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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은 하나님의 지혜이다

김재성박사

by 김경호 진실 2022. 9. 8. 1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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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나그네의 진솔한 고백으로부터 가슴이 찡하게 전해오는 감동이 밀려들어 온다. 삶의 본질과 인생의 한계에 대한 진솔한 교훈을 배우게 된다. 백 삼십 년의 인생길을 걸어오면서 극심한 고통을 많이 겪었습니다는 고백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정신적인 고통들과 신앙적이며 영적인 의미가 담겨있는 회상과 추억이라고 본다. 형을 속여서 축복과 장자의 명분을 가로챘지만, 복수의 칼을 갈고 있었던 형님에 대해서 불안한 마음을 금할 수 없었다. 형을 피해서 외삼촌 라반의 집에서 20여 년간의 삶은 또한 얼마나 불안하고 힘들었을까. 다시 형을 만나게 되는 과정에서 겪여야 했던 시련들, 얍복강에서 천사와의 씨름 등은 과거의 야곱을 버리고 새롭게 거듭나야 하는 힘겨운 관문이었다. 야곱은 하나님과의 관계보다는 세상에서 부자되는 것과 쾌락을 즐기는데 더 많은 관심을 가졌던 사람이었던 것이다. 자식을 많이 낳아서 좋았을 것이지만, 그는 또 자기 아들들 사이의 질투와 불효에 몸을 떨어야만 했었다. 하나님께서 마지막 생애 17년은 다른 세계에서 살도록 보호하셨다. 먼저, 어린 시절에 잃어버렸다고 포기했던 아들, 사랑하고 그리워하던 아들 요셉을 다시 찾게 되어서 위로가 넘쳤다. 하나님의 은혜 안에 살아가는 삶은 전혀 세상 사람들과는 다르다.

믿음을 갖고 살아가는 성도들은 희망에 찬 나그네이다. 에베소서 2장 19절에, “그러므로 이제부터 너희는 외인도 아니요 나그네도 아니요 오직 성도들과 동일한 시민이요 하나님의 권속이라”고 하였다. 그저 앞도 모르고 살아가는 정처없는 나그네가 아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바라보면서 소망을 갖고서 살아간다 (히 11:13). 믿는 성도들은 주님과 함께 걷는 나그네이다 (시 39:12).
옛날이나, 지금이나, 이스라엘에서나, 한국에서나, 사람은 자기 나름대로 무엇인가를 성취하려한다. 욕심과 욕망에 사로잡힌 채, 극도의 정신적인 스트레스와 고통을 안고 살아간다. 수많은 시행착오가 어우러진 우여곡절을 경험한다. 남다른 의욕과 동기가 충만하여 어떤 분야에서 성공했다고 하더라도, “험악한” 인생이요, “힘겨운” 삶이었다고 말하지 않을 사람은 없을 것이다.

요즘 세대는 매스컴의 스타가 되려고 한다. 인기 연예인을 좋아하고, 텔레비전에 나오는 사람들을 흠모한다. 유명 연예인의 얼굴을 그저 저 멀리서라도 한번 보려고 수 만명, 수 십만명이 몰려다닌다. 돈이 많고 화려하게 보이지만, 정말로 그런 삶의 본질이 무엇인가를 제대로 알고 있는 사람들이란 거의 없다. 유명하다는 사람들의 삶을 자세히 살펴보라.

심지어 대통령이나 최고 권력자의 자리에 올랐다고 하는 사람들을 자세히 살펴보라. 전세계의 유명한 정치인들을 비롯해서 지도자라는 사람들은 거의 대부분 범죄자들이요 범법자들이다. 다시 말하면, 누군가 다른 사람들에게 엄청난 피해와 손해와 고통을 주었던 사람들이다. 세상의 성공자들은 반드시 다른 사람을 패배자로 만들어야만 가능하다. 이처럼 죄악과 더러운 욕망에 사로잡혀 살아가는 것이 바로 인생의 본질이다.

4. 하나님의 겸손과 낮추어주심

초월적인 하나님이 진행하시는 인류 구원의 계획이 있으시다.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에서 나온 계획이자 집행이다. 구원받을 자들을 선택하시고, 구원하시고, 믿음을 주시며, 보호하신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이 준비해 놓은 길이 있다. 성령을 통해서 비쳐주시고, 변화하게 하시며, 거듭나게 하신다. 결코 제한된 인간의 지식과 지혜로 미치지 못하는 곳에 하나님의 지혜가 있다. 길어야 120년 정도에 미치지 못하는 사람의 길과는 전혀 다른 길이다.

왜, 어찌하여 인간의 삶은 혼란의 연속인가? 어찌하여 모든 사람의 생애란 이처럼 객관적인 시각을 갖지 못하고 자기에게만 빠져들고 말았는가? 사람에게서 나온 것들은 정욕적이요, 이기적이며, 자기 중심적인 것들 뿐이다. 사람의 생각이란 오직 자기 만의 행복과 욕구 충족에 몰두할 뿐이다. 부패하고 방탕한 가운데 자기 욕심에 사로잡혀있는 인생들에게 참된 희망과 기쁨이란 없다.

모든 인류가 직면한 진실은 하나님과 단절된 상태에 놓여있어서, 죄 가운데 먹고 마시며 어두움에 사로잡혀있다. 사람이 살고 있는 세상의 본질, 이 세상이라는 잠재적인 환경을 바로 꿰뚫어보려면, 위로부터 오는 지혜가 필요하다.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높은 곳에서 오는 안목이 필요하다.

“이는 내 생각이 너희의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의 길과 다름이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이는 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이 내 길은 너희의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의 생각보다 높음이니라 (이사야 55:8-9)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차이, 거리가 얼마나 될까? 하늘과 땅 사이라는 엄청난 거리는 다분히 은유법적인 표현이다. 서로 거주하는 공간적인 면에서 차이가 있다는 식의 해석을 해서는 안된다. 하나님 자신의 성품과 사람의 성품을 비교하자면, 엄청난 차이가 난다. 사람과 달팽이와의 차이를 놓고서 비교해 보자. 둘 다 동물적인 움직임을 할 수 있고, 필연적인 생명유지의 조건들이 있다는 면에서 비슷하다. 그러나, 달팽이에게는 자신에게 주어진 환경조건을 넘어서 사람과의 교류, 사람과의 소통은 전혀 불가능하다. 이것을 우리는 ‘존재론적 차별성’ (ontological difference) 이라고 부른다. 비록 비슷하게 보이는 유사한 존재적 특징을 가졌다 하더라도, 확연히 구별되는 두 존재의 차이점은 엄청나다.

하나님의 존재와 사람의 존재와의 차이점은 각각 질적인 성품을 통해서 드러난다. 하나님은 전능하신 분시이요, 장소와 시간에 구애를 받지 않으시며, 영원하시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2장 1항). 하나님께서는 어떤 움직임이나 변화에도 구애를 받지 않으신다. 사람은 이런 존재가 아니다.

<계속>국제신학대학원대학교 부총장/ 조직신학교수

출처 : 기독교라인(대백신문)(http://www.kidoklin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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