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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모스크바, 어느 선교사의 죽음을 기리며…

선교

by 김경호 진실 2024. 3. 22. 0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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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11월 8일, 모스크바에서 사역하고 있던 어느 선교사가 아주 갑자기 58세의 나이로 소천하였다. 아침에 일어나지 못한 것을 보니, 아마 뇌출혈이 아닌가 생각이 든다.

32년 전 이곳 동토의 땅에 발을 딛고 개혁과 개방의 혼란과 역동의 시기를 보내면서, 두려움과 길을 잃어버린 자들을 향하여 복음을 전하고 교회를 개척하고 청년들에게 즐거움과 꿈과 희망을 불어넣어주면서 오늘에 이르게 된 것인데….

그는 정말 복음을 붙잡고 훌륭히 싸웠고, 달려갈 길을 최선을 다해 달렸으며 믿음을 지켰다. 옆에서 함께 동역하고 지켜본 결과이다.

일반적으로 선교한다는 것은 이렇게 한 인생과 가정의 엄청난 희생을 통하여 이루어지는 것이다. 자녀들의 희생이라면 낯선 문화와 환경 속에서 이방인으로 살면서 당하는 수모와 고통 속에 학업을 감당하는 일일 것이다. 경찰들의 불심검문은 일상에서 주어지는 방해이고 기분이 상하는 일이다.

러시아에서 가장 힘들었던 것은 아마 행정 문제, 비자 문제로 인한 관공서에서 생겨나는 일일 것이다. 하루면 할 수 있는 일들도 대부분 일주일을 견뎌야 하고, 의도적으로 한 달이 지나야 문제가 해결되는 식이다. 어떤 일들은 해가 바뀌어도 일이 진행되지 않는 것과 언제 될지 모르는 막연한 것들이 불안을 야기하고 갈등하게 만들고 혈압을 상승시키는 것이다.

 

사역적인 면에서는 어제나 오늘이나 믿었던 제자, 교인들에게 당하는 배신과 속임이었을 것이다. 선교사들에게 가장 힘든 일이고, 나의 사역현장에서도 가장 실망스러운 일이었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고인이 된 선교사는 수많은 사건과 고난 속에 사역을 감당하였다. 옆에서 보기에도 너무 딱하고 말로 위로할 수 없는 고난의 길이었던 것 같다.

개방 초기부터 모스크바 근교에 두 개 교회를 개척하였다. 많은 청년들이 몰려들고 참으로 즐겁고 멋진 사역을 감당하였다. 몇몇은 교회를 배신하고 이용하고 선교사를 등쳐먹는 일도 생겨 길고 긴 고난의 시간을 보내기도 하였지만, 그때 청년들은 30년이 지난 오늘도 교회의 기둥이 되어 사역을 감당하고 있는 것을 보고 있다. 참 멋진 일이었다.

우리 인생 길에 예고 없이 나타나는 죽음, 이별은 참으로 억장이 무너지고 견디기 어려운 시간인 것 같다. 엊그제 함께 대화하고 고민하고 기도를 요청하고 식사하였던 동역자, 친구를 잃어버린다는 것이 얼마나 가슴이 무너지는 일인가?

아내와 아직 결혼하지 않은 세 아이들을 놔두고 말도 없이 소리도 없이, 홀로 떠나버린 것이다. 동료들의 충격은 말할 수 없이 컸다. 이제 그의 아내와 아이들은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20대 초반의 아이들은 직장을 갖고 자기의 길을 가게 될 것이다. 그의 아내는 어떻게 할 것인가? 갑자기 생겨난 현실 앞에 암담하기 그지없다.

인생 길이란 예고가 없다.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 걸음을 인도하시는 이가 하나님”이심을 다시 한 번 고백하게 한다.

우리는 언제 어디서 어떻게 죽음을 맞이할지 모르는 일이다. 그래서 항상 ‘종말론적 삶’을 살아야 함을 다시금 생각하게 한다. 그렇게 열심히 꿈을 가지고 많은 일들을 행하였지만, 이렇게 순식간에 모든 것이 멈추어 버렸다.

누구를 탓하고 원망할 것인가? 우리는 이것을 하나님의 섭리로 인식하고, 모든 것을 믿음으로 수용한다. 오직 종말론적 신앙을 살아야 한다는 것뿐이다.

필자는 비행기를 탈 때 자녀들에게 말한다. 혹시 비행기 사고로 부모를 잃게 되면 어떻게 하겠냐고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 어린 시절, 초·중·고등학교 때 아이들은 충격을 받고서 말을 하지 못하고 울고만 있던 것을 기억한다.

지금은 나의 모든 기록, 인터넷 아이디와 비번을 알려주고 개인의 모든 역사와 여정을 알려주는 것이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누구도 알 수 없는 일들이 생기기 때문이다. 이것이 종말론적 삶의 태도가 아닌가 생각한다.

한 사람의 죽음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뒤를 돌아보게 하고, 오늘을 점검하게 한다. 그리고 하나님 앞에서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을 생각하게 한다.

부한 자나 가난한 자나 지식이 풍부한 자나 하나님 앞에서 인생을 살아간다. 그리고 인생의 시한은 하나님께서 잡고 계신다는 것을 분명히 고백하는 것이 믿음이다.

조잡하고 잡다한 일에 얽매여 갈등하고 시기할 일이 아니다. 그렇게 하기에는 시간이 너무 아깝다. 생명을 살리는 일에 헌신하기도 시간이 너무 부족하다는 생각이 든다. 나이가 들어가는 탓인지도 모르겠다. 조금 떨어져서 보면, 얼마나 허탄한 일에 얽매여 있는가? 그렇게 갈등하고 다툴만한 가치가 있는 일인가 돌아보게 한다.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사나 죽으나 다 주의 것이로다, 우리의 생명의 연한이 얼마인고? 강건하면 80이요…, 너희의 생명은 잠간 보이다가 사라지는 안개와 같으니라”.

아직 젊은 나이에 고인이 된 동역자 친구의 편안한 안식을 기뻐한다. 남겨둔 자녀들에게 졸지에 미망인이 되어버린 사모에게 앞길을 열어주시고, 강하고 담대한 마음으로 살아가기를 기도한다. 남겨진 사역 현장, 교회 위에 주님의 더 크신 은총을 기도한다.

먼저 사역을 마무리하고 하나님 나라에 들어간 동료 친구를 그리워하며,

세르게이, 모스크바

 

러시아 모스크바, 어느 선교사의 죽음을 기리며… : 오피니언/칼럼 : 종교신문 1위 크리스천투데이 (christian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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