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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교도 복음 전도(딤후4:1-8)

전도학

by 김경호 진실 2010. 6. 17. 13:11

본문

청교도 복음 전도(딤후4:1-8)

 

 

조엘비키

 

1.청교도 복음 전도의 메시지

어떻게 청교도의 신학을 성도에게 전달할 것인가? 그들의 신학은 철저하게 개혁주의 적이었다. 그들은 종교 개혁자들을 무시한 것이 아니라 그들에게 배운 것을 사회와 가정에 적용하려 노력한 사람들이었다. 그러므로 적용에 대해 마음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이들은 복음 전도라는 단어를 많이 사용하지 않았지만 그들은 철저하게 복음 전도자들이었다. 그들이 사용했던 전도지와 오늘날의 전도지의 차이점은 오늘 날의 전도지는 1분 내외의 전도지이지만 그들의 전도지는 약 200여 페이지에 달하였다. 이들의 전도지를 통해 수 맣은 자들이 회심하게 하셨다. 청교도들은 설교야 말로 복음 전도에 가장 중요한 요소라 하였다. 모든 설교자는 복음 전도자였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부르시고 말씀을 준비하게 할 때 쏟는 에너지의 모든 것은 그것에서부터 복음전도가 신작 된다는 것이었다. 주일에 설교를 들으러 오는 사람은 모두가 다 복음을 받은 자들이 아니었으며 설교자들은 사람을 낚는 어부였음을 생각하였고 그들에게 죄책감과 예수그리스도의 필요성을 제시하였다. 그러므로 믿음도 갖고 회개하게 하였다. 또한 성화의 삶을 살도록 계속적으로 설교 하였다. 요즘 교회는 모든 평신도를 복음 전도자로 나가게 한다. 이들을 통해 회심한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필요성을 전달하게 된다. 하지만 청교도들은 금방 회심한 자들은 아직 모든 것에 익숙하지 않은 자들이므로 복음 전도를 할 때 심각한 실수를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므로 복음 전도자가 되기 위해서는 철저하게 교육을 받아야 했다. 현재의 교회는 복음 전도를 평신도에게 그냥 맡기는 경우가 있다. 그러므로 이 양 극단의 중간을 취하는 것이 좋다.

 

평신도들이 설교를 듣고 나서 자신이 복음 전도의 메시지로 사용할 수 있을 확신을 설교자들이 주어야 한다. 현재의 교회는 바로 회심한 자들을 빨리 양육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필요하다. 초신자들은 기쁨이 있고 그러므로 이들의 마음에 전도하고자 하는 열정이 있게 된다.

 

초신자들은 알맹이 없는 복음을 전할 수 있다. 나의 경우 복음을 전하다가 삼위일체를 믿지 않는 사람을 만나 곤욕을 치뤘다. 나가서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은 이러한 경우를 겪지 않기 위해 훈련을 받아야 한다.

청교도들은 목회자들과 비교할 때 평신도들의 수준이 낫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정상적인 교회에서는 성숙된 성도들을 교육하고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권면하는 것이 약하다. 청교도들은 이러한 문제에 대해 내가 전반적으로 다 알지 못하므로 그것을 다 전하려 하지 말고 다음 주일에 나와 함께 교회에 가보지 않겠느냐는 일반적인 초청을 하게 하였다. 이를 청교도 평신도들은 잘 하였다. 설교란 하나님의 경륜을 성도들에게 전하는 것으로 죄와 믿음으로 그리스도에게 가는 길, 하나님의 영광을 모든 삶에서 구현하는 일 등의 광범위한 분야에서의 전도를 생각하였다.

초신자들에게 하나님의 은혜를 통해 성숙할 수 있는 것을 가르쳤다 이러한 면은 칼빈의 사상을 따르는 것이다. 죄의 악함과 하나님의 사랑 그 이상에 대해 계속해서 들어야 한다는 것을 생각하지 않을 수 있지만 청교도들은 철저하게 가르쳤다.

 

①철저하게 성경적 메시지

그들의 메시지를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발견하였다.

에드워드 디원은 “신실한 설교자는 예수 그리스도와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말씀외의 것은 전하지 않는 사람이다.

존 오웬은 “가장 최선의 중요한 임무는 목회자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성도에게 먹여야 한다는 것이다.”

어떤 학자는 “청교도의 설교는 하나님의 말씀의 고리를 연결하여 붙어있는 것이 아니라 설교가 그 하나님의 말씀 안에 담겨 있는 것이다. 그러기에 설교 안에 성경 구절이 있는 것이 아니라 설교 자체가 성경 구절이었다. 그렇기에 청교도의 설교를 듣는 다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잠겨 있는 것이다. 이는 청교도들이 말씀에 능통한 자였기 때문이다. 그들은 이를 가장 기본으로 삼았다. 즉 하나님의 말씀의 울타리를 벗어나지 않는 것이었다. 그렇기에 그들의 생각과 삶의 전반에 걸쳐 하나님 말씀중심의 삶이었다.

싱클레어 퍼거슨은 “ 오랜 시간에 걸쳐 하나님의 말씀에 친숙한 적용을 하기 위한 목적을 가지고 있다. 마치 보석 감정가가 보석을 감정하는 것처럼 말씀을 맡은 자들이 말씀을 깊이 연구했다.”

이렇게 조심스럽게 말씀을 전달하는 것은 상담자로서의 역할도 가능했다. 60-70분의 설교를 통해 강단에서 잘 목양 할 수 있었다. 현재의 교회를 보면 지금의 교회가 일대일 상담에 많은 시간을 보내는 것을 보면 자신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깊이 연구 하여 설교한 것과 비교했을 것이다. 그들이 구원을 받은 자와 구원을 받지 않는 자 모두에게 적용 될 수 있도록 심도 있게 말씀을 전했다. 아직 믿지 않지만 마음이 하나님께 열려있는 자들에게도 전하였다. 하나님의 말씀을 열어서 많은 여러 대상자들에게 통합적으로 전하는데 탁월했다. 물론 그들도 성경에 포함되지 않은 예화를 사용하기도 하였다. 성경 외의 자료를 예화로 사용하는데 사람마다 달랐다.

토마스 브룩스는 “희랍의 신화를 예로 들어 말씀을 나누었다. 아리스토 텔레스등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말씀을 중심으로 설교를 한 것은 내가 사용하는 예화가 성경에 속해 있다면 성경의 말씀을 사용하지 왜 다른 것을 취하냐는 것이었다.

현재의 설교는 적용점을 위해 말씀을 이곳 저곳에서 20-30개의 말씀을 사용하지만 청교도들은 이러한 설교에 대해 이것 저것을 사용하고 초점을 맞추지 못하는 설교를 한다고 말할 것이다.

청교도들은 하나님의 말씀 자체가 상당히 다양하기에 특별히 적용점을 찾기 위해 내가 선택한 말씀에서 그 근원을 찾으라는 것이다. 복음을 전하기 위해 말씀을 더 사용하라는 것이다. 말씀을 더 깊이 탐구하고 좀더 생각하고 성경적이 될 때 말씀이 더 권위적이고 흥미를 유발하며 많은 열매를 얻게 될 것이다.

 

②부끄럽지 않은 교리적 메시지

그들은 교리라고 하는 것은 실천 분야에 속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윌리암 퍼킨스 “ 축복받은 상황 속에서 영원히 살아가는 과학이다.”

그의 제자 에임스는 “하나님께 어떠한 삶을 드려야 하는가가 교리다”

싱클레어 퍼거슨은 “조직 신학이라고 하는 것은 의사들에게 중요한 해부학과 유사한 것이다. 신성의 한 몸이다”라고 하였다.

하나님의 말씀에 담긴 진리가 영적인 의사의 역할을 한다고 믿었다. 영적 환자에 대해 진료하고 그 병을 치유하기 위해 말씀을 약이라 생각하고 그것을 조제하여 성도에게 주었다. 오늘날에 청교도와 같은 설교를 하는 것은 불가능하며 현명하지 않다고 생각하는데 그러나 청교도를 발견한 사람들이 그들이 쓴 책이 얼마나 깊고 광범위한지를 생각하고 그들을 모방하려 한다. 하지만 그들에게 커다란 문제가 생기게 된다.

A.청교도는 본문을 보면서 가장 중요한 교리가 무엇인가를 보았고 10분 정도는 본문이 이야기 하는 것을 설명하고 오늘 이 교리에 대해 설명하겠다고 하며 교리를 설명하였다. 그렇기에 하나님의 말씀의 본문 자체보다 교리에 시간을 더 할애하게 되며 교리를 설명하면서 같은 주제를 설명하려 하였다. 특정한 교리에 대해 성경 전체는 어떻게 말하고 있는가를 설명하려 하였는데 문제는 본문 자체를 정확하게 드러내지 못하거나 본문의 상황을 정확하게 설명하지 못할 대가 있었다. 그들이 주해를 못한 자들이었다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주해 설교보다는 주제 설교가 그들에게 더 흥미가 있었다. 주제 설교를 권하는 것은 아니다. 현재의 교회에서 필요한 것은 주해 설교인 것이다. 정기적으로 목회 하는 현장에서 주해 설교는 반드시 필요하다.

B.이들의 설교를 모방하게 되면 생기는 두 번째 문제는 말씀을 듣는 청중들이 청교도시대와 같이 장시간 흥미를 잃지 않고 말씀을 들을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이는 불가능한 것이다. 청교도 설교자는 한 주제를 정해서 30분 정도를 깊게 다루어 나갈 때 그것을 따라가는 것이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요즘 사람들에게 아무리 논리적으로 교리를 전하려 해도 도중에 10분 정도가 지나면 예화를 들어야 한다. 그래서 청교도 설교자들이 했던 상세한 것을 모방하는 것이 우리의 자세가 되어서는 안 된다. 마치 닭들이 내가 원하는 것만 쪼아먹는 것과 같은 자세를 취해야 한다. 하지만 이러함에도 교리적 설교를 배워야 하는 것은 위대한 하나님의 진리를 잘 전달해야 한다는 필요가 우리에게 있다는 것이다. 한나님의 말씀을 전적으로 잘 전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들이 죄에 대해 말씀을 전할 대 죄를 죄라고 전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죄의 사악함에 대해 행함과 행하지 않은 죄에 대해 계속해서 전했다. 원죄와 자범죄에 대해 전하고 우리의 잘못된 마음과 행동에 대해서도 전했다. 생각과 말과 행동가운데 있는 죄도 전했다.

“죄성 보다 더 한 악 중의 악”이라는 제목으로 버렐은 6가지의 주제를 전했다.

 

A.가장 적은 죄라 할지라도 그것은 아주 커다란 어려움이 주는 악함보다 더 한 것이다.

B.죄는 하나님과 대응한다.

C.모든 선한 것을 물리친다.

D.모든 악의 악독이다.

E.영원한 면을 소유한다.

F.악마를 편하게 대하는 자세를 갖게 한다.

 

이 여섯 가지는 한 두 달 정도 하나님의 말씀을 능력과 확신을 전했다 한다면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해서 복음 전도적인 기초가 형성 될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능력을 가지고 인내하며 복음을 전했을 것이다. 설교야 말로 예수 그리스도를 천상과 지상을 오가게 하는 마차와 같다 그렇기에 예수 그리스도를 모든 사람에게 제사장, 선지자. 왕으로 전했고 그가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주는지를 전하였다.

어떤 신실한 성도가 회심을 해서 표징을 보인다면 모든 그리스도를 그가 섬긴다는 것이며 주가 되신 그리스도를 섬긴다는 것이다. 신실한 성도는 십자가뿐 아니라 그가 우리에게 주신 명령도 수용하는 것이다. 잘못 된 신자는 그리스도의 반만 수용하게 된다. 그들은 구속을 얻게 되는 일에는 그리스도가 유용하지만 성화는 유용하지 않는 것으로 안다. 반만 그리스도를 받는 다는 것은 온전한 성도가 아니다. 그리스도를 온전히 받는 다는 자는 자신의 삶 전체에서 그리스도를 받아들이는 것을 말한다. 청교도들은 어떻게 하면 하나님을 귀중히 존엄하게 높이느냐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하나님께서 위엄을 가지시고 당신의 형상으로 지으심을 높이려 하였다. 우리를 회복시킨 그리스도를 높이려 하였다. 우리를 하나님의 거룩한 성전으로 만드시는 성령님을 높이려 하였다.

 

①경험에 의거한 실제적 메시지

②전적으로 복음 메시지

청교도들은 복음의 전적인 것을 사용해서 모든 사람을 전적인 사람으로 인도하려 하였다. 복음으로 그들의 의지만을 자극하려 한 게 아니다. (현대 복음주의자들이 많이 사용 - 말씀을 듣는 죄인들이 당장 결신하는 것을 목표로 삼는 것이 아님) 청교도들은 복음에 작용하는 믿음이 가장 본질적인 것이라는 것에 동의한다. 믿음이라는 것이 본질적이고 근본적인 것에는 동의한다. 중생이나 구원에 이르는 믿음을 가지는 것에 시간의 갭이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초신자들에게 그들은 어떻게 하든지 더 풍성한 복음을 전하게 하는가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왜냐하면 성경이 아직도 예수를 믿지 않는 자들에게 무조건 믿어라는 것 보다 풍부한 것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믿어라 외에 회개 하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청교도들은 회개라는 것은 잠정적인 느낌에 제한 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 전체 삶의 모든 상황을 동원해서 변화를 갖게 하는 것에 목표가 있었다. 구원 받지 않는 자들에게 다른 메시지를 가지고 있었는데 이는 지옥의 현실이다. 그들이 잘못된 것을 중단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메시지를 전했다. 하나님이 거룩하듯 너희도 거룩 하라는 사실을 전했다. 아직 구원 받지 않은 사람들에게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의 법도를 사랑하라고 전했다. 저 문을 향해 달려가라고 전했다. 이러한 설명 모두를 구원 받지 않은 사람에게 전했다. 이런 일에 대해 복음주의자는 율법주의적인 신앙을 도모하는 것이 아니냐라고 반문한다 그러나 이것은 두 가지 중요한 증거를 가진다.

 

A.성경적인 것이다. 이는 선지자들과 사도들이 설교한 내용 안에 담겨 있기 때문이다.

B.하나님께서 어떤 사람에게 구속 사역을 행하시는 과정 속에서 하나님께서 의식적으로 아직 회개하지 않은 사람이 생각속으로 결정하는 것을 유도하는 분이 아니다. 하나님의 방법은 죄인이 그 죄에 대해 확실하게 아는 것으로 사역을 시작하신다. 내 자신이 어떻게 할 수 없고 하나님이 내게 명하신 그 명령에 순종하기를 원하신다. 그렇기에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전할 때 율법의 요구가 무엇인지를 전하고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전했다. 롬 1:3에서 바울이 설교하는 것과 유사하게 하나님의 율법을 먼저 설교했다. 롬 3:19에서 바울이 이렇게 설교한 목적을 설명한다. 내가 하나님의 거룩함과 율법을 선포하는 이유는 모든 죄인들의 행동을 중단하게 하기 위해서다. 모든 세상이 죄로 채워져 있기 때문이다. 흥미로운 것은 청교도들은 죄인들이 죄로부터 돌아오라고 하지 않았다. 그들은 스스로 돌아 올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믿었다. 하나님의 율법을 대할 때 하나님께서 서열ㅇ을 통해서 하나님의 율법을 지킬 수 없는 자임을 철저하게 알게 하시고 그로 인해 자신들이 어떻게 할 수 없는 자임을 알게 될 대 하나님으로부터 도움을 청한다는 것이다. 청교도들이 믿는 중요한 것은 복음이라는 것은 그 사람이 자신의 죄인 됨을 인식하는 사람에게만 상당히 유효하다는 것이다. 이런 확신이라는 것은 율법을 죽이는 것이라는데 이는 자신의 의를 죽이는 것이다. 이런 죽임을 통해 하나님께서 죄인을 그리스도께 인도한다. 여기서 주의할 것은 율법에 대한 설명은 예수 그리스도께 오는 조건이 아니라는 것이다. 모든 죄인은 주님께 올 수 있도록 초청을 받은 자이다. 모든 청교도가 믿은 것은 아픈 자들에게 모두 의사가 필요한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요즘 복음 전도에서 이러한 일이 일어나는데 죄에 대한 확신을 중요시 여기지 않는다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라고 말할 때 성도들은 예수 그리스도가 그렇게 필요치 않다고 믿게 되며 이들은 그리스도에게 오지 않게 된다.

 

JI 페커는 자신의 양심을 찢는 행위라는 것이다. 베드로의 설교처럼 사악한 너희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았다는 것으로 그들의 양심이 찔려 졸아오게 하는 것이다. 요즘 설교자들은 자신들을 좋게 하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좋은 것만 생각하게 하여 내가 속성상 죄로 인해 죽은 자라는 사실을 망각케 한다. 롬 8:7절의 육적인 것은 하나님게 대항 한다는 것을 잊게 한다. 복음 전도에서 하나님의 율법을 사용하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죄인들에게 아름다운 화음을 들려주 실 때 근본적인 베이스 음을 들려 주신다는 것이다. 이는 죄인들은 예수께로 이끌기 위해 절망감을 먼저 준다는 것이며 이는 정확하게 성경적인 것이다. 세례 요한도 회개와 거룩에 대해 설교 했다. 보라 저 어린양을 보라 저가 우리의 죄를 사하실 것이다. 예수께서도 마 4:17에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워 왔느니라

그러므로 오래전의 청교도들은 구속을 필요로하는 자들임을 알고 율법을 잘 활용하였다. 이에 더해 성령님의 사역을 잘 사용하는 것에 대해 설교했다. 그리스도의 사역과 자신의 죄를 자각한 사람들이 그리스도께 돌아오는 것으로 보았다. 세상에 가장 좋은 소식은 죄로부터 그들을 구출해 내는 것이다. 이러한 죄가 있는 자가 그리스도께 왔을 때 그리스도안에 그들이 필요한 모든 것이 있음을 발견하게 한다. 이는 용서만이 아니라 죄에 대한 자각을 가진 자에게 칭의와 성화도 그리스도에게서 발견됨을 알고 자신의 죄를 다 죽이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고자 하는 동기를 주고 하나님과 닮아지고자 하는 욕망을 준다.

 

결론적으로 율법에 의해 죄를 발견하지 못하는 자는 성도가 된 이후에 율법을 지키는 일에 게을리 하는 자가 된다. 이러한 현상이 요즘 세상의 많은 교회에서 행해진다. 죄에 대한 자각에 대해 설교자들이 많은 시간을 할애 하지 않는다 죄인들이 그리스도께 오는 것은 사실이지만 자신을 그리스도와 함께 못 밖는 일은 하지 않는다. 죄에 대한 자각이 상당한 고민 없이 이루어 짐으로 그리스도에 대해서도 낮은 기대감을 갖게 된다. 그리스도의 영광을 위해서도 살아가는 일에 커다란 확신을 갖지 못한다. 그렇기에 회심된 자가 살아가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아야 한다. 그러므로 중생은 천국의 관점에서 볼 대 중요하다. 성령으로부터 음성을 듣는다는 것은 그에게 새 생명이 주어지는 것이며 그는 영적으로 살아야 한다. 그는 새로운 피조물로 하나님 중심의 삶으로 살아야 한다. 롬8:5절에 성령께 속한자 성령을 ‘따른다 하였다. 진실한 회심은 하나님을 따르는 것이며 죄에 대해 증오심을 갖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과 다른 거룩한 자를 사랑하는 일을 포함한다. 영원히 하나님과 살고 죄악과 영원히 결별할 것을 생각하며 사는 자들이다.

확실한 것은 청교도들은 복음전도를 위해 율법과 복음을 다 사용하였다. 그 목적은 죄인을 그리스도에게 이끌기 위함이고 그들을 그리스도의 제자로 만들기 위함이다. 청교도의 복음전도 메시지는 주의 깊고 균형 잡힌 메시지이다. 이 사실에 대해 여러가지 언급할 수 있지만 네 가지를 말할 수 있다.

 

A.하나님의 말씀 그 자체가 성경을 이야기 할 때 독단적으로 무엇을 말하는가가 성경 그 자체이다. 조화를 이루기 위해 하나님의 경륜 모든 것을 다 전하려는 욕심을 가지지 않았다. 한 청교도가 죄에 대해 이야기 하면 그 설교의 전체가 마지막에 다른 포인트가 들어 갈 지 몰라도 죄에 대해 집중적인 설교를 하였다. 천국에 대해 설교를 할 때 천국에 대해 온전히 설교 하려 하였다. 청교도 설교는 한 주제를 정했으면 이 주제에 대해 무엇을 말할 것인가를 전하려 하였다. 시간이 지나다 보면 오늘은 이 주제 다음에는 저 주제를 하다 보면 모든 주제를 다 하겠지만 오늘 나에게 주어진 주제를 충실히 전하려 노력하였다. 모든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교리가 성도들 자신도 모르게 스며들게 하였다. 어떤 청교도들은 한주에는 그러한 삶에서 도망가라는 말씀을 듣고 기뻐했을 것이며 그들이 좋아 판 것은 그 현장에서 도망가라 피하라는 것이었지만 다음주는 하나님께서 거저주시는 은혜를 듣고 마음속에 기쁨을 가졌을 것이다. 그러므로 매 시간 한 주제를 깊이 다루었는데 이렇게 시간이 지나면서 모든 교리적인 내용인 자신의 삶에 스며드는 효과가 있었다.

 

B.성경이 말하는 다양한 주제를 선별하여 설교 하였다. 이것은 주로 질문을 통해 가능하였다. 어느 청교도가 한 질문을 보면 “영적인 침체로부터 이것을 막을 수 있는 좋은 방법은 무엇인가, 어떻게 그리스도를 알아가는 지식에서 자랄 수 있느냐? 우리의 영적인 자만감을 치유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가? 우리 자신의 영혼을 알 수 잇는 방법은 무엇인가? 우리 안에 있는 심각한 거룩함에 대해 알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내 안의 거룩을 남들에게 잘 드러낼 것인가?” 이러한 제목을 통해 많은 다양한 주제를 설교 했다.

 

C.강단에서 영적인 상담을 하려는 노력을 하였다. 좋은 설교자들은 어떤 형태로서 설교를 하면서 성도들에게 노트를 요구했다. 기록된 설교 노트를 가지고 아버지와 아이들이 설교에 대해 다시 전 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하였다. 가정에서 설교를 들은 후 아버지들이 어떻게 잘 가르치는가를 가정을 방문해서 교훈을 주었다. 영혼의 가치의 주제를 가지고 설교는 여섯 가지 이상의 설교를 할 것이다. 이러한 설교를 받아 적은 아버지가 아이들과 둘러 앉아 아이들에게 너희가 어떤 설교를 들었니? 우리의 영혼이 왜 귀한지 말 할 수 있겠니? 큰 아이들은 나름대로의 논리를 말하고 자신이 적은 것이 있다면 그것을 통해 긴 이야기가 나누어 질 것이다. 그러므로 청교도들은 하나님 앞에 신실하게 살아가는 아빠들은 가정에서 목회를 감당하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했다. 사회적으로 보나 영적으로 보나 설교는 가장 중요한 이벤트였다. 청교도들은 설교를 대단히 중요하게 여겼다. 신실한 청교도 가정에서는 주일을 거룩히 맞이하기 위해 예배를 길게 드렸다. 토요일에는 주로 가족이 집에 모여 좋은 책을 읽고 성경을 읽으면서 열정적으로 예배를 드릴 준비를 하였다. 이에 대해 한 청교도는 “빵을 따뜻한 오븐 안에 밤새 두듯이 주일 아침에 온전히 예배 드리기 위해 토요일 밤에 우리의 마음을 잘 준비하여야 한다.

D.바르게 살아가는 삶의 모습과 함께 이루어 졌다. 이것이야 말로 청교도 운동의 가장 중요한 실체이다. 청교도 설교자들은 자신들이 설교하는 대로 살았다. 교리가 주는 열매와 그들의 삶 속에서 발견되는 열매가 같았다. 그들은 가르치는 선지자였고 중재하는 제사장, 통치하는 왕이었다. 이것은 교회와 가정에서 마찬가지였고 사회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모든 사회의 눈이 청교도 설교자를 향하였다. 공동체 안에서 청교도 설교자들은 가장 중요한 사람들이었다. 모든 사람에게 멘토가 되었다.

 

2.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하여 사용된 방법

①간결한 방식의 설교

윌리암 퍼킨스는 “설교는 간단해야 하는데 간단 할수록 더 좋다.” 이렇게 간결한 것을 강조한 것은 성공회 목사들이 간결하지 못한 것에 치중한 것에 대해 말한 것이다. 청교도는 어른 뿐 아니라 어린아이들까지 잘 이해 할 수 있도록 설교는 간결해야 한다고 하였다. 그들은 설교를 세 부분으로 나누어 했는데 제일 처음에는 본문에 대해 주해를 하는데 단어와 개념을 주해하고 두 번째는 교리적인 면을 강조하였고, 세 번째는 적용의 관계에 대한 설교를 하였다. 적용 부분에 대해 짧지 않고 긴 부분을 할애 하였다. 적용 부분을 어떻게 본문을 사용하느냐 하는 사용법이라고 하였다. 적용에 있어서 여러 타입의 청중이 있음을 의식하면서 설교를 작성하였다.

 

매일 설교를 행 할 때 7종류의 사람이 있을 것을 생각하였다.

A.처음에는 아직 믿지 않고 무식한 사람이다. 이 사람은 설교자가 이야기 하는 그 무엇도 흥미를 글지 못한다. 그를 졸지 않게 하는 목적을 달성해야 한다.

B.가르치면 배울 수 있지만 무식한 사람이다. 배우기를 원하지만 알지 못하는 사람이다.

C.들은 지식은 있을 지 모르지만 교만한 사람이다. 이러한 사람은 구원을 받은 사람이지만 겸손키 않아서 머리의 지식은 있지만 가슴의 지식을 찾기 어려운 자들이다.

D.제대로 신실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이지만 구원의 확신은 없는 사람들이다.

E.안정된 성도들인데 구원의 확신도 있고 그리스도와 함께 열매를 맺는 사람들이다.

F.타락한 사람들인데 구원을 받은 이후에 부주의한 삶을 사는 사람들이다.

G.모든 것이 혼합된 삶을 사는 사람들로 두개 이상을 혼합하여 사는 사람들이다

청교도들은 이러한 종류의 사람들에게 똑 같은 효과를 기대하며 설교하지 않았다. 요즘에 주로 적용에서 사용하는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를 의식해서 적용을 하였다. 그러나 세 네 종류의 사람에게 적용 될 때도 있었다. 이러한 방법으로 설교를 할 때 앉아 있는 7종류의 사람들은 자신에게 적용되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게 된다. 회개하게 하는 내용과 그들의 삶의 방식을 점검하게 하는 내용과 그들의 필요를 채우기 위해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향해 가라는 내용이다.

믿는자에게는 3가지 부분의 적용을 하였는데 위로, 삶의 방향, 자가점검을 할 수 있는 적용이다.

이것을 듣고 자신의 삶에 적용하려 하였다. 이러한 것을 통해 그들의 지성에 명확한 도전을 하였다. 첨예한 방식으로 그들의 양심을 찔렀고 긍휼의 마음으로 그들을 품었다. 청교도들은 자신이 사용할 수 있는 모든 무기를 가지고 죄인들을 하나님께로 돌아오도록 열정적인 설교와 개인상단 지속적인 설교, 성경적인 이성을 사용하였다. 기쁨의 삶을 증거 하기 위해 자신의 삶을 보여 주였다.

충격적인 것은 설교를 통해 얼마나 많은 복음 받는 자들이 될 것인가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가졌다. 오로지 죽은 죄인이라고 하는 것은 모든 것에 능하신 그리스도에게 의존 할 때 가능하며 자신의 죽은 양심에서 떠날 수 있으며 계속해서 자신을 공격하는 죄에서 자유롭게 될 수 있었다. 확실히 안 것은 설교된 말씀을 공수표로 돌아오지 않는 다는 것이다.

두 가지 설교자가 있는데

 

A.강단에서 설교를 하는 사람

B.내적으로 성령께서 그 사람을 통해 설교를 하여 사람을 변화시키는 설교자

강단에 오를 때 두려움으로 서는 자는 확신을 가지고 그 강단에 썰 수 있었다. 앉아 있는 많은 죄인들이 전하는 말씀으로 하나님께로 돌아 올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①교리 문답을 통한 전도

어린아이에게 복음을 전할 때 사용했던 것은 교리문답 형식을 사용하였다. 목적이 있었는데 그것은 설교를 잘 이해 할 수 있는 수준으로 어린아이들을 맞추어가기 위해서이며 이를 위해 여러가지 방법을 사용하였다.

첫번째는 자신이 스스로 교리 문답책을 기록하며 기록된 문답서를 회중에게 나누어 줄 것.

존 코튼은 “애기를 위한 요리”라는 제목으로 문답서를 작성하였다.

에인 그린은 “청교도들이 어떤 문답방법을 사용하였는가? 를 가지고 ph.D 논문을 썼는데 그가 작성한 내용은 보면 요리문답의 처음에는 질문(사도신경, 십게명, 주기도문, 성례전 등)이 있고 거기에 대한 답이 있다. 이를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어린아이들도 어른과 유사했다. 하지만 어른에 비해 간단했다는 것이다. 청교도 목사들은 가가호호 심방을 하면서 어떻게 아버지가 아이들에게 잘 가르칠 수 있는가를 모범으로 보여줌으로 현명한 청교도들은 목사. 사모를 가정으로 초청하여 그날 저녁에 식사를 한 후 초청한 목사에게 가정예배를 집례하기를 원하고 어떻게 가정예배를 잘 인도 하기 위해 인도하는 방법을 조심스럽게 살핀다. 이는 어린아이에게 성경을 잘 가르치기 위함이다. 그 뿐 아니라 주일날 예배와 성례전을 잘 돕기 위해서 이다. 언약의 자손들인 신앙의 고백을 할 수 있도록 잘 준비해 주며 오류로부터 어떻게 진리를 잘 지켜 나가는 가를 중요하게 여겼다. 성경과 문답서를 외우게 하였다. 문답을 통한 방법의 교육은 설교를 통한 교육에 이어지는 것이었다. 이것은 아직도 교회에 나오지 않는 어른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방법이었다.

조셉 얼라인이라는 청교도는 일주일에 닷새를 가정 방문을 하면서 교육을 하였다. 가정 방문을 하면서 한 사람 하 사람에게 가르치는 시간이 되면 그 사람의 집에 가지만 그 주위에 믿지 않는 사람을 초청해 같이 말씀을 듣게 하였다. 가장 중요한 것은 아이를 교육하는 것이라 하였지만 실상은 주위의 어른을 믿게 하는 일이었다. 당시의 사회는 목사들이 존경 받는 사람들이었고 심방을 위해 그 길을 걸어가면 길에서 만난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지 않고 내가 가는 집에 같이 가자고 권하였다. 어떤 청교도들은 설교 분 아니라 이러한 일대일 문답으로 설교보다 더 큰 효과를 얻게 되었다고 하였다.

리차드 벡스터는 “설교를 아무리 들어도 진리의 말씀에 무식한 채로 남아있는 사람들이 있다. 아무리 말씀을 들어도 영적인 효과를 얻지 못한다. 이것과 비교해서 목사의 30분 심방이 훨씬 효과를 얻는다 이는 10년 정도의 설교 효과를 얻게 된다. 이런 특별한 날 누구든지 와서 가정예배에 참석하라고 권하였다. 이런 문답을 통해 가르치는 것은 교리만을 중심으로 하지 않았다. 그 때는 교리만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성도들을 위로하고 스스로를 돌아보는 기회를 제공했다. 온전하게 설교하고 교리를 통한 가르침은 시간이 드는 것은 사실이며 특별한 기술을 요한다. 청교도 설교자들은 그럼에도 이러한 어려움을 극복하고 복음을 전하였다. 오랜 시간 동안 자신을 준비하는 방법을 알고 있었다.

조나단 에드워즈는 일주일 동안 하루에 7시간 준비하였다. 우리가 섬기고 있는 교인들도 하루 종일 일하고 있음을 기억하고 그들도 바쁜 가운데 이러한 일을 실행함을 알아야 하며 그들은 바쁜 가운데서도 무엇이 우선인줄을 알았다. 많은 사람들이 순간적으로 회심할 것을 기대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중요한 것은 평생 동안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들을 세우는 일에 최선을 다하였다. 문답을 통한 복음 전도에 다른 사람보다 잘하는 사람이 있었다. 하지만 모든 목회자들은 자신의 성도들은 대상으로 열심히 일을 하였다. 모든 사람을 찾아 다니며 일하였다. 강단에서 개인을 만나서 일을 하였다. 현대의 복음 전도는 예수께 오게 하는 일을 하는데 그들 스스로 결정하게 하기도 한다. 이러한 결과는 스스로 성도가 된 것 같은 생각을 하기도 하지만 그들이 성도가 되지는 않는다. 오랜 시간 빌리 그래함을 도왔던 사람이 빌리 그래함을 통해 돌아온 사람들에 대해 조사 했는데 많은 결신자 중 2%의 사람만 신앙의 열매를 맺었다는 것이다.

리차드 벡스터는 자신의 성도에 대해 기록하길 민스터에 부임했을 때 길가에 한 가정만 예수를 믿고 있었다. 후에 사역을 한 결과 한 길에 속한 모든 사람들이 믿는 길들이 많아졌다. 이 사실에 대해 벡스터는 “내가 사역하는 동안 하나님의 은혜로 600명 정도가 회심을 하였는데 그 중 그 누구도 한 사람이 그리스도에게서 멀어져 타락한 사람이 없었다. 이는 청교도적 복음 전도가 얼마나 중요한 지를 반증한다.

 

3.청교도 복음 전도자의 내적 성향

①성령을 의존함

토마스 왓슨 – 성도는 사람들의 마음의 문을 두드리는 사람들이다. 하지만 성령께서는 열쇠를 가지고 그 사람의 마음의 문을 여는 분이다. 그래서 설교자가 자신 스스로 그 누구도 회심하게 할 수 없다는 사실을 마음에 품고 있지만 분명히 성령께서 사람들을 주께 돌아오게 할 능력이 있기에 설교를 듣는 자들은 하나님게로 돌아 올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고 해야 한다.

②진지한 기도를 동반함

복음 전도자들은 무엇을 하든지 최선을 다하는 기도의 삶을 살았다. 잃어버린 영혼을 위해 울기도 하였다.

로버트 멕쉐인 – 어느 날 어떤 사람이 찾아 왔는데 멕쉐인의 목회 성공을 알기 위해 왔다 하지만 멕쉐인은 그 자리에 없었고 방문자는 실망하였다. 교회를 위해 수고하는 집사가 그를 돕기 위해 다가갔다. 방문자는 하나님께서 사용하는 목사님에 대해 알고 싶다 하였고 이에 대해 그를 멕쉐인의 서재로 인도했다. 그의 의자에 앉게 하고 그 위에 손을 얹고 소리 내어 기도하라고 하였다. 강단에 올라가서 손을 활짝 펴서 하나님을 향해 울고 기도해 보라고 하였다. 이것이 성공의 비결이라고 하였다. 이것이 모든 사람에게 보이지 않았지만 그가 가진 목회의 성공 비결이었다. 그는 자신의 영과 함께 씨름을 하였던 자였다.

 

4.결론

청교도들이라고 완전한 사람들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들이 사용한 복음 방법은 우리에게 도전하게 한다. 그들의 글이나 설교보다 그들이 하나님을 섬긴 것을 더 연구하고 그들이 하나님을 섬긴 것 보다 더 잘 섬겨야 한다. 성경의 진리가 우리를 항복하게 하여야 한다. 멕쉐인이 한 것과 같이 거룩한 목회자는 하나님의 손에 붙들린 자여야 한다. 마지막 설교를 하거나 기도의 시간이 되었을 때 잠 11:6 많은 영혼을 주께로 돌아오게 하는 자는 지혜로운 자이다 그들의 영광은 별과 같이 영원히 빛날 것이다.

<질문>

회개 하지 않는 자에게 어떻게 율법을 사용하는 가에 대해 이야기 하였다. 청교도들은 이미 구속을 얻은 자가 살아가야 하는 칼빈의 율법의 제 3의 용법에 대해 더 강조 하였다. 성화 교리에 대해 더 깊이 있게 다루었다. 루터는 이에 대해 더 깊이 있게 다루지 않았다. 그는 성화를 깊이 다루면 칭의시 얻은 은혜를 감할 까봐 강조하지 않았다. 칼빈은 성화를 위한 율법의 사용을 잘 이해 하면 성화에 대한 율법의 사용을 잘 이해 할 것이라고 말하였다. 루터는 율법의 제 3 용법을 말하지 않았지만 그의 신학에는 이에 대해 가장 처음 표현한 자를 보면 그와 함께 했던 멜랑톤이 사용하였다. 그가 사용하지 않았지만 멜랑톤이 사용하였다는 것은 그가 이를 부정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는 율법은 막대기와 같다 그것은 우리를 때려 죄를 알게 하고 십자가 앞에서 죄를 사함 받은 것을 확신하게 되면 우리를 때렸던 그 막대기를 우리 손에 쥐어줘서 우리가 삶을 사는데 도움 받게 하신다. 이것이야 말로 칼빈과 청교도의 제 3의 용법이다. 차이는 제 1용법을 강조한 루터와제 3용법을 강조한 칼빈, 청교도의 차이이다.

회개와 결단을 얼마나 촉구 하여야 하는가?

강단으로의 부르심에 대해 청교도는 두려움을 가지고 있었다. 이유는 진정한 복음에 대한 것보다 치장된 것으로 불러 내는 것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침체에 빠진 자가 설교를 들었을 때 집에 가서 홀로 침대에 누워 하나님과 씨름하며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더 좋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우리의 영혼 속에 어떤 일이 있는가 주제를 다룰 대는 수평적인 공동체의 장소 보다 수직적으로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깊은 안도를 하였다. 청교도들은 목회자의 집에 방문하는 것을 언제든지 환영하였고 침체에 빠져 있을 때, 구원에 대한 확신이 없을 때 목회자의 사택을 방문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다. 공공의 장소보다 개인적인 도움이 중요하다 생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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