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요시야의 산당신앙 개혁 (왕하 23:8-9)_김선우 목사

교회론

by 김경호 진실 2023. 6. 8. 09:13

본문

요시야의 산당신앙 개혁 (왕하 23:8-9)

김선우 목사(새하늘교회, 남서울노회)

 

여로보암 왕이 전쟁도 없이 북 이스라엘을 세우고 나서 한 가지 큰 고민에 빠졌다. 그 고민을 성경은 기록하고 있다. “만일 이 백성이 예루살렘에 있는 여호와의 전에 제사를 드리고자 하여 올라가면 이 백성의 마음이 유다 왕 된 그 주 르호보암에게로 돌아가서 나를 죽이고 유다왕 르호보암에게로 돌아가리라”(왕상 12:27). 전쟁도 없이 나라를 세운 것은 좋았으나 여로보암은 백성들이 남 유다 예루살렘에 있는 성전으로 올라가면 백성들의 마음이 남 유다의 르호보암 왕에게로 돌아갈까 봐 근심했다.

1. 여로보암 왕의 산당정책

이스라엘 백성들은 남북으로 분열이 되었지만 하나님을 믿는 단일신앙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백성들이 절기가 되면 남북을 물론하고 흩어져 사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께 제사 드리기 위해 예루살렘에 있는 성전을 향해 모였다. 북 이스라엘의 정통성을 유지하고 백성들이 남 유다로 가는 것을 막기 위해 여로보암 왕은 북쪽인 단과 남쪽인 벧엘에 우상을 세우고 이렇게 말했다.

“너희가 다시는 예루살렘에 올라갈 것이 없도다 이스라엘아 이는 너희를 애굽 땅에서 올린 너희 신이라”(왕상 12:28)

여로보암 왕같이 우리 귀에 말하는 자들이 산당 제사장들 임을 알아야 한다. 이 산당정책은 여로보암 왕과 신하들이 볼 때는 북 이스라엘의 정통성을 지킬 수 있는 대단히 현명한 정책이라고 생각했겠지만 성경은 하나의 성전 중심 신앙을 파괴하는 매우 악한 분열적 우상정책이라고 말씀하고 있다.

2. 산당신앙 개혁의 실패

죄악의 누룩은 퍼진다. 이 산당신앙은 남 유다에도 퍼졌다. 남 유다의 여러 신실한 왕들이 이스라엘 백성들의 신앙을 개혁하려고 했지만 실패했다. 명백히 다른 신을 숭배하는 이방 우상과 우상의 제단은 없앨 수 있었지만 비슷하게 여호와 하나님을 섬긴다는 산당을 개혁하는 데는 대부분의 왕들이 실패했다. 그만큼 산당신앙을 개혁하는 것은 어려웠다는 것이다.
휼륭한 믿음의 왕인 아사왕도 이 산당신앙을 개혁하지 못했다(대하 15:17). 요아스 왕도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했지만 산당신앙은 개혁하지 못했다(왕하 12:3). 마찬가지로 아사랴왕도 여호와보시기에 정직해 행하였으나 산당신앙만큼은 개혁하는데 실패했다(왕하 15:4). 여호와 앞에 정직했던 여호사밧왕도 산당만은 개혁하지 못했다.

3. 산당신앙의 미혹과 위험

산당도 하나님께 제사 드린다는 명목으로 세워졌는데 뭐가 문제인가? 오늘날 영상예배, 비대면 예배도 하나님께 예배드린다는 것인데 뭐가 문제인가? 이 시대의 어느 유명한 목사는 “영상예배가 제2의 종교개혁”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우리 안에서 이러한 산당신앙을 제거하지 않을 때 일어나는 일은 결국 참 신앙을 모르고, 오히려 참 신앙을 대적하고 변질시킨다는 것이다. 여호사밧왕이 휼륭한 믿음의 왕이었지만 이 산당신앙을 개혁하지 못함으로 인해서 일어난 일은 무엇인가?

“산당만은 철거하지 아니하였으므로 백성이 여전히 마음을 정하여 그들의 조상들의 하나님께 돌아오지 아니하였더라”(대하 20:33). 백성들이 산당신앙을 의지하여 “아예 마음을 정하여” 하나님께 돌아오지 못하게 되었다. 우리의 신앙생활이 이렇게 되면 안 되지 않겠는가?

4. 요시야 왕의 산당신앙 개혁

오늘날도 여전히 이러한 산당신앙을 옹호하는 자들이 많다. 이는 불행한 일이고 안타까운 일이다. 물론 이 산당신앙을 스스로 용인하지 않고, 개혁하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성경을 보면 대부분의 하나님 앞에서 믿음을 살고, 정직히 행했던 왕들조차 이 산당신앙을 개혁하지 못했다. 그런데 위대한 믿음의 왕이었던 요시야 왕이 드디어 이 산당을 허물고 산당신앙의 개혁에 성공했다(왕하 23:8-9). 요시야 왕은 여로보암이 세운 벧엘의 산당을 불사르고 가루를 만들어 버렸다(왕하 23:15). 요시야 왕에 의해 이 산당신앙 개혁이 이루어지자 온갖 더러운 산당신앙의 우상숭배와 미신들이 사라졌다.

“산당들의 제사장들은 예루살렘 여호와의 제단에 올라가지 못하고 다만 그의 형제 중에서 무교병을 먹을 뿐이었더라”(왕하 23:9)

산당을 헐어버리니 분열주의적 산당의 제사장들은 더 이상 백성들을 미혹하지 못하고 무력화되었다. 예루살렘 성전의 여호와의 제단에 올라가지 못하고 다만 그의 형제 중에서 무교병을 먹었다. 이 요시야의 산당신앙 개혁으로 인해 산당 제사장들에게도 회개할 길이 열린 것이다. 유다 왕 요시야는 말씀에 굴복하는 좁은 길을 걸어갔다. 그 결과는 남 유다와 백성들에게 말할 수 없는 축복이 임했다.

5. 교회중심인 성전중심 신앙을 회복하자

그런데 왜 사람들이 그토록 넓은 문으로 들어가려고 하는가? 산당신앙을 원하는 거짓 제사장들이 쉽고 편한 길을 제시하기 때문이다. 불편하게 교회 안 나와도 되고, 공적예배를 안 드리고 영상예배 드려도 되고, 십일조 안 해도 되고, 내가 원하는 대로 살아도 천국가고, 구원 얻는다고 말하니 솔깃하고 좋아서 미혹되는 것이다. 예수님 자신이 임마누엘로 오신 성전 자체이시다(요 2:21). 성자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한 우리가 또한 교회이며 성전이다. 사도바울은 특별히 성령 하나님이 믿는 성도들 안에 거하시기 때문에 성도들이 모인 교회를 성전이라고 말씀한다.(고전 3:16-17)

사도바울은 “그리스도를 믿는 성도들을 성전”이며 이들이 모인 곳을 교회라고 말씀하신다. 그러므로 교회는 성전이며 우리는 교회에서 공적예배를 드리고 하나님의 거룩하신 말씀을 들어야 한다. 이 교회는 흙이나 벽돌이나 돌로 지은 예배당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영국의 설교가 스펄전 목사님은 “성전은 하나님의 교회이다”라고 했다. 왜 교회를 성전이라고 부르는가? 하나님은 여전히 자신이 성전 삼은 무리들에게 임재하시고 역사하시고 계시기 때문이다.

이 시대에 부르심을 받은 우리는 교회 중심의 신앙생활이 아니라 편의적 신앙으로 나의 산당을 세우지 않았는가? 혹여라도 내 마음에 산당을 세웠다면 당장 헐어버려야 한다. 산당을 의지하던 마지막 돌 하나까지 무너뜨리기를 축원한다. 나의 편의주의적 산당신앙을 헐어버리고, 나의 산당 제사장을 봉고 파직시키는 것이 진정한 제2의 종교개혁이라 믿는다. 악하고 음란한 시대에 성령께서 요사야 왕의 산당신앙의 개혁을 우리에게 크게 일으켜 주시기를 간구한다.

 

[전국 노회 설교 6] 전국 노회 설교 6 요시야의 산당신앙 개혁 (왕하 23:8-9)_김선우 목사 | 기독교개혁신보 (repress.kr)

728x90

관련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