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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세대

4차원 영성

by 김경호 진실 2010. 4. 16. 1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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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신학도 에게

진리를 탐구하시는 형제의 학구열에 깊은 감명을 받습니다.
질문의 요지는 “왜 한국의 (대부분의) 교회들에서는 Calvin, Spurgeon, Edwards 가 아닌 세대주의 신학이 전파되고 있는가?“ 하는 질문인데 답을 드리지요.

세대주의는 19세기에 John Nelson Darby 가 새로운 기독교의 진리를 발견했다고 주장하면서 Plymouth Brethren 이라는 교단을 창설하면서 시작되었습니다. Darby 는 19세기 말에 미국으로 건너왔고 그의 신학은 미국의 Cyrus Ingerson Scofield 에게 전수되었고 동시에 Louis Sperry Chafer 에게 전수되어 Chafer 는 8권 짜지 “Systematic Theology” (조직신학) 을 저술했고  Dallas 신학교를 세워 그 조직 신학에 의거 학생들에게 세대주의적 전천년설 (Dispensational Pre-mil)을 가르치며 교회를 구약의 연장으로 보지 않고 교회는 독립되어 신약과 구약에 중간에 임시로 주어진 기관이라고 가르쳤습니다.

그들의 신학에 대해서는 Chafer 박사가 집필한 “Systematic Theology” (조직신학) 8권 을 읽으면 세대주의 신학의 전모를 알 수 있습니다. 또 William Cox 가 쓴 “나는 왜 세대주의를 떠났는가?” (Why I Left Dispensationalism) 이란 소책자를 읽어도 유익할 것입니다.

미국에 건너온 세대주의는 1906년 SCOFIELD 가 만든 “Scofield Reference Bible” 이란 성경을 통해서 확장되어 나갔습니다. 신학교 교육을 전혀 받지 못하고 군인출신 변호사 출신인 스코필드는 그 성경 매 페이지 마다 나름대로의 주해를 달아 놓았습니다. 성경을 모르는 사람이보면 어느 것이 성경이고 어느 부분이 스코필드 개인의 설명인지 모르도록 편성되었습니다.

지금 이 성경은 여전히 책방에서 다른 100 여 가지 영어 성경과 같이 팔리고 있습니다.
이 성경이 인기를 끌 수 있었던 이유는 그 당시 자유주의가 미국 Princeton 신학교에 상륙할 무렵이어서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목말라 하던 시대에 새로 나온 “스코필드 성경”은 대단한 인기를 누렸고. 사람들은 KJV 보다 SRB (Scofield Reference Bible) 을 더 선호하게 되어 신학교에서도 이 성경을 사용하는 학교가 늘어가게 되었고 따라서 세대주의 목사 양성이 극도에 달했습니다. 어디를 가도 세대주의 신학 일색이었습니다. 이런 세대주의가 평양신학교를 비롯한 여러 선교기관에 그대로 도입되었고 고질화되어 정통신학은 세대주의라고 착각하며 그대로 정착해 버렸습니다.

미국에 장로교가 들어온 것은 18세기 초 Baltimore  시 의원 한 사람이 Ireland 의 Laggan 노회에 유능한 개혁주의 신학을 신봉하는 목사를 파송해 줄 것을 청원한데서 비롯됩니다.  Ireland 의 Laggan 노회는 Baltimore 시 의원의 청원을 기꺼이 받아 드려 젊고 유능한 Francis Makemie 목사를 미국에 파송했습니다. 그는 Scotland 태생으로  Knox 의 책을 탐독한 개혁주의자로서 Ireland에서 사역하던 분이었습니다.

그가 미국에 들어와서 말을 타고 뉴욕 뉴져지, 펜실바니아. 메릴랜드 등지를 다니며 전도한 결과 1706년 드디어 미국에 첫 장로교 노회가 유서 깊은 Philadelphia에서 조직되었고 이 노회는 1788년에는 드디어 미국 최초의 장로교단인 “미합중국 장로교단”  (The Presbyterian Church in the United States of America, PCUSA) 란 이름으로 첫 총회가 조직 되었습니다.  유럽에서는 프랑스 혁명이 일어나기 전 해의 일입니다.

이 때 까지만 해도 세대주의가 등장하기 전이었고, 목사들은 초기에 New England 에 들어온
회중교회 (Congregationalism) 와 손을 잡고 칼빈주의 개혁주의 신앙을 전하면서
서부 개척 시대를 맞았습니다. 제1차 각성운동 및 제 2차 각성의 위력은 대단했습니다. 특히 Kentucky에서 일어난 “제2차 대각성 운동” (The Second Great Awakening) 때는  미국에 성서공회 (American Bible Society) 가 처음으로 조직되고 미국 전도지 협회 (American Tract Society) 도 조직되었고, 이 모든 일을 주도한 Samuel Mills 는 몸이 약하여 직접 선교사로 해외에 나가지는 못했지만 뒤에서 문서 선교에 주력했습니다. 미국의 성서 공회를 만든 것은 전적으로 Samuel Mills 의 노력에 힘입어 생겨났습니다.

그는 병든 몸을 이끌고 Pennsylvania, Ohio, Indiana, Illinois 지방까지 여행하면서 목사수를 점검했고 성경의 부수를 점검하여 성경 보급에 많은 힘을 썼습니다.  지금은 많이 좌경되었지만 1812년에 Princeton 신학교가 창설되어 미국 장로교단의 어머니 구실을 톡톡히 했으며 이때 프린스톤은 Charles Hodge, Archibald Alexander, Benjamin Breckenridge Warfield  같은 쟁쟁한 칼빈주의 자들이 학교를 이끌어갔습니다. 아마 이 때가 프린스톤 신학교의 전성기였을 것입니다.  이런 신학교가 비뚤어지기 시작한 것은 20세기 초엽, 독일에서 이른바 “종교사학파” (Religionsgeschichtliche Schule) 가 들어오고 영국에서 자연신교 (Deism) 이 미국에 상륙하면서부터입니다.

이와 같은 위기에 처한 미국의 기독교계는 침례교가 중심이 되어 침례교 목사들과 장로교목사들이 손을 잡고 자유주의를 몰아내고 근본주의 교리를 지키려는 운동이 일어났는데
“근본주의, Fundamentalism" 라는 말을 처음 만들어낸 사람도 침례교 목사인 Curtis Lee Laws 목사 였습니다. 그는 당시 침례교 기관지였던 ”Watchman-Examiner“ 라는 간행물의 주필이었고 남달리 자유주의에 저항하고 근본주의 교리를 수호하려는 의지가 강한 분이었습니다.

이런 운동은 1910 년 R. A. Torrey 와 James Orr (ISBE 편집인) 이 중심이 되어 이른바 “근본주의 교리립“ (The Fundamentals) 라는 12권짜리 서적을 1910-1915년 사이에 발행하여 모든 신학교 학생들과 목회자들에게 무료로 공급하는 일로 이어졌습니다. 물론 이 책은 여러 가지 문제을 야기 시킨 것이 사실입니다. 여기 12 권의 책을 쓴 집필진은 칼빈주의자, 아르미니안 주의자 등이 포함되어 있어서 모두 똑 같은 개혁주의 신앙 가들응 아니었습니다.

이런 근본주의 신앙에 정면으로 대결하여 Harold John Ockenga 가 1948년 Fuller 신학교 의 초대 교장으로 개교예배에서 “근본주의를 지양하고 신복음주의를 펴 나가자”는 설교로 신복음주의가 등장했고 이에 가세한 사람은 Carl F. Henry 와 Edward Carnell 등이었고 Billy Graham 의 “Christianity Today” 라는 잡지였습니다. 그 후 Fuller 신학교는 계속 오늘까지 폭넓은 길을 걸어가고 있습니다.

물론 근본주의는 나중에 Carl McIntire 를 중심한 “신근본주의” (New Fundamentalism)
으로 발전하였고 이런 “신근본주의” 는 한국에 도입되어 예수를 믿으면 주초를 금햐고
절제하고 세상에 오락을 금하는데 중점을 두었습니다. 그래서 한국에서 잘 믿는 사람이라고 하면 신근본주의를 생각하게 하지요. 게다가 Jacob Spener 의 “경건주의” 가 한국에 도입되면서부터 교리 설교보다는 신앙생활의 실천면에 중점을 두었고 경건생활 (특히 기도생활)에 중점을 두었습니다. 일반 교인은 주초를 금하고 오락을 금하고 기도회에 참석하고 경건생활에 힘쓰면 그것으로 신앙생활을 모두 끝낸 것으로 알고 있었지요.

그래서 한국 교인은 에수를 40년 믿어도 기독교의 교리를 제대로 아는 분이 적습니다.  교리 공부에 등한히 하기 때문이지요. 이것이 학국교회의 문제 입니다. 그러므로 한국의 강단은 신근본주의 와 경건주의 의 도입으로 교리의 혼란이 온 가운데 1906년에 나온 스코필드의 성경에 의한 세대주의 신학으로 미국에서 신학을 공부한 목사들이 대거 한국에 들어와서 선교사업을 하면서 혹은 고등학교 혹은 전문학교 등을 세워 세대주의적 구원론과 교회론, 종말론 등을 가르치게 되었으니 한국 교회에서는 엄밀한 의미에서 우리가 생각하는 화란이나 스콧틀랜드의 언약파 같은 개혁주의는 찾아 볼 수 없습니다

그래도 1945년 이후 박윤선 목사님을 비롯하여 몇몇 신학자들이 화란에서 공부하고 혹은 미국 웨스트스터 신학교 등에서 공부하고 돌아와서 한국에 개혁주의 신학을 심어 놓았고 얼마 동안 잘 되어 나가는 듯 했으나 1950년대부터 불어온 WCC 의 에큐메니칼 운동과 이에 따른 연동측 과 숭동측 의 분립으로 장로교는 크게 분렬되었고 보수성향의 합동측에서는 다시 여러 가지 교단으로 분립되어  교단 간에 싸움이 잦은 요란한 교계가  되어 버렸습니다.

게다가  1950년대에 불어닥친 신복음주의 Billy Graham 전도의 바람과 함께 한편에서는 미국 Kansas 주  Topeka에 있는 Bethel 신학교에서 20세기 초엽에 새로 일어난 순복음 운동이 1920년대에 California 주 Azusa Street에서 본격적인 활동으로 미국과 유럽을 거쳐서 1950년대에 한국에 상륙하면서 한국 교계는 전에 들어보지 못한 방언 운동이니 예언 운동이니 하는 불건전한 신비주의 신학이 강대상을 점령하게 되었는데 물론 이 운동의 근원은 “완전주의 (Perfection)" 을 외친 John Wesley 의 가르침을 받아 시작된 성령운동  (Holy Spirit Movement) 에 기인합니다.  Wesley 의 영향을 받은 교단은 순복음 이외에도 성결교나 나사렛 교파 등입니다.  이런 모든 교파들이 한국에 들어왔고 모두 신학교와 교육 기관들을 세우고 저들의 교리를 가르쳤으니 한국 교회의 설교방향을 짐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요즘의 한국 교회의 강단을 말씀하셨는데 위에서 본 것은 지금까지 한국교회에 깊은 영향을 준 여러 가지 다른 신학 사상들입니다. 요새는 어떠합니까?  미국에서는 1960년대가 미국 역사의 분기점입니다. 1960년대를 분기점으로 하여 미국민의 가치관이 뱌뀌었습니다.

기독교 중심의 미국이 이제는 종교 다원주의를 택하게 되었습니다. 기독교보다는 불교나 힌두교 특히 이슬람교를 더 선호하는 신앙 퐁토가 조성되었습니다. 지금 미국에서는 기독교는 가장 핍박을 받는 종교가 되었고, 힌두교나 이슬람교는 우대를 받는 종교가 되었습니다. 사정은 영국도 마찬가지입니다. 영국에서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가” 가 Charles 1 세 시대인 17세기 중엽에 만들어졌습니다. 그러나 그 영국은 BBC 방송을 들으면 이슬람교를 존중히 여기는 나라로 전락했습니다. “Christianity Today” 잡지는 영국에서 개신교 목사들이  전도하다가 경찰에게 봉변을 당하는 사건들을 늘 보도합니다.

이런 영향은 한국에도 미치게 되었습니다.  한국의 유명대학 강의실에는 이슬람국가에서 온 “유학생들” 이 수두록 합니다. 이들은 한국 학생들을 이슬람교로 개종시키려 하고 있지만 신앙의 자유를 빙자하여 누구도 제지하려는 사람이 없습니다.  한국교회를 위해서 더욱 불행한 것은 요즘 중세의 신비주의가 “영성운동” 이라는 이름으로 그럴듯한 아름다운 이름으로 가장하여 교회를 파고들어 오는 사태입니다. 그래도 분별력이 없는 성도들과 성직자들은 관심이 없습니다.  

1886년에 러시아 여자 Mme Helena Petrovna Blavatsky 가 뉴욕에 “신지학회” (神智學會, The Theosophical Society) 를 만들고 1960년대 Alice Bailey 나 Shirley MacLaine, Marilyn Ferguson, David Spangler, Doug Keyes, Robert Muller, Thomas Merton 등이 주역이 되어 교묘하게 교회에 침투하고 있는 “뉴에이지 사상” 은 Rick Warren 이나 Richard Foster, Tony Jones, Doug Pagitt 에 와서는 극치에 달했고 교회마다 “Alpha  Course“ 나 Brian McLaine 의 ”Emergent Church 운동“이나 Warren 의 “목적이 이끄는” 신학이 판을 치고 있습니다.  

대다수의 한국에서 사역하는 목사님들은 일부를 제외하고는 개혁주의 서적을 기피하며
“교회성장” 술에만 비상한 관심을 보입니다.  “교회 성장 세미나” 라면 먼 길을 마다하지
않고 달려가는 것이 미국에 있는 한인 목사님들이나 한국에 있는 목사님들의 공통되는
심산이고 보면 성경적인 설교보다는 “사람들 기쁘게 하는, 그래서 교인의 머리수가 늘어가는 것”을 목적으로 하기 때문에 강대상에서 흘러나오는 설교가 Spurgeon 이나 Jonathan
Edwards 나 Lloyed-Jones 목사나 Thomas Watson, Herman Witsius, Alexander
Henderson, George Gillspie, George Wishart 같은 개혁주의 거장들의 입에서 나오는 설교 같은 설교는 도모지 들을 수 없는 것입니다.   16세기 17세기 화란이나 스콧탈란드, 영국의 개혁주의 신학자들이 책들은 한국이나 미국에서 절판된지 오래건만 누구도 다시 번역하려 하지 않습니다.

오늘의 문제는 “신학부재“입니다.  신학이 없는 이유는 목사들이 양무리를 주님에게서 위임맡은 대로 보살피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목회자는 목자장 되시는 주님으로부터 양무리를 위임받아 책임지고 목앙하며 바른 말씀을 먹이도록  엄숙히 주님에게 서약했건만 하나님과 한 그 지울 수 없는 엄숙한 계약을 일방적으로 파기하고도 “하나님의 종이므로 순종하라” 고 억지를 부립니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심히 가증한 일입니다.  하나님은 자기 위치를 떠난 천사를 용서치 아니했습니다. 같은 하나님은 하나님이 세운 언약을 일방적으로 스스로 파기한 “사이비 목회자들, 사이비 신학자들” 을 절대로 용서치 아니할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마태복음 7:22 절 이하에 “내가 너를 도모지 안 적이 없으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라“ 라고 무섭게 책망하는 것입니다.  그 책망은 바로 환난 때를 만난 우리에게
하시는 말씀입니다.

답변을 요약하면, 첫째, 목사님들이 목사 안수를 받을 때, 그리고 교회를 위임 받을 때 하나님과 서약한 서약을 지키지 않는 “배도” 때문이며, 둘째로, 교회마다 영들이 하나님에게 속했는가 시험해보기도 전에 무슨 교리든 미국에서 혹은 외국에서 일어나면 아무런 비판 없이 수입하여 교인들에게 강요하여 가르치면서 “독약” 을 먹이기 때문이고, 셋째 이유는 목사들이 성경 교리보다 교인 수 확보에 더 관심이 있어서 예배를 받으시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보다는 예배를 드리는 교인들의 마음을 기쁘게 하기에 더욱 신경을 쓰기 때문입니다. 소위  얼린예배 가 그런 것입니다.

Rick Warren 는 노골적으로 그의 책 “목적이 이끄는 교회” 영문판 285면에서 “교인들의 마음을 기쁘게 하기위해서 예배를 드릴 때 잠이 오는 찬송가 대신 세상 방송국에서 흘러나오는 신나는 유행가를 부른다” 고 서슴없이 말하고 있습니다. Foster 목사는 그의 책 Celebration of Disciplne (여엉운동) 이라는 책 20-30면에서 서슴없이 기독교의 기도형식에 동양종교의 "손바닥을 위로, 손바닥을 아래로" 식의
기도를 권장하고 있습니다. 조용기 목사는 그의 책 The Fourth Dimension 제1권 60-70면에서 "영상을 그리면서 기도하면 항상 기도를 들어주신다" 라고 합니다. 부산의 모 목사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야 한다"고 도 설교합니다. 부산의 또 다른 교회에서는 "알파코스" 에 등록하지 않으면 집사를 임명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이와같이  한국의 대형교회에서 흘러나오는 목사님들의 설교를 들어보면 세대주의 만이 아니라 모두 제각기 혼합주의 를 가르칩니다. 마치 불협화음 (cacophony) 을 울리는 orchestra 같은 현상이지요. 끝으로 네 번째는 신학교가 난립되어 있고, 신학 공부를 제대로 하지 않는 사람들이 목사로 안수 받아 제 멋대로 목회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본 선교회에는 매일 이 메일을 통해서 전 세계에서 출석할 교회를 소개해 달라는 간절한 요청이 날이 갈수록 더 해 갑니다.  심히 마음 아픈  일입니다.

이런 일이 언제 개혁될까요?
이제 개혁은 없습니다. 내 신앙을 내가 지키는 일만 남아 있습니다. “피리를 불어도 춤을 추지 않는 시대” 에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이 시대는 마지막 세대입니다. 주님 재림의 날을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배도 apostasy” 가 이렇게 심하면 주님의 재림이 그리 멀지 않습니다.  오늘 참다운 주의 종들은 이미 환난을 당하고 있습니다. 핍박을 당하고 매도당하고 소외되어 설 자리가 없습니다.  계시록 11장을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거기서 ‘두 증인“ 은 주님의 말씀을 바로 전하는 참 교회입니다. 저들은 죽습니다. 말씀을 전해도 악한 세상에서는 아무도 저들의 설교를 듣지 않으니 죽은 것으로 상징적으로 나타내 주는 것입니다.  목회자득 보다 일반 선도들이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나 베르기 신앙고백서, 혹은
하이델베르그 신항고백서 같은 좋은  역사적 정통적 신앙고백서에 정통하여 분별력이 있으면
이런 한국교회의 병폐는 능히 막을 수 있지만 일반 성도는"지리를 외면하고 귓맛 좋은 설교" 만
원하기 때문에 개혁이 어렵다는 것입니다.  17세기 청교도들은 "바른 목사" 를 만나는 것을 가장
행복으로, 가장 큰 복으로 생각햇습니다. 그래서 멀리서도 "바른 목사" 를 찾아 이사를 갔었습니다.
요즘 그런 성도가 어디에 있습니까?

또한  “네가 살았다는 이름은 가졌으나 실은 죽은 자로다” 라고 주님으로부터 엄히 꾸중을 들은 계시록 3장1절의 “사데 교회” 를 생각합시다.

성도여,
낙심 말고 끝까지 달려갈 길을 다 달려가고 믿음의 선한 싸움을 잘 싸우세요.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마시고 십자가의 길을 걸어가세요.
이렇게 답변 드립니다.   주안에서 개혁주의 신앙에 항상 강건하시기 바랍니다.

2009년 3월 28일
튤립 교육 선교회
튤립 신학 연구원
상담역: 김명도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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