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디지털 영지주의를 경계하라

목회

by 김경호 진실 2026. 3. 3. 08:50

본문

스위스 루체른의 성 베드로 성당에서 진행된 ‘데우스 인 마키나(Deus in Machina, 기계 안의 신)’ 프로젝트는 AI와 종교의 만남을 실험한, 세계적으로 아주 유명하고 논쟁적인 사례이다. 2024년 8월, 스위스 루체른 성 베드로 성당의 고해성사소 안에 생성형 AI가 탑재된 모니터를 설치했다. 신자가 고해소 안으로 들어가서 말을 걸면, 화면 속의 AI 아바타 예수가 실시간으로 듣고 답변을 해주는 방식이다. 100개 이상의 언어를 인식하고 말할 수 있게 설계됐다. 이 실험은 짧은 기간 동안 약 1000명 이상의 사람들이 방문했을 정도로 큰 관심을 끌었다. 반응은 극명하게 갈렸다. 사람들은 인간 신부에게 말하기 부끄러운 고민을 ‘비난 받을 걱정 없는’ AI에게 털어놓으며 정서적 해소감을 느꼈다. 24시간 언제든, 수많은 언어로 상담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종교적 문턱을 낮추는 역할을 했다. 신학적 지식을 바탕으로 성경 구절을 인용하며 위로의 말을 건네는 기능이 뛰어났다. 그러나 영혼이 없는 기계가 “당신의 죄를 사하노라”라고 말할 수 있는가에 대한 신학적 거부감이 컸다. AI의 위로는 진정한 공감이 아니라 데이터 학습에 의한 ‘공감의 시뮬레이션’일 뿐이라는 지적이 있었다. 만약 AI가 신학적으로 잘못된 조언이나 위험한 가이드를 제공했을 때, 그 영적 책임을 누가 지느냐는 문제가 제기됐다. 

교회는 이 프로젝트를 통해 다음과 같은 숙제를 얻게 됐다. 인간 사제의 ‘살과 피가 있는 현존’이 디지털 데이터보다 우위에 있음을 어떻게 증명할 것인가? AI를 사제가 아닌, 성경 공부나 1차 상담을 돕는 ‘연구원’ 혹은 ‘비서’로 활용하는 적절한 범위는 어디까지인가? ‘데우스 인 마키나’는 AI가 설교는 할 수 있을지 몰라도, 인간과 함께 울어줄 수는 없다는 한계와 함께, 동시에 종교가 기술을 통해 더 많은 사람에게 다가갈 수 있다는 가능성을 동시에 보여준 사건이다.

2023년 6월 9일 제38회 독일 개신교 대회가 뉘른베르크 성 바울 교회에서 열렸다. 약 40분간 진행된 예배 전체를 ChatGPT와 비엔나 대학교의 요나스 짐머라인 신학자가 협력해 구성하고 AI 아바타가 집례했다. 거대한 스크린에 등장한 4명의 AI 아바타(남성 2명, 여성 2명)가 번갈아 가며 예배를 인도했다. “지금이 바로 그때다”라는 주제로 과거를 뒤로하고 현재의 어려움을 극복하며 죽음을 두려워하지 말라는 메시지를 전했다. AI가 작곡하고 연주한 배경 음악과 찬양이 사용됐다. 스위스의 사례는 고해소라는 1:1 공간이었지만, 독일의 사례는 수백 명의 회중이 모인 ‘공적 예배’였다. 현장 반응에 따르면, AI 아바타는 회중의 표정이나 반응에 따라 설교의 톤을 조절하지 못했다. 이는 예배가 단순한 정보의 전달이 아니라, 인도자와 회중 사이의 ‘상호작용적 사건’임을 역설적으로 보여줬다. AI 설교는 논리적으로 완벽했으나, 성령의 시의적절한 간섭이나 영적 긴장감이 느껴지는 ‘카이로스적 순간’이 없었다. 모든 것이 프로그래밍된 시간(크로노스)에 맞춰 흘러가는 모습은 예배가 자칫 ‘종교적 공연’으로 전락할 위험을 시사한다. 훌륭한 설교는 설교자 자신의 고난과 눈물, 그리고 그 안에서 역사하신 하나님의 은혜가 묻어날 때 감동을 준다. 하지만 “죽음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하는 AI 아바타는 결코 죽음을 경험하거나 두려워할 수 없는 존재이다. 여기서 발생하는 ‘메시지와 메신저의 괴리’는 AI 목회의 가장 큰 한계로 지적될 수 있다.

그렇다면 이런 AI시대의 교회는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먼저, AI의 시대적 흐름을 거부할 수는 없다. 교회는 ‘선한 사마리아인’의 마음으로 알고리즘의 투명성과 공정성을 감시하는 선지자적 역할을 해야 한다. AI가 일자리를 대체하는 시대에, 교회는 인간의 가치가 ‘생산성’이 아닌 ‘존재’에 있음을 선포해야 한다. 기술적 실업으로 고통받는 이들을 위한 사회적 안전망 역할을 강화해야 한다. AI가 생성한 설교나 기도문을 자신의 것으로 사칭하는 ‘영적 표절’ 문제를 경계해야 한다. 또한 AI의 오답으로부터 성경적 진리를 수호하는 분별력이 필요하다. 기술이 고도화될수록 인류는 역설적으로 깊은 인간적 접촉을 갈망할 것이다. 교회는 기술이 채울 수 없는 영적 진공상태를 채우는 실제적인 피난처가 돼야 한다. 우리는 AI를 통해 땅끝까지 복음을 전하되, 결국 모든 이들을 ‘살과 피가 있는’ 그리스도의 몸 된 공동체로 초대해야 한다.

 

송준인 목사(청량교회 원로, 총신대 은퇴교수)


출처 : 주간기독신문(https://www.kidok.com)

728x90

관련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