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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예배는 빠를수록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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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경호 진실 2022. 3. 15. 0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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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예배는 언제부터 시작하면 좋을까요? 저는 신혼 때부터 시작하시는 것을 추천합니다. 혹시 이미 신혼이 지났나요? 그래도 늦지 않았습니다. 지금부터 시작하시면 됩니다. 그런데 아무리 깨가 쏟아지는 신혼 때라도 부부가 함께 예배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저도 신혼 초에는 단둘이서 예배하는 것이 어색했습니다. 마주 보기만 해도 웃겼고, 찬송할 때는 분명히 같은 노래를 하는 것 같은데도 음이 서로 어울리지 않았습니다. 결국 웃음보가 터져서 찬송을 중단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 시절에 예배나 기도회 마치고 함께 걷던 추억, 식사하면서, 차 마시면서 기도제목을 나누었던 행복한 대화의 기억들이 저희 부부를 더욱 친밀하게 해주었습니다. 부부의 영적, 정서적, 육체적 친밀감은 부부관계를 더욱 견고하게 합니다.

   그리고 신혼 때부터 가정예배를 드리면 태교(胎敎)에도 좋습니다. 저는 만(滿) 나이보다는, 임신이 되었을 때부터 나이를 계산하는 소위 한국식 나이를 좋아하는데요, 태아도 생명이요 가족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토마스 버니는 「태아는 알고 있다」라는 책에서 자궁 속에 있는 태아가 임신 4개월, 늦어도 6개월 이후에는 학습을 시작한다고 합니다. 엄마의 말과 생각과 감정이 태아에게 큰 영향을 준다고 하며, 특히 뱃속에서 들은 아빠의 목소리가 태아의 정서 발달에 영향을 주기 때문에 아빠와 태아가 의미 있는 유대 관계를 형성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합니다. 만일 엄마와 아빠가 가정과 교회에서 행복하게 예배를 드린다면, 태아들도 태중에서부터 하나님의 은혜를 함께 누리며 자랄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태교는 엄마 혼자만 감당해야 하는 외로운 짐이 아니라 교회와 가족이 함께 예배와 교제를 통해 태아에게 줄 수 있는 공동체적인 선물이라고 생각합니다. 세례 요한의 어머니 엘리사벳이 마리아와 교제하며 성령 충만했을 때 아이가 복중에서 기뻐 뛰놀았던 것처럼(눅 1:41) 언약의 자녀들도 태중에서부터 성령 충만하게 자라면 좋겠습니다.


   그런데 영유아 대상의 조기 신앙교육의 필요성을 공감하지 못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아이들이 예배 시간에 울기라도 하면 예배에 방해될 수 있다고 생각하여 자모실 같은 별도의 공간에서 엄마가 돌보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 혹시 영아부를 별도로 운영하더라도 부모가 예배를 편하게 드릴 수 있도록 아이들을 대신 돌봐주는 정도의 봉사로 생각합니다. 어떤 분은 말도 알아듣지 못하는 아이들에게 가르쳐서 뭐하겠느냐고 하셨습니다. 설상가상으로 영유아들을 억지로(?) 가정예배에 참석하게 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유별나게 가정예배를 강요하면 오히려 아이들이 반발할 수도 있다고 주장하면서 아이들을 좀 자유롭게 키우라고 권면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 자녀들은 이미 태중에서부터 많은 것을 학습하고 있습니다. 비록 혼자 예배에 참석하지는 못하고 공식적인 신앙교육은 받지 못할지라도 부모의 신앙생활로부터 지대한 영향을 받고 있고, ‘뽀로○’나 ‘핑크○’ 캐릭터 영상물 등을 거의 중독될 정도로 보면서 배우고 있습니다. 교회와 가정이 영유아들을 대중문화와 어린이집에 방임하면서, 그들을 예배의 자리로 인도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직무유기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부모와 교회가 아이들이 어렸을 때부터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을 즐거워하도록 돕는 것이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의 정신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한 교회에서 11년째 영아부를 담당하고 있는데, 3세 이하의 영아들도 엄마 또는 선생님과 함께 예배에 즐겁게 참여하는 것을 보고 있습니다. 언약의 자녀들이 사랑의 돌봄과 축복을 받으며 성경 이야기를 듣고, 기도와 찬양을 즐겁게 보고 들으며 배우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치라. 그리하면 늙어도 그것을 떠나지 아니하리라.”라고 말씀하십니다(잠 22:6). 그렇다면 본문의 ‘아이’는 얼마나 어린 아이를 의미할까요? 구약 성경에서 ‘아이’를 의미하는 대표적인 두 단어는 ‘나아르’와 ‘옐레드’입니다. 두 단어 모두 태어날 아이, 영유아, 결혼 이전의 청소년과 젊은이에게 두루 사용되었는데, ‘옐레드’는 주로 생물학적인 자녀를 대상으로 쓰인 반면에 ‘나아르’는 종이나 호위병에게도 사용되었으며, 부모나 주인에서 ‘속한’ 사람이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본문의 ‘아이’는 ‘나아르’입니다. 즉 하나님께서 부모에게 맡겨주셔서 부모에게 속하게 된 자녀입니다. 그래서 자녀에게 그들이 마땅히 행할 길을 가르쳐야 할 의무는 부모에게 있으며, 부모가 자녀들이 태중에 있을 때부터 결혼하기 전까지 기도와 말씀으로 교육하면, 늙어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삶을 살아갈 것입니다.
자녀와 함께 예배하며 신앙을 전수할 수 있는 골든 타임은 그리 길지 않은 것 같습니다. ‘품 안의 자식’이라는 말이 있지요. 저도 첫째가 고등학교를 졸업하니 자녀가 제 품을 떠나는 것을 조금이나마 실감하고 있습니다. 비록 자녀들이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이고 너무 늦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라도, 만일 아직 자녀가 우리 품 안에 있다면, 아직 소망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비록 공간적으로는 우리의 품을 떠났더라도 포기하지 않으며 어거스틴의 어머니 모니카처럼 기도한다면 소망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여러분, 아이들이 더 어릴 때에 신앙교육에 힘쓰는 것이 훨씬 더 낫지 않겠습니까? 하나님께서 태중에 자녀를 선물로 주셨을 때부터 가정에서 예배하며 믿음과 소망과 사랑으로 양육하여, 우리의 자녀들이 훗날 다윗처럼 그들의 신앙을 고백하게 되기를 소망합니다. “주 여호와여 주는 나의 소망이시요 내가 어릴 때부터 신뢰한 이시라. 내가 모태에서부터 주를 의지하였으며 나의 어머니의 배에서부터 주께서 나를 택하셨사오니 나는 항상 주를 찬송하리이다.” (시 71:5, 6)

 

채충원 목사

(한밭교회 부목사)

기고 - 가정예배는 빠를수록 좋습니다 (reformedj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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