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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주의교회의 세계교회건설] 의 의미

교회론

by 김경호 진실 2022. 4. 6. 09:31

본문

[개혁주의교회의 세계교회건설] 의 의미

 


권효상 목사

 KPM 연구국장, 고려신학대학원 선교학 겸임교수

 
1. 개혁교회 건설의 의미; 어떤 교회를 설립할 것인가?


서론


   이 장은 두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첫째, ‘개혁주의란 무엇인가?’에 관한 물음이다. 우리는 이미 개혁교단 안에서 쓰여진 글들을 통해 개혁주의의 실체 혹은 정체성에 관해 어느 정도 숙지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주제를 다시 한 번 꺼내든 이유가 있다. 우리는 이 주제를 대학 학문으로서의 사변적 접근이 아니라, 선교현장에서 들려오는 고민으로부터 시작하려고 한다.[2] 고신 교단의 선교사로서 파송을 받고 개혁교회를 건설한다는 대의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실상 선교사들이 경험한 한국의 교회는 개혁교회의 특징을 가지고 있다기 보다는 범복음주의적 경향을 가진 교회들이 많다. 그렇기 때문에 선교현장에서 교회들을 개척하지만 다른 신학전통을 가진 교단의 선교사들과 다르게 개혁교회가 어떤 모양으로 드러나야 할지 고민이 되는 것이 선교 현장의 현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개혁교회를 선교 현장에 구현해 내야 하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방안이 제시되지 못한 채 선교사 개개인의 개혁 선교신학의 이해도와 목회 능력에 의존하였다. 그러므로, 첫 질문은 우리 고신 선교사들이 다원화된 오늘 우리의 선교 현장 상황을 품을 수 있는 개혁주의란 과연 무엇인가? 에 대한 것이다.

 

   두번째, ‘개혁주의 교회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이다. 고신세계선교회 정관1장, 3조 목적에서 “고신세계 선교회는 예수님의 지상명령에 따라 전 세계에 선교사를 파송하여 가능한 모든 방법을 동원하여 개혁주의 교회를 설립하는 것을 그 목적으로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본 장에서는 이 목적 진술을 선교 현장에 시연하기 위해 개혁교회를 개혁교회 되게 하는 실제적인 요체들은 무엇이며, 그리고 이 요체들이 선교 현장에서 개혁교회를 세우는데 어떤 구체적인 적용점을 가질 수 있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만일 개혁교회 선교사가 선교지로 떠나면서 단 한 가지만 가져 갈 수 있다면 선교사는 성경을 집어 들어야 할 것이다. 교회에 말씀 이외의 모든 것은 참고자료일 뿐이다. 오직 말씀만이 성도들을 불러모아 교회 공동체를 이루게 하며, 교육하여 제자로 만들며, 제자들을 통해 선교지를 하나님의 나라로 만들 수 있다. 개혁교회는 이 말씀의 순수성을 지켜 내기 위해 교회의 기초를 개혁신앙의 전통들과 이를 집약한 신조, 그리고 개혁전통을 외적으로 보호하는 역할을 하는 정치제도를 가졌다. 이것이 우리 또한 우리의 선교지에서 개혁교회를 건설하기 위해 닦아야 할 기초이다.

 

 

 

본론

 

1.1 개혁주의란 무엇인가; 전 포괄적인 삶의 체계로서 개혁전통

 

   개혁주의를 이해함에 있어서 먼저 개혁주의라는 용어와 비슷하게 사용되는 정통주의, 복음주의 그리고 칼빈주의 등의 용어와의 구별이 필요하다.

   다원주의 시대를 사는 우리는 누구나 자신의 정서에 맞는 사상과 정치 종교적 이념이나 문화적 취향 등을 선택한다. 그들에게는 나의 욕구를 채워주는 것이 중요한 것이지 반드시 옳고 그름의 선택이 중요한 것이 아닐 경우가 많다. ‘선택’이라는 말의 헬라어 hairesis는 영어에서는 ‘이단’을 뜻하는 heresy로 파생되었다. 이 단어와 반대 의미를 가진 것이 바로 정통(orthodoxy) 이다. 이 단어의 헬라적 의미는 ‘바른 의견’으로써 준거점이 될 만한 바른 의견 혹은 바른 가르침을 의미한다. 우리가 믿는 신학은 누구나 자신의 취향에 맞게 선택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오직 성경이 말하는 바를 바르게 고백하여 정통이 되게 하고, 그리고 역사적으로 교회는 이 정통을 신학과 신앙의 전통과 신조 안에 담아서 전수해 왔다. 

   복음주의라는 단어는 오늘날 다분히 다른 의미로 사용되고 있지만[3] 역사적으로 복음주의라는 말은 로마교가 프로테스탄트들을 지칭할 때 사용한 말이었다. ‘로마교는 루터의 종교개혁 교회를 1529년부터 복음주의자 또는 루터파라 불렀다. 루터가 로마교를 대항하여 복음을 계속 언급하고 호소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복음주의는 개신교(Protestant)와 동의어로 사용되기 시작한다. 복음주의자들은 욕설에 해당하던 루터파라는 이름을 1585년부터 공식적으로 채택하고 긍정적으로 사용한다.’[4] 또한 이 말은 영국이 국교화 되던 초기 예전(liturgy)에서 로마교적 요소를 제거하려 했던 저교회(low church)를 특별히 지칭하는 것이기도 했다.

 


   개혁교회라는 말은 그들과 다른 개혁전통의 교회를 지칭한 루터파에 의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루터의 경우 교리적인 부분 이외에 예배와 교회 제도 등 상당수를 중립적인 것(adiaphora) 이라고 보았다. 반면 칼빈을 비롯한 개혁자들은 예전과 교회 제도에서 하나님의 말씀이 요구하는 대로 지속적으로 개혁되어야 한다고 믿었다. 성찬론 논쟁에서 보듯이 칼빈은 루터파 안에 로마교의 잔재와 유사성이 여전히 있다고 보면서 계속적인 개혁(semper reformanda)을 추구하였다. 결국 개신교회 안에서 루터파와 개혁교회가 다른 신학전통을 가지게 된다. ‘루터파들은 독일 안이나 밖에 있는 다른 개신교도들을 칼빈파 혹은 츠빙글리파라고 그들의 지도자의 이름을 따서 불렀다. 또는 이들을 비 루터파라는 의미에서 개혁파라고 조소하였다. 그러나 이들은 루터파와는 달리, 사람 이름을 따라 자신들을 규명하는 것을 거부하고, 개혁교회라는 이름을 쾌히 채택하였다. 이런 의미에서 칼빈주의라는 용어는 개혁파와 개혁전통이라는 말로 불리워져야 한다. 이미 1561년부터 독일 프랑크푸르트의 프랑스 난민교회(위그노)는 스스로를 개혁교회라 불렀다.’[5] 

 


   우리 말로 개혁주의를 영어로 번역하면 ‘Reformism’ 이 되는데, 기실 개혁주의(Reformism)라는 말은 영어나 독일어나 프랑스어에 없다.[6] 단지 개혁(the Reformed) 교회, 개혁(the Reformed) 신학 혹은 개혁(the Reformed) 전통이라는 말로 존재할 뿐이다. ‘the Reformed’ 라는 말은 역사적 개혁 전통을 따르는 교회들의 종합적인 신학 체계 혹은 삶의 체계이다. 카이퍼(A. Kuyper)의 경우 이 개혁신학을 딱딱한 신학체계나 변증적 색깔이 짙은 종합적 기독교 세계관으로 보기를 거부하며, 종합적인 ‘삶의 체계로서’ 받아들인다.[7] 

 


칸트 이후 서구 신학은 존재론적인 인식 방식에 익숙해 있었기 때문에 선험적으로 이해해야 하다는 사실을 망각하곤 한다. 또 우리는 주체 중심의 서구 신학의 접근 방식의 맹점인 객체를 비인격적 사물로 인식하여 기능적으로 도식화하곤 한다. 개혁교회의 전통은 그들이 오랫동안 교회중심의 삶을 살면서 누리는 삶의 체계인데 이것을 단순히 도식화해서 신학 용어로 만들 때 개혁에 대한 신학적 오해와 또 다른 ‘-ism’들을 만들었다는 것을 기독교 역사는 증거한다. 다시 말해서, ‘스위스나 화란 그리고 스코틀랜드처럼 칼빈주의가 깊게 자리 잡았던 나라들에서는 개혁교회 안에서 사는 것은 그다지 철학적인 연구의 대상이 아니라, 오히려 자연스러운 삶의 일부분이었다. 훗날에 역사가와 신학자들은 이것을 개혁주의라는 특별한 연구의 주제로 삼아 개혁주의 현상과 그 원리의 전포괄적인 통일성 사이의 관계를 추적하는 것이다. 칼빈은 선험적인 고백으로서 개혁신학의 기초를 놓은 것이다. 그 고백은 송영으로써 고백된 신앙으로부터 나오는 선험적 것이다.’[8] 그러므로 지금도 우리는 개혁교회의 신학을 선험적으로 고백해 나가는 것이다. [9] 헨리 미터는 칼빈주의 (개혁주의)를 사고의 체계라고 전제하였으나, 오히려 개혁교회의 전통은 우리의 실제적인 삶의 체계를 다루는 전통이라 하겠다.

 


   루터의 1세대 개혁에서 다 보여주지 못한 전포괄적 삶의 체계로서 개혁이 그 이후의 세대들인 쯔빙글리와 칼빈 등에 의해 지속적으로 진행되어져 나가는 것을 볼 수 있다.[10] 루터와 그 이후 개혁교회의 간격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개혁이 단순한 교리나 예배의식의 개혁이 아닌 삶의 전반에 전포괄적으로 바뀌어 가야 할 내용들 즉, 하나님과의 관계, 인간과의 관계 그리고 세계와의 관계에 대한 답을 지속적으로 추구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바로 이런 점에서 오늘날 개혁교회를 설립해가는 현장 선교사들에게 큰 과제가 주어진다. 그 과제는 바로 선교 현장에서 새롭게 주님께로 돌아온 이들이 자신들이 이전에 가지고 있던 세계관과 자신들이 믿고 살던 종교적 신념과 가치들 그리고 삶의 질서와 방식들이 그리스도인이 된 이후 어떻게 변해야 하는지에 대한 바로 그 삶의 전포괄적 체계를 보여주어야 할 책무를 가지는 것이다. 이것을 신학적으로 말하면 ‘자신학화’라고 할 있다. 그러나 자신학화라고 할 때 이것은 늘 사변적이고 존재론적으로만 생각되어지는 경향이 있다고 앞에서 지적을 했다. 그러나 신학은 삶의 체계에 대한 해답이어야 한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집트 땅에서 탈출시킨 이후 그들이 살아갈 삶의 체계로써 주신 것이 계시와 율법이었고, 우리는 이것을 신학(하나님을 말함)이라고 부를 수 있다. 그 신학은 다분히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정체성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도록 만들어졌다는 것을 기억하자. 신학적으로 말하자면 충분히 자신학화 하기에 충분한 것이었다고 표현할 수 있지만, 이것을 카이퍼 식으로 표현하자면 그 첫 율법은 그들의 삶의 전체를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살 수 있도록 체계화시킨 것이었다. 각각의 삶의 체계가 역사성을 덧입으면 기독교 문화가 되는 것이며, 문화가 중첩되면 기독교 전통이 되는 것이다. 개혁교회의 내용(신학이라고 부를 수도 있고 개혁교회의 전통이라고 부를 수도 있다)을 담지한 목사나 평신도 선교사가 각자의 선교지에서 날마다 가르치는 것과 보여주는 그들의 삶으로 개혁교회의 문화와 전통이 만들어져 가는 것이다. 바로 그 개혁교회의 목사와 현지인 성도들이 함께 만들어가는 모이는 교회 중심의 가르침과 흩어지는 교회의 삶 속에서 각 선교지의 개혁 전통이 지속적으로 만들어져 가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개혁교회 선교사들의 책임이 적지 않음을 인식해야 한다.[11]  그러므로 선교사가 교회를 개척하고 제자 삼는 사역을 한다는 것은 단순히 범복음주의적 의미에서 제자들을 전도의 동역자로 키워내거나 선교사를 대신하여 교회를 이양할 대상으로 만들어가는 것 이상을 의미한다. 그것은 그들의 전포괄적 삶의 체계가 개혁교회의 교인으로서 정체성을 가지도록 하는 것을 포함하는 것이다.

 


 

1.2 개혁 교회란 무엇인가: 개혁 교회의 요체들

 

   개혁교회는 개혁교회의 내용인 신학과 삶의 체계로서의 전통을 텍스트인 성경 말씀에 비추어 지속적으로 개혁해 온 보편교회를 의미한다. 개혁교회는 그 지속적인 개혁을 위해 말씀이라는 유일한 텍스트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그 동일한 텍스트를 현재 우리가 암묵적으로 인정하는 개혁교회라는 명칭을 가진 교단들만 사용하는 것이 아니다. 또한 로마교의 감독제 정치 형태를 벗어난 개혁교회는 교회 정치적인 면에서 장로교뿐만 아니라 감리교나 침례교 등 다른 다양한 교회 정치를 가진 교회들로 발전해갔다. 신학적으로도 개혁의 기치 아래서 다양한 신학 전통을 가지 교단들로 성장했다. [12] 이들 역시 우리와 동일한 텍스트인 성경을 가지고 있다. 그렇다면 성경에 근거한다고 해서 이들을 모두 개혁교회라고 말 할 수 있는가?

 


   어떤 신학이나 사상이 성경에 근거했다고 해서 다 개혁주의라고 말할 수 없다. 루터는 성경만이 무오하며 신앙과 교리의 기준이 될 수 있으므로 이 성경에 근거하여 교회를 개혁해야 한다고 역설하지만 우리는 루터를 개혁주의자라고 부르지 않는다. 콘라드 그레벨(Conrad Grebell)이나 펠릭스 만츠(Felix Manz) 같은 재세례파 도 성경만이 최고의 권위를 가지므로 성경에 따라 교회를 개혁하여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이들을 개혁주의자 라고 부르지 않고 재침례교도(Anabaptist)라고 부른다. 그렇다면 개혁주의 신학과, 다른 신학사상을 구별하는 척도는 무엇인가? 그것이 바로 신학의 원리라고 할 수 있다. 곧 어떤 신학 원리에 근거하여 성경을 해석하는가 에 따라 개혁주의가 될 수도 있고 개혁주의가 아닐 수도 있다. 성경에 근거한 개혁을 말하면서도 일정한 그리고 일관된 신학적인 전통을 따르지 않고 자신의 주관에 따라 성경을 해석한다면 주관주의나 신비주의에 빠지게 된다. 그러므로 개혁주의자들은 모든 신학 활동의 근거인 성경을 해석함에 있어서 개혁신학 전통에 따라 성경을 해석한다. 따라서 어떤 사람이 개혁주의자인지는 그가 어떤 신학전통에 따라 성경을 해석하는가에 달려 있다. 이렇게 볼 때 개혁주의 교회는 개혁주의 신학 전통에 따라 바른 신학원리를 가지고 성경을 해석하는 교회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13]

 


   이 신학전통을 우리의 개혁교회 선조들은 신조나 요리문답 같은 신앙고백서 속에 담지하여 고백하였다. 그러므로 각종 신앙고백서는 단순한 신학서적이 아니라 개혁교회 교인들의 역사적인 삶의 고백이 녹아져 있는 것이다. 그 신학원리 속에 담겨 있던 개혁교회의 신학전통들과 원리들이 무엇인지 살펴보자. 이 신학의 원리들은 개혁파 교회 안에서는 주로 장로교 정치제도를 통해 보존되어 왔다. 교회의 정치제도는 주님께서 지상의 교회를 다스리는 은혜의 방편이기도 하지만, 결국 우리가 담지한 개혁교회의 본질을 보호하기 위한 보조수단의 역할을 한다. 

   이 세 가지 즉, 개혁교회의 전통과 그 전통을 담지한 신앙고백서들 그리고 그 본질적인 내용을 외적으로 보호하는 장치인 장로교 정치제도가 바로 개혁교회의 요체라고 할 수 있다. 선교사들은 선교지에서 교회를 개척할 때 다음의 내용들이 교회에 적용이 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1.2.1 개혁교회 전통들

 

   선교사는 개혁 전통에 대한 구체적인 이해가 있어야 하다. 예를 들어 우리는 SFC 시절부터 하나님 중심이라는 말을 들어왔다. 이것은 개혁교회 전통에서 가장 근본 되는 중심 주제 중의 하나이다. 그러나 어쩌면 적지 않은 선교사들이 하나님 중심이라는 이 전통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자신들이 개척한 교회에서 가르쳐지고, 성도들에 의해 실제가 되어져서 그들의 교회도 보편적 개혁교회 전통이 되어 갈 수 있는지 자신 있게 대답하지 못할 것이다.

   개혁 전통에 대한 몇 가지 오해들을 정리하면서 개혁 전통의 실체에 대해 접근해 보자. 먼저, 우리가 흔히 오해하는 것 중의 하나는 개혁주의 전통의 기원을 개혁(the Reformed)이라는 말을 앞에 내건 교단 (예컨대Eglise Réformée, Reformierte Kirche)을 의미하거나 개혁교회가 시작된 장소(예로, 스코틀랜드, 프랑스, 화란)의 개혁교회나 장로교회들이 가진 신학 전통으로 오해한다. 그래서 그 교회들의 예전 형식을 도입하면 개혁교회가 되는 것으로 생각하기도 한다.[14]  또 다른 오해는 개혁주의 전통을 ‘칼빈주의’와 동의어로 생각하는 것이다. 칼빈의 한 세대 이전 세대의 일부 신학자들과 칼빈과 당대 신학자들, 그리고 종교개혁 이후 16세기 초와 이후 200여년 간의 다양한 종교 개혁 흐름들을 한데 모은다고 해도 개혁전통을 모두 그려낼 수 없다.[15] 개혁교회의 전통은 역사 속에 묻혀서 화석화 된 것이 아니라 오늘날도 여전히 개혁교회의 전통을 이어가는 개혁 교회들의 지속적인 대화를 통해 발전되어 오고 있는 것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이러한 의미에서 개혁파 선교사들은 그들의 선교지에서 개혁 전통의 꽃을 심어가는 주체적인 역할을 한다. 세번째 오해는, 이것이 개혁교회의 전통이다, 라고 말할 수 있는 단일자료(예를 들어 교황의 칙서)가 없다는 것이다. 우리는 역사적 고백서들로부터 그것이 작성된 역사적 시점들에서 하나님의 말씀이 가르치는 바에 대한 교회의 합의에 가장 근접할 수 있을 뿐이다.

 


   개혁교회의 전통은 어느 한 개인의 신학이나 어느 특정 지역이나 시대의 전통이 성경에 가장 부합한 전통이라고 주장하지 않는다. 이러한 의미에서 개혁전통은 폐쇄적이지 않고 역사성과 보편성을 가진 열려 있는 유기적인 전통이다. 개혁교회의 전통은 유일하고, 거룩하고, 보편적이고 사도적인 교회가 후세대에게 자신들의 신앙과 그 신앙의 근거한 삶의 체계를 물려준 것이다. 이 신앙의 전통은 자신의 특징을 나타내는 몇 가지 신학, 예배, 교회정치, 문화 그리고 삶에서 공통된 강조점들을 가지고 있다.[16] 이 보편적이고 역사적 개혁교회들이 고백한 전통들의 공통점들을 살펴보면서, 동시에 이미 우리가 경험한 고려파 교회의 개혁 전통을 되짚어보는 것은 우리가 선교지에서 만들어 갈 개혁교회들의 좋은 모범이 되기에 적절하리라 생각된다. 고려파 교회뿐만 아니라 개혁교회는 그 신학적 전통을 하나님 중심, 성경중심, 교회 중심이라는 말로 표현하기를 좋아했다. 고려파 교회는 초기부터 세상을 향한 분명한 문화관을 가지고 있었고, 자신들의 개혁교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신사참배를 거부하면서 고백 되어진 고려파 고유의 고백적 영성 안에 담아 전수해오고 있다. 

 


 

하나님중심

   개혁 전통은 인본주의가 아니라 신본주의다. 그러므로 인간이 중심이 아니라 하나님이 처음과 마지막이며 우리 삶의 중심이다. 그리고 하나님만이 마지막에 영광을 받으신다. 일반적으로 하나님의 주권, 하나님 영광, 하나님의 주권사상의 논리적 귀결인 예정론과 동일시될 정도로 하나님 중심적 사상과 삶이 강조되었다. ‘개혁주의 정신의 기본은 경건한 삶에서 출발하기 때문에 개혁주의자들의 삶의 목표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살아가는 것 (Soli Deo Gloria) (고전10:31;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1:1)이 되고, 이들의 삶의 자세는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는 삶의 모습(Coram Deo)으로 나타난다. 따라서 이렇게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는 개혁주의자들은 그들이 어디에 있던지 복음의 전파와, 복음 위에 선 기독교문화 건설에 힘쓰는 것이다.’[17] 하나님 중심의 개혁교회 전통의 특성과 그 의미하는 바와 그것이 어떻게 우리 선교지에 적용되어야 할지 살펴보자.


 

   우리는 성도들이 하나님 중심의 삶을 살아야 한다고 당연히 생각할 수 있지만, 우리와 신학적으로 반대 위치에 놓인 원죄를 부인한 펠라기안주의와 이와 유사한 신념을 가진 알미니안주의를 대조해 보면 하나님중심 사상이 모든 교회 전통이 아니라는 것을 금세 눈치 챌 수 있다. 개혁교회 교인들은 나의 회심, 나의 신앙, 나의 선한 삶에 신앙의 무게추를 두지 않고, 하나님의 선하심, 하나님의 은총 그리고 하나님의 주권적 의지가 나의 구원의 근본이라는 믿는다. 푸르만의 말처럼 칼빈의 진정한 유산은 모든 것(인간, 그리스도, 믿음, 세계, 성경, 삶)을 인간의 관점이 아니라 하나님의 관점에서 보려고 한 방법이다.[18] 고려파 교회의 예배는 하나님만을 높이는 하나님 중심의 예배였는데 언제부터인가 예배가 인간의 마음을 위로하고 인간에게 해답을 주는 식의 예배로 바뀐 것을 우리는 감지하고 있다. 큐티의 목적부터 시작해서 교회 생활의 전반적인 프로그램이 사람 중심으로 바뀌어 간다는 것을 또한 쉽게 감지할 수 있다. 하나님 중심의 삶은 인간이 어디로부터 와서 어디로 가야 하는지를 알려주는 인생의 가장 중요한 질문에 대한 답이며, 만물과 생명의 주인이 있음을 고백케 하며 그리고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의 주인 되심을 고백케 하는 것이다. 이는 우리의 힘으로 인생을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 삶을 설계하시고 책임 있게 인도해 가신다는 확신으로 인도한다. 이런 전통은 선교지에서 삶의 존재 이유와 목적을 개인에게 극대화한 다원주의 시대에 자기중심적으로 살아가는 대부분의 이교도들에게 전혀 다른 삶의 방식, 하나님 중심의 삶이 있다는 것을 보여줄 수 있다. 신 중심의 삶이 생활화 되어있는 극단적 이슬람권이나 힌두권에서는 하나님 중심의 삶이 이미 그들의 일상이기 때문에 큰 영향력을 기대 할 수 없겠지만, 불교권이나 다원주의의 영향 아래 놓여 있는 대부분의 선교지에서 하나님 중심의 삶의 심오한 비밀을 선교사의 삶을 통해 보여준다면 선교에 큰 도전을 줄 수 있을 것이다. 

 


   16세기 상황에서 하나님 중심의 신앙고백은 교황 중심의 로마교에 반대하는 것이었다. 개혁교회는 창조주 하나님과 인간을 엄격히 구별하며, 인간을 특수한 위치에 두는 신학을 용납하지 않는다.[19] 이런 의미에서 원주민에 비해 비교적 우월한 위치에 설 수밖에 없는 선교사 개개인은 더욱 더 성육신 하신 예수님의 모습을 배워 낮은 자리에 처하는 리더십을 보여주어야 한다. 한국교회에 만연한 교권주의를 경험한 선교사들은 선교지에서 완전교회를 만들어 갈 때 교권주의의 빠지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고신 선교사들은 1951년 총회에서 신사참배를 했던 교권주의자들에 의해 장로교 총회에서 퇴출당한 경험을 되새기며, 교권주의를 선교지에 뿌리내리지 않도록 해야 한다.

 


   하나님의 주권과 예정론은 인간의 구원이 전적으로 하나님의 손에 달려있다는 고백이다. 이것은 하나님의 창조와 사랑 그리고 인간의 전적 타락에 대한 창세기의 고백으로 시작한다. 언약사상은 인간의 구원을 위한 중추적인 역할을 하며, 이 개혁교회 전통은 인간의 의지는 자유롭지 않으며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주어진 구속에 있어서 능동적 주도권을 쥘 수 없다고 고백하게 한다. 자유주의 신학과 구별되는 이 개혁전통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서 얻어지는 구속의 은혜에 대한 인격적인 고백과 삶의 전반에 걸친 변화를 선교지에서도 기대하게 만든다. 고려파 교회는 ‘예수가 주’라는 고백을 위해 신사참배를 거부한 고백교회의 전통을 가지고 있다.

   하나님 주권 사상은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윤리적인 답을 준다. 칼빈은 그의 유명한 윤리 명제인 ‘하나님 앞에서’(Coram Deo)에서 이 사실을 말한다. 윤리적으로 부패한 로마교 성직자들과 교인들에 대해서 루터는 윤리적인 부분에서 철저한 개혁을 실천하지는 못했다. 반면 칼빈은 제네바 개혁에서 보여주었듯이 성도의 보다 철저한 윤리적인 삶을 요구했다. 그에게 있어서 권징은 교회의 참된 표지로 여겨질 정도로 개혁교회 전통은 철저히 개인의 삶과 사회 윤리에 관여한다. 초기 내한 선교사들 또한 구한말의 비윤리적인 사회상을 성경적으로 바로잡고자 노력했다. 개혁교회의 선교사들은 바른 치리의 행사를 통해 성도들의 개인 윤리가 하나님 앞에서 부끄러움이 없도록 지도해야 할 직무를 가진다. 

 

 

성경중심

 

   기독교는 기본적으로 책의 종교이다. 개혁전통의 뿌리는 성경중심에서 나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로마교가 성경과 전통 혹은 성경과 교황의 칙령을 나란히 세운 것에 반해, 츠빙글리와 칼빈은 교회와 사회의 모든 부분을 성경에 기초하여 개혁하고자 하였다. 개혁 진영 안에서도 토마스 뮌처를 중심으로 한 재세례파는 성경을 통하지 않고 성령으로부터의 직접적인 계시를 중시한 것에 대해서 ‘오직 성경’은 다시 한번 강조되기도 했다. 혹자들은 개혁교회를 단순히 ‘개혁하자는 주의’로 간주한다. 종교개혁자들이 말한 개혁은 헤겔이 주장하는 것처럼 변증법적으로 개혁을 하자는 말이 아니라, 성경에 비추어서 미흡한 점이 발견되면 성경에 근거하여 다시 철저히 개혁해야 한다는 것이다. [20] 그런 의미에서 개혁교회의 신자들은 말씀의 사람들이다. ‘오직 성경(sola scriptura)’ 원리는 종교개혁 원리를 가장 포괄적으로 설명하는 말일 것이다. 성경이 특별히 중요시되는 것은 특히 개혁 전통 안에서였다는 것은 루터파가 그들의 신앙고백서인 아욱스버그신앙고백서(1530)를 대하는 태도에서 감지된다. 이 고백서에는 성경에 대한 독립적인 논의 부분이 없는 반면, 대부분의 개혁교회 신앙고백서들은 한 문단 이상을 성경에 관해, 그것도 신앙고백서의 초두에 할애하고 있다. 또한 루터교는 하나의 신앙고백서만을 유일한 권위로 받는 반면, 개혁교회들에게 신조와 고백서는 성경의 원리에 비교해서 언제든지 개혁될 수 있는 대상이었다. 즉, 오직 성경으로 그들의 신학적 전통이 정통성을 유지하도록 하였다. 이러한 보편적 개혁교회의 신학전통이 또한 성경을 올바로 이해할 수 있도록 하는 해석학적 순환[21]을 가능하게 한다. 

 


   ‘개혁자들은 교회를 말씀의 산물이라고 불렀다. 말씀이 교회를 부르고 세우고 유지하기 때문이다.’[22] 성경이 말씀하고 있는 계시의 진리는 우리가 세워가는 선교지의 교회가 보편적 개혁교회 혹은 공교회인 것을 보증한다. 고려파 교회는 말씀의 원리(십계명의1계명)를 지키기 위해 순교와 핍박을 감내했으며, 이런 의미에서 고려파 교회는 보편적 개혁교회이다. 선교지에서 선교사는 외부의 핍박이나 개인적인 순간의 안위를 위해 말씀의 진리를 왜곡하지 말고, 말씀의 본질들이 선교지의 전통으로 남겨지도록 분투해야 한다.     

 


   성경 중심이라는 의미는 성경을 유일한 권위있는 삶의 원리로 인정하다는 것이다. 성경이 기술되어진 시대와 비교해보면 오늘날의 기독교가 대답해야 할 내용들이 성경시대보다 월등히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성경이 우리 삶을 개혁교회의 성도로서 살아가게 하기 위해 적확한 원리들을 담지하고 있다고 믿는다. 선교지의 새로움과 다양함이 있을지라도 성경에서 발견된 개혁교회의 원리 이외에 세속적인 필요와 원리들을 통해 성경을 재구성해서 교회를 해석하거나 운영해서는 안된다. 또한 잘못된 은사주의에 치우쳐 성경에서 말하지 않는 성령의 직접적인 계시를 추구해서는 안된다.

 

 

교회중심

 

   주님은 마16:18절의 신앙고백이 있는 곳에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세우셨다. 그리고 그곳에 들어오는 당신의 양들이 은혜를 받는 방편으로 말씀 선포와 성례를 베풀어 주셨다. 바른 말씀의 선포와 성례의 시행은 다른 어떤 교회의 프로그램보다 중요한 은혜 받는 방편이다. 종교개혁 당시 로마교에는 설교가 사라지고, 성례 또한 원래의 의미를 상실한 채 공로사상에 물들어 있었다. 오늘날도 적지 않은 교회들이 말씀과 성례 이외의 특별한 프로그램들에 집중하여 성도들에게 은혜를 끼치려고 시도한다. 그러한 프로그램들은 설교와 성례를 돕는 역할이 되어야 한다. 선교지의 비참한 죄인들이 말씀을 통해 전도를 받아, 교회 공동체 앞에서 입으로 구주를 시인하여 세례를 통해 그리스도의 몸에 연합되고 성찬을 통해 언약공동체 안에 들어와 함께 예배하는 축복을 누리게 해야 한다.

   루터나 칼빈은 말씀과 성례라는 가시적인 은혜의 방편 이외에도 로마교가 성직자 중심의 위계질서를 만든 것에 반대하여 ‘성도의 교제’를 비가시적인 참된 교회의 표지에 첨가한다. 주기도문의 첫 소절인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를 고백하는 것, 곧 나 혼자만의 아버지가 아닌 우리 교회 공동체의 아버지이며, 이제 한 아버지 밑에서 한 자녀 된 가족 공동체가 되었음을 가르쳐야 함을 의미한다. 희미해진 공동체 의식을 가진 개혁교회는 참된 의미에서 선교적 사명을 감당할 수 없다. 성경에서 말하는 구원의 여정은 구원받은 교회 공동체가 하나님의 자녀 된 삶을 서로 나눌 때 세상 이방인들이 그들의 삶의 진정성을 보고 자신들의 삶의 비참함과 비교하여 자신의 세계관을 버리고 개종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공동체 구성원들이 교회 안에서 하나님의 성품에 참여하고 서로 나누는 것을 통해서 주님의 증인의 공동체가 되는 것이다.   

   대부분의 개혁교회 헌법들은 교회 권징을 참된 교회의 제3의 표지로 삼고 있다. 루터파 교인들과 마찬가지로 칼빈은 말씀과 성례 두 가지만을 교회의 표지로 가르쳤다(IV.1.9). [23] 마틴 부서와 존 낙스는 이것을 세 번째 표지로 보았다. 당시의 개혁교회들이 실시한 교회 권징의 본래의 참된 목적은 목회적 보살핌의 한 측면으로써, 본질적으로 긍정적인 것이었다. 그것의 목적은 “하나님의 말씀선포의 필수적인 구성요소로써 궁극적으로 교회의 성결과 그리스도의 영예를 증진하는데 있었다.”[24] 한 명의 성도가 귀한 선교지에서는 마땅히 행해져야 할 교회권징을 행하기가 쉽지 않다. 칼빈의 제네바시 개혁에서 첫10년 기간 동안 그가 가장 어려움을 겪었던 부분이 바로 권징 때문이었던 것을 감안하면 분명 교회권징은 쉬운 것이 아니다. 그러나 바른 권징의 시행을 통해 결국 죄인들이 회복되고, 이단이 물러가며, 교회의 순수성과 일치성이 보호되며, 하나님께서 영광 받으실 것이다.

 


   칼빈은 로마교의 가시적 교회가 하나님의 나라를 대신하는 것을 비판하면서 주님은 말씀과 성례라는 외적인 표지를 주셔서 가시적인 교회를 존속하게 하신다고 보았다. 교회의 불가시성에 대한 강조는 종교개혁 첫 세대부터 있어 왔지만, 보이는 교회와 보이지 않는 교회, 모이는 교회와 흩어지는 교회, 공동체로써 교회와 기관으로서의 교회, 내적교회와 외적교회, 유기체로서의 교회와 조직체으로서의 교회의 개념을 구체화시킨 아브라함 카이퍼에 공을 돌리곤 한다. 특히 모이는 교회와 흩어지는 교회의 개념과 영역의 개념을 통해 교회가 해야 할 일과 성도가 해야 할 일을 분명히 구분한다. 하나님은 이 땅에 교회를 선교사로 파송을 하셨다. ‘교회는 세상 속에 있어야 하지만, 교회가 세상이 하는 일과 같은 일을 해서는 안된다. 대신 교회는 세상 속으로 성도들을 파송한다.’[25] 그리스도의 제자로 훈련받은 성도들은 각자의 영역에서 세상을 변혁하는 일을 감당 해야 한다. 세상 속으로 흩어진 성도들은 자신의 삶의 현장에서 승전보를 가지고 가시적인 교회로 모여서 주님께 자신의 삶을 송영으로 올려드리며 예배하는 것이다.

 


   선교에 있어서 교회중심이라는 의미는 공교회성이라는 의미 안에 내포되어 있다. 성도들의 참된 교제 속에서 드러나는 공동체성이 확대되면 공교회성이 된다. 성도가 혼자서 신앙생활을 할 수 없듯이 개체교회는 공교회의 일원으로서 존재해야 한다. 선교는 일차적으로 공교회에 맡겨진 사명이기 때문에 개인이나 개교회가 주도하기 보다는 공교회가 감당하는 것이 개혁교회의 원리에 맞다고 하겠다. 선교역사에서 현재를 ‘교회의 선교시대’ 라고 부른다. 그러나 이 말이 잘못 이해가 되면 ‘개교회의 선교시대’로 오해가 될 수 있다. 개교회가 선교의 모든 자원들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독단적으로 선교를 하기보다는 공교회로써 고신교단의 공식적인 통로인 KPM을 통해서 하는 것이 선교의 공교회성을 살리는 길이다.

 

 

개혁교회 문화관

 

   원인으로써 하나님 주권과 결과로써 하나님의 영광이라는 하나님 중심의 개혁교회의 기초적인 전통은 자연스럽게 하나님의 주권을 이 세상의 모든 영역 가운데 실현하여 모든 영역에 하나님의 주권과 영광이 드러나도록 하는 일에 성도들을 부르신다고 고백해왔다. 루터의 경우 그의 소명관을 통해서 ‘성도는 교회의 울타리뿐만 아니라 세속의 영역에서도 성별된 삶을 살아야 한다고 보았다. 루터는 소명을 세속적 직업과 직책으로 이해했으며, 교회 밖 세속 세계를 향하여 사랑을 실천하는 것’으로 이해했다.[26] 이러한 의미에서 루터에게 있어서 소명은 세상을 향하여 사랑을 실천하는 소극적인 차원에 머물렀고, 세상을 변혁시키는 사상으로까지는 발전하지는 못했다. 은혜로우신 하나님에 대한 루터파의 탐색과, 개인 영혼의 안녕에 대한 경건주의적 관심과, 개인의 성결에 대한 웨슬레주의적 목표와는 대조적으로, 개혁주의 전통의 궁극적 관심은 개인과 개인 구원을 초월한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에 제한되지도 않는다. 개혁주의의 관심은 국가와 문화, 자연과 우주라는 보다 광범위한 영역에서 하나님의 뜻을 실현하는데 있다. 개혁교회 성도는 교회 안에 게토화되지 않고, 세상 속 각자의 영역에서 빛과 소금되는 삶을 통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동시에 세상을 변혁하는 변혁자로 하나님의 나라를 이 땅에 어렴풋이 드러내는 소명을 가지고 있다.[27]

 


   개혁교회의 변혁적 문화관은 이와 같이 철저히 하나님 주권과 하나님의 영광이라는 하나님 중심사상으로부터 출발하고 끝을 맺는다. 즉, 개혁교회의 가르침은 인간적 필요로부터 그 동기와 결과를 가지는 사회복음주의나 자유주의자들의 사회적 행동과 전혀 다르다. 그러나 반대로 정치로부터 물러서야 하며 갈등을 일으키는 사회적 이슈들을 교회에서 다루는 것을 피하고 영혼구원을 위한 복음전파에만 충실해야 한다는 근본주의적이고 범복음주의적인 주장 또한 배격한다. 역사적 개혁교회 전통은 그런 종류의 두 갈래를 인정하지 않는다. ‘개혁주의는 복음전도와 사회적 행동, 예배와 봉사 사이의 “이것이 아니면 저것” 즉 양자택일을 인정하지 않는다. 개혁주의 전통은 따뜻한 개인적 경건과 격조 높은 교회생활을 경제적, 정치적 영역과 아울러 사회적, 문화적 영역을 포함한 세상에 대한 총체적인 관심과 결합시켜 양자 모두를 추구한다.’[28]


 

   교회는 세상 속에서 존재하지만 세상에 속하지 말아야 한다. 이 말은 교회가 세상의 일을 하는 곳이 아니라는 말이다. 교회는 교회의 궁극적인 역할인 하나님을 예배하고 증거하는 일에 전념해야 한다. 교회는 설교를 교인들이 마땅히 세상 속에서 살아야 할 바를 가르친다. 교회는 성도들을 그리스도의 군사로서 이 땅에 파송한다. 이것이 개혁교회 주권영역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이다. 고신에 속한 선교사는 선교지에서 일정한 정당에 속하여 정당 활동을 할 수 없게 되어 있다. 그 의미는 선교사들이 교회 밖의 일에 전혀 관심을 두지 말라는 의미가 아니다. 선교사는 교회를 세워 바른 목회를 하고, 그 바른 목회의 일부인 설교를 통해 강단에서 성도들이 선교지의 각 영역에서 하나님 나라의 의와 불일치한 종교적, 도적적, 사회적 관행이나 죄와 싸워 그 영역들을 하나님의 나라로 일궈가도록(창1:28) 끊임없이 도전하고 세상으로 그들을 파송해야 한다.

 

   역사적으로 하나님 나라를 이 땅에 구현하는 방식은 각 시대나 지역마다 다른 모양새를 가졌다. 낙관주의를 배경으로 몇몇 시도들이 있었는데, 그 중 하나는 전국가적인 범위에서 모든 영역을 교회화(Christendom) 하려는 시도였다.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아프리카너돔(Africanerdom)은 그 유명한 실패의 예라고 하겠다. 칼빈이 제네바시의 개혁에서 보여주었듯이 개혁교회는 우리의 모든 영역을 교회화하려는 의도를 가지지 않는다.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를 각 영역에 온전히 임하도록 최선을 다하는 이상주의자여야 하나, 죄가 관영한 이 땅에서 오히려 성도들은 자신들의 삶의 영역들에서 치열하게 십자가를 지며 하나님의 나라를 자신들의 삶을 통해 변혁해가는 것이다. ‘하나님의 은혜에 의하여 사람이 변하는 것이 사회가 변하는 근본적인 조건이다. 하나님께서는 먼저 개인을 변화시키시고 후에 사회를 변화시키신다. 사회의 변화는 개인의 변화에 의존한다. 하나님께서는 변화된 사람을 통하여 사회를 변화시키신다.’[29] 그러므로 선교지에서 개혁교회 건설의 최종 목적은 단지 완전교회 건설이 아니다. 한 단계 더 나가서 각각의 제자들이 자신의 영역에서 자신에게 주어진 영역을 선교지로 알고 그곳을 하나님의 나라로 만들어 가기 위해 선교사적 삶을 살아가도록 하는 것을 포괄한다. 이런 치열한 삶의 현장에서 돌아온 성도들의 그들의 삶을 예물 삼아 드리는 예배가 성전에 가득하도록 하는 것까지여야 한다.

 


 

개혁교회 영성

 

   ‘영성은 일반적으로 영적인 특징을 의미하지만 이것이 기독교에서 사용될 때는 구속함을 받은 성도가 그의 창조주를 좇아 지식에까지 새로워져서 (골3:10) 기쁨으로 힘을 다하여 그리스도 예수를 닮아 가려고 노력할 때 나타나는 영적인 특성을 말한다. 그러므로 고신 영성은 고신교회가 그리스도를 닮아가려는 노력을 할 때 나타나는 남다른 성향을 뜻하며 고신정신은 이 영성이 현실생활에서 투영될 때 나타나는 실천적인 마음의 자세이다.’[30] 고신교단은 개혁교회로써 신사참배라는 특이한 역사적 정황 속에서 예수를 주와 그리스도로 고백하는 그 일을 위해 고백교회로의 정체성을 분명히 하게 되었을 뿐 아니라, 그 모든 성도들의 고백적 삶의 과정에서 드러난 영적인 특성들이 오늘날 우리 KPM선교사들이 전세계 교회와 선교지에 내어 놓을 만한 귀한 영성으로 자리매김하였다. 이러한 개혁주의 영성은 사막의 수도사들과 웨슬리안의 그것과 같이 인간의 노력으로 영적인 능력을 쌓아가는 방식과 다르다.

 


   칼빈의 영성은 흔히 자기부인의 영성으로 불린다. 그는 기독교강요 3권의 7,8장을 할애하여 자기부인의 영성에 대해서 설명한다.[31] ‘우리는 우리 자신의 주인이 아니고 하나님께 속하였다…반면에 우리는 하나님의 것이다. 그러므로 그를 위해 살고 그를 위해 죽어야 한다(3권 7장 1절). 일평생 회개의 경주를 통해 철저히 자신을 부정하는 성도는 자연스럽게 하나님의 영광만을 위해 생각하고, 행동하여 자신을 거룩하게 한다. 이렇게 거듭난 성도는 자기 자신만을 위해 살던 삶에서 하나님을 위한 삶으로 돌이키는 데서 자기부인의 영성이 드러난다.  칼빈뿐만 아니라 개혁교회 성도들은 말씀과 기도를 통하여 성도가 거룩한 삶 즉, 자기를 부인하고 하나님의 영광에 참예한 삶을 영위할 수 있다는 믿은 말씀(딤전4:5)의 증인들이었다.

 


   고려파 교회에서 자기부인의 영성은 일사각오, 여주동행, 지사충성이라는 말로 구체적으로 나타났다. 우리는 SFC를 통해 늘 신학의 정통, 생활의 순결, 순교자적인 삶이 우리 고신교회가 이 땅에서 추구하는 특징이며, 하나님 중심, 성경 중심, 교회 중심의 삶이 성도들의 삶의 원리라고 배워왔다. 이러한 삶의 원리와 특징들이 구체적으로 이 세 가지 영성 안에 녹아 있다. 이것은 우리 신앙의 선조들이 이 땅에서 경험하고 고백한 것이며, 고신교단 안에서 신앙생활을 해 온 KPM 선교사들이라면 가장 잘 이해하고 체득하기 익숙한 개념이기에 선교지 상황에서도 잘 적용할 수 있을 것이다.

   일사각오란 죽음을 각오한 결단의 믿음으로 살아 가는 성도의 영성이다.[32] 일제의 핍박 가운데서도 죄로부터 신앙의 순결을 지키기 위해 목숨까지도 내놓는 굳은 신앙을 의미하는 것이다. 고려파 교회의 성도들은 주님을 인하여 받는 희생과 고난을 주저하지 않고 더욱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뿐만 아니라 이 고난을 주님이 주시는 것으로 여겨 감사하게 받는 영성을 보여주었다. 우리는 선교지에서 주님을 인해 핍박을 경험할 때가 많다. 일사각오의 영성을 보여준 선배들의 모습은 핍박을 당하는 많은 선교지의 성도들과 선교사들에게 마지막 승리의 영광에 대한 소망을 한층 더한다. 여주동행은 성도들이 날마다의 삶에서 주님의 동행하심을 경험할 뿐 아니라, 모든 일에 주님을 의식하고 살아가는 삶의 영성을 의미한다. 선교사는 우리의 믿는 바 개혁신앙을 가르침에 있어서 성도들에게 선교사의 삶에서 나타나는 그리스도와의 동행을 보여주는 여주동행의 실천이 있어야 한다. 여주동행은 비단 개인이 주님과 동행하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았다. 교회 공동체 전체가 매주 교회의 머리 되신 주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과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경험하는 것을 포함했다. 지사충성은 우리 인생을 죄로부터 사서 구원해 주신 주인이신 예수께 어떠한 고난과 난관이 있더라도 충성을 하는 영성을 의미한다. 예수님께서 말씀으로 이 땅에 나타나 보이시기에 그 말씀 하나하나에 최선을 다해 순종하는 것을 의미한다. 

 

 


1.2.2 [33]개혁교회 전통의 집약으로써 신조(Creed)와 신앙고백(Confession) 그리고 요리문답(Catechism)

 


   개혁교회의 신조(이하 신조라는 단어에 신앙고백과 요리문답을 포함한다)들은 개혁파 교회들이 가진 신학전통의 집약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그 권위의 면에 있어서 성경과 같이 절대적일 수 없다. 칼빈이나 혹은 당대의 다른 개혁파 신학자들은 보다 구체적인 신학적 토론에서 서로 간의 불일치를 이룬 것들이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서로 다른 신학전통을 만들어 가지 않았다. ‘그들은 신앙고백을 공적으로 서술함으로써 고백신학의 전통이 일어나고 발전하였다.’[34] 개혁파 2세대부터는 이들 개혁파 교회들은 자신들의 신학적 정체성을 신학적으로 느슨하게 만들어진 신조를 통해 고백했는데 이것이 개혁 전통의 표준이었다. 예로, 독일의 개혁교회는 그들이 루터파와는 다르다는 것을 드러내기 위해 하이델베르크 신앙문답서를, 화란의 개혁교회는 알미니안들로부터 자신들의 신학전통을 구별하기 위해 돌트 신경을 작성했다. 개혁교회 안에는 각 교단별로 60여 개의 신조들이 존재한다. 그렇다고 해서 그들 교회가 각각의 신학전통을 가진 것이 아니라 보편적 개혁교회의 전통을 함께 만들어가고 있는 것으로 이해되어져야 한다. 이 개혁교회의 신조들 안에는 보편교회로서의 개혁교회의 신학 전통이 고백되어져 있다. ‘개혁파교회의 결착된 정적인 의미에서 신조교회가 아니고, 끊임없이 새롭게 고백하여 가는 동적 의미에서 고백교회이다.[35] 이 신조들은 다른 종교나 타 신학전통과 개혁교회를 구별하고 그 정체성을 확연히 보여준다.

 


   이러한 의미에서 선교사는 우리가 세워가는 선교지에 자신이 세우려고 하는 교회의 정체성을 신조를 통해 반드시 드러내야 한다. 처음부터 신조를 매주 직접 가르치기보다는 신조의 내용을 성경 본문을 통해 풀어서 가르치는 것이 지혜로운 방법일 것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일정 기간이 지난 이후에 교인들이 자기들의 정체성을 찾을 때, 다른 교단들의 전통과 비교해서 다른 것이 있고, 그 다름이 바로 개혁교회 전통임을 알게 되는 그러한 방식으로 개혁교회의 정체성이 드러나야 한다. 우리 교단이 채택한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와 문답서들을 선택하거나 혹은 교회의 상황에 부합하는 기존의 다른 신조들을 채택하거나, 수정하거나 새로 작성하여 선교지 교회가 그것을 고백하도록 하자.[36]

 


   신조들의 만들어진 기원은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다. 먼저 교회생활의 발전 과정에서 작성되어 하나님의 섭리로 자연스럽게 교회에 받아들여진 경우가 있다. 사도신경이 이 경우에 해당한다. 두 번째는 공회가 공식적으로 만든 것이다. 니케아신경, 돌트신경,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등이다. 세 번째 경우는 한 신학자 혹은 수 명의 신학자들이 모여 작성한 것을 교회가 받은 것도 있다. 벨직이나 하이델베르크 교리문답이 이 경우에 해당한다.[37]

 


   신조의 필요성과 목적은 무엇인가? 신앙고백서의 필요성을 뒷받침해주는 성경의 근거들(롬10:9; 고전 12:3; 딤전 6:13; 요한1서 4:2)[38] 은 차지하고서라도 ‘신앙고백 없이 그리스도를 소유하거나, 신조 없이 성경을 소유할 수 없다’는 개혁교회의 신조에 관한 명제는 분명하다.  ‘개혁주의 교회는 소시니안 (Socinians)과 퀘이커교도(Quakers) 등이 말하는 신조무용설을 반대하지만, 천주교와 희랍정교회 등이 주장 하는 신조무오설도 거부한다. 도리어 개혁교회에서 신조는 무오하지 않는 상대적인 권위를 가지며, 바른 신학 및 교회 활동을 위하여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라고 주장한다.’[39]

 


   신조와 신앙고백의 목적은 첫째, 신자들을 연합시키며 강건케 하는데 있다. 신조는 신앙의 일치와 하나님의 아들에 관한 지식에 하나되게 하는 일(엡4:13)을 위해 필요하다. 선교지에서 완전교회 혹은 그 이상의 치리회를 이루어 가는 과정에서 신조와 문답서는 개척된 지역교회들을 공교회로 묶을 수 있는 가능 강력한 도구가 된다. 둘째, 신조의 교육은 선교지의 교회가 개혁교회로써 정체성을 가질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요체 중의 하나이다. 셋째, 교회는 이단으로 복음을 지키는 진리의 기둥과 터로서(딤전 3:15)의 사명을 감당해야 하는데 개혁교회는 복음의 순수성을 신조를 통해 지켜왔다. 넷째, ‘신조의 일차적 목적은 교육적이며 복음전도적이며, 참된 기독교적 삶의 본질인 위대한 자유에 대한 즐겁고 행복한 선포여야 한다.’[40] 이 땅에서 성도의 가장 큰 기쁨은 하나님과 그분의 성품을 아는 지식에 부요해지고 그것을 닮아가는 것이다. 스킬톤의 이 지적처럼 성도들에게 신조의 교육은 하나님을 아는 지식의 부요함에 이르도록 하는 가장 빠른 길이다. 신조의 교육은 주로 개혁교회 전통에서는 설교를 통해 이루어져 왔다. 신조는 우리 기독교가 가지고 있는 가장 전포괄적 소재를 담고 있다. 그러므로 신조를 가지고 행하는 설교는 성도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비밀을 알아가는 것에 풍성하게 이르도록 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41]

 


 

1.2.3 [42]개혁 전통을 파수하는 역할로서 장로교 정치제도

 


   교회의 직분을 포함한 교회의 정치제도는 구약뿐 아니라 신약성경에 언급된 것이므로 굳이 그 필요성에 대해 재론할 여지는 없을 것 같다. 하나님께서는 성도들을 교회로 불러 모이시고 은혜의 방편들을 통해 양들에게 꼴을 제공하신다. 교회는 인간의 모임이기에 제도가 필요하고, 역사적 교회는 다양한 방식으로 교회 정체제도를 만들었다. 정치제도가 은혜의 방편과 같은 권위를 가지지는 않지만 칼빈이 말한 것처럼 ‘그리스도의 머리되심은 단순히 영적이고 도덕적인 것일 뿐 아니라, 교회 정치와 법에도 관계되어야만 하는 것이다.’[43]

 


   장로교는 어떻게 발전하였을까? 우리 장로교는 교회사 초기에 성도들이 목사를 선출하고 목사는 장로들과 함께 목회하는 방식이 성경에서 말하는 정치의 원형이라고 본다. 그러나 로마교는 장로직을 성직자가 대신하고 주교와 교황이 윗자리에 위치하는 위계제도로 변질시켰다. 칼빈은 중세 감독제 정치제도의 내적인 문제들을 성경적으로 비판함과 동시에 정교일치라는 외적인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고대 교회의 장로 직분을 회복시켰다. 칼빈의 영향 아래 프랑스 위그노가 1599년에 첫 장로교 총회를 가졌고, 낙스의 영향 아래 스코틀랜드에서는 1560년부터 장로교 정치제도가 시행되었다. 그러나, 개혁교회 안에서도 장로제가 온전한 대안이 될 수가 없다고 생각한 부류가 있는데 회중정치를 주장하는 이들이었다. 이들은 치리의 주체가 감독 한 사람이나 다수의 장로가 아닌 회중 전부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44] 결국 루터교의 경우 교회 정치에 있어서 로마교의 감독제도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기에 독일교회는 이후 감독제로 그리고 영국에서는 성공회적 감독제로 발전하였다. 교황제에 대한 극단적인 반발로 형성된 회중정치 제도는 대체로 프랑스와 화란 등에서 발전하였고, 장로교는 스코틀랜드와 제네바 등에서 발전하였다.

 


   ‘개혁교회와 장로교회 신학자들 가운데 장로제도가 개혁교회의 본질적인 것인가?’ 에 관해서는 아직도 논쟁이 되고 있다. 빌헬름 니젤같은 대담한 개혁주의 신학자까지도 개혁주의 교회의 어떤 특정 직분제도의 필요성을 고집하지 않는다.[45] 그럼에도 불구하고 칼빈은 장로교회 정치 제도는 교회의 본질에 관한 개혁 신학적 확신을 가장 잘 표현하고 있다고 보았다. 그 확신은 장로교의 장로직에 기인한 것이 아니라, 장로교 정치제도 안에 있는 원리들에 기인했다. 어떠한 교회정치 형태도 완전 할 수 없으며 하나님이 나라를 온전히 담지하거나 은혜의 방편들에 완전한 방패가 될 수는 없다. ‘그러나 장로회 정치제도는 그 효율성에 대한 평가에서 탁월함이 드러났으며. . . 수세기 동안 많은 정치제도 형태 가운데서 가장 수용할 만하고 효능있음이 입증되었다. . .. 이 정치형태는 성경적 지지를 받고 있을 뿐 아니라, 하나님의 주권, 그리스도의 교회의 머리되심, 그리고 성령의 활동, 외형주의와 미신에 항거하는 개인적 신앙, 반응, 그리고 개인성의 필요에 대한 인정, 평신도직에 대한 신적 소명, 성화의 교리에 의한 윤리적 강조, 영적인 독립에 대한 열망, 교황 지상권에 대한 혐오감, 친교의 자발성, 말씀의 우선권에 대한 주창 등 중요한 교리들과도 잘 조화를 이루고 있다.’[46]

 


   장로교 정치제도가 완전하지는 않지만, 장로교 정치제도의 원리가 잘 지켜질 때 개혁 전통이 잘 보호될 수 있다. 정치제도만을 두고 볼 때 회중제도를 채택한 회중교회, 침례교회, 혹은 감독제도의 형태를 가진 성공회나 감리교 등에도 매우 개혁주의적인 요소들이 있다. 반대로 일부 장로교회의 목사나 장로는 마치 로마 가톨릭교회의 사제들과 감독들처럼 행동한다. 반면, 장로교회의 교인들 가운데에는 회중교회 교인처럼 행동한다. 장로교 정치 제도의 원리를 잘 지키는 것이 장로교의 타이틀을 가지고 있는 것 보다 더 중요하다. 선교사가 장로교 정치의 정체성에 대한 분명한 이해와 확신이 있어야 칼빈이 말한 개혁교회의 정체성을 담아내는 데 가장 효과적이라고 믿었던 이 정치제도를 선교지에 제대로 정착시킬 수 있을 것이다.

   장로 정치제도는 개혁전통에 부합하는 몇 가지 원리들을 가진다. 기본 원리는 그리스도의 주권 아래 모든 지체와 개교회들이 누리는 평등성, 국가기관으로부터 독립하여 직분자들을 통해 운영되는 자율성, 그리고 개체교회의 대표들을 통해 운영되는 연합성에 있다. 종교 개혁자들이나 이후 국가가 교회의 정치에 관여하려고 했던 시대에는 교회의 자율성과 독립성을 확보하는 것이 심각한 문제였다.[47]

 


   장로교 정치의 두번째 원리는 목회적 동등권(parity of the ministry)에 잘 나타난다. 칼빈의 교회정치 이해를 이해함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그리스도만이 교회의 머리가 되신다는 인식이다. 주님은 인간의 봉사를 통해 교회를 통치하신다. 그러므로 인간적인 의지가 교회에 반영되는 것을 최소화하고, 하나님의 뜻이 교회에 최대한으로 반영이 되게 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인 정치제도일 것이다. 장로정치가 회중정치나 감독정치보다 뛰어난 이유는 여기에 있다. 서열적 계급 개념에 대해서 반대하는 이유는 교황이나 감독같은 한 사람의 생각이 하나님의 생각 전부를 제대로 반영해 내지 못한다는 이유에서 이다.[48]  반대로 회중 전체가 하나님의 뜻을 나타내려고 할 때 발생할 수 있는 교회의 무질서를 경계한다. 이런 의미에서 장로정치 제도의 목회적 동등권은 몇 가지 오해를 불식시킨다. 목회자 사이의 동등권은 의회 기능에서의 동등권이다. 담임목사와 부목사 사이에는 연배 차이에서 오는 상호 배움과 겸손한 존중과 배려가 있어야 한다. 그러나 회의에서는 동등성을 가진다.

 


   위계질서가 강하게 작동하는 한국목회 상황이[49] 오리엔테이션 되어 있는 KPM 선교사들에게 선임 선교사와 후임 선교사 간에 위계적 협력사역의 문제가 항상 걸림돌로 대두된다. 정확한 공사구분을 통해 목회적 동등성이라는 개혁교회의 정치 원리를 새롭게 각성해야 하다. 목사와 장로의 동등성 또한 직무에 있어서는 다름이 있으나 회의와 치리에서의 동등성이 지켜져야 한다.[50] 주로 선교사가 교회를 개척하고 재정을 가지고 오며, 교회 행정의 전반을 오랜 기간 동안 혼자 담당해야 하는 것이 선교지의 현실이기에 선교사는 직분의 동등성이라는 원칙을 쉽게 놓칠 수 있다. 완전교회가 되기 이전에는 집사회를 세워 장로의 역할을 하게 해야 하며, 장로의 회(당회)가 교회 안에 만들어진 후에는 동등성의 원리를 모범적으로 보여주는 겸손함이 필요하다.

 


   또 다른 특징은 장로들이 공동으로 감독하는 노회 회의 체제에 있다. 장로와 장로의 평등성, 교회와 교회의 평등성을 강조하면서 감독제의 위계적 구조를 반대하는 측면에서 장로 정치제도는 회중정치 제도와 유사하지만, 모든 교회가 그리스도의 몸이라는 연합성을 강조하는 면에서 장로정치제도는 회중교회의 그것과 분명히 구분된다. 목사와 장로는 교회의 대표로서 노회에 참석하고[51], 노회의 총대는 노회의 대표로서 총회에 참석함으로써 교회가 그리스도안에서 한 몸이 되는 것을 공적으로, 정기적으로 확인한다.[52] 장로교 정치제도에서 장로들의 연합체인 노회는 가장 핵심이 되는 모임이다.[53] 개체교회가 당회를 구성했다고 해서 그것 만으로 장로교 정치가 되는 것은 아니다. 교회가 공동으로 교회를 치리한다는 의미에서 목사는 노회의 소속이며, 교인의 대표로서 장로들과 함께 노회에서 직무를 수행한다. 교회의 연합성이라는 개혁교회의 원리를 고려한다면, 선교지에서 교회를 개척할 때 처음부터 노회를 구성하는 완전교회 형성을 반드시 염두에 두어야 한다.

 


 

결론

 

   그러므로 개혁교회로써 고신교회의 선교는 위에서 언급한 개혁교회의 세 가지 요체들 즉, 개혁교회의 전통과 그 전통을 담지한 신앙고백서들 그리고 그 본질적인 내용을 외적으로 보호하는 장치인 장로교 정치제도가 선교지의 상황에 접목되어서 정착되어지는 것을 그 방법론으로 한다. 고신교회가 가진 신앙의 전통이 각 선교지에서 정통(orthodoxy)이 되기 위해서는 선교사의 성육신적 삶이 필수적으로 요청된다. 경건주의 신학   의 목적은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를, 범복음주 신학의 주된 목적은 영혼의 구령을, 그리고 오순절 계열의 신학은 복이라는 분명한 목적을 추구하는 신학이다. 개혁교회의 목적은 이 땅에서는 완전하게 구현하기 불가능한 하나님의 나라를 그럼에도 지속적으로 이 땅에 구현해 나가는 이상주의적 도전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개혁교회의 신학이 선교지에서 참되게 구현되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도전하고 개혁해 가는 선교사들의 삶이 없이는 불가능한 신학 구조를 가지고 있다. 이러한 선교사들의 삶으로 드러난 개혁신학의 전통이 현지인들에 의해 현지화 되어 정통이 되어가고, 이것이 그들의 입으로 신앙고백 되어지고, 그리고 그러한 동일한 고백을 하는 교회 공동체가 완전교회로서 장로교 정치체계를 가지는 개혁교회들이 선교사들을 통해 열방 가운데 지속적으로 세워져 가기를 소망해 본다.

 

선교 - 개혁주의교회의 세계교회건설의 의미 (reformedj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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