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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사람(고후 12:1~10)

겸손

by 김경호 진실 2024. 5. 28. 0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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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수 목사(공덕중앙교회)

그리스도 능력으로 승리합시다

“내가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한 사람을 아노니”(고후 12:2)

 

김성수 목사(공덕중앙교회)

 

교회의 진정한 능력은 오직 그리스도의 능력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사도 바울의 ‘셋째 하늘’ 체험을 통해 이 능력을 선명하게 선포했습니다. 특히 오순절 성령 강림을 통한 구원성취는 교회가 출발하는 시점이다 보니 더욱 생생합니다. 당시의 정황은 말로다 표현할 수 없는 핍박과 순교의 현장이었습니다. 이런 현장에서 승리한 그리스도의 능력이라면, 오늘 우리의 삶에는 더 이상 말이 필요 없는 승리의 보증수표입니다. 하나님의 교회는 더 이상 다른 생각으로 아파하지 말고, 오직 주님의 능력으로 무장해 우리와 다음세대를 건강하고 행복하게 만들어야 합니다.

바울 사도의 ‘셋째 하늘’ 체험

하나님께서는 사도 바울에게 구속사적인 차원에서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보편화시킬 수 없는 특별한 주권으로 ‘셋째 하늘’ 환상을 보여주셨습니다. 사도 바울의 환상 체험은 그를 통해 복음이 이방으로 퍼져 나가는 특별한 역사를 담당시키셨기 때문에 이뤄진 특별 체험입니다. 그러기에 그는 이 체험을 무려 14년 동안이나 침묵하고 있다가, 더 나아가서는 겸손히 입을 열기는 열었지만, 성경 구절로 분량을 표시한다면, 단 한 절로 마무리를 지을 정도로,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참으로 이상합니다. 보통의 상황이라면 이 체험을 얼마든지, 또는 부풀리기도 하면서 대서특필해 많은 사람의 마음과 시선을 사로잡으려고 안간힘을 쓰고도 남을 일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사도 바울의 이 체험에 관한, 더 이상의 그 어떤 정보도 제공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렇다고 한다면 여호와 하나님이 의도를 찾아 그 길을 따라가는 우리는 더 이상의 신비주의적인 이야기를 만들려고 안간힘을 쓰지 말고 오직 본문의 정보를 근거로 삼아서 겸손하게 그리스도의 능력 속으로 들어가야 할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능력의 밭

과연 교회의 진정한 능력, 그리스도의 능력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요? 우선 본문을 통해 그리스도의 능력을 얻을 수 있는 현장을 정확하게 파악해야 합니다. 이것은 여호와 하나님의 교회가 가장 집중해야 할 문제가 무엇인지를 파악하는 중대한 작업입니다. 이 과제부터 해결해, 어떤 상황에서도 이 문제를 어그러뜨리는 과오를 범해서는 안 된다는 결단을 해야 합니다.

그 밭은 바로 여호와 하나님의 교회입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의 이 신비한 특별한 체험을 고린도교회 앞에서 터트리면서, “무익하나마”라고 입을 열었습니다. 이 무슨 엉뚱한 말일까요? 오늘 우리의 생각과 판단으로는 이 체험이 무익할까요? 아니, 무익한가요? 아마 백이면 백, 거의 모두 ‘아니오’라고 대답할 것입니다. 오히려 이런 체험을 더 크게 나타내어 교회의 유익을 드러내야 한다고 강력하게 외칠 것입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깊은 숨을 내쉬어야 합니다. 그리고 더 이상 경거망동을 저질러서는 안 됩니다. 사도 바울은 당시의 고린도교회의 형편을 훤히 들여다보면서 이 결정을 내렸는데, 고린도교회가 온갖 신비한 헛된 이야기로, 즉 하나님의 선물인 은사나 어떤 현상들을 순전히 자신의 자랑의 도구로 삼아 교만하고 외식하며, 타인에 대한 경멸과 심지어 예배조차도 마구 흔들어버리는 죄를 범하고 있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의 진정한 체험조차 제대로 평가되지 않을 상황을 파악해 14년 동안이나 입을 다물고 있다가 드디어 입을 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이 체험을 많이 소개하지 않았습니다. 아니, 거의 오히려 ‘말하는 것을 허락받지 않았다’라며 입을 다물고 있다가 “부득불 자랑하노라”라고 시작해, 자신의 이름조차 드러내지 않고 “내가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한 사람을 아노니”라고 했습니다. 자신은 이 체험이 “그가 몸 안에 있었는지 몸 밖에 있었는지 나는 모르거니와 하나님은 아시니라”고 하며, 마치 전혀 다른 사람인 것처럼 무심합니다. 마침내 굳이 하지 않아도 될 이야기를 터트렸으니, 바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말”과, 다른 번역을 참조한다면 “말하는 것을 허락받지 않았다”라고 고백했습니다. 그래서 그의 간증은 딱 한 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굳이 하지 않아도 될 마지막 이야기는 “나는 약한 것들 외에는 자랑할 것이 없다”라고 한 후에 입을 닫고 말았습니다. 참으로 아쉽네요! 화려한 다음 편을 듣고 싶은 맘이 간절했는데 말입니다. 이제 그만 우리는 위험한 마음의 창을 닫고 하나님께서 사도 바울을 통해 바로, 교회가 그리스도의 능력의 밭(생산지)이라는 사실을 확실히 깨달아야 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살아계신 집이요,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가 그리스도의 능력의 생산지라는 진리를 깨닫는다면, 여호와 하나님을 믿는 자녀들이 교회를 함부로 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죄인인 우리들의 삶에서 이 밭을 마구 짓밟아 버리는 큰 죄를 범하는 일이 일어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아서 삼가 주의해 하나님의 교회를 건강하고 행복한 교회를 이루는 거룩하고 복된 일에 힘써 나아가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능력을 수확하는 복된 광주리

교회를 통해 그리스도의 능력이 생산된다는 진리를 선포하셨으니, 이제 진정한 능력을 수확할 광주리를 준비해서 모든 삶의 현장에서 승리하는 삶을 누려야 합니다. 이 광주리의 이름은 ‘어떤 사람’의 광주리입니다. 개역개정판 성경에서는 ‘한 사람’이라고 번역했지만, 보다 공감도를 높이기 위해 다른 번역 성경을 참조해 ‘어떤 사람’이라고 부릅니다. 사도 바울이 고린도서에 자신을 가리켜서 ‘어떤 사람’이라고 부르고 있는데, 자신을 자랑의 대상으로 내세우지 않고 오직 하나님만을 과시하는 아름다운 신앙의 모습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고 있는 교회들은 당연히 자신의 이름이나 명예나 권세가 아닌, 오직 하나님의 이름과 명예와 권세를 드러내는 것이 마땅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기저기에서 사람의 이름을 위한 아주 저급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으니, 다시 한 번 ‘어떤 사람’의 광주리를 준비해 진정한 그리스도의 능력을 가득 담아야 하겠습니다.

‘어떤 사람’의 광주리는 여러 다른 곡식을 담을 수 있는 여러 광주리가 있는데, 가장 먼저 그 자태를 자랑하는 것은 ‘말씀 순종’의 광주리입니다. 바울이 14년 동안이나 입을 다물고 있었던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본문에 기록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말을 들었으니 사람이 가히 이르지 못할 말”이라는 말씀 때문입니다. 정리하자면 ‘뭐라고 표현할 수 없으며, 다른 사람에게 말하지 말라는’ 말씀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이보다 먼저 바울은 이 모든 상황에 대해서 자세히 알 수 없는 상태(몸 안에 있었는지, 몸 밖에 있었는지 모른다)에 있었다는 것을 증언했습니다. 그렇습니다. 교회의 진정한 능력을 다양하게 수확할 수 있는 광주리는 바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삶입니다. 나아가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신앙은 자연스럽게 약한 것 밖에 내놓을 것이 없는, 하나님의 영원한 은혜에 ‘자족하며 광주리’ 신앙입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영원한 구원의 은혜로 인해 진정한 그리스도의 능력을 수확한 교회는 자족해 마음껏 영광을 돌리는 삶으로 그 빛을 과시하게 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사도 바울은 나는 오직 ‘약함’만을 드러낼 수 밖에 없는 죄인 중의 괴수임을 절감해, 진정한 능력인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가득 채워 강하신 여호와 하나님을 자랑하기를 결단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교회여! 옷깃을 새롭게 여며, 복되고 영광스런 길을 힘차게 행진하는 주인공이 되기를 바랍니다.

 

[이 주일의 설교] 어떤 사람(고후 12:1~10) < 이 주일의 설교 < 설교 < 기사본문 - 주간기독신문 (kid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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