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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리암 구지 (William Gouge, 1575 - 1653)

윌리암 구지

by 김경호 진실 2010. 1. 21. 2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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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리엄 구지는 미들섹스(Middlesex)에서 태어났다. 그는 이튼 스쿨(Eton School)을 마친 뒤 케임브리지의 세인트 캐서린 대학(St. Catherine's College)에 입학했다. 그는 지성적인 은사가 있었고 학업에 충실하였다. 그는 병이 났을 경우를 제외하고는 9년간 새벽 5시 30분에 시작하는 대학 기도회에 빠짐없이 출석하였다. 그는 하루에 성경을 15장씩 읽는 것을 습관적인 일과로 삼았다. 그는 대학에서 논리학과 철학 강사로 선택되었다. 그를 부러워 하는 자들을 그를 '대청교도'라는 별명으로 불렀다.

 

그는 1608년 런던의 블랙프아이즈 교회(Blackfriars Church) 담임이 되었다. 그는 1653년 사망할 때까지 46년 동안 이 교회를 섬겼다. 그는 다른 교회들로부터 더 나은 청빙을 여러 번 받았다. 그럴 때마다 하는 말이 있었다. '블랙 프라이어에서 천국으로 가는 것이 나의 가장 큰 야망이다!" 구지는 35년 간 수요일 아침 강해를 계속하였다. 벤자민 브룩은 말한다. "그의 명망이 어찌나 높았던지 다른 지방에서 신자들이 런던으로 일을 보러 올 때 블랙프라이어의 수요일 강해를 듣지 않으면 비즈니스가 끝나지 않은 것으로 보았다. 구지의 사역은 큰 열매를 맺었다. 그의 사역으로 수천 명이 회심하였고 양육을 받았다." 당시의 회심에 대한 평가는 요즘과 많이 달랐다. 회심자는 자신의 삶에서 자기가 그리스도 안에서 새사람이 됐다는 것을 드러내 보여야 했다. 반면 오늘날은 결단만 하면 신자가 된 것으로 간주한다. 그러나 결단이 참된 회심과 반드시 동일한 것은 아니다.

 

구지는 평화로운 사람이었다. 사람들은 그가 온순하고 조용한 성격을 가졌다고 해서 모세의 모습을 연상하였다. 그는 가족들이나 측근자들의 눈에 한 번도 아내에게 화를 낸 목소리로 말하는 모습을 보인 적이 없었다. 그럼에도 그는 9주 동안 감옥에 갇혔다. 그 이유는 단지 그가 유태인들을 하나님이 부르신다는 내용의 책을 재쇄했기 때문이었다. 또 그는 로드(Laud) 대주교의 알미니안주의와 의식주의를 반대했기 때문에 핍박을 받았다.

 

구지는 매일 일찍 일어났다. 그는 자신보다 다른 사람이 먼저 일자리에 나와 있으면 퍽 당황하였다. 그는 주일을 철저히 지키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목사관에서 일하는 사람들도 주일의 모든 유익을 받도록 하였다. 그는 다른 나라 교회들의 복지에 관해서 큰 관심이 있었다. 그는 타국의 신자들이 고난당한다는 나쁜 소식을 받으면 울면서 금식하고 기도하였다.

 

윌리엄 구지는 웨스트민스터 총회의 회원이었고 총회장이 자리를 비울 때는 대신 자리를 채웠다. 그의 가장 유명한 설교 시리즈는 1,100쪽에 달하는 히브리서 강해이다

 

http://lloydjones.org/zbxe/Puritan02/3793/page/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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