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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산온선교사

윤산온선교사

by 김경호 진실 2009. 9. 6. 2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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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노회 시대와 황해도 교회형편 <1907-1911>

1907의 독노회 활동과 황해도 지역 교회

독노회 조직과 주요 결의사항

독노회의 공식명칭은 "대한 예수교 장로회 노회"이다.

당시 한국에 선교사를 파송한 4개국 선교부(미국의 남,북장로교, 카나다장로교, 호주장로교)는 각기 한국 교회의 독립을 승인하였고, 이로써 1905년 9월에 회집된 공의회는 1907년에 노회를 조직할 것과 평양 신학교 제 1회 졸업생 7명을 목사로 장립할 것을 결의하고 목사 임직을 위한 절차를 마련한다.

1907년 9월 17일 상오 9시 평양 장대재 교회에서 대한 예수교 장로회 창립 노회가 전년도 공의회장 배유진 목사의 개회 예배 및 성찬예식으로 개회된다.

제 1회 독노회 참석자는 장로 36명, 선교사 33명, 찬성회원 9명으로 도합 78명이다. 이 영광스런 창립노회에 황해도 교회를 대표하여 참석한 장로총대는 장연군 소래교회의 서경조 장로를 위시하여 봉산군 모동 교회의 최덕립, 문화읍 종산 교회의 우종서, 백천군의 천광실, 안악군 교동 교회의 조병직, 풍천 자산 교회의 윤천각, 황주 용수골 교회의 정명리, 재령 신환포 교회의 한치순 등이다.

초대 회장은 마펫, 서기는 한석진 부서기는 송린서가 각각 피선되었다. 회장이 단에 오르자 절차위원인 편하설 선교사가 사회봉을 진정하였는데, 이것을 고퇴(叩槌)라고 명명하기로 하였다. 그 뜻은 "두드리는 망치"이다.

이날 오후 2시에 속개된 회의에서 신학 졸업자 서경조, 방기창, 이기풍, 길선주, 송린서, 양전백, 한석진 등 7인에게 목사고시를 하였고, 오후 7시 30분에 속개된 회의에서 이들을 목사로 장립하는 역사적인 사건이 있었다.

창립 노회에서 가결된 사항 중 중요한 안건은 다음과 같다.

1. 제주도에 이기풍 목사를 선교사로 파송하고, 전국 교회는 감사한 마음으로 선교 헌금을 하기로 하였으며,

2. 새로 징립된 목사들의 임지를 결정하는 것으로써,

1) 한석진은 평양, 장전 등지의 전도 목사로,

2) 송린서는 증산 한천 지방의 전도 목사로,

3) 양전백은 선천, 정주, 박천 지방의 전도 목사로,

4) 서경조는 장연, 옹진 등지의 전도 목사로, 파송하였으며,

3. 길선주는 평양의 장대재 교회의 목사로 청빙을 받았다.

4. 경기충청, 평북, 평남, 경상, 함경, 전라, 황해 등 7 대리회를 조직하였고,

5. 남, 북 미 장로교와 카나다, 후주 장로교에 노회 조직을 통보하고, 미국에 체류 중인 언더우드 목사에게도 노회 조직을 알리기로 하였다.

6. 총계 위원이 보고한 당시 장로교회의 교세는 목사 47명, 장로 53명 조사 131명, 예배 처소 984개 처, 세례 교인 17,890명, 원입 교인 21,482명, 전체 교인 69,098명, 교회 직영 학교 402개 처, 학생 8,611명, 헌금 총액 94,227원이다.

이 해의 황해 대리회 내의 교회 형편은 다음과 같다.

장연군 소래교회의 서경조가 창림 노회에서 목사로 장립되었으니 한국의 최초 7인 목사 중의 1인이 되었으며,

장연군 지경리 교회가 먼저 이창호가 믿고 열심히 전도한 결과 신자가 일익증가하여 교회를 설립하게 되었다.

장연군 은행리 교회가 이익성의 전도로 이운영이 설립하였고 후에 일병의 구박으로 많은 수난을 겪었으나 끝까지 인내하면서 신앙을 지킴으로 교회가 부흥되었고 예배당도 건축하게 되었다.

안악군 무석 교회가 부흥되어 예배당을 건축하고 오계한을 초대장로로 장립하여 당회를 조직하였고,

안악군 연등 교회가 임상권의 전도로 김승철이 믿음으로 교회를 설립하였고,

안악군 하구리 교회가 이효순, 변기형 등이 믿고 교회를 설립하였으나 불신자의 박해로 인하여 예배당은 훼파되고, 회집은 무산되기까지 한다. 그러나 지방 교회의 제직 연합 전도대의 협력을 얻어 예배당을 중건하고 회집을 재개함으로 부흥되었다.

봉산군 산산리 교회가 예배당을 건축하였으며,

봉산군 유천 교회가 예배당을 건축하고 오택륜을 장로로 장립하여 당회를 조직하였으며,

봉산군 창촌 교회가 곽상빈의 전도로 변석동이 믿고 그의 사가에서 예배를 드리더니 드디어 예배당을 건축하였다. 이 교회는 본래 감리교에 소속되어 설립되었으나 후에 장로교에 편입된 교회이다.

봉산군 유정리 교회가 유진국이 믿고 모동 교회 지교회로 시작하였으나 박동빈, 김열근, 안경삼 등이 합심하여 전도하므로 부흥되어 조사 박하동을 초빙하였으며 마침내 자립하게 되었다.

재령군 구암 교회가 김동규를 장로로 장립하여 당회를 조직하니 이를 계기로 교회가 더욱 부흥 발전하였으며,

재령군 양생촌 교회가 천주교회당을 매입하여 예배당으로 사용하였으며 김광욱이 장로가 되므로 당회가 조직되었고,

재령군 갈산리 교회가 이찬용의 전도로 김덕성이 회개하고 믿음으로 교회가 설립되었고 예배당을 건축하였다.

은율군 신기리교회가 황룡규에의하여 설립되었우며,

은율군 고현리 교회가 권사복에 의하여 설립되었다.

신천군 종산 교회는 우종서의 전도로 우응제, 정영우가 믿고 교회를 설립하였으며 후에 예배당과 학교를 설립하였을 뿐 아니라 정계전과 정영복여사가 자기 소유 전부를 교회에 헌납하였다.

문화군 사평동교회가 부흥되어 예배당을 건축하고 양성측을 초대 장로로 장립하여 당회를 조직하였으며,

송화군 송화읍 교회는 홍성서가 먼저 믿고 전도하므로 설립되었다.

당시 곡산군, 황주군, 수안군은 황해도 지역이지만 이 지역내의 교회 소속은 평남 대리회였다. 그리고 황해노회가 조직된 후에도 이상 3개 군의 교회는 평남노회 소속으로 남게 된다.

그러나 황해도 지역의 교회를 소개하는 지금, 이 지역 교회에 대하여 소개하려 한다.

황주군 흑교면 용연리 교회에서 최덕준을 장로로 장립하였고,

황주군 삼전면 주동 교회는 본래 천주면 신촌에 거주하는 김화목여사의 독실한 신앙으로 설립되었는데, 그는 남편의 심한 반대와 핍박에도 불구하고 주동에 왕래하면서 열심히 믿고 전도하여 윤기복 등 4인을 회개시키고 가옥을 매수하여 예배당으로 사용하게 되었으며, 정명리가 조사로 시무하였으며,

황주군 송림면 석탄 교회는 김동형의 전도로 백환결, 이학성, 최진상 등이 믿고 교회를 설립하였으며 초가 6간을 매입하여 예배당으로 사용하였다.

곡산군 동촌면 귀낙리 황대 교회는 곽기방의 전도로 교회가 설립되었으며 이창조가 가옥을 매입하여 예배당으로 헌납함으로 부흥이 되었으며,

곡산군 멱미면 생황리 교회가 김재근의 전도로 설립되었고, 윤산온 선교사와 김관일이 조사로 시무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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