 부끄러워하고 있습니다.

 

가장 현명하신 폐하시여! 특히 지금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영광이 지상에서 안전하게 보존될 수 있을까, 또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진리가 그 존엄을 그대로 유지할 수 있을까, 또 어떻게 하면 그리스도의 왕국이 우리 가운데 잘 보존될 수 있을까 하는 매우 중대한 문제가 기로 위에 놓여 있는 이때에 폐하께서는 이 정당한 변화에 대해 귀와 마음을 막지 않으셔야 할 것입니다.

 

사실 이 문제야말로 폐하께서 들으실 만한 가치가 있고 인정하실 만하고 폐하의 왕좌에 합당한 문제입니다. 사실 진정한 왕은 왕국을 통치함에 있어 자신이 하나님의 사역자라는 것을 인식해야만 합니다. 그러나 자신이 나라를 다스림에 있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봉사하지 않는 왕은 벌써 왕적 통치를 행사하는 것이 아니라 약탈을 일삼는 자인 줄 압니다. 더욱이 자기 나라가 하나님의 홀, 곧 그의 거룩하신 말씀에 의해 통치되지 않는데도 그 나라의 영구한 번영을 추구한다는 것은 스스로를 속이는 것입니다.

 

이는 묵시가 없으면 백성이 방자히 행하거니와”( 29:18)라고 하신 하나님의 말씀은 결코 거짓말하는 법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폐하께서 우리의 비천함을 경시한 나머지 우리의 주장을 들으시려는 노력을 단념하지 않으시기를 바랍니다. 사실 우리는 우리가 얼마나 보잘것없는 미천한 소인이라는 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습니다. 물론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비참한 죄인들이며 사람 앞에서는 가장 경멸을 받을 존재입니다. 그리고 만약 폐하께서 부르고 싶으시다면 우리를 이 세상의 배설물이나 찌꺼기라고 불러도 무방하고(고전 4:13) 이보다 더 추악한 이름을 붙여도 마땅한 존재입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 앞에서는 다만 그의 긍휼 밖에는 자랑할 것이 아무것도 없으며(고후 10:17-18) 오직 이 긍휼로 말미암아 우리는 아무 공로 없이 영원한 구원의 소망을 얻었습니다( 3:5). 그리고 사람 앞에서도 우리의 연약한 것 외에는 아무것도 없으며(고후 11:30; 12:5, 9). 이 연약하다는 사실을 고백하는 것조차도 그들에게는 최대의 수치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교리는 세계의 모든 영광 위에 우뚝 솟아나야 하고 일체의 세상의 권세가 정복할 수 없는 것이어야 합니다. 그것은 이 교리가 우리에게서 나온 것이 아니라 살아계신 그리스도에게서 나온 것이기 때문에 성부께서는 이 그리스도를 왕으로 세우셔서 바다에서부터 바다까지와 강에서부터 땅끝까지 다스리도록 하셨습니다( 72:8). 그리고 이미 예언자가 주의 통치의 위엄에 대해 예언한 것처럼( 2:32-35;  11:4;  2:9) 토기장이가 질그릇을 쳐서 산산이 부서뜨리듯 하나님은 철과 구리처럼 강하고 금과 은처럼 찬란한 온 세상을 그의 입의 막대기로 쳐서 흩어버리실 것입니다.

 

실제로 반대자들은 우리가 거짓되게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 자신의 구실로 삼아 오히려 그것을 악하게 부패시킨다고 외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악의에 찬 중상일 뿐만 아니라 심히 뻔뻔스러운 행동이라는 것은 폐하께서 우리의 고백을 읽으시면 폐의 분별력으로 판단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여기서 폐하의 열심과 관심을 일으키기 위해서 혹은 적어도 우리의 신앙고백을 읽을 수 있는 길을 마련해 드리기 위해 무엇인가 더 말씀드려야 하겠습니다. 바울은 모든 예언은 믿음의 분수대로”( 12:6) 하라고 주장하여 성경해석의 명백한 표준을 세웠습니다. 그러므로 만약 이 표준에 따라 우리의 신앙이 검토되기만 한다면 승리는 분명히 우리의 것이 될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옷을 입기 위해 일체의 덕을 벗어 버렸다는 것, 하나님에 의해 생명의 충만함을 얻기 위해 우리에게는 어떤 선도 없다는 것, 바로 하나님이 주시는 자유를 얻기 위해 우리가 죄의 노예라는 것, 우리가 바로 하나님의 빛을 받아야 할 눈먼 자라는 것, 우리는 하나님에 의해 바로 세워져야 할 절름발이라는 것, 우리가 바로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아야 할 약한 자라는 것, 그리고 하나님만이 영광을 받으셔야 하며, 하나님 안에서 우리 자신을 자랑하도록 하기 위해 자랑의 모든 기회를 우리에게서 제거하였다는 것, 이런 사실을 인식하는 것보다 더 신앙과 일치하는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고전 1:31; 고후 10:17)

 

우리가 이러한 사실과 이와 유사한 것을 말하면 반대자들은 우리의 말을 가로막고 그것은 자연의 맹목적인 빛, 가공적인 준비, 자유의지, 영원한 구원에 공로가 되는 선행, 그리고 일체의 공덕(superagatio)까지도 무너뜨리는 것이라고 불평합니다. 왜냐하면, 저들은 일체의 선, , , 지혜에 대한 찬양과 영광이 전적으로 하나님께 돌려져야 한다는 것을 용납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이 생명의 샘에서 물을 너무 많이 마셨다고 책망받았다는 말을 우리는 아직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4:14). 이와는 반대로 우리는 스스로 물을 저축하지 못할 터인 웅덩이를 판( 2:13) 사람들이 책망을 받은 것을 알고 있습니다. 더욱이 그리스도를 우리의 형제요 화목자로 믿는 곳에 하나님이 화목하게 하시는 아버지가 되신다는 것을 확신하는 것과 또 우리에게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큰 사랑으로 우리를 사랑하셔서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않으시고 모든 사람을 위해 내어주신( 8:32) 그 하나님으로부터 일체의 번영과 축복을 기대하는 것보다 더 신앙에 적합하고 또 신앙과 일체하는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성부께서 그리스도를 우리에게 선물로 주신 데 대해 생각하고 이 그리스도 안에 감추어져 있는 보물 곧 구원과 영생에 대해 확실한 기대를 가지는 것보다 더 신앙과 일치하는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여기서 그들은 우리를 반대하며 그런 신뢰의 확신은 오히려 교만과 억측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이라고 떠듭니다. 그러나 우리 자신에게서는 아무것도 기대해서는 안 되고 동시에 하나님에게만 모든 것을 기대해야 합니다. 또한, 우리는 주님을 자랑하기를 배우는 일을 위해 우리의 모든 헛된 자랑을 내버립니다(고후 10:17; 고전 1:31;  9:23-24).

 

이 이상 더 모든 말을 하겠습니까? 가장 위대하신 폐하! 우리가 주장하는 모든 부분을 자세히 살펴 주십시오. 만약 우리가 우리 소망을 살아계신 하나님께 두고(딤전 4:10) 또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 곧 영생이기( 17:3) 때문에 우리가 이를 위해 수고하고 진력하는 것임을 폐하께서 확실히 발견하지 못하신다면 그때는 우리를 악한 사람 중의 가장 악한 사람들로 생각하십시오. 이런 소망 때문에 우리 중 어떤 이들은 쇠사슬에 결박을 당하고, 어떤 이들은 채찍에 맞고, 어떤 이들은 웃음거리로 질질 끌려다니고, 어떤 이들은 이를 피하여 달아난 이들도 있습니다. 이렇게 우리는 모두가 극단의 곤경에 빠져 무시무시한 증오로 저주를 받으며 중상모략으로 상처를 입고 최대의 모욕적인 취급을 받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의 반대자들을 보십시오. 반대자들은 사제 계급에 속하는 자들로 이 성직자들의 명령과 기도에 따라 다른 사람들이 우리를 향해 적대 행위를 일삼고 있습니다. 따라서 그들이 어떤 열심에 따라 움직이고 있는가를 나아 함께 잠시 동안이라도 살펴 주시기를 바랍니다. 성경에서 가르치고 있고 모든 사람 중에 그 위치가 마땅히 확립되어 있어야 할 참 종교가 그들 자신과 다른 사람들에 의해 무시를 당하고 소홀히 다루어지고 멸시를 받고 있다는 것을 그들도 서슴지 않고 인정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자기네가 말하는 소위 맹목적인 신앙(implicita fide)으로 교회의 판단에 따르기만 하면 하나님과 그리스도를 믿든지 믿지 않든지 이런 것은 별로 중요한 일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사도직의 수위성과 그 거룩한 모교회의 권위를 반대만 하지 않으면 비록 하나님의 영광이 공공연하게 모독을 당해 더럽혀져도 조금도 마음의 고통을 느끼지 않는 자들입니다.

 

그렇다면 어찌하여 그들은 미시니 연옥이니 순례니 혹은 이와 비슷한 사소한 것들을 위해 그렇게도 잔인하고 신랄하게 싸우고 있으며 가장 확실한 신앙이 없이는 경건을 유지할 수 없다는 사실을 부정하고 있습니까? 이런 것들이야말로 하나님의 말씀으로써는 하나도 입증될 수 없는 것들이 아닙니까? 그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저들이 그들의 신은 배요( 3:19) 저들의 주방을 종교로 삼은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이것들이 없으면 그들은 벌써 자신이 그리스도인이라고 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인간일 수도 없다고 믿는 자들입니다. 왜냐하면, 어떤 이들은 사치스러운 음식으로 저들을 배불리고 있으며 또 어떤 이들은 마른 빵 껍질을 씹어 먹고 있으나 모든 사람은 이러한 연료가 없어 식어버린 마침내는 완전히 얼어붙은 냄비를 붙들고 살아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자기 배를 채우기 위해 전념하는 자가 바로 자기 신앙에 대해 가장 열렬한 투사임을 입증하는 것이 됩니다. 그들은 모두 그들 왕국의 안녕을 보존하거나 혹은 그들의 배를 두둑이 채우고자 하는 한 가지 목적에만 몰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 중에 진지한 열성을 조금이라도 보여주는 자가 아무도 없습니다.

[종교개혁기념] 존 칼빈(John. Calvin)의 핍박을 받고 있는 신앙 동료들을 위한 탄원:리폼드뉴스 (reformed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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