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故) 오요안나 MBC 기상캐스터가 생전 직장 동료의 폭언과 부당 지시에 시달렸다는 내용의 유서 등이 공개되면서 직장 내 괴롭힘에 대한 경각심이 높아졌다. 각종 처세술이 난무하는 승자 독식 사회인 일터에서 기독교인은 어떻게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할 수 있을까. 최근 ‘일과 사랑’(예배와설교아카데미)을 펴낸 일터신학연구소장 이효재(65) 목사를 12일 서울 여의도 국민일보에서 만나 그 해답을 들었다. 이 목사는 서울대 사회학과 졸업 후 12년 간 주요 일간지 기자로 일하다 2001년 캐나다 리젠트칼리지로 유학을 떠난 이후 목회자의 길을 걸었다. 저명한 일터 신학자 폴 스티븐스에게 사사한 그는 이번 신간을 “25년간의 일터 신학 연구 결과를 응축한 책”이라고 소개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신학서 제목에 ‘사랑’이 들어갔다.
“일의 본질이 이웃과 세상을 향한 사랑에 있다는 걸 알리고 싶어서다. 세상의 모든 일은 서로 연결돼 있다. 내가 하는 일이 조금이나마 세상에 선한 영향을 미친다는 걸 의식하며 일한다면 그 자체로 사랑의 행위를 하는 것이다.
일터에서 피곤하고 짜증 나는 일이 얼마나 많은가. 이런 상황에서도 일을 사랑으로 인식할 수 있다면 훨씬 더 즐겁고 의미 있게 일할 수 있다. 예수님이 보여준 ‘아가페 사랑’을 일터에서 실천할 때 행복하게 살 수 있다는 얘기다. 이것이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정체성을 지키는 길이자 온전하게 살아가는 방식이란 걸 말하고자 했다.”
-책에 일터에서 겪는 다양한 갈등 사례가 나온다.
“모두 직·간접적으로 겪은 실화다. 기자 시절 일도 있고 여러 기업의 사목으로 일하면서 목격하고 상담한 내용도 있다. 강의하며 질문으로 받은 사례도 꽤 된다.
예전엔 강연 중 가장 많이 받은 질문이 ‘회식·술자리 문제’였는데 요즘엔 ‘상사의 부당 지시를 따라야 하느냐’로 바꿨다. 요즘 직장인의 최대 고민이 ‘정의 문제’임을 실감한다.”
-직장 내 괴롭힘을 당하거나 목격했을 땐 어떻게 해야 하나.
“직장 내 괴롭힘은 개인 간이 아닌 직장 문화와 사회 구조에서 생기는 문제다. 따돌림은 한 사람이 주도하고 주변이 동조할 때 발생한다. 무엇보다 상대의 존엄성을 짓밟는 행위다. 이 현상 자체가 우리 사회가 심각하게 정의를 상실했다는 증거다.
그리스도인은 이웃을 사랑하되 정의롭게 해야 한다. 직장 동료가 부당한 따돌림을 당할 때 피해자의 편에 서서 싸워야 한다. 상사의 말이라고 부당 지시를 무조건 수용하는 건 사랑이 아니다. 계속 ‘을질’을 당하는 것 또한 불의를 수용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정의로운 사랑을 실천하다 불이익을 받을 수도 있는데.
“많이들 오해하는데 기독교인은 고분고분하지 않다. 불이익을 감수하고 부당한 일에 저항하는 사람이다. 불의한 명령을 거부하고 부정 거래에 참여하지 않으며 진리의 길을 선택하는 원동력은 사랑과 믿음에서 나온다.”
-직장인 사이에서 신조어 ‘파이어족’(조기 은퇴 희망자)이 유행했다.
“파이어족 담론은 자본에 포섭된 노동의 비극적 현실을 반영한다. 가능한 한 일찍 큰돈을 벌어 고달픈 노동에서 벗어나 편안하게 살고자 하는 건데, 한 마디로 ‘이뤄질수 없는 허망한 꿈’이다. 극소수가 이 꿈에 다다른다 해도 행복하긴 힘들다. 돈은 행복을 이루는 하나의 도구인데 이 세계관에서 돈은 행복 그 자체라서다.
‘돈이 곧 행복’이란 공식은 노동에 대한 오해에서 비롯됐다. 산업혁명 이후 자본주의가 발전하면서 노동의 의미가 돈을 버는 것으로 축소됐다. 자기만족적이고 자기중심적 노동관이다. 성경적 노동관은 다르다. 사람과 동물, 자연이 함께 번영하는 게 목표다. 그렇기에 그리스도인은 자기중심성이 아닌 타자를 섬기는 사랑을 동기로 돈을 벌고 사용해야 한다.”
-한국교회에 일터 속 그리스도인을 향한 관심도 당부했다.
“교회가 세상을 구원하고자 한다면 일터부터 변화시켜야 한다. 세상은 일터에서 만들어지는 가치와 관행, 문화로 형성되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먼저 목회자가 성도의 일터 속 삶을 경청하길 권한다.
성도는 세상과 교회를 이어주는 다리다. 성도의 일터 이야기에 교회가 관심을 갖고 이들을 섬기고 격려하다 보면 사회 변화의 길이 보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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